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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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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쓰는 것에 의미가 있고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 쓰이지 못하는 권력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지 못하고 문제적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행사해야 할 필요를 요구 받고, 어떠한 결정, 판단, 결재, 거부, 임명 등 다양한 부분에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필요한 조치들이 작동하지 않게 되고 이는 그 조직의 발전과 역량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필요까진 없지만 필요한 권력을 적합하게 행사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앞서 권력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고 했지만 이는 권력을 그 자체로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적합한 행사를 하는 것을 거부한 채, 그 권력자의 부덕함과 필요성을 부정한 뒤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 올려 그러한 권력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은 역시 비도덕하고 문제적이다. 즉, 의무나 책임보다 감투를 지키는 자의 권력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은 적합한 사람이 적절하게 행사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 행사되거나 행사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행사할 의지도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행사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부적절한 인사인 셈이다. 권력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것이고 써본 경험이 있어야 더 큰 권력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된다. 능력과 경험에 비해 지나치게 큰 권력을 위임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고 능력 있는 자에게 아무런 권력도 주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크고 작은 권력을 지닌다. 작게는 학급에서 주먹과 카리스마, 리더쉽으로 얻는 권력이나 반려동물간의 수직적 관계가 있을 수 있고, 가정에서 부모가 가지는 권력이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도 있으며 대통령과 각 부 장관의 관계나 사장, 혹은 대표와 직원들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 어떠한 관계는 권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권력이라기 보단 의무에 가깝기도 하고 어떠한 사회적 관계와 다른 자격과 소양을 요구하는 관계도 있다.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떠한 권력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구매자-판매자의 관계나 고용주-직원의 관계와도 다르다. 후자의 경우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큰 층위에서의 이야기이다. 가령,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관념에서 이루어지고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진짜 권력을 가져본 적 없고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경우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이나 정체성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득적으로 부여되는 정체성으로 자신의 권력 구조를 형성시키길 바라는데, 피부색에 따른 우열로 인종차별을 가하며 권력 관계를 형성시키는 경우나 성별을 근거로 이성을 열등하고 나약하며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경우가 그러하고, 민족에 따라 우열을 설정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것은 실질적 권력 관계는 아니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성향 내지는 믿음에 따른 행사이다.

대부분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와 같은 이들이 대부분 저학력, 저소득자인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못 배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열등한 자들을 멸시하고 공격하며 자신의 사회적 층위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함에 가깝다.

이는 노비가 해방될 때 양반이 아니라 양민들이 반발했던 것과 유사한 이유이다. 물론 그들에게 노비가 자신들과 맞먹으려 든다는 계급 반역적 현상을 거부하는 것 역시 결코 작지 않은 이유일 테지만, 아래로 가해지는 계급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로 최하층민의 존재는 어떤 면에선 위안적일 지경이다. 또한 전근대적 사회엔 대체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받이용 계급이 존재하곤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사회엔 명시적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져 있으며 더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사회가 되었다. 전근대적 관념은 사멸하지 않았으나 다른 형태와 밀도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이유로 차별과 혐오가 발생한다. 저소득 하층민들에게 그들이 가장 밑바닥이 아니며 가장 쓸모 없고 무가치하지 않은, 자존감과 정체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들이 표심으로서 정치적 향방을 흔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그것이 미디어와 진짜 권력자에 의해 유도되고 조장되었다곤 해도, 그들은 비로소 권력을 가지게 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적어도 그들의 요구나 한 표가 실제 결과로 증명되었을 때 그들은 그렇게 믿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고, 행사해본 경험이 적다. 그들은 권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며,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등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을 쓰는 방법은 지나치게 원초적이다. 그들은 장기적이거나 생산적인 비전을 가진 게 아니고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더 우월했으면 하는 것이고, 그들이 낙인 찍은 적을 몰아내거나 싸워서 물리치거나, 죽여 없애는 것이다. 

즉, 그들이 진짜 권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 줄 몰라 써선 안 될 방식과 방향으로 그것을 휘두르는 것이고, 그렇게 하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이 선거에서 행사하는 권력, 민주적 요구는 차별적이고 혐오에 근거하고 있는 셈이다. 좌파 빨갱이를 몰아내야 한다는 둥, 흑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둥, 이민자를 쫓아내야 한다는 둥, 여성의 사회적 진출보다 가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것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은 국가의 권력을 가진 자들임에도 왜 그들은 권력을 가진 적 없으며, 그렇게 느낄까? 바로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이들 중 월 180만원을 벌며 대출 빚이 1억이 있는 가정의 고졸의 말보다 대기업 회장의 말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고, 지방 전문대 출신 직장인보다 인서울 재학생의 발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 엘리트들은 그들의 돈과 권한, 인맥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움직일 수 있다. 

특정한 의제를 공론화 시킬 수도 있고, 묻을 수도 있고 물타기를 하며 바꿔치기를 감행할 수도 있다. 특정 직종의 이권을 보호할 수도 있고 위협할 수도 있다. 그들의 규모는 국가에서 n%에 불과하거나 그 이하일 것임에도 그들의 힘은 국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위 층위자는 언제나 권력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고용이 되었고, 결코 높은 자리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타인의 존경과 존중을 받기에 어려운 위치에 있다. 설령 겉으로 그러한 대우를 요구하고, 그렇게 보인다 해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 자신 또한 그랬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우월할만한 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사회적 성취와 성공에 실패 했으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가진 것이라곤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 스스로 노력하거나 얻어내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생득적인 것이 공통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인종, 민족, 그리고 성별이 그러하다.

왜 어떤 이들은 여혐 일베나 하고 어떤 이들은 남혐 페미나 하고 있을까? 그들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 상황은 어떠할까? 일베는 그나마 더 넓은 범위의 사상을 다룬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외교안보적 영역에서 제나름의 세계관을 가진다. 그 세계관의 완성도와 논리성, 합리성이 어떠한지와 별개로 더 다양한 층위와 계층을 포함할 여지와 역량이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일베 류 가치관은 엘리트에게도 입맛에 맞는 논리와 주장을 형성하고, 사회 하층민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사상이 되어줄 수 있다. 

엘리트들은 그들이 우월하며 더 많은 특혜를 받아야할 이유를 말하고, 보수진영엔 진보좌파를 탄압하고 권력을 확보해야할 정당성을 제공해주며, 하위 층위에겐 증오하고 혐오하여 우월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것 내지는 공격해도 좋을 적을 제공한다.

 


반면 페미에겐 성차별에서 기인하는 남성 혐오적 정서와 논리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처참할 정도로 부족하고 비합리적이기에 정신병적 증상과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들의 소아병적 펨셀꼴값병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고, 설령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서조차 기묘한 사상적 중독을 제공한다. 

이는 여성 특유의 여성 편향적 태도의 끼리끼리 문화에서 근거하는 바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잘못이나 비난에는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들어주고 맞서 싸워주는 것, 총체적으로는 여성들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겪어온 차별과 핍박에 따른 약자들의 단합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40대 이상 세대에게나 통용될 것이고, 30대 초반 이전의 여성 세대에겐 정당성 없는 주장에 가깝다.

여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에 모자람이 없다 하여도 남혐 하는 꼴페미가 될 수 있다. 혐오가 비합리적인 이유에서 기인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혐오하는 자들은 언제든 어디든 존재할 수 있고, 뻔뻔한 가해자보다 모든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한 선한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는 졸렬한 피해자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남성에게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를 받는 기분이 들기에 피해 망상에 빠진 것이고 누군지도 모를 여성이 남성에게 피해를 받았다고 그것이 자신인 것처럼 이입하여 타자와 자아의 구분을 하지 못한 채 가해자 전체 집단을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하기를 즐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을 증오하고 혐오할 이유이고 명분일 뿐이지 실제로 그들 전체가 사악한 집단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리어, 그들이 사악해야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만들어서라도 공격하고 싶어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피해자로서 모든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PC, 페미 진영은 사회적 신분도, 경제 상황도 좋지 못하기에 적을 찾고 낙인 찍어서 혐오한다. 일베 류 가치관보다 더 좁은 범위의 사상을 다루기에 확장성은 떨어지고 합리성은 더더욱 부족하지만 크게 보아 단 두개 뿐인 성별을 기준으로 했기에 단순하고, 단순한 만큼 다른 이해관계를 떠나 이분법적인 구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PC충 페미 세력은 일베보다 규모가 적다. 단지 더 시끄럽고 노골적으로 문제적일 뿐이다.

페미 진영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기에 그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자 한 근거가 바로 생득적으로 부여되는 성별이다. 여성 혐오적인 남자들의 성차별이 그들이 성취한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것에서 기인하는 태도였다면 페미 진영의 남성 혐오적 성차별 역시 같은 이유에서 근거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성 관계에서도 못생기고 뚱뚱한 자신의 모습에 있어 관리를 하거나 다른 매력을 만들고 찾으려는 노력보단 먹고 자는 것만을 즐기던 이들이 자신의 못난 외모를 Do not need a prince라는 표어와 탈코르셋이라는 용어로 일부러 꾸미지 않는다는 둥 자기들 입맛에 맞는 명분을 찾은 것 뿐이지 본질은 게으르고 못생긴 것 뿐이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자들은 타고난 만큼 대단한 노력을 평생 동안 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페미 진영은 소아병적인 궤변을 일삼는 것 뿐이다. 그들이 연애 시장에서 왜 선택 받지 못하는 Femsel이 되었겠는가? 그들이 선택 받을만한 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더 나은 경제적 위치에 서지 못했을까? 군대를 가지 않아 최대 2년의 시간에 특혜를 받는데도 말이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서라도 보는 것이 맞다.

모든 여성이 페미가 아닌 이유는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서도 그들은 노력한만큼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부한만큼 성적이 나와 대학을 가고, 노력한만큼 직장을 가져 일하며 돈을 번다. 그들은 사회 생활과 무난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혐오와 차별에 힘을 쏟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차별 정서나 공감대가 있을지언정, 페미라고 하긴 어렵다. 평범한 남성들도 어떤 영역이나 분야에 있어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피해를 받거나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곤 있지만 그렇다 해서 여혐 일베충이 아닌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페미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성취가 낮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단지 방송국, 유튜브, 기자 등 눈에 크게 띄는 이들이 많아서 착시 효과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직장이 있어야 하는 블라인드, 메이플 환불 및 탈퇴 등에서 보여주는 화력을 보면 간접적으로 그들의 수준이 드러난다. 하위에 속하는 자들이 생득적인 요소로 우월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일베가 가해자 내지는 행사자로서의 권력을 추구한다면 페미는 피해자로서 가해의 정당성을 독점하는 것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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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그 사람이 얼마나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았는지, 얼마나 많이 배웠는지 역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럼 의미에서 이 불쌍한 개잡놈을 보자. 딱봐도 멍청함이 드러나는데, 먼저 어느 정도 배웠다 하는 사람들은 맞춤법부터 제대로 지킬 줄 안다.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상당히 잘 맞춰서 작성한다.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많은 정돈된 글을 보았고 그러한 정돈된 글을 작성해보았으며, 그러한 맞춤법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체화했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저 댓글을 작성한 못 배운 녀석은 어떨까? 띄어쓰기, 단어선택, 어휘 역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는 이 잡놈이 제대로된 교육을 받아본 적 없다는 뜻이다. 특히 대학 교육으로 대표되는 고등교육을 접한 적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이후의 모든 댓글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 불쌍한 놈의 이론엔 반박의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며, 겪어본 적도 없는 것에 대해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멍청이가 말하는 전문가란 유튜브 렉카, 여혐 유튜버에 불과하다. 전혀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고 객관성 역시 결여된 자료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것들을 신봉하는 저 불쌍한 치가 제대로된 학문적 경험은커녕 전문가가 작성한 책, 내지는 칼럼과 같은 지적 완성도를 경험해본 적이 있을까? 난 그런 적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 비루한 잡놈의 불쌍한 인생은 여기에서도 그러난다.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으니 자기 맘대로 자기에게 불리한 주장과 논리를 펼치는 자에 대해 성급한 캐릭터화를 시도한다. 논리적으로는 허수아비 치기의 오류가 발생하는데, 나는 내가 여자라고 밝힌 적 없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남자다. 이를 굳이 저 치에게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그게 더 재밌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여자면 내가 하는 주장과 논리가 틀린 것이 된다던가, 자기 힘으로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비참한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발광하길 바랬기 대문이다.

