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정의'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22.12.30
    이명박 사면과 부패 정치인들의 복권의 위험성.
  2. 2021.06.11
    윤리로 휘두르는 정의의 폭력.
  3. 2017.05.23
    대통령 하나의 차이, 국가 정상화 작업.
  4. 2016.12.03
    극우보수의 사상적 근간. 마초 오르가즘. 2
  5. 2013.10.24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6. 2013.03.08
    Who watches the Watchmen?
  7. 2012.05.19
    자각없는 대중에 대한 혐오 5
반응형

2022.11.19 - [취미/이야기] - 약자에 대한 멸시와 힘의 논리.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전 이게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다른 게 아니라,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의 역량을 깍아먹고 공정한 사회와 사회적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켜 도덕보다는 기회를 더 중요시하는 각자도생의 정글사회를 만들 거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명박 같은 거악의 부패 범죄자들이 얼마를 해먹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와 손해를 보든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다시 부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남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그걸 통해 커다란 이익을 얻었는데도 책임지지 않고 그걸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걸 안다면 도덕과 윤리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죠. 도덕과 윤리가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기준을 통해 옳음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가 찾아와야만 그것을 지킵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그게 옳기 때문에 지키려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반대로 그걸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지킬 이유가 없고 그러한 부덕한 행위로 이익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합니다. 단지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할 사람들은 차고도 넘쳐요.

 

그에 대한 대가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도덕이나 윤리를 지켜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역행하는 자에 대한 대가를 주는 식으로 그 영역을 지켜왔어요. 보통 사회 그 자체가, 법 집행기관에 의해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과 같은 무리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통해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그들은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와 동류의 인간들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고 이는 그들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부덕한 행위로 얻은 이익은 결코 훼손돼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이 곧 승리의 공식이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사상이 곧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입니다. 그들이 범죄를 통해 부와 권력을 얻고 그것이 훼손되지도, 침해받지도 않고 오직 과정의 부정보다 부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만이 중요한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과 같이 되고자 할 때 그들과 같은 방식을 따라갈 겁니다. 이미 증명된 공식이니까요.

 

 

이명박의 사면과 그 무리들의 복권은 부와 권력을 얻고 싶다면 부정부패와 범죄를 저질러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어떻게든 자기 이익을 챙겨라. 그것을 통해 충분히 많은 부와 권력을 얻었다면 그 부와 권력(그리고 그걸 통해 얻은 인적 관계망)을 통해 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건 하나의 증명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상의 노골적인 핵심이기도 한데다 사람들이 추구해야할 성공의 공식이 됐습니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성공하고자 한다면 법과 도덕, 윤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심지어 적절한 방법이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설령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얻는 게 더 크다면 약간의 징역과 벌금은 단순한 부정부패로 얻은 이익에 지불하는 거래대금 정도가 될 뿐이죠. 그렇게 처벌받은 이상 나는 더 이상 죄가 없다고. 이미 죗값을 다 치루고 나왔다고.

 

 

정의와 공정은 당분간 한국에서 사망 선고를 받아야할듯 합니다. 이걸 다시 살리기 위해선 죽어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고요.

반응형
AND
반응형

 

 

언제는 아니었겠냐만, 최근 들어 극단주의가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극단주의의 종류인데, 어떤 사상이고 가치관이고를 떠나서 파시즘적 극단주의화가 눈에 띕니다.

 

조국 사태나 윤미향, 심지어 최근의 박지성 논란을 보면 하나같이 정치적 문제라기 보단 차라리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가까운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들이 위선이니 뭐니 하는 걸 떠나서 그들을 비판하고 욕하는 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치, 사회적 논란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건사고에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하는 이들인데, 이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상대가 잘못했다면 그건 악이고, 그걸 비판하는 나는 정의이며, 그 정의의 기준은 윤리이되, 내가 휘두르는 폭력은 또 다른 악이 아니라 정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쁜 놈에게 휘두르는 절제 없는 폭력은 정의로운 비판이자 정당한 처벌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만한 논란을 가진 이들을 비판하는 거 자체는 이상할 게 아니고 때로는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들에겐 한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바로 나는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이라는 전제죠. 그렇다보니 상대방의 논란이 완전히 밝혀지기도 전에 일단 악인으로 낙인찍고, 정의로운 본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처벌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불의나 잘못된 것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비판을 하거나 평가, 판단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적 윤리, 도덕의 기준을 재확인하는 것도 있어야 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입니다.

