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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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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9.25
    감정과 판단 능력에 대해서.
  2. 2017.01.24
    왜 학교 공부를 해야 하는가?
  3. 2013.12.19
    판단을 하지 못하는. 2
  4. 2013.09.06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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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감정을 배재하면 더 올바른 판단을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감정이라는 기반이 없다면 사람은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을 배재한다는 것은 그것을 철저히 통제한다는 것이지 그것을 아예 없애버린 채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모든 판단은 자극이 이루어진 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감각이 뜨겁다, 차갑다, 보다와 같은 감각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떠한 사회적 경험이나 감정적 교류와 같은 감성적인 것도 있습니다. 불에 손을 넣어보기 전에는 불이 뜨겁고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러한 경험이 지식이 되어 판단으로 이어지는 거죠.


이러한 간단한 도식에서도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고통은 느낄지언정 그것에 어떠한 위험성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각주:1]불에 대한 공포가 있어야 불을 능동적으로 피할 것이고, 불편함을 느껴야 그것을 배제하고자 할테죠. 따라서 감정이란 판단의 첫 문턱, 혹은 디딤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컨데, 감정이 없다면 판단의 동기조차 없습니다. 



좀 더 고차원적인 경험과 관계에서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타인과의 관계나 어떠한 행동판단에 있어서 감정, 혹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다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실제로 신경학적으로 감정이 없는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에 따른다면 (감정 자체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 감정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이들은 대체적으로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향성이 있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는 사회생활을 할 때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선택하지 못하죠.


그러한 문제는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되는데, 자신에게 좋든 안 좋든 간에 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전혀 인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어떤 것에 대한 호불호가 작용해야만 인간은 판단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성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니 어떤 것이 불리한 것인지에 대해 인식할 수는 있지만, 왜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큰 손해나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인류가 공통적인 인식과 사회적 규칙, 룰이 생겨나고 변화하고 이해하고 유지되며 그것을 사회성, 혹은 상식이라 부르는 

이유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비슷한 방식과 도식의 감정과 비슷한 수준의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억울하게 손해를 본다면 그에 대해 대부분은 비슷하게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할 것이고, 비슷한 지점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비슷하게 화를 낼 겁니다.


하지만 감정이 없거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이러한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이나 행동을 할 수 없게 되죠. 가령 사이코패스는 누군가 떨어져 크게 죽거나 죽어도 남들은 놀라거나 공포에 빠지거나 충격을 받기보단 그 상황이 우습다고 웃을 수도 있는 법이며, 이는 사회적으로 큰 지탄을 받게 될 겁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이나 판단의 상황에서 판단의 디딤돌이 없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가야할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게 되고, 결코 이성적일 수 없는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감정이 없는 사람은 항상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어떠한 선택과 판단을 내려야할지 모르는 혼란 속에 빠져 있는 인간에 가까울 겁니다. 

  1. 좀 모호하게 서술하게 되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것이 자신에게 불리한 지는 인식할 수 있지만, 왜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쪽으로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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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실용적이지 않고 불필요한 학교 공부를 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몰라도 사는 데 문제 없다고 생각하고, 더러는 그러한 공부를 통해 대학을 가는 것조차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죠.


먼저 교육 그 자체는 그 지식을 실용적으로 사용하라고 있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상식적인 판단력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죠. 사실 많은 이들이 모르는 사실이기도 하고, 정말 배워서 쓸 곳이 없기도 하지만 사실은 정말 필요한 것들인 것도 사실입니다.


국어, 수학, 과학 등 실제로 배워도 어딘가에 쓸 곳이 없는 것들입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고요. 글이야 한글 배우면 다 읽을 줄 알고 수학이야 사칙연산만 할 줄 알면 사는 데 문제 없습니다. 과학적 지식이야 큰 쓸모도 없고요. 하지만 말했듯, 근대 교육은 그러한 실용적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게 아니라 논리적 사고력과 상식적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의 교육입니다.


정말 실용적인 지식을 배워야 한다면 법이나 금융 관련 과목을 배워야 할 것이고, 사실 이는 정말 필요한 거긴 합니다.. 진짜로요. 하여간, 우리가 배우는 과목의 목적은 상식적인 판단력과 논리력을 키우기 위한 겁니다. 의외일진 몰라도 인간은 그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동물이 아닙니다. 배우지 못하면 간단한 논리적 사고 또한 어려워하고 합리적 선택을 하지도 못하죠.