 

그 이후 드러나는 비약한 지성은 식자로서 비탄을 삼킬만한 수준이다. 근거 자료의 객관성은 자료의 양과 비편향성, 그리고 그 자료의 정확성으로 확보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자료가 보편성을 증명할 정도로 많은가, 그리고 그 자료를 취사선택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그것에 왜곡이나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 불쌍한 여혐찌질이가 제시하는 것을 보라. 어떤 학술적 자료가 있나? 아니면 최소한 그러한 분야를 객관적으로 다룬 칼럼이나 기사, 통계자료가 하나라도 있나? 없다. 기껏해야 일개 개인이 지 맘대로 만들어낸 유튜브 영상 몇 쪼가리가 전부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도 이따위로 자료를 제시하면 교수가 목덜미에 돌려차기를 날릴 것이다. 이는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를 출처로 달아놓은 것보다 더 질 떨어지는 수준이다. 그게 이 여혐종자의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고등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 없다는 가장 적나라한 증거가 된다. 근거가 아니다. 증거다.

 

 

빅데이터는 수집에도 규칙이 있고, 그렇게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할 것이고 불필요한 데이터를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이라는 게 있다. 일개 유튜버의 영상에서 그런 걸 기대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본인이 해당 분야의 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렇고, 심지어 그러한 전문가조차 해석 오류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저 불쌍한 바보가 제시한 자료는 당연히 빅데이터가 아니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없다. 그걸 종교적인 수준에서 신앙하는 바보가 있을 뿐이지.

 

또한 저것은 논리적 오류이기도 한데, 저러한 여혐 자료들은 대개 자기가 원하는 자료나 사례를 취사선택한다. 이는 아주 쉽고 간단한 일이며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편견을 강화할 무비판적 자료가 된다. 거꾸로 말해서, 남혐 꼴페미가 남혐 자료를 무진장 많이 수집해서 유튜브 영상으로 만든다고 해서 그걸 신뢰할 자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게 객관성을 담보하고 모든 남성이 잠재적 성범죄자이자 박멸되어야할 선천적 쓰레기라 말할 수 있겠는가?

 

단언컨데 정상적인 사고력과 판단력을 지닌 사람은, 특별히 뛰어날 필요 없이 평범한 지성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보고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혐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을 적용하기가 어째서 불가능할 것인가? 저 치가 멍청한 이유가 그것이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력을 느낄 수도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지적할만한 부분은 문장 하나마다 있기 때문에 정말 많지만 그것들에 대해 하나하나 짚는 건 시간낭비이니 저 댓글에서 보여지는 몇가지 사실들을 확인해보자. 저 바보는 조금 받아주니까 자기 혼자 집안에서 부들부들대면서 키보드 잡고 저렇게 긴 장문의 댓글을 줄줄이 써내려 갔다. 무가치하고 영양가란 하나도 없지만 그 나름의 정보는 제공해준다.

 

가령, 새벽 3시에 컴퓨터 잡고 남의 블로그에 반복적으로 찾아와서 저런 장문의 댓글을 남겼다는 것은 저 치에게 제대로된 직업이 없다는 걸 말하고 시간과 에너지가 썩어 넘치니 이렇게도 무의미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원래 인터넷 키배는 시간이 썩어나는 백수가 이긴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딱 그런 케이스다.

 

도대체 얼마나 비참하고 비루한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에 저럴까. 더욱이, 도대체 저 글이 저 찐따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길래 며칠 동안 저러고 있는 것일까. 그의 삶과 생활 수준에 대한 윤곽이 잡힐 수밖에 없다.

 

 

 

그야말고 코미디쇼나 다름이 없다. 자기가 줄줄이 연달아서 박아놓은 저 댓글은 짧다고 느끼는 것일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것은 지적 열등함의 증거다. 이것은 인간에게 적용되어야할 기준인데, 지능이 낮은 동물일 수록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자신의 것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그 동물의 종적 차원의 지능 수준 때문이지만 인간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것은 저능함의 증명이다.

 

자기 스스로 줄줄이 늘어놓은 저 무의미하고 읽지도 않을 장문의 댓글에 대해서는 어떤 자각이 없을까? 머리가 나쁘다는 건 올 때마다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더욱 흥미로운 건 자기 스스로 근거도 없이 여자라고 믿어놓고 만나자고 하는 것이다. 여자라면 와서 윽박지르고 힘이라도 쓰면서 자신의 비루하고 남루한 자존감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저런 류의 인간을 많이 관찰해본 입장에서 확실하다고 말해도 좋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저 머저리가 내놓은 스펙이다. 당연히 구라일 수밖에 없다. 아마 저 정도 조건이 자신을 강하고 위협적이게 보일 것이라 믿는 것일텐데, 의도와 목적은 뻔하다. 저 정도로 위협적인 조건을 써놓으면 결코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게 웃긴 건데, 저 조건이 역으로 얼마나 불쌍한 조건인지 보여지는 것이라는 거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추구하고 그걸 병적일 정도로 집착하면 망상에 빠지기도 한다. 저 불쌍한 놈은 어차피 만나주지도 않을 거고 만나자고 해도 그때가서 말을 바꾸면 될 것이니 아무렇게나 내뱉는 거다. 그러니 현실의 비루하고 말라 비틀어진 찐따 몸뚱이를 상상 속의 스펙을 늘어놓으며 가장하는 것이다. 어떤 모습일지 획이 한가닥 더 그려지는 대목이다.

 

애초에, 저 조건인 사람은 몇날 며칠 인터넷 블로그나 붙잡고 매달리며 한 순간이라도 빨리 반응해주지 않으면 못 버티는 장애인이 아니다. 실제 저런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평범하게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몇명 정도는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아는 입장에서 말하길, 그런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저따위로 안 산다. 남의 블로그에 기어들어와 키배나 하잡시는 것도 다 시간과 노동이고, 그 시간과 노동은 더 귀중한 것에 투자할 수 있다.

 

덧하여, 사람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하는 법이고 그마저도 안 통하면 싸우자고 한다. 그가 얼마나 못 배우고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한, 사회화가 덜 된 불쌍한 종자인지 알 수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굳이 빈민가에서 자기 만나자는 사람을 친히 만나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현실에서 발생하는 조건의 차이가 그 비루한 빈민과 나의 실제적 입장 차이를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고, 사람에게는 끕이라는 게 있는지라 자기 주변 사람과 만나는 사람으로도 구분되는 법이다.

 

즉, 내가 저 불쌍한 바보를 만나주지 않는 이유는 내 수준이 추락하기 싫기 때문이고, 만날 필요도 없이 난 내 시간과 활동을 더 귀중한 곳에 써야만 한다. 저 치에게도 말해줬듯이, 내 시간이 저 저능아의 시간보다 귀하고 중요하다. 이건 돈으로도 환산될 수 있다. 백수 찐따가 개소리나 하면서 검사, 의사랑 만나서 논쟁하자느니 맞짱 뜨자느니 하면 만나주나? 그렇지 않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자기 급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그걸 요구하는 사람은 마치 그런 정상적이고 잘 사는 사람과 맞먹는 줄 아는 크나큰 착각를 하게 된다.

 

그래서 불쌍한 거다. 현실도 모르고 인간관계도 좁고,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 없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화가 덜 되었다는 건 가정상황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사람의 말과 행동은 정말 많은 건 보여준다. 프로파일러는 아니지만 그런 심리, 정보 분석의 전문가들에게 저 정도 데이터면 만들어지는 모델이 있을 것이다. 근데 저 정도로 뚜렷한 건 나도, 다른 사람들도 쉽게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멍청하고 남들과 제대로 관계를 맺어본 적 없으니 저 바보는 못할 것이고, 남이 할 수 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사람은 인간관계를 겪어보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견적을 뽑는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런 타입이고 저렇더라 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한 그것을 알 턱이 있겠는가.

 

 

다른 댓글도 많아서 좀 더 길지만 의미가 없기에 적절히 필요한 부분만 캡쳐했다. 참고로 이 밑으로 어어어어어엄청난 반응을 보여주며 초장문의 댓글을 죽어라 갈겨놨다. 그런 쓰레기 같은 내용은 내게 의미도 가치도 갖추지 못하기에 읽은 적이 없다.

 

쟀든, 이 부분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욕설이 다른 부분보다 많다는 점이다. 내가 이 불쌍한 녀석의 삶과 인생을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거짓말과 허세로 지키고 싶었던 현실을 그대로 지적해버렸기에 흥분해버린 거고, 지나치게 사실적인 지적이 열등감을 지나치게 자극해버린 거다.

 

그래서 난 이 반응을 보고 폭소했다. 너무 재밌다.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반응하는 멍청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그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재미를 느꼈다.

 

왜 화가 나겠는가? 사실이 아니라면 화가 날 일도 없다. 자기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까. 그런데 왜 저렇게 흥분하며 부들부들대겠는가? 내가 지적한 것들이 자신의 현실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가깝기 때문일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사실, 저런 류의 인간들은 그 조건이 다 비슷비슷한 경우가 많다.

 

3대 500? 격투기, 운동을 배워? 재산이 3억이야? 스펙 좋고 조건도 좋아? 나 좋다는 여자가 있는데 자기가 관심이 없어?

 

그럴 턱이 있나. 기껏해야 공익 멸치 수준으로 말랐고 운동은커녕 기초체력부터가 부족할 것이다. 재산 3억을 불렀는데, 아마 자기가 살아온 삶의 관점에서 3억은 정말 큰 돈으로 보이나보다. 그 정도는 일반적인 가정이면 그럭저럭 가지고 있을 돈이다. 돈 좀 번다 하면 몇년 적당히 모았을 때 모아지는 돈이기도 하다. 뻔하다. 집안구석에 천만 단위 돈도 별로 없는 가난한 집안이니 3억이 엄청 큰 돈으로 보였겠지.

 

 

또 하나. 여기까지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저 치는 논리라는 게 없다. 스스로 내놓는 컨텐츠가 없고 주장하는 바가 없다. 그저 여혐이라는 밈 하나에 종속된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거나 겪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그저 자신의 비루한 삶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는 시궁쥐 같은 놈이고 여혐은 그에 대한 충분한 변명거리가 되어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 같은 곳에서 혐오 자료나 찾아보면서 내가 여자를 못 만나는 이유는 내가 안 만나서고, 내가 안 만나는 이유는 여자들이 쓰레기이기 때문이다라는 이유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못난 폐급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있고 비루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한 케이스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애초에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으니 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구가 없고 친구가 없으니 당연히 여자들과 사귀기는커녕 대화조차 나눠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학생 시기를 거치고 나니 주변에 사람이 없다. 그 흔한 친구도 없다.

 

제대로된 인간관계도 없고 사회성이 없으니 아무나 받는다는 노가다판에서도 저런 종류의 폐급 쓰레기는 잘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노가다나 공장을 거부하는 바보들도 많다. 시간이 남아 도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 증거의 근거는 저 댓글의 작성 시간을 보라. 새벽 4시다. 그 시간이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유하는 사람들은 수면을 취하고 있을 시간이다. 정말 열심히 산다면 장시간 출장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할 시간이고. 저 바보가 그런 삶을 알 턱이 없지만.

 

 

 

원래 잘난 애들은 이성을 딱히 신경 안 쓴다. 아쉬울 게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거에 폐급 찐따들처럼 목맬 필요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잘난 사람은 자기 인생에 충실하기에 이런 곳에서 이런 댓글이나 싸질러대며 살지 않는다. 그게 이 바보가 얼마나 비루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반대 증거가 되어준다.

 

평생 여자와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람은 역으로 여자를 증오하고 혐오한다. 내가 죽어도 여자랑 잘 될 리 없다는 걸 인정하기 보단 내가 여자를 안 만나는 거다라는 비참한 정신승리로 일관하고 있다. 이 포도는 신 포도라는 여우의 우화를 안다면 어떤 인간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 불쌍한 놈은 평생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 없고 여자와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으며, 앞으로 남은 평생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증오는 더 강해질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더 나아지려 노력하기보다 여자가 쓰레기라 그렇다고 한다면 얼마나 쉽겠는가? 변하는 건 본인이 더 질 떨어지는 것 뿐이지만 애초에 똥통 속에서 태어나 둥둥 떠나니는 똥이었는데 얼마나 달라질까. 그저 노력하기보다 혐오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 뿐이다.