 

근데 이들은 그 선을 훌쩍 지나쳐버리는 게 문제라는 거죠. 마치 사회에 속해있으면 안 될만한 악, 혹은 적, 또는 적그리스도 따위로 설정하면서 그들을 몰아내고 척결하며 말소시켜버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 할 정도로 극렬하고 증오와 혐오를 절제 없이 드러냅니다.

 

그렇게 드러낸 감정일수록 본인 스스로는 정의롭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죠. 문제는, 그들이 아무나 잡고 그 지랄을 하는 게 아니라 명백히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때로는 정말 잘못된 것에 그러한 공격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윤리적 기준을 두고 폭력을 휘두르는 거고, 그 폭력을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는 게 진짜 문제라는 거죠.

 

당사자에겐 마땅히 받아야할 처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더 우스운 건 그들에게서 어떠한 철학이 없거나 윤리적 기준점이 모호하여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준은 있는데, 그 기준은 바로 자신이 느끼는 말초적 감정입니다. 정확히는 분노. 이거죠. 자기가 얼마나 분노하느냐에 따라 받아야할 처벌의 강도가 달라지고 얼마나 사악한지가 결정됩니다.

 

딱 파시스트들이 지들 꼴리는데로 모여다니며 몽둥이 휘두르며 정당성 없는 제재를 일삼는 것처럼요. 스스로를 정의이자 질서라 생각하며. 사회의 적과 싸우는 고결한 투사를 연기하며.

 

 

그러다보면 이들은 점점 자신들의 "역할"에 빠져들어버립니다. 마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면서요. 일베, 메갈 투사들처럼 스스로 어떤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치 어떤 철학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부적으로 형성되는 감정적 분위기 내지는 어떠한 선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방향성에 따라서 움직이는 좀비들이죠. 실제론 스스로의 판단은 전혀 없고, 스스로도 언어화시키지 못하는 인상과 엉성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무엇은 옳고 무엇은 나쁘다. 라는 식의 단순한 세계관만 있을 뿐이거든요.

 

그런 이유로 사안에 따라서도 폭력의 강도가 달라지고, 심지어 똑같은 문제라고 해도 그 사건 당사자에 따라서 아예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무시되기 일수이며, 마찬가지로 똑같은 종류의 사건임에도 사안마다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일관적인 기준이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형성되는 인상이 중요한 거고, 그 인상에 따라서 개별 사건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활동은 실상 사회적 이익을 발생시키는 게 전혀 없고, 오히려 귀만 어지럽히기 마련이며, 때로는.. 아니, 꽤 자주 그들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내기 마련인데, 스스로를 정의롭다 여기니 외부의 비판을 적의 공격으로만 여길 뿐이지요. 또한 정의로운 활동이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그러한 사건사고에 열심히 자신의 감정을 배설해냅니다. 그 감정적 배설을 정의의 증명이자 당사자가 받아야만하는 마땅한 처벌로 생각하죠. 그리고 지나친 공격에 상대가 고꾸라지면 정의의 증명이라며 환호합니다.

 

 

정말로, 최근들어 어떠한 사건사고가 터지면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욕먹을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이라기보단 지독할 정도로 고결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시키며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악인이고, 심지어 그러한 악인을 만들고 싶어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왜냐? 악인이어야만 자신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정의라는 정당성이 생기고, 그러한 무절제한 폭력은 쾌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 이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윤리 기준을 만들거나,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굴 두들겨 패며 즐기고 싶은데 정의롭고는 싶은 이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장시키고, 과대해석하며 과몰입하면서 두들겨 패죽여도 무방한 악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요즘 발생하는 논란과 사건 사고를 대하는 걸 보면 그런 경향성들이 보이고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윤리 기준이 점점 모호해지고 지리멸렬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반대로 보자면 전통적 윤리기준들이 해체되고, 의심 받고, 비판 받으며, 다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마 둘 다가 아닐까 싶더군요. 일베, 메갈 등 극단주의적 정치병자,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무너뜨려 자신의 패악질을 정당한 자유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의 분탕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마땅히 변화하는 과정에 끼어들어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구성하려는 시도 같은 거 말입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문재인 정부 특검1호 ‘사드(THAAD)’ “리베이트 의혹 밝힌다”

http://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084

[단독] 軍 전관 동원 '엉터리 감리'..檢 '방산 적폐' 첫 적발

문 대통령, 4대강 '정책감사' 지시…"위법 발견시 상응 조치"
민주당 "4대강, 22조 혈세로 만든 수생태계 파괴 주범"
'4대강' 수중촬영서 부실설계 등 증거 발견…"전면 조사 필요"
윤석열 지검장 "검찰 비판에는 국민 기대 반영돼..거듭나야"
文정부, '이적행위' 방위사업 비리에 칼 댄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 폭발..90% 육박


