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하는 관점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사람마다 다르게 발생하고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관점은 가치관에 기초합니다. 가치관이 다르다면 사람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판단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이견이 발생하게 되고, 이견은 갈등이 되기 쉽죠. 그렇다면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가에 대한 탐구에서 관점과 그것의 발생, 형성에 대한 사색은 반드시 거쳐가게 되는 영역이 되죠.
가치관은 서로간의 다른 환경에서 발생합니다. 서로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가치관은 사람마다 다르게 형성되고, 단지 그 환경의 유사성에 따라 그러한 가치관의 유사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흔히 관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고 이해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은 일견 맞아보이지만, 단지 덕목으로서의 의미 이상의 원칙이 될 수는 없죠. 가령 무언가를 어그로라고 여기는 사람과, 그것을 그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의 경우 서로간의 관점 차이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은 어그로에게 욕과 비난, 배제를 시도할 수 있고, 후자의 사람은 그것을 놔두고 오히려 전자의 사람을 비판, 혹은 비난할 수 있죠. 그렇다면 앞서 말한 덕목처럼 그들의 관점을 모두 존중하고 이해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관점이란 사람마다 다른 것이지만, 그것이 나름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올바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따라서 존중하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덕목일 뿐, 원칙이 되긴 어렵습니다. 때로는 존중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지만,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기 따름입니다. 이는 인간이 완벽히 타인과 동조할 수 없는 다른 개체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궁극적 한계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별해낼 수 있어야만 합니다. 누군가의 관점이 틀렸거나, 적어도 맞지 않다면 그것을 논증하고 증명해내 그것을 거부하든 배척하든 할 수 있으니까요. 모두의 관점이 일정 이상의 가치나 존중성을 가진다면 그것을 다루고 판단하기에 까다롭고 조심스럽겠죠.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은 논리와 합리성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와 합리성은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게 여겨질 수 있는데, 이러한 요소는 가치관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관점을 비판한다는 것은 나아가 그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실로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주장이나 명제에 대해 논리와 합리만으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이는 합리성 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논리적 근거와 합리적 사유를 기반으로 어떠한 사물에 대해 판단하고, 그 판단에 대해 감상을 가지는 것이 아닌, 어떠한 사물에 대해 감상을 가지고 그에 따른 논리를 찾는 쪽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흔히 비논리적 행동으로 보이는 정답을 정해놓고 논리를 찾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누군가의 주장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반응으로 설명하자면, 그 주장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거나 근거할 수 있는 논리를 찾을 것이고,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에 반대되는, 틀렸음을 증명하거나 근거할 수 있는 논리를 찾는 것처럼 말이죠.
이처럼 감정의 문제는 관점에서 기인하고, 그러한 작용이 논리성과 합리성을 무뎌지게 하거나 반대로 강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논리와 합리성은 사람마다, 집단마다 다르게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은, 그 개인이나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관에 따라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고, 다르게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논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모두의 관점이 존중 받아야할 것이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 올바른 관점이고 아닌지를 구별할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에 대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수학과 수리 논리와 같은 것이 그것인데, 수학과 같은 것은 가치관이나 관점이 지배할 수 없는 순수한 이성과 논리로 돌아가는 독자적인 학문 영역을 스스로 구축하였고, 매우 견고합니다. 따라서 인간 문명에서 절대적 논리(혹은 그렇게 기능할 수 있는 논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수학이 될 것이고, 여기에서부터 논리의 근간을 세우면 되는 것입니다.
1+1=2라는 5개의 기호로 이루어진 명제는 참이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 십줄의 증명과정은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게 만들죠. 만약 이러한 수학의 논리성을 부정하려면 그것을 우리는 비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는 마치 생물학과 같아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부정된다면 이후의 모든 것이 부정되겠죠. 최소의 생식세포가 잘못 분열되었다면 암이나 장애를 가질 수 있듯이요.
하지만 이후의 것들은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수학이 근본적으로 틀렸다면 우리는 컴퓨터를 쓸 수도 없습니다.
어찌됐든, 이러한 논리를 기반으로 우리는 이성과 논리를 발전시켜왔고, 사상과 이념은 그것을 언어의 형태로 정립할 수 있게 되었죠.
그에 따라, 우리는 보편적 정의를 성립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대적 합리, 인권 등의. 이러한 보편적 정의는 전지구적인 것이고, 어떠한 사회나 개인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근대적 합리와 보편적 정의에 대한 공감을 갖추지 못한 것이지 그들의 행태가 올바르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보편적 정의로 작용하는 논리를 구할 수 있고, 그것을 기반으로 관점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일베와 일반인의 차이를 예시로 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나치나 이슬람 극단주의, 일본 극우나 북한 수뇌부를 예시로 들어도 좋죠.
일베 내에서는 자기들끼리 내부적인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대충 그들 다수는 스스로의 논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베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이 보편적 정의와 사회질서, 도덕과 윤리라는 관념에 위배되기 때문임을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일베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논리는 그들 스스로 확대재생산 하는 내부 논리와 그것이 구성해낸 가치관에 따라 예의와 도덕, 윤리, 보편적 정의에 동의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죠.
하지만 일베의 가치관과 관점은 전지구적으로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고, 지향되는 바가 아닙니다. 발전적이지 않고 전근대적이거나 최소한 현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베의 관점, 가치관은 틀린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사회 다수가 일베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지 않다. 맞지 않다. 틀렸다. 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앞서 비판한 감정의 작용에 따른 논리구성과 별개로 그것을 객관적으로 입증해낼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인 것이고요.
물론, 이러한 기준이 되는 인권 같은 보편적 정의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적 원리와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원칙으로 사회가 규율되었고, 중국에선 천자를 기준으로 사회를 규율하였으며, 중국과 조선 같은 국가에선 유교적 질서를 기본으로 하여 사회를 규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현대에 와서 전근대적이라 폄하하고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하지만, 실상 이성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 사실인 바, 이치에 맞다는 합리는 그 이치가 무엇에 근거를 두고 있느냐에 따라 변화합니다. 일베의 가치관과 이성이 자기들 내의 내부논리에 의존하며 (비단 일베가 아니라도)그 집단 내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고, 그보다 넓은 보편적 정의와 같은 이성의 기준에 의해서는 틀린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이성의 기준이 어떻게 변할 지는 몰라도 현재의 기준으로서 이성과 합리, 논리는 관점과 가치관들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만약 이게 어렵거나 잘 되지 않다면 그것이 그만큼 난해하거나, 반대로 그러한 시도를 하는 본인이 그러한 논리적 훈련이 충분히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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