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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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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작품에 대한 내용누설이 있습니다. 

소설 이차원 용병의 다른 에피소드들도 결코 호락호락한 편이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휴프노편이 정말 인간, 사랑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높은 완성도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아디스편도 굉장한 포스를 뿜어내서, 바로 그 다음 미션인 휴프노 미션이 그리 어렵다거나 대단할 거라는 기대는 안 했습니다. 아디스편에서 작가가 보여준 치밀하고 설득력 있는 머리싸움과 정치, 경제적 다툼은 작가 특유의 필체 때문에 투박해보일 순 있지만 이 또한 굉장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줬거든요.


초일류 작가들의 물 흘러가듯, 그러나 들어있을 건 다 있는 꽉찬 전개와 묘사는 아니었지만, 그런 작가를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래 그런 정치, 경제적 다툼과 전개를 묘사하는 건 정말이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바라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전개와 내용은 분명 개연성 있는 내용이었던 것도 사실이죠. 정치싸움과 같은 머리싸움은 그런 개연성과 논리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게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금호 작가는 투박한 필체이지만 그걸 적절히, 그리고 간결하게 잘 보여줬죠. 정치싸움은 단지 논리력과 사고력과 같은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적 특성. 즉, 그 캐릭터의 성향과 개성 또한 잘 녹여야 하며, 감정 또한 분명히 개입합니다. 정치에 있어서 감정을 숨기거나 통제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러한 감정적 동요나 통제되지 못하고 터져나오는 감정에 의한 결단, 흔들림을 묘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죠.


이는 마지막의 바스톤의 흑화와 그걸 이끌어낸 묘사, 찌질함에 가까운 아디스의 과거를 감추고 미션 자체에 흐린 사실 등의 묘사는 생각해보면 개연적이고 타당한 묘사와 전개였습니다. 그리고 끝에 가서는 반성, 진보할 수 있도록, 아디스에게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해주며 영혼의 격이 상승하게 되죠.



이런 아디스 미션의 완성도였기 때문에 휴프노 미션에 대해선 그저 믿고 보는 정도, 아디스편이 이런 완성도였으니 휴프노 미션도 평균이나 그 이상의 완성도를 가질 것이라는 보장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이번 편은 아디스편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인공인 강철호의 가장 뛰어난 특성이 바로 언변이죠. 하지만 시작부터 이게 막힙니다. 눌변으로요. 그리고 시작한 뒤 얼마 동안은 호감도가 떨어지기만 하는 등 적응 못하고 삽질만 하죠.


근데 중요한 건 강철호의 판단력입니다. 아디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머리 잘 돌아가는 캐릭터죠.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상황을 분석하고 현실인식을 하며, 다른 방법을 찾고 인물의 성향과 미션의 전개를 유추하거나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이나 판단이 꽤 잘 들어먹기도 했고요.


작품 내 전개의 기점은 폴스를 영입한 이후로 한번 변하게 되는데, 연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독자 강철호와 휴프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캐릭터라는 점이죠. 이 이후로 사피엘의 호감을 사고 나름 꽤 잘 돌아가게 됩니다.


폴스가 중요한 이유는, 연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강철호와 휴프노에게 연애 공부를 해줬다는 건데, 작가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작가보다 똑똑할 수 없다는 것처럼 작가가 알지 못한다면 캐릭터 또한 말할 수 없을 만한 이야기를 강철호, 휴프노에게 해줍니다. 여성에 있어서 여러 타입이 있고 사피엘은 그 중 어떤 타입인지에 대한 설명 부분과 그런 여자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강의하는 부분이죠.


이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는 데, 단지 머리속으로 설정 짜듯이 공상적인 내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피엘의 내면과 언행을 해당 타입과 결부시켜 해석하고 분석하며 이해시키는 부분이 놀라웠습니다. 대개 이런 내용을 서술할 땐 어떤 작위성이 느껴지거나 설득력이 떨어지기 쉬운 데, 의외로 상당한 설득력이 느껴지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이죠.