이외에도 많은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데, 이런 행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에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글자 그대로 국가정상화 작업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다고 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지난 9년은 비정상이었다는 말이죠. 이를 비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처럼 지난 보수 정권 하에선 온갖 비리, 부정부패, 비상식, 유전무죄, 정경유착 등의 온갖 적폐가 기를 피고 활개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9년 동안 민생은 어려워만지고, 국민들과 청년들은 절망과 분노, 냉소와 증오만 해왔었죠.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 된 이때, 국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과 호의 뿐이죠. 일부 잡것들의 불만도 있지만, 지난 시절 문재인을 비판했던 이들마저도 마음 돌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문재인이라는 인물의 영향력을 대통령이라는 말에 맞게 거대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고 있고요.


그 놈이 그 놈이다,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변하는 거 없다. 그동안 새누리당에 표를 줬던 이들이 했던 변명들이죠. 그 놈이 그 놈이고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변하는 건 없다면서 새누리 여당 시절 무조건 1번만 찍어댔던 이들이 자신들의 논리적 결함과 신념 없는 충성이라는 내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내뱉었던 인지부조화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극우보수 세력에서 배출하는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은 모두 똑같은 적폐, 쓰레기, 부정부패와 비상식, 구시대의 첨병에 불과했지만 진보좌파 세력에서 배출한 대통령은 분명히 달랐고, 다릅니다.


지난 세월의 구태와 적폐를 하나하나 차례차례 격파하고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고, 이는 분명히 국가적 역량을 길러주는 작업들입니다. 비효율을 일소하고 민주적 가치를 따르며 내실을 강조할 수 있죠. 확실히 다릅니다.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확실히 달라요.


보수정권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만을 위해 일했던 위선자들이자 이기주의자들이었다면, 진보정권은 정치의 본질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었죠. 국가와 사회,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더 강하고 더 뛰어난 국가와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상을 따르며, 실제로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정권은 사람 살 곳이 못 되고, 진보정권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거고요. 진보정권의 인사들은 확실히 유능하고, 자기가 뭘 해야할 지 알고 있습니다. 정의롭고, 더 도덕적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지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야할 지도 알고 있죠.


단지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과 비난이 두려워 숨기고 발뺌하고, 남탓하며 선동만 해왔던 위선적 쓰레기들과 분명 구분되는 모습입니다. 이런 분명한 차이를 두고 그 놈이 그 놈이라느니 어쩐다느니 한다면 그건 지능의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는 자기합리화이자 인지부조화거나, 아니면 말했듯 지능의 문제죠.


현재의 박사모 같은 세뇌된 좀비들이 그렇습니다. 지능에 문제가 있는 작자들이죠. 쓰레기 똥통 속에서 살고자 하는 건 파리 유충들이면 충분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순 없죠.


그리고 전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이 절 더 나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2016/06/28 - [취미/이야기] - 브렉시트, 멍청이들과 노친네들의 마초적 자살쇼.

2016/11/15 - [취미/이야기] - 트럼프 당선과 대중정치의 함정.

2016/07/30 - [취미/이야기] -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새누리당, 황금새벽당, 공화당 등의 극우, 보수적 성향을 띄는 정당의 경우, 그들을 지지하는 계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저소득층에 가깝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겨주지 않고, 오히려 거국적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줄어들고 사회적 입지가 줄어들 것임에도 그들을 지지하고 표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정치학에서는 계급배반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계급배반 현상을 설명하는 많은 근거와 주장들이 있습니다. 많은 노동에 따른 인지적 한계, 낮은 교육수준, 지역적 정치기류, 종사하는 산업에 따른 입장 등등..


모두 틀린 설명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것들은 일정 정도 사실을 설명하고 있으며, 그 정도는 경우에 따라 영향성을 달리할 뿐이죠. 하지면 지금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요소들과는 다른 데, 그들의 정치사회적 입장과 한계라기 보단 정신적 가치관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먼저, 새누리당과 같은 종류의 극우보수 세력을 지지하는 자들은 크게 두가지 기저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나는 약자와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고, 다른 하나는 강자, 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환상이죠.



