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팔레스타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3.10.11
    하마스는 왜 괴물이 되었는가?
  2. 2014.08.30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 1
반응형

증오에는 계획이 없습니다. 더 큰 증오를 증명하기 위한 계획이 있을 뿐이죠. 우리네 독립운동가와 비교하긴 꺼림칙하나, 모든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진정 자신들의 활동으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강력하고 진지하게 가지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30, 40년대에는 더더욱이요.

 

그럼에도 독립운동을 해야 했던 이유는 그게 민족의 대의인 동시에,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침략자 일제에 대한 증오일 겁니다. 침략하여 빼앗고 죽인 자들을 상대로 우리가 이길 수 있고 현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대신 하나라도 더 많은 적들을 죽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 역시 있었을 겁니다.

 

물론 독립운동가와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 독립운동가 정도면 그나마 꽤 온건하게 한 편인가 싶을 정도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무차별 민간인 테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나 극히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 경우엔 그 테러, 보복의 장소가 국내이고 피해자로 같은 조선인들이 많을 거라는 것도 이유이긴 합니다만.

 

요는 독립운동이든 하마스의 활동이든 IRA의 활동이든, 그들의 활동 기저에는 정의와 자유만큼이나 분노와 증오가 크다는 거고, 사람에 따라, 조직에 따라 그 비중은 크게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많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분노를 응축시켜놓으면 그 반발 역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통제와 관리를 할 머리들을 죄다 잘라놓으면 더더욱 터질 때 폭주할 수밖에 없죠. 분노 역시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데나 튀거든요. 임정에서 일본인이면 민간인 무차별 씨몰살하자, 왜놈 유충들 참수하자고 하는 놈은 없었습니다.

 


하마스는 추악한 행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지만 그런 테러리스트들은 어디 땅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만든 괴물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테러와 잔악 행위가 역겹다 한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 그렇게 만든 이들이 있는 한 단순 사악한 괴물 테러리스트라고만은 할 수가 없죠.

 

약자가 항상 정의는 아니고, 싸우면서 정의를 챙기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며, 당하면 당할 수록, 잃으면 잃을 수록, 억압 받고 차별 받고 죽기를 바랄수록 악에 받힐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진 게 없고 약하기 때문에 더 비도덕적인 집단이 되기도 쉽고요. 홀로코스트를 피해 도망 온 사람들에게 자기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해줬는데 그 대가가 은인에 대한 침략과 학살이며 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이라면 당연히 증오와 혐오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겠죠. 

 

애 어른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고 싶을 정도로요. 사람이 괴물이 되는 건 대단찮은 이유가 아니죠. 당했는데 갚아줄 힘이 없을 때 괴물이 되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갚아주기 위해 지켜야 할 선을 하나하나 포기하다보면 그렇게 되죠. 가끔은, 한번에 여러 단계를 추월하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어느 소년은 자폭 테러를 한 자기 누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같은 길을 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다른 선택지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정해진 선택지가 있는 법일 겁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만드니까요.

이기고 싶어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죽이고 싶어서 싸우는거죠.

 

하마스가 갑자기 생겨났을까요? 그들의 잔악 행위가 그들이 원래부터 사악한 괴물들이라 그럴까요? 중국군이 한국을 장악하고 지역별로 게토를 만들어서 감옥화 시키고 재미 삼아 쏴죽이고 물도, 전기도 제대로 공급 안 해주며 신나게 죽이고 고문해대면 한국인 중에 증오에 머리가 터지고 악에 받혀 중국인이기만 하면 한명이라도 더 죽여버리겠다며 몸뚱이에 폭탄 묶고 자폭할 사람 없을까요? 다 같이 총에 칼차고 기습 공격해서 중국인 민간인 잡아다 신나는 보복을 하고 싶은 사람 하나도 없겠습니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하고 끔찍하며 반인륜적인 행위가 보복, 되갚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쾌락이 될텐데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북한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 중국인에게 강간 살해 고문을 현재 진행형으로 당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은 그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상상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하죠.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하마스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온갖 개짓거리란 개짓거리는 수십년 동안 죄다 당했는데 증오와 혐오, 분노가 뼛속 깊숙하게 자리잡지 않으면 죄다 성불해서 부처가 되어야지 테러를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일개인의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보고 가죽을 벗겨야 하네 팔다리를 포떠야 하네 산 채로 불태워야 하네 하는 건 잔인하다 축에도 못 낄 온갖 기발한 고문과 살해 방식으로 분노하는 이들이 실제로 그보다 더 한 피해를 입은 자들의 분노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위선입니다.

 

 

하마스가 잔혹한 테러를 저지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건 이스라엘이죠. 가해자는 신나게 가해하는데 악에 받힌 피해자의 보복에는 비난한다니, 같잖기도 해라.