물론 실제 인물이 아니라 소설 속 캐릭터이고 그 캐릭터를 설정한 작가가 그 설정을 분해한 뒤 소설 상에서 전개시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캐릭터의 성향을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설정하고 표현시킨 것은 굉장히 뛰어난 작가적 역량이죠.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그에 따른 묘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일이거든요.


이전의 미션과 마찬가지로 금호 작가는 인간과 감정에 대한 통찰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고 그런 이해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캐릭터 창작과 묘사가 가능한 것이지요. 이는 사피엘이라는 까다로운 캐릭터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 지식들인 겁니다.


여자이자 기사, 청렴결백하며 정의로운 성격, 가문의 부흥을 위해야 한다는 일생의 목표, 그리고 기사도에 대한 강박적 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가지는 컴플렉스와 고민, 그리고 한계.


이 특성들을 절묘하게 버무려 실제 있을 법하다는 개연성을 가진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묘사했다는 점에 대단하다는 겁니다.


이런 특성의 캐릭터이기 때문에 정치가인 백작의 저택 방문이 굉장히 중요한 두번째 급변하는 전환점이 되는 데, 백작이 저택에 방문해 쏜즈, 사피엘, 다른 자작 한명을 평가하며 누굴 기사단장으로 뽑을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는 데, 이때 사피엘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박살을 내버리게 되거든요. 분명 검술로선 사피엘이 더 뛰어났으며 기사도와 판단력, 성실함 등의 개인적 인격 또한 뛰어났지만, 너무 기사도에 강박적이게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쏜즈에게 패배하게 되죠.


오히려 사피엘의 기사다움이 자신의 발목을 잡았고, 부족하지만 더럽더라도 자기 이상의 역량을 낼 수 있는 쏜즈를 기사단장으로 발탁하게 되죠. 이는 사피엘의 모든 노력과 인생관을 처절하게 박살낸 겁니다. 훌륭한 기사이고자 했는 데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미숙함과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생겨버렸고, 그 이전에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약하고 남자들 사이에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 그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 끈 떨어진 연 취급 당하며 모든 노력과 인생관이 박살난 겁니다.


그래서 중증 우울증에 걸리게 되는 데, 기실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모욕과 창피를 당하고 노력과 인생관이 부정 당하며 박살난 인간이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여전히 고고하고 당당하면 그게 더 이상한 겁니다. 쏜즈와의 대련 중 남자 부하들 앞에서 생리라는 약점이 잡혀서 더러운 모욕과 창피를 당했으니 그 자체로도 정신병 걸릴 일이죠.


하물며 기사도에 대한 강박적 집착과 사랑에 가까운 애정을 지닌 이가 그것마저 부정 당했으니..


하지만 표층심리를 읽던 강철호와 같이, 그런 사피엘은 뛰어난 편이었죠. 원체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더불어 초기이기도 했지만..) 그것에서 벗어나고자 했죠. 누워서 자야한다고, 정신차리라고 스스로를 닥달하면서요. 물론 이것도 얼마 안 가서 심해졌죠. 며칠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가지도 않고 아마 간간히.. 울기도 하면서요. 그냥 그대로 놔두면 아마 자살하기 직전까지 가는 것도 오래 안 걸렸을 겁니다. 그런 상황이면 남자든 여자든 누구든 그럴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런 상태에서 폴스에서 또 다른 충고를 받고, 강철호는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제대로 먹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3번째 전환점인데, 전개상으로도, 캐릭터의 내적 성장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바로 진심으로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고자 한 부분이거든요.


이때 묘사가 상당히 훌륭한 데, 강철호가 휴프노에게 동조하면서 작품의 시점이 변화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똑같은 1인칭 주인공 시점이지만 그 시점의 주인공이 강철호도, 휴프노도 아닌 제3의 하이브리드가 되어버리거든요. 휴프노까진 아니지만, 강철호도 아니며 강철호를 타인, 그라고 표현하는 등 휴프노에 가까워질 정도로 동조하게 됩니다.