가령 플린 이펙트를 보면, 소련 초기의 시베리아 오지 농민들 인터뷰에서 이런 질답이 오갑니다. 


Q "북극에 사는 곰은 흰색입니다. 노바야젬랴 섬은 북극입니다. 노바야젬랴 섬에 사는 곰은 무슨 색일까요?"

A "내가 노바야젬랴 섬을 안 가봤는 데 그걸 어떻게 암?"


인간은 기본적으로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할 수 있는 지능을 갖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훈련도 받지 못한 디폴트의 두뇌가 자동으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과정이나 결과를 도출해내진 못합니다. 이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식의 속담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서로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는 두 현상을 관계가 있는 선결관계로 오인하는 오류를 곱찝는 사례죠.


이런 인지적 오류는 현대인들도 쉽게 일으킬 수 있고, 대개의 경우 본인들은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직도 종교가 수 많은 현대인들에게 잘 통한다는 점은 그것을 증명하죠.



근현대의 논리적 사고는 교육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가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있고 현상과 결과에 대한 합리적 추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이유 또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비실용적이라 여기는 공교육의 지식들은 기실 그 자체로 실용적 용도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성적 사고를 위한 훈련인 셈이죠.이는 국어, 수학, 과학, 사회, 역사 등의 과목들이 모두 해당되죠.


그렇기 때문에 피상적 용도에 집중하여 교육을 제공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도, 그것을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교육의 가치와 효과에 대해 인지하기 어려운 것이고(언제 공교육 아예 못 받은 사람을 본 적이 있어야지;) 학교 공부에 대해 냉소를 하는 이들이 많은 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사 또한 도대체 이딴 거 왜 배워야 하나요? 라는 학생들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나중에 갈 대학이나 직장을 끌어와 그 목적을 잘못 호도하는 거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교육이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력을 길러주지 않거나 못하는 쪽으로 바뀐다면 그 사회는 지속적으로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판단을 반복하는 사회가 된다는 말이 됩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 국민들의 눈에 미신적이고 위험한 판단을 하며 실제 범죄를 저지르거나 잘못된 판단으로 더 큰 피해를 야기하는 것을 보며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러한 교육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교육을 잘 하는 국가의 국민들이 보기에 해당 국가의 교육을 받는 국민들은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활동에 눈쌀을 찌푸리겠죠.



현대의 교육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는 쪽으로 맞춰져야 하고, 더 나아가 법, 금융, 노동에 대한 실용적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교육의 방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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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에 돌아왔는데,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보았다. 자, 어떻게 반응할까?

 

1. 영국인 남편 : 일단 조용히 문을 닫고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밖으로 나간다.

 

2. 러시아인 남편 : 총을 들고 현장으로 뛰어든다.

 

… 그렇다면 한국인(Korean) 남편은?

 

→ 당장 미국 대사관으로 달려가서 자초지종을 다 말한 뒤 미국 대사에게 “저는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묻는다.

 

- 송경숙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어과 교수가 아랍인들에게서 직접 들은 아랍인들의 농담

 

(잉걸의 말 : 농담인데 도저히 웃을 수 없었음. ‘미합중국 서울 주(州)’라는 비아냥도 이것보다는 가슴 아프지 않았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줏대없이 굴었으면 이런 말까지 들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래도 진실과 현실 - 절대 한국에 호의적이지 않고, 긍정적이지도 않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인식 - 을 알려야 한다고 여겨 이 게시판에 소개한다. ‘알아야’ 대처를 하고 개선을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내가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다. 이라크의 신생 군대도 판단은 할줄 안다. 

그런데 어제 한국 합참에서 뭘 해도 되느냐는 전화가 매시간,매분 수도 없이 왔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라크군 보다 못한가?"


- 존 맥도널드 소장



한미 연합사 정보작전부장




사실, 판단력을 길러주는 것은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육의 영향도 십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교육이라는 것, 공부라는 것은 그러한 판단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야하는 것인데, 정작 한국의 교육을 본다면 직접 판단을 내리는 훈련이 절대 되지 않는 구조이지요.


도덕, 윤리같은 과목은 물론 역사같은 과목은 그러한 판단력을 키우고 올바른 것을 선택하게끔 하는 가르치는 학문입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교육답게 그러한 판단력보다는 그저 어떤 것이 옳다고 일방적으로 외우게끔 하는 셈이죠.


