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정치에 존재하는 유일한 정의는 승리하는 것이다.
1.
정치는 선악이 없다. 그것은 그 자체로 도덕, 윤리적 논의의 장이 아니고 무엇이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 공간이 아니다. 그렇게 보일 수 있을 뿐이지만 그것은 정치적 결정자와 행위자에 의한 결과일 뿐이지 진실로 선한 의도와 결론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의 기본은 이익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은 언제나 승리였다. 즉, 승리하는 쪽이 이익을 얻는다. 원리적으로, 민주주의에서 이익을 얻는 승리자는 국민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표준적인 모델을 상정했을 경우, 진영과 무관하게 정치적 승리를 하는 쪽은 국민이 되며, 이익을 얻는 쪽도 국민이 된다.
정치인은 국민의 대표이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행위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이 복지를 원한다면 정치인들은 그들의 대의에 따라 복지 관련 정책과 법안을 통과시킬 것이다. 국민들이 더 안전한 노동 환경을 원한다면 정치인들은 노동법을 개정할 것이고, 국민들이 더 합리적인 교통을 원한다면 도로교통법을 바꾸거나 새로운 기술과 정책을 도입하여 편의성과 합리성을 증진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방향과 추구성은 상이할 수밖에 없기에 진보, 보수, 좌파, 우파 등 수많은 갈래로 나뉘는 진영 관계 속에서 특정 진영의 승리가 특정 진영의 손해나 피해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모두의 손해로 돌아오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것은 국민들이 전선한 존재가 아니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국민의 의사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요소들에 좌우한다.
그러한 이유로, 정치적 승리를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이 반드시 국민이 아닐 수 있다는 건 현실적인 민주주의이고, 이것은 이론과 학설에 반영되는 사실이다.
2.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승리가 필요하다. 국민이라는 집합은 진영과 무관한 전체를 함의하는 바, 각 진영의 지지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 될 것이다.
가령, 민주당 지지자가 어떠한 정책을 원하거나 막고 싶다면 정치적 승리가 필요하다. 아무리 대단하고 고상한 대의가 있으며, 그것이 현실에 얼마만큼의 효용을 발휘하고, 그것이 도덕적인지, 부덕한 것인지, 윤리적인지 아닌지조차 둘째 문제이다. 무엇을 하고 싶다면 정치에서 승리해야 한다.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하고 의석을 다수 차지하지 못한 정치 세력이 어떠한 법과 어떠한 정책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3.
그렇다면 정치에서의 승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정치인과 정당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치는 선악의 장이 아니다. 싸움과 전쟁의 장이고 이곳에서 유일한 정의는 승리이다. 즉, 정치인과 정치 정당이라면 승리해야 한다는 거고 그것이 선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승리를 위한 언행은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설령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 할 수 없다 하여도 그것이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고려해야 마땅하다. 악의 방법론은 언제나 효율적이기 때문에 원리 원칙을 지키는 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세에 취약하고 무력하다.
룰은 상호간의 신뢰가 중요하고, 어느 한쪽은 지키는데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지키지 않는 쪽이 승리를 가져갈 수 있다. 링 위에서 나는 글로브만 쓰는데 저쪽은 칼과 도끼, 심지어 총에 동료들까지 몰고 온다면 상식적으로 누가 이기겠는가? 상식을 가진 자라면 규칙을 지키는 자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승리하기 위해선 욕을 먹고 비판을 받더라도 결과적으로 이길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방송사 사장을 친여 인사로 임명하고, 언론사를 단속하며, 친정권적 여론을 형성한다. 검찰과 법원에 친여 성향의 인사들을 임명하고 감사원, 기재부를 여당정부의 지지자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정치적이며 도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동시에 정치적이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이기도 하다. 정치에서 추구해야할 것이 바로 승리라는 점에서 승리에 도달하는 과정에 있어 이러한 작업들은 매우 효과적이고 적절하다.
4.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적 술수와 권력 활용이 부도덕하다 하여 그것이 나쁜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전혀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어떠한 법안이나 정책을 결정하고 도입하기 위해선 당연히 민주적 정당성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어떠한 의제를 형성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것에 대한 명분과 효과를 홍보해야 하며,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이고 어째서 필요한가를 설득해야 한다.