1.약자, 비주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경멸.


기실 따져보다면 저소득층은 자신들부터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혐오적 성향이 강합니다. 이는 흔히 갑질이라는 형태로 분석될 수 있는데, 갑질은 졸부 따위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의 사회적 약자들에게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중산층이 사는 곳보다 저소득층이 사는 곳에서 알바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갑질하는 경향성이 큽니다. 이는 아래의 글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자신이 겪은 만큼 타인을 대한다는 겁니다. 자신이 위계적 폭력과 억압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상위에 위치한 관계일 때 어렵지 않게 하위에 위치한 이에게 마찬가지의 위계적 폭력과 억압을 가하기 쉬워지죠. 


2014/08/30 - [취미/이야기] -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배경.


이런 현상에 따라, 그들은 힘에 대해 갈망하게 되고, 강자와 주류에 대해 동경하고 선망합니다. 비록 그들은 거의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지만 말이죠. 그런 정신적 작용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약자와 비주류에 대한 혐오와 경멸로 이어집니다. 타인의 비루함과 비참함은 쉽게 인정하고 흉보기 쉽지만 자신의 비루함과 비참함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어렵지 않게 구분하고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는 중2병의 나는 남들과 달라 같은 게 아니라, 단지 자신의 형편을 무시하고 타인만을 판단하는 것에 불과한 것에 가깝습니다.


이런 모순적 행태 덕에 이들은 자신과 같은 약자와 비주류를 연대의 대상이라고 보질 않습니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 있다면 우습게 보고 모멸감을 주고자 하며, 자신에게 힘을 보태달라고 요청하면 거기서 정신적 우월감을 느끼며 그것에 심취하고 알량한 입장을 무기로 유세를 부리게 되죠. 이는 어렵지 않게 수평폭력으로 발생하게 되고, 특정 정치세력과, 그들과 야합한 언론은 그것을 부추겨 분열시켜 그들의 단결을 파괴하거나 이루어지지 않게 조작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같은 약자나 비주류, 소수자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최소한 무시, 최대한 적대 및 공격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게 되죠. 같은 이유로 그들 또한 다른 집단에게서 공감 받거나 연대하고자 하지 않고요. 이것이 정치적인 요소로 흐르게 된다면 (노인, 청소년, 저소득층, 환자, 장애인 등의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복지, 외노자,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척으로 발생하게 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진보 및 좌파와 같은 소수자와 약자를 주로 대변하는 성격의 집단에 대한 혐오와 괄시로 이어지죠.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정치집단을 반대하고 비판적인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흔히 말하는 저소득층은 자신이 되고 싶은 자들을 지지한다. 는 말대로가 되는 거죠. 강자와 주류에 대한 동경은 자신과 그들을 동일시하는 공감이 이루어지기 쉽고 그에 따라 정치적 결정을 내립니다. 그게 진정한 본인의 판단이라기 보단 정치적 선동에 따른 결과라고 해도 말이죠.



2.강자, 힘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환상.


앞서 이야기 했듯, 그들은 힘과 강자에 대해 추종하고 환상을 가집니다. 자신들이 힘이 없어 억울하고 마음 속으로 담아만 둬야할 괄시와 무시를 많이 겪어 봤기 때문에, 그만큼 그들을 짓밟고 비웃어 줄 수 있는 힘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강한 자를 사랑하고 편파적인 애정을 가집니다.


정치에선 소위, 힘 있는 자들에게 표를 줘야 한다와 같은 이야기로 나타나죠. 힘 있는 자들이 정치를 해야 하고, 힘 있는 자들이 권력을 가져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보고 공감하고 싶은 것은 기집애처럼 이빨만 털면서 대화하고 화합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강인한 힘과 권력으로 상대를 짓밟고 박살내며 무릎 꿇고 빌게 만들 수 있는 타협하지 않는 강함, 강자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느낄 수 없는 적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기저에 있는 분노와 혐오를 뿜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은 주로 외부의 적국, 혹은 자국의 진보 온건파들이 되기 쉽죠. 자신들이 혐오해 마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이익을 주장하는 약해빠진 기집애들. 그들이 적으로 상정되는 것이고, 그래야만 합니다.