 

 

이게 웃긴 거다.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럴 내용도 없고 의미도 없으며 가치도 없으니까. 중요한 건 이 부분이다. 빅데이터 분석기반 통계 자료라는 부분과 연예인도 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 조금 서술하자면, 저 불쌍한 바보가 제시한 유튜브 영상은 다시 한번 말하겠지만, 빅데이터가 아니고 그걸 기반한 통계자료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기반 근거 자체가 틀렸고 그 기반에서 시작되는 모든 주장과 논리가 자연적으로 오류로 수렴한다. 1+1이 틀렸다면 1+1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체계가 붕괴한다는 기본 원칙에 따르는 것이다.

 

기껏해야 배운다는 게 책이나 교육이 아니라 유튜브에 불과한 불쌍한 저능아가 늘 그렇듯, 그따위 쓰레기 자료가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굴고 싶겠지만, 학부 수준이라도 겪은 사람들은 석박사도 아니고 학부 수준에서 요구하는 수준만 해도 저따위 자료는 댈 수가 없다. 못 배웠으니 알 턱이 있나 ㅋㅋ

 

 

연예인의 삶과 일반인의 삶은 다르다. 당연한 건데, 그들은 삶 자체가 컨텐츠고 지나치게 많은 부분이 드러나 있다. 버는 수익의 규모도 다르고 노동 방식도 다르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생활이고 수많은 팬들이 자신을 사랑해주고 지지해주는 경험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비슷한 경우라면 어떤 조직을 이끌거나 그 조직 내에서 팀을 이끌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다른 사람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허락을 받을 사람을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은 모를 경험이라는 거다.

 

평생 밑바닥에서 아무런 권한도 권력도 없이 살아온 잡놈 인생이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라는 거다. 세상에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연예인은 그 중 하나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기도 하고 실제로 그런 면이 있겠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다른 조건의 환경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환경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기 때문에 잘 나가는 연예인의 삶은 일반인과 전혀 다른 법이다.

 

그것도 헐리웃 수준의 스타들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들 스스로 대단한 스타고 엄청난 조건을 가진 이들이기에 아쉬울 게 없다. 주변 사람들과 스태프들은 감독, PD 급이 아니라면, 그마저도 엄청난 경력과 인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를 떠받든다. 워너비, 그루피라는 건 본래 미국 연예계에서 등장한 단어다. 자기 좋다고 죽어라 따라다니는 사람이 수백, 수천만이고 한번 공연할 때마다 수만명이 모이며 열광하고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며 추종하는 사람들을 겪은 사람에게 인간관계란 구분되어지는 것이다. 그들 나름의 질서대로.

 

그렇기에 쇼윈도 부부와 같은 사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조건이 뛰어나고 내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데 왜 네가 나한테 그딴 식으로 구냐는 거다. 당연히 너도 나한테, 내 위주로 맞춰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상대방도 똑같은 스타라면 당연히 아쉬울 게 없으니 네가 나에게 맞추라는 식으로 나온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쇼윈도 부부라는 말이 만들어진 이유가 뭐겠는가? 그들의 자의식은 연예게 활동에서 비대해졌고 그런 사람끼리의 결합은 그들 스스로 연예인인 이상 반드시 이미지로 귀결되는 상품화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 사회는 한국 사회랑 또 다르고, 헐리웃은 한국 연예계와 또 다르다. 이혼과 결혼이 쉽게 발생하고 그 이유도 제각각이지만, 대개 성격 문제라는 말로 포장되는 대화와 양보가 없는 태도는 그들 수준만큼이나 강경하다.

 

이런 조건의 격차를 가진 사례를 일반인과 1:1로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멍청한 거다. 차라리 대화 없이 강대강으로 굴려는 태도 자체를 지적했다면 그나마 말이라도 됐을 것이다.

 

근데 왜 저런 멍청한 말을 하겠는가? 뻔하다. 자기보다 더 잘사는, 평범한 사람의 삶조차 모르는 멍청이가 연예인들의 삶에 대해 뭘 알겠는가? 사람은 자기 수준에서 바라보고 평가하며 판단하는 법이다. 밑바닥 쪼가리들이 상류사회를 어찌 알까.

 

 

 

 

자, 마지막으로 저 저능아가 전달해준 정보들을 기반으로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이고, 어떤 삶과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졌는지 분석해보자.

 

 

1.소득 수준이 낮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된 가정교육을 받은 적이 없을 것이다. 부모 역시 배운 사람들은 아니고 매일 같이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 진이 빠져 있으니 아이에게 큰 관심을 쏟을 수도 없고 관리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아이의 품성은 유전을 제외하면 그 아이가 알아서 하는 면이 크다. 관리해주고 가르쳐줄 어른이 곁에 없기 때문이다.

 

2.이는 다르게 말해서 배워야할 것을 못 배웠다는 것이다. 가정교육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효과는 사회성이다. 밖에 데리고 나가서 여러 경험 하게 해주고 가족, 친지, 지인 등 많은 사람 만나게 해주고 친구들 만나게 해주며 사회화를 기르게 해주는 것이다. 어른을 보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주고 친구들과 놀 때 싸우거나 다툼이 있으면 말리고 어떻게 해야할지 가르쳐주기도 한다. 애초에 사람을 만나봐야 어떻게 대하는지 배울 수 있다는 건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저 머저리는 그런 경험이 크게 부재할 것이다.

 

3.따라서 그의 학교생활은 초중고 모든 시기 동안 제대로된 교유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사회화가 제대로 된 적이 없으니 무엇이 선을 넘는 거고 무엇이 사람을 불쾌하게 하고 어떨 때 사과하고 어떨 때 고맙다고 해야할지 모르니 다른 사람들은 저 찐따를 피할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저 멍청이 본인의 잘못이고 친구들은 잘못이 없다.

 

왕따가 잘못된 거냐고? 일반적으로는. 근데 그 본인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이상한 놈이라면 정상적인 사회성과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밖에 없다. 사회성 없어서 자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어떻게 남의 책임이고 남의 잘못이겠는가? 제대로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는 건 이렇게 자식의 인생 전반적인 결함을 발생시킨다. 아마 언제 씻어야 하고 왜 씻어야하는지에 대한 교육도 받아본 적 없을 것이다. 사람을 피하는덴 생각보다 피상적인 모습과 인상이 크게 작용한다. 겪어보기도 전에 벽이 세워지는 게 바로 청결과 관련된 이슈다.

 

4.거의 12년 동안 찐따로 고립된 삶을 살아간 놈이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이나 있겠는가? 맺는 방법도 알 턱이 없다. 당연히 친구는커녕 여자와 대화해본 적도 손에 꼽을 것이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니 거짓말로 줄줄이 늘어놓은 조건들은 믿을 수가 전혀 없고 그의 말과 행동이 그 자신의 모순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5.왜 여혐이겠는가? 앞서 말했듯,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깍아내리는 건 흔한 일이다. 이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 하면서 정신승리 했던 여우의 우화는 그러한 인간의 성질을 드러내는 이야기다. 인지부조화라고도 한다. 그는 평생 여자를 접해본 적도 없고 여자를 만날 가능성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차라리 여자를 증오하기로 했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여자가 쓰레기라 안 만난다는 정신승리.

 

비참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다. 현실은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페미나치 쓰레기들이 남혐 열심히 해도 꽤 괜찮다 싶은 남자 꼬이면 어지간히 미친 경우 아니라면 페미 접고 평범한 커플이 된다. 본인 스스로 조건이 너무 쓰레기라 남자가 안 생길 거라며 남자를 증오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여러 인간 패턴과 범주가 있지만 이 경우엔 그러하다.

 

6.자기가 주장하는 자신의 조건들이 틀린 이유가 그러하다.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여자애들 많이 만나보면서 대화 많이 해본 사람은 여혐에 빠지지 않는다. 역으로 남혐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인간관계를 통해 알 수 있고, 괜찮은 인맥으로 잘 지내고들 있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는데 혐오종자들이 말하는 한남, 꼴페미가 어떻게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필연적으로 여혐이나 남혐에 빠지는 이들이 현실에선 폐급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주변에 남자가 없고 여자가 없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도 없으니 가상의 남자/여자를 만들어놓고 허수아비를 공격하는 것이다. 저 불쌍한 찐따가 평생토록 여자와 1분 이상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을까? 애들 관리하는 선생님이나 의사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아 물론 엄마도 제외하고.

 

7.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여혐세계/남혐세계에 몰입하다보니 진짜 현실과는 더더욱 유리될 수밖에 없다. 세상에 그렇게 꼴페미가 많고 쓰레기 같은 여자가 많은데 왜 그 쓰레기 같은 여자가 자기 엄마, 할머니가 아니어야 할까? 자기가 겪어봤으니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는 것일까? 그럼 그 관점과 기준을 왜 다른 여자들에게는 적용할 수 없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들이 어떻게 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고 어떻게 행동하는지 본 적이 없으니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여혐은 본질적으로 논리적 오류로 이루어져 있다.

 

8.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저 불쌍한 놈이 내세우는 조건들은 그 자신이 가져본 적 없는 것이다. 멸치 공익에 키는 170cm 정도, 친구도 없고 여자도 없고 피지컬도 떨어질 것이다. 그가 내세우는 조건을 거꾸로 뒤집으면 나오는 것이다. 이건 10년도 전 디씨 애갤, 코갤 애들도 저렇게는 안 굴었다. 그런 증명할 수도 없고(할 수 없는 이유는 진실이 드러나니까) 내세우는 거 자체가 패배선언과 동일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자기가 그렇게 대단했으면 어디 블로그나 게시판에 자기 사진, 계좌사진 찍어다가 올려놓고 함 뜨자고 하면 그만 아닌가? 왜 그렇게 하지 않고 계속 접촉을 애걸하고 있겠는가? 내가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무섭네 어쩌네 할 것도 없이 내 시간과 활동이 그의 것보다 훨씬 가치 있기 때문이다.

 

또 매우 상투적인 거짓말도 하나 있는데, 나 좋다는 여자 많은데 내가 여자에 관심이 없어서 안 만나준다는 너무 흔하고 많이 보았던 패턴이다. 이게 딱 저 포도는 신 포도라는 정신승리, 인지부조화의 교과서적인 케이스다. 여자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저따위 폐급 찐따랑 엮이기 싫은 거다. 사람은 주변에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로 급이 정해진다. 찐따랑 같이 놀면 찐따라는 말 아는가? 왜 일진 친구 하나 쯤 있으면 좋겠다는 애들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다. 여자에 관심이 없다는 건 추잡한 정신승리고 현실은 여자들이 그에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는다. 그러면 다행이지 멸시하기까지 할 것이다. 냄새나니까.

 

그런 이유로 여혐 따위에 바져 있는 것만 봐도 주변에 여자가 없고 대화도 제대로 해본 적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몇번이나 말하지만, 말과 행동이 드러내는 정보들은 생각보다 많다.

 

9.저 불쌍한 놈이 제대로된 직업도, 인간관계도, 사회생활도 못하고 있다는 것 역시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저렇게 무식하게 말하며 약간의 자극만으로 의도했던 반응이 나오며 부들부들대는 성질로 뭘 할까? 아니, 저놈 성질이 현실에서 나쁘진 않을 것이다. 평생을 약자로 살아온 놈이 현실에서 어떻게 싸울 줄 알겠는가. 기껏해야 인터넷에서 키보드나 붙잡고 있는 거지. 그런 사람 많고 많이 보기도 했다.

 

그럼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말했듯이, 말과 행동이다. 일단 말은 됐고 행동을 보자. 몇날 며칠 동안 일개 블로그 하나 잡고 욕이나 써갈기고 헛소리나 하고 있다. 또한 그 시간 역시 12시 이전은 물론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이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중에 새벽까지 안 자고 저런 장문의 댓글을 달지 않는다. 역으로 그가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퇴근하고 친구와 맥주 한잔 하면서 노가리를 까는 것도 아니고, 아침에 출근해야 해서 컨디션을 조절해야할 필요도 없기에 일찍 잠을 자는 것도 아니다. 그럼 답은 뭘까? 직업도 없고 친구도 있어본 적 없이 비루한 삶을 살아왔던 백수 찐다 아니면 출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직업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나머지 조건은 거기서 거기고. 어쩌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 본인 돈보다는 지자체 지원복지 프로그램 덕분일 것이고.