이러한 교육 덕에 한국 사람들은 올바른 선택이나, 판단력에 있어서 굉장히 약해져있다고 봅니다. 위 사례만봐도, 스스로 판단하여 일을 해결하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하는가 남에게 지시를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책임감이 약한 것은, 그만큼 판단에 확신이 없다는 것이고, 판단을 내리기 무섭다는 반증입니다. 내가 이러한 판단을 내렸는데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것. 그러니 최대한 책임을 지려고하지 않는 것이고 판단을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언가 잘못이 된다면 판단을 내린 타인의 책임인 것이고.


이것을 생각해보면 병영문화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위에서 지시하면 밑에서는 일사분란하게 지시대로 따르는 것이죠. 그렇게 지시만 받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겁니다. 일이 터지면, 문제가 터지면 어떻게 해야할지 모릅니다, 판단을 내린 경험도 없고, 그런 교육조차 못 받았으니 스스로 어떻게 해야하는가라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럴수록 책임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죠.


무능한 중간 관리자들은 이러한 판단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합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아랫사람 닥달하고 윽박지르며 까기만 하는 것이죠. (판단을 내려) 지시를 해야하는데, 정작 그걸 못하는 겁니다. 관리자인데 말이죠. 뭘해야 하나, 사실 그 자신도 잘 모르기 때문에 닥달만 하고 윽박을 질러대는 겁니다. 문제가 발생했다면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프로세스 --문제인식 -> 원인 분석 -> 해결방안 모색 -> 검토 및 적용 = 해결-- 조차 지시하지 못하고 왜 문제가 발생했느냐고 욕하고 윽박질러대는 꼴만 보여줄 뿐이죠.


그렇게 깨진 아랫사람들이 어찌저찌 해결하면 그 무능한 중간 관리자는 한 것도 없는 주제에 다시 이런 일 생기면.. 어쩌고 짓껄이거나, 자기가 잘해서(자기가 잘 호통쳐서 정신차리게 해줬다는 생각?) 해결된 것이다, 내가 아랫사람 잘 부린거다. 라고 생각하고 우쭐해하죠..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판단을 내려 어떤 국회의원을 뽑아야할지 결정해야하는데, 누굴 뽑아야할지 모르고, 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판단도 제대로 못 내리기 때문에, 그 한 표의 무게감을 망각하고 되잖은 인물들에게 계속 권력을 내주는 것이지요.


저번에 쓴 현대판 국보법에서 이야기했듯이, 보수정권, 정부는 이러한 경향을 더욱 확산시키려 합니다, 국민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판단할 겨를을 주지 않고, 국가가 강제로, 일방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정하고 그걸 국민들에게 강제하려는 것이지요. 국민이 스스로 판단하게 두지 않습니다, 국가가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지정해주는 것입니다. 국민이 해야할 판단을 국가가 해버리는 것이고, 그냥 그렇게 국민이 받아들여 버린다면..


정말 왕조때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더 수준낮은 국민이 되는 겁니다. 가히 노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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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욕을 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정치에서 모습을 보인다면 자기들끼리의 정치싸움을 위해 여러가지 술수를 사용하기도 하죠, 언론을 그것을 어떻게든 쉴드를 치려고 하고, 그것을 깍아내리려하는 자들은 치졸한 틈이라도 잡고 물고 늘어지는 등.


대부분 이러한 이들에는 정치적인 이념을 뒤집어 씌우게 되는데, 그것이 정치인들이 의도한 것이었든 아니면 우리들이 스스로 뒤집어 씌우든 상관없이 그러한 문제를 좌파나 우파와 같은 것과 연관지어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러한 노력을 별 의미 없으며 실상 따지고 본다면 그러한 문제가 좌파냐 우파냐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기도 하죠.



어떠한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서 가장 간단하고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상식이 비추어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식에 비추어 판단하기는 정론을 뽑아내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죠.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발상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 감정을 갖기는 쉬워도 판단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인지 그런 모습을 쉽게 보기는 어렵죠.


상식이라. 누구나 알고있고 누구나 동의하고 있는 이러한 판단의 기준은 우리에게 청량감을 안겨줍니다.


일상에서의 갈등이 되었든, 정치나 국가간의 갈등이 되었건 그것을 판단하기 어렵다면 잠시 머리를 식히고 상식에 비추어 판단해보세요. 그럼 문제가 새롭게 보일 것이며, 어쩌면 해결점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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