그에 따라 자신의 감정 또한 진심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미션이고, 실제로 사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제로 사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방어적인 심리적 태도를 취했죠. 그렇기 때문에 사피엘을 하나의 공략 대상으로만 보았고, 사랑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폴스가 말했죠. 여자는 남자가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그런 겁니다. 휴프노 역할을 하고 있던 강철호가 진심이 되지 않으면 사피엘의 사랑을 얻어낼 수 없었던 거죠.


이런 면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혀주는 요인이며, 그만큼 작가가 여자, 사랑에 대한 이해와 통찰 또한 상당하다는 겁니다. 사랑을 경험해보거나 사랑하며 사귀어본 적 없는 휴프노와 강철호라는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 사랑에 대한 이해를 가진 누군가를 창조하여 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진 내용을 서술할 순 없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금호 작가는 그걸 서술해냈죠.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심지어 사랑을 해본 사람도 묘사하고 서술하기 어려운 내용인데 말이죠. 단순히 사랑을 그려낸 게 아니라, 그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언어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선 그걸 분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폴스처럼 분석해서 알려주고 충고해주죠. 이게 아디스 미션만큼, 혹은 그 이상 뛰어나다 평가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렇게 동조한 휴프노-강철호는 진심으로 사피엘을 사랑할 수 있게 됐고, 폴스는 그걸 바로 찝어냅니다. 눈빛이 변했다고요. 그렇죠. 사랑은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진심을 바라는 여성에게 장난으로, 혹은 여지를 남겨놓고 들어오면 그 여성의 진심을 받아낼 수 없습니다. 우선희도 말했죠. 동조가 높으면 유리할 거라고.


주인공의 내적 성장은 그 자체로 작품을 보는 독자의 집중과 심리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흡입력이 가장 증대되는 부분이 바로 이 시점인 거죠. 이 전환점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전개되는 겁니다.



아디스 미션의 포스가 쩔었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아디스 미션보다는 휴프노 미션의 완성도와 전개, 캐릭터 설계를 더 높게 칩니다. 솔직히 거의 버릴 캐릭터도 없고 작품적 장치나 전개나 복선, 개연성, 캐릭터 설정, 심리묘사 등등.. 가장 높은 완성도를 가진 에피소드라고 전 감히 평가합니다. 그럴만한 완성도를 보여줬거든요. 


솔직히 아직 휴프노 미션의 완결까지 카카오 페이지 분량으로 20화 조금 넘게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만 보고도 굉장한 완성도의 작품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휴프노편의 끝이 굉장히 기대되고 있고요. 퍼슨스 미션부터 유리발츠, 스트로본과 케세인 미션, 아디스 미션까지 거치며 점진적으로, 조금씩이지만 분명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성장해나가는 30세 성인 주인공의 성장 또한 사실적이기도 합니다. 중간중간 현실에서의 고충과 고민, 감정적 동요 또한 사실적이며 캐릭터의 성격과 성향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작품적 요소이기도 하고요.


처음엔 그리 대단한 수준의 작품이라고 보진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작가 특유의 필체가 투박했고, 괜히 독하고 마초적인 척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혼자서 진지빠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느낌이 좀 들었고, 그렇기 때문에 전개나 캐릭터 설정 등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애매하다는 느낌을 자꾸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생각해보면 문제도 없고 그 자체로 괜찮은 수준의 작품이라는 건 인정하고 재미 또한 느꼈죠. 불리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할 법한 순간에도 주인공의 뛰어난 판단력과 현실인식은 매력적으로 보여졌고요. 하지만 아디스 미션을 거쳐 휴프노 미션에서 그 진가를 좀 더 제대로 파악한 셈입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작품이었던 거죠. 저 개인적으로 가장 뛰어난 완성도와 작품성을 지녔다고 평가하는 건 다른 미션이 아니라 바로 휴프노 미션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미션을 놔두고 휴프노 편을 리뷰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이 부분은 정말 추천할만한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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