파시즘의 공통점은 내부든 외부든 타협할 수 없는 불가침의 적, 혹은 악을 상정하고 국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분노와 혐오, 증오 따위를 조장하며 그렇게 조장해낸 부정적 에너지를 그 적에게 쏟아붓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주장과 발언을 대신해주는 자신들은 그만큼 비이성적이게 된 감정적 에너지체가 된 대중에게서 지지와 표를 받는 거죠.


따라서 그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극우보수 집단은 그들에게 자신들이 힘이 있다는 스텐스를 명백히 보여줄 필요가 있고, 적어도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줘야만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실제로 할 수 있느냐, 그것이 국가적, 사회적 이익이 되느냐, 그것이 사회정의와 법적 정의에 부합하는가 따위와는 관계 없이요. 단지 지엽적 정치적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면 국가나 사회적 손실과 손해는 무시해도 되는 소小에 불과한 겁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이 대大에 해당할 뿐이거든요.


이는 청와대나 새누리당, 혹은 이번 미 대선에서의 트럼프, 혹은 브렉시트 이전의 영국 보수당들이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정치적 이익과 승리, 저소득층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 혹은 국민 다수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들이 원하는 말의 대변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올바른 말이든, 정의에 부합하거나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종류의 것들이냐고 하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즉,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원하는 것은 정의로움이 아닌 힘이 있다는 것의 증명이고, 또한 정의니 합리니가 아닌 강한 자, 힘 있는 자들이 필요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경화가 이루어지는 국가에선 힘 없는 정의보다 정의 없는 힘이 승리하는 것을 찾아보기 쉬운 것이고요. 마찬가지로 문재인이나 버니 샌더스, 힐러리와 같은 힘 없는 나약한 놈에게 표를 주지 않는 겁니다.


그들은 당장의 원칙과 정의보다, 당장 힘을 동원해서 자신들에게 대드는 버러지들을 짓밟고 박살내는 것에 열광합니다. 대화와 타협은 기집애들이나 하는 것이고, 그딴 건 필요 없이 자신들에게 기어오르는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만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힘을 가진 강자가 타협도 협상도 없이 적을 박살내고 짓밟는 것 자체에 대한 쾌감. 저는 그걸 마초 오르가즘이라고 부릅니다.



3.마초 오르가즘.


앞서 말했듯, 마초 오르가즘이란 힘으로 타협이나 협상, 대화와 같은 나약한 행위를 일체 하지 않고(혹은 강경한 태도의 경고만 한번 던져주고) 자신들이 설정한 적, 혹은 악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러 박살내고자 하는 것에 대해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민주적 원칙에서도 벗어나 있고, 벗어나기도 쉬우며 정의나 합리와도 동떨어진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극단화된 것이 파시즘이고, 군국주의이죠. 자신들의 적이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상과 집단. 절대적 악과 강력한 적을 찾고, 그들과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사라져버리면 자신들의 존재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죠.


거의 전세계의 극우, 보수 정치집단은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줍니다.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해야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극적이든 편파적이고 피상적이든 듣고 싶은 말을 해주죠. 트럼프가 가장 적절한 예시입니다. 적지 않은 대중들은 어떠한 현상과 사건에 대해 근본적으로 파헤치고 분석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현상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이게 힘과 관계된 것이라면 그것을 휘두르고 싶어만 하죠. 자신들의 자존심과 가치, 이입할 수 있는 대상(혹은 그런 종류의 가치)의 권위 상승이라는 일방적 짝사랑에 따라 움직이고 표를 던집니다.


현실과는 별개로 자신들은 아주 강한 존재이고, 그런 강한 힘을 가졌으니 대화나 타협 같은 불필요하고 나약한 행위보다 힘을 통한 의지의 관철만을 원합니다. 그게 자신들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고 고양시켜주며 적지 않은 쾌감을 주기 때문이죠. 


이런 마초 오르가즘은 교육 수준이 낮고 노동 강도가 높고 노동 시간이 많은 저소득층에게 쉽게 발현하고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들은 수직적, 위계적 권위에 의한 폭력을 쉽게 경험하고 낮은 자존감과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지적능력은 어떠한 현상이나 사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분석할 시간도, 능력도 주어지지 않게끔 된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죠.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여유롭다면 극우적 집단의 피상적인 정치적 선동보단 다른 지식인들의 근본적 분석에 공감하고 그 주장이나 분석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렇지 못한 환경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그러기 어렵죠.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진보나 좌파보다는,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남성적 이미지의 보수에 이입하기 쉽습니다. 