그것은 토론과 설명 등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득이 되기란 어렵다. 그보다 더 쉽고 효율적인 것이 있다. 언론을 장악하여 정부여당에 유리한 말과 논리로 의제 시장을 선점, 과점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어처구니 없는 게 아닌 이상 좋은 말에는 좋은 인상을 받기 마련이고 반대 의견보다 더 많은 양의 찬성 의견과 찬성 논리를 노출시키면 찬성 쪽으로 기울 가능성 역시 높다.
이는 여론을 유리하게 형성하고 다루는 방법일 뿐이고, 효과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국민과 민생에 도움이 되는 법안과 정책을 실행할 수도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 이들에게 악법일 뿐이지만 객관적으로 폭주하는 자본 세력에 책임을 물어야 현장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충분히 도덕적인 입장에서도 추구될 수 있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며, 노동자의 죽음과 상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하여서도 적절한 인상을 기대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의 비판과 불편함을 야기하기도 하는 포괄임금제 폐지 역시 정치적 승리로 얻어낼 수 있는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치적 승리는 그러한 승리를 이끌어내는 조건들을 미리 형성해내서야 가능할 것이다. 그럴 필요 없이 이미 형성되어 있다면 쉬운 일이겠으나 대체로 그러한 경우는 많지 않고, 어떠한 제도나 정책이 실행되고 있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적지 않은 지지 역시 형성되어 변화에 장애가 됨을 의미한다.
5.
따라서 정치적 승리를 위해 다소간의 비도덕적, 비윤리적 정치 행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규칙도, 원리 원칙도 지키지 않고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 것이 최고의 정치이고 정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치적 승리를 위해 법을 무시하고 헌법을 파괴하며 정적을 암살하거나 특정 지지 진영이나 지역에 대한 말살을 추구해고 된단 말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것은 그것이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선을 아득히 뛰어넘어버리기 때문이다. 일정 정도의 부덕한 정치적 술수는 인정받을 수 있고 용납될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지지자들에게도 비판을 받는다 하여도 당장 정치적 정당성, 집권 명분을 뒤집을만한 것이 되기란 어렵다.
정부여당이 국영 방송사 사장을 갈아치우고 특정 언론사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탄핵을 당하거나 선거에서 심판을 받지는 않는다. 도리어 그 정도 비판을 감내하고 언론 시장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더 큰 정치적 이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지지자들이 원하는 법안, 정책 등을 입안하고 실현하는 근거가 된다.
6.
그런 맥락에서, 정치에서 도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국민들이 바라는 모습의 투영이다. 국민들이 도덕적으로 무결한 사람을 원한다면 그러한 사람만 당선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당선이 될 것이다. 정치에서 도덕은 최우선의 가치가 아니고, 도덕이 작동하는 것은 그저 그것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집단이라도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명분이 필요한데, 그것이 도덕적이지 않고 윤리적이지 않다면 충분한 지지가 모이지 않는다. 그것이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동의할 수 없다는 건 지지할 수 없다는 거고 비윤리적 정치집단은 본질적으로 지지를 받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이란 도구적 성격을 가진 것이 되어, 손을 뿌리치고 지지를 거둘 정도가 아닌 정도로만 비도덕적이고, 적절한 지지를 얻을 수 있을 만큼만 도덕적이기만 하면 된다. 즉, 보기 좋을 정도로만 도덕적이면 되고, 보기 불편한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부끄럽거나 역겨울 정도로 부덕하면 안 된다.
정치인과 정당이 도덕적인 행위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것을 통한 지지를 얻기 위함이지 그 정치인이나 정당이 도덕적인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다. 애당초, 집단에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구분짓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구성원과 집단의 성향은 언제나 일치하는 게 아니다. 특히 집단 내 소집단의 존재 역시 그러하다. 한국엔 통일부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국방부 역시 존재한다. 여가부와 국방부의 이해가 일치하기만 할 수도 없다.
7.