 

10.세상 어떤 정상적인 사람도 이런 삶을 살지 않는다. 인터넷 키배나 하자고 몇날 며칠 반복적으로 기어오는 건 무가치하고 무의미해서 그런 곳에 시간을 오래 쓰지 않는다. 이 블로그에 찾아와서 욕 한줄 쓰고 가는 놈들 대부분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근데 쟨 왜 그러겠는가? 인터넷이 삶의 유일한 의미고 가진 것 없는 현실보다 중요한 세상이라는 거다. 시간이 썩어나고 어떻게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반응해줄 사람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관심종자라고 표현되는데, 그러한 이유는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사회적 갈증을 인터넷에서 찾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현실에서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서 찾기 마련이고 요즘 시대엔 인터넷이 된다. 인터넷에서 찾지 못한다면 다시 현실로 기어나와 불건전한 방식으로 표출하는데, 바바리맨이나 도촬, 성범죄, 심지어 테러 등으로 이어진다. 보통 그런 식의 반사회적 범죄는 사회 하층민이자 사각지대를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에서 발생률이 높다. 아서가 왜 조커가 되었는가?

 

저 불쌍한 저능아는 내게 관심을 갈구하고 매달리고 있다. 난 그걸 알기 때문에 계속 반응해주며 자극을 해준 것 뿐이다. 단순히 내 재미를 위해서. 저 비참한 인생을 살아가는 잡놈은 내가 주는 관심과 반응을 받아먹으며 삶의 의미를 찾는다. 근데 그것도 이번이 끝이다. 더 이상 재미가 없기도 하거니와 이 정도 반응점에서 관심을 끊으면 나타나는 반응 역시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럼 정리해보자.

 

저 불쌍한 놈은 가난한 집에서 부모의 관심과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컸고, 제대로된 사회성을 획득하질 못했기에 학교에서 정상적인 교우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립된 거의 12년 동안 타인과 정상적인 대화,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 없이 졸업했기에 남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전혀 모른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 아니. 대학 자체를 가본 적도 없다. 그럴만한 지적성취를 이룬 적도 없지만 그럴만한 재산도 없다. 그에게 3억은 세상이 바뀔 엄청난 돈이겠지만, 평범한 서민 집안에서도 억대 재산은 모으면 나오고 찾으면 나온다.

 

인간관계가 고립되어 있으니 사회적 욕구는 있지만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니 인터넷에 몰입한 것이고 여자는 만나고 싶은데 자기 조건이 너무 폐급이다. 그걸 자기도 알지만 모르는 척하고 있다. 대신 여자들이 쓰레기고 내가 안 만나준다는 정신승리로 자존감을 채운다. 그러나 평범하고 흔한 남자나 여자들은 이성친구나 지인이 있기 때문에 여혐, 남혐 허수아비에 휘둘리지 않는다. 설령 인터넷에선 여혐, 남혐 하는 애들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 그런다. 자기가 겪어본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저 불쌍한 놈은 주변에 그럴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으니 여혐에 신앙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에게 여혐은 현상이나 사실이 아닌 믿어야할 신앙이자 도그마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너무 비참하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된 교육과 인간관계를 갖추지 못한 폐급인생이기에 결혼이나 연애는커녕 제대로된 직업도 구할 수 없다. 밖에 나가서 누굴 만나거나 어떤 활동(Ex.운동)을 하기보단 인터넷이나 붙잡고 새벽까지 하는 백수 같은 생활에 더 익숙하다.

 

운동을 한다는 것조차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해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운동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얼마나 쇠질을 하고 런닝을 하느냐, 식이요법과 단백질을 퍼먹느냐 뿐 아니라 자기 컨디션을 얼마만큼 잘 조절하는 것에도 달렸다. 가령, 운동한 날에는 필요한 시간에 적절한 수면을 취하는 것도 근성장에 필수적이다. 당연히 운동 했으니 피곤해서 잠도 잘 오겠지만 말이다.

 

근데 새벽 4시까지 컴퓨터 붙잡고 흥분해서 초장문의 댓글이나 줄줄이 달아대는 놈이 3대 500을 칠 리가 있나. 거짓말은 이렇게 쉽게 깨어지는 것이다. 해본 적도 없고 가져본 적도 없으니 모니터 너머 생판 모를 남이 쉽게 파악해버리는 것이다.

 

제대로된 직업이 없으니 새벽 4시까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거고, 그런 자식을 이미 포기했을테니 부모도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해준 것도 없으니 요구할 것도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비애라면 비애일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블로그에 며칠씩이나 오는 이유는 내 관심을 받아먹기 위해서도, 이는 거꾸로 현실의 일보다 인터넷의 경험이 더 중요하며, 그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것도, 달리 할 것도 없다는 말이 된다. 기껏해야 유튜브 보면서 쓰레기 같은 정보나 보는 주제에 자기가 똑똑하고 배웠다는 줄 아는 처참한 지적능력과 자의식을 보라. 대학 학부 수준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병신들조차 일개 블로그에 몇날 며칠씩 반복해서 들어오고 자기 댓글에 어떤 반응이 올지 시도 때도 찾아와서 확인하지 않는다. 그냥 욕이나 씨게 박고 잊어버리는 게 최선이다. 얻을 게 없고 의미도 없는 뻘짓거리니까. 그 정도 사리판단은 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저 병신은 그 수준도 못 된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하루 씩 텀을 두면서 반응해주었을 때 저 저능아는 내 블로그에 몇번씩 찾아와서 확인했다 실망했을까? 얼마나 내 관심과 반응에 매달렸을까? 아예 반응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나올까? 재밌는 주제이다.

 

얼마나 비루하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으면 저렇게 살까. 내가 봐왔던 병신들 중에서도 이 정도 노력으로 멍청한 녀석은 손에 꼽히는데, 이 녀석이 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글은 그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ㅋㅋㅋ

 

아 참고로, 이 글의 홈주제는 '과학'으로 올라온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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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과 반응.

 

현 2030 세대에게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공정과 평등입니다. 물론 그들이 공정하고 평등한 태도를 취하느냐와는 별개로, 그러한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있는 건 사실이라 봅니다.

 

현 청년 세대는 윗 장년 세대와는 다르게 차별을 거의 겪지 않았거나 비슷한 차별을 비슷하게 받아왔습니다. 여자들이 어렸을 때 받은 차별만큼 남자들은 비슷한 차별을 그 나이대에 당해왔죠. 따라서 두 성별의 차별을 없애자에는 동의하지만, 여자들의 차별만 없애자거나 남성의 차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건 그 자체로 불평등한 겁니다.

 

근데 여시, 워마드, 메갈이 등장하면서 페미가 발흥하고 남성혐오와 역차별이 가속화되었죠. 이미 이 두 성별의 갈등은 통제 가능한 수준이 아닙니다. 둘 다 메갈과 일베로 위시되는 혐오로 맛탱이가 가버렸거든요. 일베나 메갈이 아닌 사람? 물론 많죠. 그런 사람? 있을 수밖에요.

 

 

정부여당의 페미 정책이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인데, 장년층 세대의 공감대와 감성으로 접근하니까 자신들의 부채의식을 반발이나 반론 없는, 다시 말해 별 생각 없이 수용해주면서 무조건적인 수용과 인정적 태도를 취한 겁니다. 우리가 그 동안 특혜를 봤으니 그만큼 내놓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현 시대의 세태와 구조적 공정성보단 일단 기울어진 운동장의 한쪽에 무게추를 쏟아주는 것으로. 그러다보니 현 세대 2030들에겐 정부여당이 청년 남자들을 버렸다. 우린 버림 받았다. 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습니다.

 

위 경찰 커뮤니티에서의 반응을 보면, "왜"냐고 물어본 것 뿐인데 오히려 조롱과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라면 엄밀히 따져 공정한 건 아니더라도 쌤쌤이라고 인정해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런 건 이유가 없잖아요. 그 누구도 왜를 설명하지 않고 자신들의 특혜를 보호하기 위해 일단 몰아내자, 입다물게 만들자는 태도죠. 무조건적인 특정 집단의 이득과 특혜입니다. 그러니 남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요? 존나게 불평등하다. 왜 나만, 남자들만 개고생이지? 그렇다고 뭔가 얻는 게 있나? 보상이 있나? 없어요.

 

그래놓고 뉴스를 보면 허구언날 여성 어쩌고 남성이 어쩌고 그러고 있습니다. 여성에겐 호의적인데, 남자들에겐 잠재적 가해자라고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죠. 얌전히 특혜만 받고 입 다물고 있으면 적어도 직전 시대까지는 뭐라고 안 하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불편하지만 굳이 건드리진 않는 그런 거. 때때로 작은 것이라도 뭐라도 베풀면서 고마움을 표현한다면 공정한 관계는 아니더라도 그냥 묵묵히 하기도 합니다. 근데 지금 시대엔 페미니 뭐니 하면서 오히려 남자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성들이 가만히 있다면 그건 병신인 거죠. 길들여진 가축인 겁니다.

 

가만히 있으면 뭐라고 안 하는데, 아예 건드리기까지 하니 갈등이 안 생길 수가 없는 거죠. 뻔뻔하고 찌질한 여성들에 대해 남성의 여성혐오가 발생하거나 최소한 불평등함이 있다, 남자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라는 인지가 나타나는 구간이 되죠.

 

 

이번 보궐선거에서 남자들 표가 오세훈에게 모인 건 민주당이 청년 남성들에게 가증스러워보였기 때문일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이유들 때문에요. 남자들도 힘들고 고생하고 오히려 지금까지 남성에게 불리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는 아가리 싹 다 쳐 다물고 있으면서 여자들에겐 왜이렇게 호의적이고 양보해주고 우리의 것마저 빼앗아가려고 하는가? 심지어 무고죄와 유죄추정으로 구체적인 생존의 위협마저도 받아가면서?

 

 

물론 이 모든 게 민주당과 정부의 책임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페미당과 페미 대통령을 표방한 이상, 그리고 여성 정책을 펴나간 이상 모든 어그로가 정부여당에게 끌릴 수밖에 없죠. 이미 민주당은 페미당이고 문재인 정부는 페미 정부라는 인상이 박혀 있습니다.

 

그리고 2030들의 그러한 인상이 표심으로 나타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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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어트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큰 영향을 받은 인물로서, 그의 자유론은 효용이라는 가치를 기반으로 주장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는 국가와 사회, 더 나아가 인류 발전을 이끌 원동력으로 개개인의 개성을 꼽았습니다. 또한 밀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개인의 자유 영역으로 규정했지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사회적 행위에 속한다는 것이며, 사회나 정부는 그러한 개인의 행위에 개입할 수 있고 개입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영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간접적인 영향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언어가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진 않지만,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그것은 전자의 자유가 후자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본 것입니다.


밀이 개성을 중요시 여긴 것은, 그것이 인간 정신의 건전한 토론과 토론의 다양성을 통해 발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나 국가는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을을 목표로 하여, 국민들이 일치단결하여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아무리 좋고 옳은 것을 목표로 한다 하여도 독선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 부작용과 역작용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 개인과 사회,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게 될 것이라 하죠.


반면 개성은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요소처럼 보이지만, 실은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개성이 극대화될 때 개인과 사회는 그런 부작용을 제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국가와 사회 또한 결국 개개인에 의해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요.



