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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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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8.14
    로마가 위대한 이유 2
  2. 2013.08.14
    극복해야할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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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사에서 하나의 본좌로 여겨지는 대제국이었던 로마. 그 로마에 대한 수식어로 위대한이라는 단어가 붙는데, 그 로마가 위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그 드넓은 영토와 도로? 강대한 군사력? 정치체제? 사회문화?


사실 로마가 진정 위대한 이유는 바로 법률에 있습니다. 


만민법과 시민법은 로마의 전국적인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현대 국제법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법학이라는게 꽤 오랜 전통을 가진 학문이고, 이 법학이야말로 로마의 진정한 유산이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전국적인 법이라는 개념이 사실 국왕과 같은 통치자의 명령이 곧 법이었던 것이 근대 이전의 일반적인 예시였고, 지역이나 시대를 불문하고 국왕같은 통치자의 명령이나 칙령은 그 자체로 거진 전국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었죠. 


그렇다고 명령과 같은 불문법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암흑시대 게르만 왕국시대부터 게르만인들은 성문화된 자기 부족의 법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법전은 암흑시대 게르만 전통 부족 관습법과 로마법을 토대로 만들어졌죠. 법이라는 게 통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허술하더라도 시대나 지역을 구분짓지 않고 통치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에서 존재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재밌는 건, 중세의 봉건시대같은 경우 봉건제도의 특성상 통일된 전국적인 법이 나타나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동로마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이 있었지만, 비교적 강한 중앙집권화를 보여줬던 프랑크 제국이 있었을 때까진 전국적 영향력을 지닌 살리카 법과 법원이 존재했으나 그 프랑크 제국이 무너지고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 해당되는 지역의 3개의 국가로 쪼개지기 시작하며 전국적인 법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지역에 따라 법이 집행되던 시기였죠. 중세가 끝나고 봉건제가 약화되면서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지는 시기부터 다시 전국적인 법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절대왕정이 형성되는 시기에 강력한 왕권을 가진 국왕은 그들의 강한 권력을 확립시키고 굳히기 위해 대대적으로, 전국적으로 통용이 될 법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런 법을 만들기 위해 찾은 것이 바로 고대의 로마법인데, 한마디로 고대의 로마제국의 법을 가져와서 자기네 방식으로 고친 뒤 적용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그 로마법 계수라는 것이죠. 이 로마법 계수를 통해 봉건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절대주의가 성립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이때 사용된 로마법이 바로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법 대전 편찬이 그의 업적에서 가장 대단한 것으로 꼽히는 이유라고 합니다.


로마법의 계수는 15세기~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법학계에선 근세 전기의 계수는 전기계수, 18세기 이후의 계수를 후기계수라고 부르는데, 시민 혁명과 민족국가, 근대국가가 성립되며 18~19세기에 본격적으로 근대적인 법적편찬운동이 시작됩니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1871년 프로이센의 독일제국이 성립함과 동시에 독일의 통일법전이 편찬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대륙법계 국가들의 민법전의 기초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이 (아직은 미완성이었던 독일의)법과 프랑스 민법전을 일본에서 수입하여 자기네 민법전으로 삼고 이후 우리나라는 완성된 독일의 민법과 일본의 민법을 수입하여 우리나라의 민법을 만듭니다.


이를 연속적으로 보게 될 시 현재 거의 전세계 법률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는 건데, 현재도 이 로마법의 영향을 짙게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법들입니다. 로마가 망한지 500년, 길게는 천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법은 근대를 넘어 현대의 지금 시대까지 그 영향이 진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본다면, 괜히 로마가 위대하다는 소리를 듣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단지 영토가 넓고 강한 군사력을 지녔고 멋지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수많은 민족, 국가에게 강렬한 영향을 끊임없이 미칠 수 있게 하는게 진짜 위대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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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일본, 프랑스, 미국, 러시아 등 세계에서 내노라할 열강들에 의해 조선이라는 국가가 이리저리 휘둘리고 공격받고 약탈당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안위 자체가 커다란 화두로 떠버렸고 이에 대한 조선의 지식인과 일반 백성들 또한 걱정했던 것이, 몇십년 뒤에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와 결국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한일합방이라는 초굴욕을 당하며 힘이 없으면 당한다는 제국주의의 진리를 직접 겪었죠.