교육 수준이 낮기 때문에, 그리고 삶에 여유가 없어서 정치사회적 안건이나 쟁점에 쓸 정신력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고, 자기들이 평소에 이입해왔던 보수, 극우적 진영이나 인물에 지지를 보내기 쉽습니다. 쟁점에 대해 분석하고 공부하고 판단을 내릴 여유도, 그럴만한 지적 능력도 없기 때문에 그냥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죠. 한국 보수, 저소득층, 50대 이상의 세대가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하는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그런 이유죠.


그리고 그런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극우보수는, 그 집단이 정치정당이 됐든 경제집단이 됐든 언론이 됐든 그들의 마초 오르가즘을 자극할만한 정치적 선동을 하는 것이고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들은 사회정의나 사회국가적 이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요소들과 동떨어진 주장을 하고 분열을 획책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알량한 정치적 승리만을 반복해서 쟁취했을 따름이죠.


즉, 마초 오르가즘을 자극하면,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계속 자극하는 것인 셈입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애국은 불한당의 마지막 피난처다. - 새뮤얼 존슨


애국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 오스카 와일드



정권이나 정권의 비리를 비판하는 자들에 맞서 정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눈앞에서 보인 정권의 잘못된 정책, 각종 비리에 대해서도 눈을 감고 그 비판을 애국심이라는 것으로 막아서 정권을 비판하는 자 = 애국심 없는 자 = 매국노 (= 빨갱이)의 논리로 이어버리는데, 정권 = 국가 따위가 아니며 진정 애국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더욱 도덕적이고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으며 정치에 있어서도 더 뛰어난 인물/정권을 지지하고 그에 반하는 집단/인물에 대해 비판함이 맞습니다.


기실 잘못됨은 옳지 않음이며 이것이 일개인이 아닌 그 중요성이 차고도 넘치는 정치인, 그것도 고위공직자와 국가부서에서 보여진다면 그것은 국가와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의 올바름, 안정을 지향한다면 그러한 작자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있어야할 사람을 앉히는 것이 진정 국가와 사회를 위하는 일이겠지요.


우리 역사에서 독재자, 폭군, 부정부패한 관리를 끌어내리고 첨령하며 결백하고 능력있는 이를 높은 자리에 앉히는 이유는 다 그러한 이유에서이며 그것이 국가가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임을 상기해본다면 현재 겪고있는 이 정치적 혼란 속에서 우리가 견지해야할 태도가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하고 있는 그 잘못을 범하는 이들을 옹호하며 그들이 국가의 권력을 쥐고 있기에 어쩌면 국가와 그들을 동일시하며 더 나아가 국가주의적 태도로 자신 또한 그들과 동일화하며 그들을 비판하는 자들에게 비난과 힐난을 퍼붓는 행위를 하는데, 이들이 주장하는 국가를 위함이란 궁극적으로 국가를 좀 먹고 썩게 만드는 것이므로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생각하여 깨닳을 필요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오만한 편견일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치부가 다 드러난 비리, 불법공작 등 비판받을 꺼리가 차고도 넘치는 이들을 옹호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라를 망국으로 치닫게 만드는 행위이죠. 이것은 절대 애국과 거리가 멉니다. 되려 그 반대에 가깝지요. 나라를 망치는 것을 지지하는 셈이니까요.

반응형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면, 자존심에 대한 단상  (0) 2013.10.30
기회의 평등이 중요한 이유  (2) 2013.10.26
한국식 문제 해결법  (4) 2013.10.19
내가 공자, 유교의 도덕관을 좋아하는 이유  (0) 2013.10.17
강대국의 조건  (4) 2013.10.12
AND
반응형


언론의 자유가 인정되는 자유국가에선 언론, 기자가 세상일과 각종 소식을 전달합니다. 그 중에서 정치, 사회 등 정치인들의 비리나 부정부패를 파고 국민들에게 알리기도 하고, 기업들의 담합같은 부정부패, 비리를 퍼뜨리기도 합니다.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라서 연예인의 범죄나 각종 소식까지도 우리는 쉽게 알수 있습니다.



얼마전 왓치맨이라는 작품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꽤 재밌게 본 작품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정치나 기업의 부정부패, 비리를 파며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주는 기자들은 누가 감시하는가.