 

아 물론 하마스가 저지른, 이스라엘에 비해 특별할 것도 없는 행위가 잔혹한 건 맞고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지며 세계인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씌워지는 건 맞는데, 그게 그토록 잘못이라면 다 같이 손잡고 팔레스타인에 쳐들어가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노인부터 신생아까지 쏴죽이고 찔러 죽이고 묻어 죽이고 태워죽이고 목졸라 죽여서 지구상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단어는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도록 멸절시켜야죠.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무제한 인종멸절권 부여하고요. 힘 센 가해자는 무조건 무죄고.

 

이스라엘이 억울할 게 뭐가 있습니까. 자기 업보인데.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하마스의 개새끼짓에만 분노하는 게 바로 위선입니다. 선비짓도 그런 선비짓도 없죠.

 

 

참고로 전 하마스의 행위 자체를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당할 짓을 했으니 당하는 거고, 그게 잔혹하든 그렇지 않든 혈채를 갚은 거라는 걸 인정하는 것 뿐이죠. 애들 참수하고 외국인 시체 조리돌리는 거? 물론 통제되지 않은 죄악이고 무분별한 공격입니다.

 

근데 미쳐서 눈깔 돈 놈들이 사리분별 못하고 총들고 브레이크 댄스 추는 걸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걸 통제하고 관리할 팔레스타인, 하마스 측 인물들 단 한번도 멈춘 적 없이 암살해댄 건 이스라엘인데. 그래서 업보라는 겁니다. 약자가 정의롭지만은 않듯이, 그 약자들의 분노가 광기가 되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분출되는 것 역시 있을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걸 이해해야 일차원적 하마스 개새끼 소리가 얼마나 유치한 줄 아는 거죠. 개빡쳐서 눈깔 돈 놈이 자기 말리는 사람한테도 주먹질 하는 게 드문 일입니까? 하도 조롱 받고 괴롭힘 받은 사람이 피해망상에 빠져 중립적인 사람의 평범한 행동에도 너도 나 놀리냐며 쌍욕 박는 게 그리 신기한 일인가요? 똑같아요. 거기에 피와 시체만 추가 된 것 뿐이죠.

반응형
AND
반응형


The card game becomes violent
The card game becomes violent by srp6685 저작자 표시비영리

그 배경은, 피해자였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예를 들어 왕따나 학교폭력을 들어보죠. 어느 피해자는 왕따와 학교폭력을 겪습니다. 그 고통은 피해자에게 큰 영향을 줬고 그로 인한 고통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피해자라 해도, 똑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보고 꼭 동질감을 느끼며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르지만은 않습니다.


흔히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와 똑같이 되어 다른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받은 고통을 남도 느끼게 하고 싶다는 둥의 보상심리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전 전혀 다르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피해자였던 가해자에게 그러한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혹 저 밑바닥 심리기저에 그러한 보상심리가 있을 순 있겠지만, 가해자의 의식적인 면에서 나의 고통을 이녀석을 괴롭힘으로서 보상받겠다.. 하는 것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앞서 예시를 들었던 피해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면, 그 피해자는 몇년이 지난 후 신체적으로 크게 나아진 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환경에 어느 정도 잘 적응했고, 친구도 몇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반의 나보다 더 약한 아이에게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은 폭력을 휘둘렀죠.


그 이유가 뭘까요? 오래전 자신을 보는 것과 같은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이유? 뭐, 혹시 모르겠군요. 약한 니놈을 보니 예전 내가 생각나서 역겨움을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일지도요.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당했던 폭력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에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그 지옥같은 공간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그곳에 익숙해져있었음을 의미하지요. 그리고 그 생존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인간성이 파괴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PTSD라고 보기엔 심각하게 뒤틀린 사람들이 있어요.


학교폭력 피해자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이 당했던 폭력에 익숙해져 있어 자신보다 더 약간 약자를 괴롭힘에 망설임이 없고, 그에 대한 가책도 적습니다. 당하는 것에 익숙해진 만큼 가하는 것에도 쉽게 익숙해지는 것이죠. 폭력에 익숙해지는 것은 강자만이 아닙니다. 그 피해를 받는 약자 또한 마찬가지에요.


피해자였던 가해자들에게 있어서 그런 폭력은 매우 당연한 것입니다. 자신이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약자가 강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에 언듯 당연함을 느낍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어요. 폭력은 나쁘고 타인을 괴롭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다르게 반응하죠. 폭력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잘못됐다는 것을 마음으로는 못 느끼기 때문이죠.


피해자가 자신을 괴롭히던 가해자와 똑같이 자신보다 약한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이중적인 것이 아닙니다. 일관적인 거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봅니다. 홀로코스트와 인종차별이라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자신들이 그것들을 자신보다 더 약한 팔레스타인이라는 약자에게 휘두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우리네 일상에서, 윗사람에겐 아부하고 굽신거리지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칠게 대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봅니다. 자신이 그런 경험이 많으니, 자신보다 아랫사람에게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겁니다.


그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당연하다 느끼기 때문이죠.

반응형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55)
취미 (855)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