밀의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와 그것을 건전히 유지시키기 위해 제시된 것들은 일견 이상적이기도 합니다.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일테지만 여전히 대중은 자신의 자유를 통해 사회적 해악을 발생시키고, 개성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그러한 해로운 주장과 목소리가 사그라들거나 나쁜 것으로 규정되어 힘을 잃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악종에 열광하고 환호하며, 그것을 지지하는 세력이 형성되어 실질적인 힘을 갖추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목소리는 자유가 주어졌기에 나오는 것이 아닌, 그러한 사상과 생각을 갖춘 개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세대와 직종, 지역을 뛰어넘어 광범위한 집단이 공유하는 것은 그만한 경쟁력, 혹은 (아무리 어설프고 황당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만큼은)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상이 먼저고, 그 사상을 표현할 자유가 있기에 그러한 존재를 확인하고, 확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치판단의 영역에 속하는 윤리, 도덕은 남을 통해 확인하고 충돌하며 수정되면서 그 시대, 그 환경에서의 적절한 선을 찾아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은 개인이 따라가는 것이 아닌 윤리와 도덕이 사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악한들의 모임에서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건전한 집단에 비해 매우 낮거나, 혹은 매우 색다를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해악적인 함의를 담는 사상이 사회를 지배하거나, 우위에 설 때 도덕과 윤리의 기준도 그에 맞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밀은 이러한 안 좋게 나아가는 사회는 자유로운 토론과 개성을 통해 혁파되고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게 맞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맞기를 바라고요. 대체로 안 좋은 것들은 아무리 거대하더라도 시간에 따라 사라지곤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더 나은 것을 요구했던 사람들이 더 나은 논리와 주장을 통해 비판하고, 제시했기 때문이고요.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해악스러운 악종들이 있고, 그것들은 여러 지점에서 다양한 피해를 입힙니다. 문제는 그것이 피해인지, 문제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으며, 그것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그것을 나쁘지 않다, 문제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일베, 워마드, 최근의 ㅇㅅㅇ에 다다르기까지, 그들의 행동과 언어는 반사회적이고 일반 윤리와 도덕, 심지어 인권의 영역까지도 건드리는 민감하고 위험천만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밀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들은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간접적인 것들이라는 것이지요.


서구사회에선 한국처럼 명예훼손, 모욕죄에 대해 인정이 훨씬 까다롭거나, 아예 그러한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완전한 날조와 거짓선동조차 자유로써 보호 받는 미국 같은 곳에선 정말 이게 같은 인간의 지성을 공유하는 자인가를 의심하게 만드는 지적 실패작들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지요.



그러나 보기 싫은 건 보기 싫은 것입니다.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을 통해 더 나은 답과 타협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행동이지만 의외로 그러한 결과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어렵기도 하죠. 특히 사람이 많아질 수록, 그 토론자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록, 때때로(혹은 대체로;) 토론자의 지성이 부족할수록..


일베충이나 환빠와 같은 정신을 차리지 않는 이들이 어느 곳에서 완전한 논파를 당하거나 상당한 반격으로 자신의 주장과 논리에 힘을 잃더라도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다른 곳에서 반복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않죠. 인지부조화, 자기합리화 등 여러 정신적 기제들이 상처받은 자아를 복구하면서 자신의 패배를 회피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 자신은 결코 변하지 않으면서, 무익한 토론과 논쟁을 만들어내고, 아무런 이익도 효용도 없는 활동을 발생시키죠. 그러한 활동은 매우 피곤스럽기 때문에 한두 번 하는 정도로도 힘들고 귀찮아집니다. 공연히 바뀌지 않는 이들을 상대로 싸우러다니거나, 토론으로 쫓아내기보다는 차라리 권위나 권한을 동원하여 공격하거나 내쫓아버리거나 혹은 그 본인이 최대한 무시하기도 하고, 아예 그 장소를 떠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결코 건전한 현상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건전하지 않은 것은 해악적 행위를 반복하는 당사자에게 있을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이들은 그것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읊으며 용인하라고 요구하지만, 실상 그 반대에 선 이들에겐 하나의 공해(Polution)에 불과합니다.


집에서,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PC방에서, 직장에서, 심지어 인터넷 커뮤니티나 게임 속에서조차 그 내용의 해악성 때문에 듣기 싫은 소리를 강제로 반복해서 듣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집에 있는데 밖에서 듣기 싫은 소음이 지속해서 들린다면 우리는 그것을 소음공해라고 합니다. 원하지 않는 해로운 성분이 공기나 물에 섞여서 건강을 해친다면 그 또한 환경오염, 공해라고 할 것입니다.


정신과 사상의 영역에서도 정신적 건강을 해치고 토론으로 교정되지 않는 사상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공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밀 또한 그러한 부정한 표현에 대해 좋진 않게 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또한 하나의 개성으로 토론을 통해 부딪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더 좁고 짧은 세계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인류의 항구적인 발전보다 당장의 평온함을 선호하고, 토론과 같은 고차원적인 지적 활동을 즐기기보단 그런 경험은 때때로, 그리고 남이 하는 것을 보는 걸 더 좋아하죠. 우리는 밀처럼 관용적이고 이상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변명이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사실이기도 할 것입니다.



일베, 페미와 같은 정치병자들의 주장과 표현들이 공해라면 그것을 어떻게 다루어야할까요? 밀의 유지를 따라 직접적인 영향,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용인하고 최대한 토론을 통해 부딪히며 교정될 것을 희망해야할까요? 그러나 그것은 너무 힘들고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때때로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아니, 이미 그 자체로 그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밀 또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러니 차라리 우리가 일상적인 공해를 다루는 방식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는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이며 개성을 짓밟는 것이기도 하죠. 윤리적이지 않고 도덕과 거리가 멀며 반사회적인 사상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고 언제고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의 짓밟음은 감정적인 쾌감을 줄 수 있고 깔끔함에 청량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러한 폭력적 방식은 그 자체로 해악일 수 있습니다.


악을 짓밟은 우리가 또 다른 해악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옳아 보이는 것에도 독선적 요소가 있어 발전을 저해한다는 밀의 주장처럼요.


사상이 환경에서 나온다면, 우리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으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매우 어렵고 더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얼마나 가능한지, 그것에 반발하는 이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난제들이 우릴 괴롭힐 겁니다. 또한 개개인이 어쩔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들이 대부분일 것이고요.


단지 극소수의 머저리들이 자기들끼리 헛소리를 하는 것이라면 무시해줘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대중을 이룰 정도로 거대한 사상의 공유는 무시할 수 없겠지요.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고 그러한 판단을 기반으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그렇게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해야할 대화와 토론, 그 토론을 풍성하게 해줄 수많은 개성을 생각하면 지리할 정도로 아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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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예전에는 나름 진보의 이빨이라고 불리며 토론에 나갔을 때 상대 패널을 개박살내는 수준으로 말빨이 좋은 사람이었고, 그런만큼 진보에서도 진중권의, 나름 인문학자로서의 지성과 그걸 잘 스까서 날카로운 비판과 공격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시원함과 함께 높은 평가를 주기도 했습니다.


기존 페미 이슈에 대해서 헛발질 하면서 욕을 오지게 먹고, 반문적 스탠스로 문 정권을 비판하면서, 이번 토론에서 나온 진중권의 어록 아닌 어록들은 이제 진중권이 어떤 위치의, 어떤 인물이 되었는가에 대해 많은 걸 시사합니다.


기본적으로 진중권이 서울대를 나오고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박사 X) 박사도 아닌데 드물게도 교수직까지 한 인물로 일반인에 비해서는 뛰어난 건 맞습니다. 근데 그거랑 진중권의 한계 내지는 흑화로도 보이는 현 실태는 그러한 스펙을 무색케할 정도로 비난, 조롱을 받고 있죠.


문제는, 그 비판이 마땅하다는 겁니다.


먼저 나올 어록들부터 몇개 가져와봅시다.


"어떻게 확신하시는데요?"

"제가 아니까요."


이게.. 진짜 우스운 게, 진중권은 기본적으로 선민사상이 쩔어 있다는 비판을 받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냥 대중이라는 것들은 지식도 부족하지만 제대로된 판단능력도 없어서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도 그걸 유의미한 논리적 연결을 이루어내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진중권 같은-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가 이끌고 가르쳐야 한다. 라는 식의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과 대중(에 속하는 개인)의 판단을 무시하고, 자신과 같은 지성을 갖춘 자가 아니라면 일단 깔보는 겁니다. 그러니 일단 좆밥으로 보이면 물고 씹고 뜯고 하는데, 이게 좆밥이 아닌 경우 정신승리, 인지부조화 일으키면서 이상한 소리 하다가 그냥 차단하고 쫄튀하는 등 도망갑니다.


자존심이 세고 신념에 굳은 이들 특징 중 하나가 자신의 지성을 과신하고 자신의 판단을 진리에 가깝게 설정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틀리다는 걸 인정 안 하죠. 어떻게 확신하느냐. 내가 안다. 내가 아는 게 다 맞는 거고 나머지는 다 틀린 거다. 이런 거죠. 거기서 더 더해지거나, 자신의 의도나 해석에서 크게 틀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수정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거 틀렸다. 아니다. 하면 어거지를 쓸 정도죠.


자기가 아는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사실이라는 걸 증명해야죠. 근데 진중권은 그걸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의미 없는 개소리에 불과하고, 지 혼자 망상부리는 거에 불과하다는 말을 피할 수가 없는 거죠. 니가 알면 뭐 어쩌라고. 그게 사실이야? 본인은 자기가 아는 걸 사실(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남들은 중립 기어를 박아도 자기 판단에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발언을 하는 거죠. 조국 건에서도. 이른바 무오류의 오류입니다.


재밌는 건 이와 비슷한 화법이 몇년전에 나온 적이 있다는 건데..


"제가 대통령 됐으면 진작에 했어요."

"제가 대통령 되면 할 겁니다."


극과 극은 통한다죠? 말 못하는 모지리와 말빨 하나로는 인정 받았던 달변가가 비슷한 수준의 병신이 되었으니.



앞서 언급했지만, 진중권은 선민사상에 쩔어 있는 엘리트주의자입니다. 대중 내지는 지성의 인증을 받지 못한 이들은 모두 머저리라고 깔고 들어가는 거죠. 그리고 재밌는 점은, 그 본인이 무언가의 안티, 반골이라는 겁니다. 토론회에서도 그러한 안티 역할을 수행하면서 날뛸 수 있었던 거죠. 또 어디서든 자신의 반골 기질을 내려놓지 못해서 적을 만들고 싸웁니다. 단지 싸움을 좀 잘할 뿐이지, 그 본인의 지성에 한계가 있고, 그게 진중권이라는 인물의 한계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진중권은 소위 약자에게 강합니다. 토론의 경험이나 지적 훈련이 덜 되어 있는 사람이나 쉽게 흥분하고 이것저것 던지는 사람, 논리적 완결성이 부족한 사람. 다시 말하자면 논리성이 약한 사람, 구멍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는 온갖 현란한 말빨을 동원해서 발라버릴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양학이죠. 양학은 잘해요. 일단 그의 지성이나 논리력과는 별개로 말 자체를 잘합니다. 아무리 논리적이고 뛰어난 사람도 글만 잘 쓰는 사람, 말만 잘하는 사람, 둘 다 잘하는 사람, 둘 다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진중권은 최소 말은 잘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말이 바로 나오고 그게 안 꼬이고 잘 나와요.


그런만큼 토론전에서 진중권의 전투력과 명성은 기본적으로 말빨에서 나오는 거죠. 물론 논리적이긴 한데, 이게 상대에 따라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좆밥 상대로는 양학 잘하지만 좀 한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 먹혀요.


무엇보다, 진중권이 상대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좆밥 대지는 병신들이었습니다. 공영방송의 토론회에서도 말도 제대로 못하거나 논리적인 구성으로 공격, 방어를 한 사람보다는 좀 허당스러운 사람들과 하면서 현란하게 가지고 놀았고, 예전 일베에서 간결과의 대결에서도 간결은 지성, 논리력 모두 진중권은 커녕 일반적인 인터넷 키워들에 비해서도 확연히 밀렸죠. 그래서 처참하게 박살을 냈던 거고요.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은 기독교 청정국이었습니다가 나온 토론회에서도 멍청한 종교인들 상대로 현란하게 가지고 놀았죠.


변희재와의 토론에서도 사실 진중권이 변희재를 발라버릴 수 있는 싸움이었는데, 간결과의 차이점은 변희재는 준비할 건 준비해왔다는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지 혼자 조작해내서 만들어낸, 근본도 없는 자료를 마치 공식 자료인 것처럼 들고 와서 주장을 했고, 진중권은 자기가 모르는 물건이 나왔으니 어, 이게 뭐지? 하면서 제대로 대응도 못하면서 휘둘렸죠. 진중권이 공격 포인트를 못 찾았던 거죠.



진중권이 석사에 교수이지만, 사실 제대로 까보면 본인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컨텐츠 능력은 부족합니다. 일반인보다는 뛰어난 건 사실이지만 토론회 등의 필드에서 보면 그 스스로 뭘 만든다기 보단 현란한 말빨로 상대방의 구멍을 공략하고 조롱하면서 상대의 실수를 잡아채면서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편이죠. 다르게 말하자면 그런 바보들 상대로는 잘 싸우지만 공격 포인트를 안 주면 자기 스스로 뭘 하진 못합니다.