언론의 힘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간혹 기자들이 앙심을 품고 어떤 기업의 제품이나 연예인을 노골적으로 까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며, 반대로 위험성이 있거나 불량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덮고 홍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정치쪽도 마찬가지죠. 물론 이들이 그냥 해주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닌지라 사주해주는 쪽에서 돈봉투를 주죠.


진정 도덕성있게 사용되는 언론은 사회적 정의와 도덕을 위해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만, 이러한 부정이 포함된 언론은 그 기능(도덕성)이 마비됩니다. 정치인들의 비리나 부정부패 또한 돈을 받고 다른 사건으로 덮히거나 혹은 아예 보도되지 않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이러한 언론은 기자들에 의해 쓰여지기 때문에 기자가 이런 식으로 사건을 조작, 정보를 차단(혹은 조작, 날조)한다면 사실을 알아낼 턱이 없는 우리 국민들은 그저 기자들 손에 놀아나는 것이고, 이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이들이 존재할수 있습니다.


기자들의 심술에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은 기업이나 연예인같은 경우라던가.


그래서 왓치맨의 중심을 관통하는 저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기자는 누가 감시하느냐..





물론 기자만 해당되는게 아니라 파워블로거 또한 포함됩니다. 일부 파워블로거의 부심쩌는 행패는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졌죠.

반응형
AND
반응형





이전부터 꾸준히 생각해오던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을 하면서 볼수있는.. 마치 인민재판을 하려는 이들과, 사상검증을 하려는 이들같은.. 개개인의 이성적 판단보다 감정적 욕구에 충실한 이들이죠. 


이를 테면 어떤 범죄자가 범죄를 저질렀을때 인터넷 댓글란에는 정말 과격한 댓글들이 많이 달리죠. 그것들을 보고있노라니 그저 감정적 배설에 불과한것과 인간성 자체가 의심되는 사람들이 써놓은 충격적인 댓글들을 많이 볼수있습니다. 그래서 전 절대로 기사는 볼지언정 댓글은 보지 않습니다. 사실 인터넷 기사 자체를 잘 안보는 축이기도 하지만 말이죠.



쨌든, 이들의 댓글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언가 와닿는것이 느껴질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적 배설에 주안점을 맞춰서 댓글을 단다는것이죠. 즉, 법보다 대중의 감정적 욕구를 해소해주길 바라는것입니다. 누군가 강간사건을 일으켰다면 거세를 한다던지, 아니면 사형을 한다던지.. 아예 화형을 해버려야한다는 소리나 그들의 가족을 그 강간범이 보는 앞에서 똑같이 해주자라는 미친소리도 볼수있습니다.



이들의 수는 결코 적지않고 그들과 같은 생각,혹은 감정적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은 많이 있을것입니다. 넓게보면 저 또한 그곳에 속하구요. 뭐.. 누군들 아니겠습니까만은 강력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보고 화가 안나는 사람은 거의 없겠죠.


그들을 이해할수 없다는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열등하다는 소리도 아니죠. 하지만 그들의 위치에서 동떨어진채 그들을 바라보면.. 저에게 드는 감정은 혐오감입니다. 사건에 대한 혐오감도 있지만, 그들과 같은 생각.. 아니 더 심한 미친소리를 짓껄이는 광신도를 보는것같습니다.



마치 인민재판을 보는것같죠, 그를 잡아서 처단하자.. 이런 소리니까요.


이와 맞닿아서, 정치관련 기사,혹은 정치관련 커뮤니티중 정말 악질인곳은 사상검증까지 합니다.


뭔가 그들의 성향과 다른 소리를 조금이라도 한다면 피라냐마냥 몰려들어 사상검증을 시도하죠.



그들은 자신들의 말, 자신들의 횃불이 곧 정의인것으로 착각합니다. 실상 그들에게 어떤 권한이 있지도, 설령 그들에게 확실한 정의라 할수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상대방이 확실한 악이라 할수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해도 그들에게 자신의 폭력을 휘두루는 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법과 규칙이 있는 이상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정의에 따라 상대방의 악을 처단하려한다면 법과 규칙이 존재할 이유따위는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저는 자신들의 사상과 가치관이 곧 정의이며 진리라고 생각하는, 자각없는 이들을 혐오합니다. 자신들이 무슨짓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아무런 성찰도 없이 언제가 됬던 자신들의 정의에 세상을 끼워맞추고 해석하려하지요.


만약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있었는지 깨닫는 날이 온다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창피하게 여길까요?

반응형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55)
취미 (855)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