그런 상황에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의 사상에 의지했는데, 그 사상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민족주의라는 것입니다. 조선의 백성들이, 대한제국의 백성들이 뜻을 모아 하나로 뭉쳐 수천만 한민족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대항하고 싸워나간다면 다시 조국을 되찾고 영광스런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다라는 것이죠.


이를 정리하자면, 조선-한국의 민족주의는 태생부터 '생존'을 위해 대두되고 발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생존지향적 민족주의는 매우 배타적이게 마련인데, 주로 일본에 대한 배타성을 짙게 드러내었지요.



광복 이후 한국의 민족주의는 쉽사리 사라질리가 없었는데, 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자 프로파간다 형식으로 국가 주도하에 이용된 측면이 존재합니다. 일본에 의한 식민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일본이라는 발전된 국가에 대한 열등감을 부채질하며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생존과, 발전을 지향하며 이용되었죠. 물론 그 자체로 일본이라는 원수를 까야할 이유는 분명 존재했고, 민족주의가 잘 뿌리내린 마당에 그걸 다시 뽑을 수도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요.


민족주의라는 것이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남과 다른 고유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피아의 구분과 자타의 구분이 공격적인 성격을 띄기 시작하면서 적극적인 배타성, 오만한 우월의식, 민족과 국가, 역사를 지나치게 높히고 찬양하는 식의 자만심으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시점이 언젠가는 나타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이것을 이미 겪었습니다. 


역사 교과서, 역사 교육은 민족주의적이기 짝이 없고 학계 또한 마찬가지였죠, 학교에서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민족주의-국가주의적 정체성을 주입시켰죠.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세뇌'. 민족주의적인 사회상과 교육은 민족주의라는 프레임을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고 문화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하면서도 인명이나 지명에서 왜색이 느껴진다며 수입이 금지되는 작품도 많았고, 수입이 되면 죄다 한국식 이름, 지명으로 바꿔댔습니다.



사실 이러한 민족주의가 조금씩 걷혀져가는 원인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목적으로 교육시키던 독재에서 벗어나며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조금씩 사회로 뻣어나가는 시절이었던 90년대의 조금 더 자유로워진 사회상과 그에 비롯된 적극적인 일본 문화의 수입, 그리고 기술의 발전으로 컴퓨터가 보급되고 인터넷을 막을 수가 없으니 좋든 실든 개방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그러합니다. 물론 90년대엔 일본 만화 보려면 해적판으로 봐야했고 애니메이션도 암시장을 통해 구해야 했죠. 일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게 된 건 조금 뒤의 이야기.


이러한 변화로 인해 민족주의 물을 덜 먹은 사람이나,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민족주의라는 것에 대해 고찰하고 의심하게 되는데, 과연 민족주의라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옳은 것인가, 이것에서 비롯된 각종 문제나 선입견 등은 무엇이 되는가 등등을 생각해 볼 수 있었죠.



세계화, 국제화라는 것은 여러 인종과 여러 민족과 좀 더 직접적으로 교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데, 당연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민족주의는 고리타분하고 그들과의 교류, 배움에 있어서 방해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미 배타적이고 스스로를 높히는 민족주의인데, 현재 한국을 찾아오는 외국인들이 많아졌음에도 이들을 앞에 두고 이러한 민족주의적 태도를 고집하며 행동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종차별로 비추어질 가능성이 크며, 이는 세계화-국제화의 시대에 있어서 커다란 마이너스 요인이기도 합니다.


단지 다른 나라 사람.. 타인종, 타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특히나 나치라는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세계 대부분의 선진국이 모여있는 북미와 유럽에서는 정말 싫어할 요소이죠.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를 탈피, 극복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탈민족주의를 지향하자는 것이죠. 이미 민족주의라는 것을 통해 여러가지 부정적인 것을 목도하였고 이제는 그것에서 벗어날 차례입니다. 진정 세계속에 뛰어들길 원한다면 세계를 포용해야하듯이 그러려면 자신을 민족이라는 가치에 묶어두는 쐐기를 먼저 뽑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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