반면 유시민은 정치의 최선에서 뛰었고, 이후에도 정치적 참여(정치인으로서가 아니더라도.)를 해온 사람입니다. 더욱이 작가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정교하게 정리하는 법을 배웠죠. 진중권과 유시민의 가장 큰 차이는 컨텐츠를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 아니냐입니다. 자신의 것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죠.


진중권은 앞서 말했듯이, 안티이기 때문에 자신의 것이랄 게 거의 없습니다. 언제나 상대방과 부딪히며 공격 포인트를 잡고 공략하면서 싸우는 거고, 그 싸움을 잘 하는 것 뿐이지 스스로 뭘 만들거나 안티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선 그냥 붕 떠버립니다. 스스로 뭘 만들어내지 못하고 싸울 때 상대방 빨을 많이 탑니다. 상대방이 좆밥이다? 가지고 놀지만, 상대방 레벨이 높다? 그럼 뭘 잘 못합니다.


근데 이번 토론은 그런 안티 역할을 하기 어렵고, 유시민이 멍청이인 것도 아니고, 그 본인의 논리적 구성능력이 전성기 시절보다 오히려 후퇴한데다, 자기가 바보들 상대로 항상 하던 '유리한 싸움'에서 벗어난 싸움입니다. 토론회에 나갈 때도 이미 자기 스스로 나름의 결론을 만들어내고 토론회에서 좀 딸린 이들을 상대로 현란하게 털어댄 것 뿐인데, 이게 가능한 이유는 찬성, 반대 등의 포지션이 갈리고 무엇보다 그 토론의 주제가 되는 정치, 사회적 현안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겁니다. 가령 세월호에서 정부가 잘못했냐 아니냐를 주제로 한다면 당연히 찬성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반대에 나오는 병신 머저리들은 자기가 불리한 입장에서 싸울 수 없다는 것도 모르니, 이미 이길 수밖에 없는 포지션을 잡은 진중권이 이기고 시작하는 거죠.


간결, 종교인, 개빠와의 토론에서도 마찬가지의 구도에서 한 싸움이었습니다. 어차피 질 수 없는 싸움이고 이기기엔 너무 쉬운 주제인데, 거기서 무조건 이기는 포지션에서 간단한 논리를 현란한 말빨로 찔러댄 것 뿐이에요. 단지 거기에 나온 애들이 자기가 불리한 싸움, 질 수밖에 없는 포지션에 선다는 것조차 모르는 똥멍청이들이었기 때문에 나와서 개털리는 거죠. 거기에 진중권 특기인 말빨로 조롱하면서 흥분시키면 구멍이 더 늘어나는 거고 그럼 그거 가지고 자기 입맛대로 요리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토론에서 진중권이 헛소리를 당당하게 해댄 거지요. 자기 스스로 무오하다는 오만함을 가진 채로, 자기가 제일 잘하는 걸 못했던 거죠. 그것도 고수 상대로.



그리고 위 짤은 그 대표적인 예시인데, 자기 스스로 보지도 않아놓고 일단 판타지다, 가짜뉴스와 허위사실이 나오는 곳이다. 하면서 정작 한번도 안 봤다고 합니다. 이게 굉장한 논리적 허점인데 스스로는 자신의 논리와 판단에 무한한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 저렇게 당당한 거죠.


안 봤으면 어떻게 아는가? 그러니까 보지도 않고 떠드는 거네? 뭐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여기 나온 거냐? 교수였던 사람이 기본적인 조사나 공부도 안 하고 나와서 그런 말 하는 거임? 이런 식으로 공격하고 물고 늘어지면 진중권은 지 혼자 씩씩 거리면서 제대로 반박도 못한 채로 어버버 거리면서 온갖 정신승리 해댔을 겁니다.


왜냐?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제에 정작 본인의 태도는 어떠했냐면..


"유희곤 기자가 쓴 기사가 진실인지 어떻게 알아요?"

"만나는 봤어요? 제가 만나서 얘기해보니까 진실이더라구요."


이런다는 겁니다. 이것도 본인이 봤으면 엄청 물고 뜯고 씹고 늘어질 부분인데,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안 하든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니가 어떻게 아냐? 만나봐서 이야기해보면 진실이 되는거냐? 근거는 뭐고 증거는 있냐? 니가 만나서 물어보면 그게 다 맞는 거냐? 하는 거죠.


진중권의 주장은 기자들은 자기 역할을 충실히 잘 하고 있는 거고, 멍청한 대중들은 이들의 결과물에 대해 수용하거나 인정하기 보단 그냥 까고 조롱하고 무시하면서 공격하고 있는데 주력한다는 겁니다. 


심지어 기레기라는 표현을 두고, 올바른 기사를 쓴 기자들, 언론사를 겨냥해서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특정 지지층이나 집단에서 리스트를 만들고 공격한다는 겁니다. 가령 알릴레오 시청자가 다른 기자나 언론사 타겟으로 기레기 만들고 그들의 기사를 인정 안 한다고 말이죠.


근데 문제는 그 기레기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틀렸는데, 원래 기레기라는 표현은 이번 정부 들어서 생긴 것도 아니고, 이번 정부의 친정부세력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거의 10년도 전에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를 쓰는 기자를 지칭해서 만들어진 멸칭이었다는 거죠. 온갖 주제에 대해 자극적인 표현을 골라가며 제목 낚시, 내용 왜곡, 과한 취재와 정보누설 등을 일삼는 이들과, 그러한 것들을 조장하고 장려하던 언론사들이 일명 클릭스트림을 늘리기 위해 벌이던 행태들이 패턴화되고 눈에 띄게 되면서 만들어진 용어였죠.


심지어 정치적인 영역이 아닌 사회적인 이슈나 범죄, 연예나 스포츠에서도 그러한 기본도 안 된 기사를 쓰는 기자와 언론들 패악질이 해악적인 수준에서 관찰이 되니까 기레기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쓰여진 겁니다. 팩트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공정성이나 중립성은 내다 버린 수준으로 결여된, 직업의식은 커녕 윤리 자체가 부족한 이들 때문이죠. 지금도 이러한 부분들은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혹은 더 드러났으면 드러났지..) 덜해진 게 아닙니다.


진중권은 여기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조차 무시하는 기자들이 있고, 그러한 기자와 언론사에 의한 실체적이고 증명된 사실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에 대해서는 그 맥락을 무시한 채 기자들은 올바르게 행동하며, 분노한 대중들이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공격하고 무시하며 집단적으로 배척하고 있다. 대충 이런 식으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반지성주의와로 연결되는 맥락이지만, 까놓고 말해서 논리성이 부실한 주장을 당당하게 한 것 뿐이죠.


기본적으로 계속 언급하는 부분이지만, 진중권은 대중을 모자란 놈들로 봅니다. 뭐 아닌 건 아닌데, 본인 스스로 대중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는 병신들이고, 뭐 제대로 판단하지도 못하는 멍청이들로 보는 겁니다. 자기 같은 사람들이 엘리트로써 계도해줘야 한다는 거죠. 아니, 이런 것들 다 필요 없고, 대중은 우매하며 자신과 같은 엘리트 지성인은 고매하다. 라는 엘리트주의, 선민사상에 쩔어 있습니다.


대중의 기자, 언론사에 대한 공격과 배척에 대한 진중권의 진단은 그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지적으로 '우매한 대중은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것 뿐인 거죠.


위에 따로 인용해놓은 정준희 교수와의 질의응답에서도 그러한 태도를 일관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거고요. 어떤 보도가 사실인지 어떻게 아느냐? 내가 그 기자와 이야기해봤다. 내가 안다. 이렇게요. 하나의 소스만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건 확증편향을 발생시키기 쉬워 지양해야할 태도라는 걸 모를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자를 대중보다 우월하고 뛰어난 포지션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멍청한 대중이 지적하고 공격하는 내용은 개소리로 정리한 채 반대급부로 기자의 말을 그냥 믿어버리는 겁니다.



물론 대중과 전문가 집단간의 괴리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 차이 또한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이 반드시, 언제나 더 우월한 신뢰성을 갖추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아주 단적인 사례로는 물 보고 기분 나쁜 적 있어요? 하는 교수라든가,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죄값을 치를 수 있다. 라고 한 유재흥 부장판사라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의 주장이 이후 틀리거나 반박, 논파된 경우는 적지 않습니다. 당장 진중권이 하고 있는 주장도 개소리인 것처럼요. 뭐 옛날적 트위터에서 PHP 개소리했다가 쪽팔려서 블락 먹인 거까지 가지고올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또.. 이게 진보 쪽의 일종의.. 버릇같은 거기도 한데, 흔히 어떤 발언이나 행위, 정책의 유사성을 가지고 쉽게 나치나 히틀러에 빗대면서 욕하고 비판하는 겁니다. 물론 그런 게 실제로 정당한 경우도 있기는 한데, 진중권은 진보답게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나 조국 지지자를 네오나치에 비유하면서 공격하는 겁니다.


히틀러 언급하며…진중권, 조국 지지자를 '네오나치'에 비유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5&aid=0002964933


근데 대중정치를 하면서 대중 스스로의 자발적인 지지나 운동, 혹은 정치인이나 오피니언 리더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쯤 조직적인 연계활동은 민주주의에서 당연한 겁니다. 기실 태극기와 연계하여 반민주적인 발언과 멍청한 짓거리를 해대는 황교안도 민주주의적 정치참여의 관점에서 마땅한 거 하는 거기도 하죠. 자기 지지자들과 연계하여 정치적 행동을 하는 거야 큰 문제가 안 되지만(물론 정치적 한계는 있습니다. 지들끼리 논다고 영향력이나 진영을 스스로 시키게 할 수 있죠. 대표적으로 이재명이 그럽니다.) 그냥 하는 짓거리가 개병신이라 욕을 먹는 거고요.


반면 조국 쪽은 스스로 뭘 유도하거나 연계하지도 않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검찰의 부당하고 지나친 표적수사와 기소, 압색 등의 온갖 정치적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보고 부당하고, 무도하다면서 나서는 거거든요. 검찰은 잘못하고 있고, 조국은 상대적으로 억울하다.


그리고 그 지지자들은 여전히 조국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거나, 검찰에서 하는 것에 비하면 큰 수준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냥 검찰이 너무 편파적이고 부당하게 나오는 거죠. 다른 정치인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뚜렷한 편파성과 정치성이 느껴질 정도로.


근데 그걸 가지고 네오나치에 비유하는 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인물과, 정권과, 지지 집단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고, 자기 기준에선 위험해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네오나치에 비유를 하는 거죠. 문제는 분명히 증명되지도 않은 문제는 자기 스스로 이미 증명된 것이 아닌 주제에 대해서 이미 스스로 결론을 내려놓고, 그게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주장을 진행시키고 있는 거죠.


굉장히 편파적이고, 스스로 진리라는 망상에 빠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나는 틀리지 않았고, 내 판단이 진실이라고. 그리고 그 판단이 진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가니, 자신의 모든 주장은 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올바른 결론이라는 무오류의 오류에 빠져버린 겁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자기가 무오하다는 오만함에 빠져서 개소리를 해댄 거고요. 물론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뭐 제대로 털어댄 것도 없지만요.



마지막으로 정말 재밌는 건, 진중권의 토론회에 대한 감상으로 칭찬을 하는 건, 자기가 비판을 해댔던 그 진영의 그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전여옥은 토론자로서 기본 자세와 결기가 있다고 하고, 변희재는 진중권에게 맹활약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어째서 그런 건지는 너무 뻔하죠. 진중권의 개소리와 스탠스가 딱 그 진영의 그 사람들 입맛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논리적 완결성과 합리적 근거가 심각할 정도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진중권의 발언들에 손을 들어주는 거죠.


뭐, 그렇기 때문에 진중권이 그들을 털어댔던 거죠. 아무리 한계가 있어도 보수 쪽 오피니언 리더들 수준이 워낙 현격히 떨어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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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의 실험으로 잘 알려진 우리 속 두 비둘기의 사례는 흔히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공격을 멈추는 본능적 장치가 있는 늑대와 이미 패배한 한 쪽을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비둘기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러 사색으로 이끌기도 하죠. 약자인 비둘기의 잔혹한 폭력성이라든가.. 