정치인이나 정당, 정부가 도덕을 이야기하거나 도덕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들이 도덕적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러한 모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들은 언제든 더 비열하고 잔혹한 결정을 이익과 입장을 위해 내릴 수 있으며 그것이 반드시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연준의장 볼커의 결정은 필요한 것이었지만 어떤 이들에겐 나가 죽으라는 선고와 다를 바 없었으며, 실제 그러한 선고를 스스로 집행한 자들 역시 많았을 것이다. 볼커의 결정은 비도덕적인 것이었을까? 윤리적인 결정이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 착한 사람이길 바라고 도덕적 명분과 명예를 갖추길 원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 역시 도덕적인 모습을 바라고 그들은 지지자의 바람에 호응하는 것 뿐이며, 정치에서 작동하는 도덕은 그런 이유로 나타나는 것이다. 시위하는 자들에게 물대포를 쏘라고 요구하는 지지자가 있고 피해자에게 배상하라 요구하는 지지자가 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더 많은 지지자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는 게 정당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는 합리적인 선택이지 도덕적인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후자일 경우, 합리적인 선택이 도덕적 선택의 모습을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도덕적 행위가 지나쳐 지지자들이 거부한다면 정치적 승리를 얻어낼 수 없고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도 없다. 아무리 극단주의적인 정당이라 해도 정치 경쟁자와 진영을 죽이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허용되는 것은 독재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과 환경의 국가 뿐이다. 내전이나 인종학살 같은.
그러한 이유로 정당과 정치인은 도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지 더 부덕하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간혹 두려움을 만들기 위해 의도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어도 두려움에 따른 복종만큼 거부감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두려움을 조절하고 필요한 상대에게만 줄 수 있는 실력의 정치력이라면 그는 이미 도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에도 능할 것이다.
8.
즉, 정치적 승리는 도덕/윤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합리적 판단을 기반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정당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승리하여 지지자들의 요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며, 승리하기 위한 방법과 방식은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 그것이 필요하다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 뿐 도덕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당선된 대통령과 여당은 당연히 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국가를 이끌어가고자 할 것이고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너무 당연하다 말 할 수 있겠지만, 각 위원회 자리에 여당 의원이나 친여 성향의 인사를 임명할 것이고, 각 부 장관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하고 추구해온 법안과 정책을 실현하고자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당연하다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 사람들만 뽑아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라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걸 부도덕하다 말하는 사람은 없다. 승자의 당연한 권리이고, 당연한 권한이며, 마땅히 해야할 행동이기 때문이다.
방식은 도덕적이지 못할 망정, 원하는 바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고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 정확한 행동이다. 원리적으로 장관을 임명하는 것과 공영방송사 사장을 임명하는 것은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를 실현시키기 위해 승리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승리하지 못했다면 각 부 장관과 위원회에 친정부여당 성향의 인물을 임명하는 인사 정책을 단행할 수도 없고, 지지자들이 원하는 정책을 입안, 실천하지도 못하며, 그것이 필요한 이유와 논리를 제시하여 의제를 선점하지도 못하고, 국민들을 설득 내지는 명시적 동의를 이끌어낼 수도 없다.
의제 선점은 승리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고 실천 여부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좋은 법안을 내놓는다 해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별 수 있는가?
9.
이러한 이유로 정치 정당의 지상목적은 승리 그 자체이다. 승리를 해야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선택할 수도 있고, 그 이전에 선택을 할 것인지 아닌 지조차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하고 정의로운 모습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잘못을 논하고 싶다면 그건 정치인이 해야할 일이 아니다. 어느 시골 대나무숲에서 선비처럼 손가락질이나 하고 있으면 족하고,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신선놀음을 즐기면 그만이다.
그런데 정치인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정치인이 더러운 이유는 더러운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승리해야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치인들이 정말 더러운 부정부패와 비리에 연루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정치인은 승리해야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승리해야 지지자들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든 말든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승리했음에도 원하는 바를 실현하고자 하지 않은 편이었고, 이명박 정권은 승리 후 원하는 바를 충실히 실현시켜준 정부였다. 그 결과는 다음 승리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지하는 정당이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도덕적이어야 한다 강박을 심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질 하며,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지 눈치보게 만들어야 하는가? 그들의 운신의 폭을 지지자들 스스로가 좁히게 만들어야 하는가?
비도덕적인 행위를 했다고 그 결과 역시 비도덕적일 것이라 단언할 수 있는가? 비도덕적 권력 획득 행위를 통해 도덕적인 정책과 법안을 성공시킨다면 그것조차 비도덕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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