물론 이는 비둘기와 늑대의 생태와 집단생활에 따른 본능의 차이를 염두해둬야 합니다. 가령 비둘기는 원래 싸움에서 지면 도망가야 하지만 가둬뒀기 때문에 두 비둘기의 생활권에서 쫓아내기 위해선 어느 한 쪽이 죽어야만 끝날 싸움이 된 것이죠. 원래라면 걍 싸움에서 지면 도망갔어야 했다는 겁니다.



로렌츠의 실험, 관찰과는 궤가 다르지만, 실제로 약자의 폭력성이 더 잔혹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데 저소득층, 막노동꾼이 자신보다 더 약자에 있는 이들(알바생, 공무원 등)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죠. 실제 소득수준이 다른 지역에서 모두 알바 생활을 해본 이의 말에 따르면 더 잘사는 쪽이 더 유하고 예의있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죠. 가진 자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손해나 피해에 더 관대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관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없는 자는 항상 부족하고 없기 때문에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조그마한 손해에도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죠.



페미를 위시한 여성계는 스스로를 약자라고 낙인찍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반대로 Girls can do anything,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히는 표현을 쓰며 약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다는 점입니다. 후자는 단지 여성 특유의 허세, 강한 척, 의연한 척을 하며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는 감정과잉에 빠져 있다는 거죠. 


사실 여성은 약자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맞지만, 페미 진영에서 말하는 약자라는 말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캐치프라이즈 따위에 더 가까울 겁니다. 사실, 여성은 여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아니, 그 이상입니다. 여성은 자기가 여자라는 점을 어필하며 그걸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죠.


유리천장이 있으면 유리바닥도 있다고 하는데, 여성들은 여자라는 성별을 유리바닥으로 써먹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특혜와 유리한 진형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죠.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공격하면 되려 찌질하다거나, 비논리적인 것을 가져와서 공격을 시도하죠.



여성이 약자일 때는 분명히 있고, 사회구조와 직업선택, 연봉에 있어서 불리한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실제 통계로 증명된 사실이고요. [각주:1][각주:2]


하지만 반대로 여성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 더 노골적이고 뻔뻔한 갑질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뻘' 원사에 반말하고 40세 중사 정강이 발로 차며 폭행한 20대 여군 대위

https://www.insight.co.kr/news/210538

'인벤’,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 “여성 CEO, 남성 직원들 술자리 데려가 사욕 채운다”

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817
조현아 남편의 이혼 청구 사유는... "아내의 폭행·폭언 때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5/2019021502358.html
갑질, 어디까지 해봤니? 조현민 엄마 이명희의 ‘몰상식 DNA’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41687.html


위와 같은 사례는 단지 일부일 뿐이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례일 뿐이지, 더 작고 흔해 빠진 권력형 공격은 일반적인 일상생활에서의 인간관계나, 특히 연애 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여성은 섹스를 여성인 자신이 남성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시혜를 퍼주는 거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섹스 권력이죠. '내가 안 주면 니가 뭘 어쩔 수 있는데? 그러니 니가 나한테 굽실거려야지. 내가 갑이니까.'



폭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가 그 폭력에 더 쉽게 취할 수 있고, 돈이 없었던 이가 그 돈에 더 쉽게 취할 수 있으며,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가 그 권력에 더 취할 수 있듯이, 여성 또한 마찬가집니다.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의 위치에 쉽게 취하는 거죠.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약자라 낙인 찍고 스스로를 약자라 믿기 떄문에 권력과 힘을 가질 때 더더욱 잔혹하고 노골적이며 뻔뻔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은 약자다? 원할 때, 약자인 것이 갑질(을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약자인 겁니다. 선택적 약자이고, 자기가 더 유리할 수 있을 땐 언제든 폭군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여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자기가 페미를 한다는 이들은 백이면 백 그렇죠.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활동은 100% 여성 스스로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쾌감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울 대상과 전장 또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취사선택하죠. 만만한 쪽만 건드리고, 공격하며, 불리하거나 건들기 무서우면 결코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같은 여성 피해자라도 건드리기 껄끄러운 상대가 저지른 일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고, 만만하고 약해보이고 그 대가가 돌아올 거 같지도 않은 이들에 의한 문제에는 미친 개새끼마냥 덤벼들고 물어뜯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여성은 약자다. 라는 말이 정치적 캐치프라이즈일 뿐이지, 실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통찰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고 날조하면서 만들어낸 허상을 가지고 현실인 척 내뱉는 거죠. 그런 이유로 이들의 활동은 또한 여성의 인권과 사회정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략 자체가 틀렸고요. 적을 마구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오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 그들이 여성인권에 힘을 써줄까요? 적어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겁니다.



여성은 약자가 아닙니다. 어떨 때는 약자일 때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남성 또한 마찬가집니다. 남성은 약자가 아니지만, 어떨 때는 약자일 때도 있죠. 그리고 솔직히, 보편적으로 남자가 더 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강요되는 무언가야 있겠지만,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앞서서 죽어야할 때가 강요되는 경우, 여성은 공감하기 어려울테죠. 그렇기 때문에 군대와 군인, 병역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거고요.

  1. https://sovidence.tistory.com/1000 [본문으로]
  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4035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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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사회생활과 같이 기존의 집단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환경과 인간관계의 경험을 접해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현실감각이 뒤떨어진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베와 메갈과 같은 비정상적인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메갈과 같은 페미를 한다는 여성 진영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현실감각과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를 너무 자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는 비단 페미를 한다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들이 가지는 이상한 착각들이 있습니다. 페미거나, 페미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경우 특히 더 그렇더군요.


가령 이수역 사건이나 아래의 방송에서 가지는 남성에 대한 이상한 관념이 그렇습니다. 흉기를 찾아온 가해자를 제압할 수 있느냐 물어놓고, 남자는 막을 수 있다. 제압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죠. 남자 또한 사람이고,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자들이 참 이상한게, 남자들을 무슨 초인, 슈퍼맨 같은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보니 자기들이 때려도 별로 안 아픈 줄 알고, 세게 때려도 안 다치는 줄 알고, 무슨 엄청난 힘이나 맷집, 신체능력을 지닌 줄 압니다. 그러니 저런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와도 제압할 수 있을 거다. 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죠.




이는 이수역 사건 때도 여성 가해자측이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발로 차서 언니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나 나오는 연출이지 일반적인 남성이 일반적인 여성(이라고 하기엔 체급이 뛰어났으나)을 발로 찬다고 공중에 날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가 되려면 체중이 거의 두배는 되어야 하고, 근육질이어야 하며, 여성은 평균보다 더 작고 체중도 적게 나가야 합니다. 가령 그 움짤 있잖아요. 최홍만이 여자가 들고 있는 짐볼을 발로 차니 뻥 하고 날아가는 그런 거. 그마저도 짐볼의 탄력 때문에 더 날아간 거지, 맨몸에 차서 그 정도 날아가려면 맞은 사람 내장 터질 정도로 온 힘을 실어 차야할 겁니다. 


이수역 폭행, 불편한 진실? 상대 커플 女 “언어강간·조리돌림 자매가 먼저” 반전 주장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6474


그는 “가만히 있는 우리를 비웃으며 계속 쳐다봤고 5명의 남자가 끼어들어 비난하고 공격했다”라며 “폭행 후 도망가려던 남성을 붙잡는 중에 발로 차서 언니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서 계단 모서리에 뒷통수를 박았다”라고 주장했다.



뭐 어렸을 때부터 남성성이 부각되고 남자들 스스로도 허세 좀 섞어서 과장하는 면이 있고 그런 영향을 좀 받았다고 해도, 나이 먹어서도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거 자체가 현실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남성과의 접점과 현실에 대한 탐구심이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실제 남성의 현실적인 상태와 능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특히 이는 젊은 쪽일수록 심한데, 반대로 나이가 좀 있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은 그런 정도가 훨씬 떨어집니다. 남성과, 배우자와 더 현실적인 관계와 경험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이상한 환상이나 관념이 상당히 깍여나간 상태죠.


다르게 말하자면, 여성은 남성에 대한 성적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슨 초인이니 슈퍼맨이니 할 법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온갖 특혜를 보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 나름의 차별성을 겪고 있지 않거나 여성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한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더불어 여기엔 여성 특유의 비극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모든 도덕적 정당성과 정의를 갖추고 있는 무결한 존재이자 그런 입지에서 죄인에게 무엇을 요구해도 정당한 피해자라는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가 뒤섞인 극도의 감정적 이입과 함께 성 권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원하고 있죠. 


모든 여성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상황을 겪는 여성들에게 있어 그러한 경향성은 여성 특유의 생물적 성질 중 하나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페미를 한다는 둥의 그런 여성들은 그게 정신병적으로 작용하고 발현되는 이들이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기제들과 합쳐서 한심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감각이 없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은 같은 여성이자 워킹맘의 맘카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혹은 그리 해본 것도 아니며, 판단력과 이성적 사고력이 증발한 채 자기 개인의 감정에 매몰된 여성들이, 혹은 그럴 수 있는 여성들이, 여성 특유의 끼리끼리 모이고 자기들끼리 뭉치며 동조해주고 심화되어가는 성질에 따라, 자기 집단의 폐쇄성과 막장성만큼이나 관념의 문제는 심각해지면서 자정작용을 잃고, 더 나아가 맘카페와 같은 배타적이고 까다로우며, 비정상적 집단으로 비화되기 쉽습니다.


즉, 여시, 메갈, 워마드, 맘카페와 같은 독재적 환경, 또는 종교적 광신도들이 모인 페네티시즘 타운이 형성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채우는 개인들은 현실감각이 없고, 여성 특유의 감정매몰에 빠진 정신병적 환자들이죠. 현실감각이 없으니 온갖 헛소리와 개소리와 병신논리가 판을 치고, 이성적 사고력과 정상적 판단력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소음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광신성과 접목되어 하나의 신앙이 되고, 그 광신적 신앙은 배타성을 가지며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작동하죠. 


현실을 살지 못하니 현실에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거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오직 자기들끼리 태울 장작이 필요한 거고, 진실은 아무런 필요 요소가 아니니, 자기들끼리 맞장구 쳐주고 동조해주고 끼리끼리 모이며 소속감과 동지의식에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여성 특유의 집단의식을 위해 특이할 정도로 많은 페미들의 증거, 증언, 사건 자체를 조작하는 사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이수역 사건에서도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거짓말을 해대는 건 그들이 정신병적 광신성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모집단에 태울 땔감을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편을 들어줄 병자들이 많으니까요.


그렇다고 반박 당하거나 부정 당한다고 태도가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정신병이라고 하는 거죠. 아니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에 따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거 자체가 정신병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환빠들이나 일베들처럼 말이죠. 둘 다 완벽하게 논리와 증거와 근거가 논파되고 박살난 채 쫓겨나거나 스스로 도망가도 결국 조금 지나서 다른 곳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단지 페미들이 더 질이 나쁜 건, 자기 감정에 대한 매몰 문제인데, 당장 지 기분이 나쁘면 옳고 그름도, 증거와 근거도, 논리와 합리도 무시된 채, 무조건 자기 기분을 나쁘게 한 놈이 개새끼인 거고, 씹새끼가 되기 때문입니다. 뭐 어디 행사나 매장 같은 곳에서 뭐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거 요구했다고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조금 기분 나쁘다고 바로 사람 무시하는 소리(ex.아 뭐래 찐따 같은 게.) 뒤돌아 서면서 툭 던지고 훽 가버리는 것처럼요. 


즉, 다른 병신들이 개털리면 아가리 닫고 꼬리 말고 떠난다면, 페미는 쳐털리고도 인정 안 하고 눈앞에서 뻔뻔하게 군다는 겁니다.




덧- 그런 현실감각의 문제는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불어 자극되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에 빠진 여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죠. 진짜 별 것도 아니고 스펙도, 가치도 없는 여성이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대단한 재벌이나 뛰어난 인재, 돈 많이 벌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자기만 바라봐주는 남자를 낚아서 결혼하길 바라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운 좋게 만나서 사귀고 결혼하게 되는. 


하지만 현실은 자기 자신은 별 다른 능력도 없고 스펙도 안 되고 외모가 훌륭한 것도 아닌 주제에 그런 것들을 한 없이 바란다는 겁니다. 노력도 안 하고 그냥 글자 그대로 운 좋게 멋진 남자, 조건 좋은 남자 걸리길 바라며 근처 카페에서 시간만 죽치고 있는 것처럼요.


딱히 머리가 좋지도 않고 인성이 좋아 보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고 그냥 몸매와 얼굴만 예쁜 골빈 창녀 같은 여자만큼 자기 관리와 타고난 미모가 뛰어나질 않으니 반대로 남들의 기준을 낮춰서 평균을 자신에게 맞추고자 하는게 현 페미들의 탈코르셋의 실체입니다.


코르셋을 입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탈코르셋이라는 명분을 얻고 그걸 이용하는 거죠.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인 겁니다. 노력과 관리로 얻은 뛰어난 몸매와 외모는 (자기들이 얻을 수 없기에) 신 포도이니까 화장과 관리를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외모를 기준화 시키는 속 보이는 짓거리죠. 자기들끼리는 여러 논리와 명분을 대겠지만, 애초에 자기 감정에 매몰된 정신병적 환자들이 하는 자기세뇌에 불과합니다. 자기들은 전혀 아니라고 하겠지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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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남성에겐 감각, 인지의 영역에 여러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가 호르몬이 됐든 그 호르몬에 의한 뇌 발달의 차이가 됐든 실제로 그러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한 차이가 문제로 발생하는 건 생물학적인 작용과 현실적 규칙 사이의 충돌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한 현실적 규칙은 도덕, 윤리, 법률 등 여러가지 사회적 규칙들을 말하는데, 남성의 본능적 충동이 살인이나 폭력을 더 쉽게 발생시킬 수 있고, 여성의 본능적 충동이 따돌림, 질투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누구 말마따라 남성은 잠재적 살인마고 여성은 잠재적 아동학대범이라고 하죠..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한국에서 페미라 자칭하는 온갖 집단, 혹은 개인들의 인지적 오류와, 정신적 장애기제에 대한 겁니다. 


트페미를 비롯한 수 많은 꼴페미, 메갈, 워마드들의 여러 망발과 논리적 빈약성, 내로남불의 사례는 그러한 이유에서 발생하는 겁니다. 인지능력에 문제가 있어 오류가 발생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장애적 기제를 가지고 사고를 합니다. 단적으로 이수역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모습을 볼 수 있죠.


이수역 사건에서도 여성들이 먼저 반사회적 표현으로 반사회적 공격을 남성들에게 가했고, 먼저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래놓고 온갖 거짓과 조작으로 사건을 여성혐오를 당했다는 듯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작했지만, 여러 증언과 증거가 발표되면서 그들의 웃기지도 않고, 도대체 뭘 믿고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정신병적 거짓말임이 증명되고 있는 상황이죠.


심지어 --기존의 여러 사례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에 동조하는 여성들의 모습은 더더욱 정상적이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는 여성들의 본질적 정신기제의 발동 때문인데, 하나의 종교성이죠. 무조건 자기들이, 자기 진영이 절대적으로 옳고, 무오하며, 도덕적으로 우월함을 넘어 절대적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은 스스로 자기세뇌를 걸며 자기합리화, 인지부조화로 이어지죠. 그냥 이어지는 게 아니라, 아주 강력하게 발생합니다.



모든 극단주의는 정신병적이라 수차례 이야기한 바가 있는데, 그러한 페미들의 활동 또한 정신적으로 극단주의와 동일합니다. 오히려 정치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극단주의보다 더 심각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을 정도고, 이는 여성이라는 생물이 내포하고 있는 강력한 인지적 되새김 문제입니다. 어떠한 믿음에 빠르고 강력하게 자기세뇌를 걸죠.


정신병적이기 때문에 있지도 않는 사실을 조작해내고, 종교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습니다. 모든 근본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신의 사자로서 올바른 행위를 하고, 그것은 정의로우며, 결과적으로 신, 혹은 자기 종교의 진영에 이로운 행위를 하는 투사라고 믿습니다. 현재의 페미는 그 자체로 극단적 종교이기 때문에 그것을 추종하는 이들은 근본주의자라고 할 수 있죠. 언제든지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고, 어떤 면에선 이미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폭력자들입니다.



심지어 감정적 오버는 살면서 한번쯤은 여성과의 갈등에서 겪어봤을만한 일일텐데, 여기에 앞서 이야기한 스스로 절대무오하다고 믿는 증상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절대회피는 답이 없는 문제로 만듭니다. 


흔히 커플들이 싸울 때 여성측이 잘못하거나 문제가 일부 있어도 결코 인정하지 않고 결국 남자 쪽에서 먼저 손을 들고 내 탓이오 하고 사과하게 되는 것처럼요. 이처럼, 분노한 여성은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미친 코끼리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공격하며 화가 풀려야 직성이죠. 그리고 현 페미를 한다는 여성들은 무언가에 분노해 있고(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 정당과 부당과 무관하게) 주변의 모든 이들을 공격합니다. 단, 자신들의 거울상 이성질체에 대해서만 빼고요.(ex.일베, 안페협, 박사모)



하여간, 그러한 감정적 오버와 절대무오, 절대회피는 그들의 용어와 행위에서 어떻게 나타나냐면, 시선강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용어를 대표할 수 있습니다. 이거 말고도 웃기지도 않는 용어들과 논리들은 많지만, 저에겐 이게 가장 인상 깊었죠.


시선강간이라, 사람을 훑어보면 임신하거나 처녀막이 파열되나요? 정신병이 걸려버릴 정도로 강렬한 폭력을 물리적으로 격게 되나요? 전혀 아니죠. 물론 자신의 몸을 성적인 욕망 가득한 눈으로 훑어보고 뚫어지게 쳐다본다면 눈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와 불쾌함을 느끼는 거야 당연합니다.


근데 시선강간이라? 이러한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감정적으로 오버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성이 분노를 하게 되면 논리와 합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분노하게 되면 다 그렇죠. 남자든 여자든. 범죄자들이 잡히면 자기는 억울하다고 하는 이유도 결국 체포가 되었다는 현실에서 자신의 잘못과 죄를 인정하기 보단 누군가, 무언가가 잘못해서 내가 이 꼴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게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인지부조화죠.


이건 단순한 경향성인데, 이런 게 있습니다. 남자는 화가 나면 먼저 설명을 듣고 화를 내든 풀든 삭히든 하는데, 여성은 먼저 화를 낸 뒤 이유를 듣는다고요. 


이게 사회적 현상과 얽히게 된다면 언제나 분노해 있는 그들은 논리와 합리를 완벽하게 등져버린 채 헛소리를 하되, 그러한 헛소리들을 스스로 무오하게 여기며 자기 진영에 대한 탄탄한 결속력을 갖춘 채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시선강간이라는 표현이 나온 이유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마치 마약을 한 것마냥 깊게 빠져버려 오버해버리는 거고, 무오하다 여기기 때문에 나는 어떠한 잘못이 없고(이건 그럴 수 있지만.) 상대방이 절대악이자 파괴, 절멸해버려야 하는 종자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남성이 여성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폭력인 강간이라는 오버해버린 표현을 합쳐서 시선강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용어를 창조해낸 거고요. 


그 시선강간을 이미 쓰고 있고, 올바른 용어로 고친다면 성추행이 됩니다. 실제 판례도 있고요. 이 경우는 단순 한 문장으로 설명할만한 사건 아니다만.



그럼에도 시선강간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 그것이 자신들을 무조건 올바르고 보호 받고 지지 받고 지원 받으며 모든 정당성과 명분과 싸움에 있어서 그러한 것들을 기반으로 하는 파워를 얻고, 상대방은 추악한 괴물이자 쓰레기 악당, 최악의 적이자 짓밟아 없애버려야 하고, 없앨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말도 안 되는 과장된, 감정적 오버 심각한 용어를 만들어서 쓰는 겁니다.



모든 인간들이 다 그렇지만, 경향성이라는 면에서 여성들의 약자 코스프레, 그러한 위치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정당성과 명분의 획득에 더 환장하는 편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얻는 방법과 과정이 없거나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 그 상태에서 싸우려드니 그저 정신병자들처럼 보이게 되는 거죠. 


자기 스스로를 너무나도 무오하다 보기 때문에 절대적인 선의 위치에 서 있고, 내가 싸우는 사람, 남자들은 그 정극단에 서서 죽여 없애야 하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냥 정신적으로 그렇게 집중해나가고 자기세뇌를 시켜요. 그렇게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스스로를 세뇌하고 정당화하는 겁니다. 


왜 이수역 가해자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라 지칭하고 거짓을 조작해내겠습니까? 그들 스스로 그러한 행위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그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만, 그것을 인정하기엔 정신병적으로 편협하고 그러한 인지능력과 사고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 남자들이 원인부터 과정에 결과까지 모두 잘못한 거라 믿는 것은 더 쉽죠. 아니라는 걸 알아도 스스로를 세뇌하는 건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상적인 행동보다 더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를 한다는 인간 중에 정상인이 단 하나도 없고, 정상인이라면 스스로 페미를 한다고 말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은 여성 특유의 경향성이 내포되어 발생하는 감정적 오버, 종교적 신앙, 강력한 자기세뇌, 인지부조화, 자기합리화로 점철된 변기통이기 때문이죠. 남성들이라고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여성들에게서 더 강력하게 발생한다는 것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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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최근 한국의 여성시대-메갈리아-트위터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와 논리에 한정됩니다.



기존, 서구와 같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나라들의 공통점은 특정한 시기와 개별 사안에 있어서 범주에 차이가 있을 뿐, 보편적으로 인권 전체가 향상되어 왔습니다. 남성의 인권 확대는 여성의 인권 확대까지 이르고, 노인에 대한 인권 확대는 반드시 아동에 대한 인권 확대로 이어졌죠. 이는 한 쪽의 인권향상은 당연히 사회공동체 모두의 인권의식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며, 그 변화는 다른 인권의 향상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흑인에 대한 인권 향상, 여자에 대한 인권 향상, 노인에 대한 인권 향상, 아동에 대한 인권 향상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인권에 대한 학문적 발전, 의식적 진보의 성과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향상을 이끌어왔습니다.



현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페미라 말하는 자들의 실질적 남성혐오, 여성우월주의는 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과 완전 반대의 논리와 텍스트, (의식하든 그렇지 않듯) 레토릭을 가졌고, 이런 문제는 결국 자칭 페미 스스로의 고립과 사회적 분리만을 이끌어내죠. 이들의 페미니즘 운동은 보편적 인권 향상에 관심도 없고,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그에 따라 반대의 결과를 이끌어낼 뿐이죠.


뭐, 설령 그들의 논리와 행동에 따라 여성 집단의 인권향상이 이루어졌다고 쳐도, 이는 특정 집단의 인권향상일 뿐이고 그게 그들에게 있어서 이익일 진 몰라도 결과적으론 보편적 인권의 후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할 여지는 분명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정규직 노동자만을 위하는 단체가 있다고 쳤을 때, 이들이 정규직을 위한 운동을 했을 때 바람직한 발전방향은 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도 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정규직만을 위한 운동을 전개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대결 프레임을 스스로 뒤집어 쓰게 되고, 이는 연대를 흔들리게 만들며, 서로 반목하게 만들면서 결국 전체 노동환경의 후퇴를 불러일으킨다는 거죠.


바로 이점이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제 생각엔 이미 한국 여성과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져만 가고, 하나의 낙인이 생겨나 성갈등이 더 심해지고만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 여성에 대한 공포증, 혐오증, 거부감만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설령 그들이 그런 활동을 통해 여성 인권에 대한 한정적 상승을 이끌어 냈다고 해도 이는 결코 이익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남성의 인권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것에 대해 증오심마저 품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인권에 대해서도 어떠한 관심이 없죠. 아동이나 노인 등.. 그들은 자기들이라 여길 수 있는 범주에 대한 인권향상만을 원하고, 그 반대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이들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편적 인권의 후퇴를 불러일으키죠. 남성과 여성의 연대를 통한 여성 인권 상승, 그에 따른 보편적 인권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성갈등을 통한 인권의 후퇴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연대할 수 없는 진보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근시안적으로 성공으로 보여도, 거시적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죠. 한국 페미는 연대를 거부하고 같이 힘을 합쳐야할 대상을 증오하고 공격하며 적으로 규정짓습니다. 이는 굉장히 저열하고 위험한 전략이며, 또한 싸울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에 대한 피상적 이해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페미니즘 운동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것이며, 이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만을 낳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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