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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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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2.12.27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단상.
  2. 2019.02.10
    권력욕의 작동에 대한 단상.
  3. 2017.12.23
    자본주의와 신분제 사회 권력의 특성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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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또 다른 한계점을 맞이하는가.
https://cafe.daum.net/Europa/38b2/4516

처음 자본주의에 가장 심대한 위협을 줬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등장했던 때와 유사한 상황에 치달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문제는 공산주의는 소련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실패한 체제가 되었고, 이에 대한 도전이나 견제가 가능한 대안, 혹은 경쟁적 이념은 등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명실상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요.
 
즉, 자본주의는 현재 견제할만한 사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경쟁자 때문에라도 살아남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유주의나 프로테스탄트적이지 않은 전통적 기독교 윤리, 인본주의, 애국심, 참정권과 함께 이어지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요구 등 다양한 관점과 사유로 노동법이나 노동환경은 점차 나아졌고 자본주의는 지나친 비인간성이 줄어들어 현재와 같은 체제에 이르게 됐습니다.

 

 

저번 글에서 언급했듯,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라는 경쟁 체제가 사라지고 자본주의의 폭주를 억누르고 견제할만한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자본주의는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이자 체제가 되었고 자본주의가 아닌 체제들은 자본주의에 비해 경쟁력이 없습니다. 

 

독점 시장은 언제나 독점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얼마나 물량을 풀 것인지, 개발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지, 가격을 얼마로 책정할 것인지 등등 독점적 지위는 그 자체로 사는 사람이 아쉽게 만드는 위치이죠. 그것은 체제 역시도 다르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정치체제가 아닌 경제체제이고, 그 핵심원리상 패권을 추구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부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그 방법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적 규칙으로 게임을 하죠.

 

전근대 사회의 체면과 탐욕 문제.
https://cafe.daum.net/Europa/38b2/4528

 
11.
그들은 결코 자신의 탐욕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욕심을 가지는 게 무엇이 문제냐고 할 것이다. 욕심은 발전의 자양분이 되고 충분히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은 욕망되어야 하고 그것이 법을 어기거나 비도덕적이지 않는 한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탐욕과 욕심이 죄악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그것이 무한하기 때문이며 절제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면서도 더 큰 이익을 얻고자 했던 파홈은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 탐욕을 부리다 악마의 의도대로 죽게 되었다. 그가 중간에 절제했다면 더 넓고 훨씬 좋은 땅을 얻은 채 오랫동안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종래에 그가 얻은 땅은 그가 누울 3아르신 뿐이었다.
 
파홈의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기독교적 교훈이 담긴 이야기일 뿐이지 현실세계의 당위나 운명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부정한 사회일수록, 부정한 정치권력이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파홈의 사례는 줄어든다. 정부가 부정하고 악한 이들에게 적절한 처벌과 규제를 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는 그 자체로 공유지이다. 자원이 순환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고, 자원 역시 한계가 있다. 이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원은 한계가 존재하기에 순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의 동맥경화가 찾아오면 자본주의는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찾아온다. 누군가 자원의 절대다수를 독점하고 분배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고사할 것이다. 단지 가진 사람이 더 늦을 뿐이다. 그마저도 아무런 폭력도, 외부세계로의 도피가 없다는 전제 하의 이야기일 뿐이다. 대체로 그러한 한계 상황에서는 혁명, 쿠데타, 정부전복, 심지어 외침 등 다양한 방식의 폭력이 체제에 끝장을 내기 마련이다.

 

문제는 탐욕입니다. 욕심은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이것은 생존에 유리하게 해주는 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욕심이 지나쳐 탐욕이 되는 것은 공동체의 발전에 부정적인 힘을 발생시키죠. 언급했듯, 탐욕은 무한하며 절제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문명 어느 사회든 무한하게 추구하여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는 것들을 죄라 불렀고, 기독교의 칠죄종이나 불교의 오욕칠정이 그러한 것입니다.

 

본능적이기에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욕구가 욕망이 되고, 그것이 지나쳐 탐욕이 됩니다. 그러한 탐욕은 끝없이 추구되며 자원과 인신을 무한하게 빨아들이죠. 그리고 자원의 독점은 올바른 곳에 적절하게 사용되지 못하기에 공동체를 파괴하게 만듭니다. 무한하게 자원이 제공되지 않는 한 순환하지 않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집단의 유지를 위해 소모되지 않기에 문제거리가 됩니다.

 

 

이러한 탐욕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도덕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부를 얻는 것이 목적인 체제이기 때문이죠. 그러한 욕망이 발전과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말하고 이것은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탐욕은 소수의 부자들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게 만들었고 순환하지 않는 자원은 분배되지 않기에 자본의 동맥경화를 발생시키고 있죠. 정상적인 자본의 순환이 이루어졌다면 물가와 임금은 지금과 다른 수치를 보였을 것이며 경제문제로 나타나는, 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 역시 지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유발했겠지요.

 

자본주의는 최대한의 부를 추구하는 체제이고 인간은 언제나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죠. 그러나 그 효율적인 방법은 규칙에 대한 도전 역시도 시도하게 만들고 이는 자본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하거나 한계 이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이 발생하는 거죠.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체제이나, 그것이 일정 임계점을 넘어갈 경우 부가 순환하지 않고 경제가 성장하지 않거나 둔화되거나, 오히려 후퇴하면서 자본주의의 유지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탐욕이 지나칠 경우 공동체, 집단은 붕괴하는데 이것은 자본주의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단지 자본주의는 그것을 억제하지 않고 최대한으로 긍정했을 뿐입니다. 사람의 탐욕을 통제하는 경제체제 중 공산주의는 최대한 억제하는 식이었다면 자본주의는 그 반대였을 뿐이죠. 그리고 승리한 것은 자본주의보다 더 큰 한계와 모순을 지녔던 공산주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모든 경제체제 중 유일하게 영구적이며 항구적인 체제라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 뿐이죠.

 

 

자본주의에는 한계점이 존재합니다. 커다란 구의 형태로 존재하며, 이 이상 부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구, 자원, 기술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는 것이며, 이 한계점은 현 지구적 인류의 상황에 기초합니다. 인구는 소비할 고객이며 생산할 노동자이고, 기술은 그것의 속도와 규모를 확장시킵니다. 자원은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본, 돈으로 환산 가능한 가치들입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 한계점에 도달할 정도로 인구, 기술, 자원의 혁신 따위가 없다면 그 21세기 이후 급격하게 확장되는 경제성장은 언젠가, 어쩌면 머지않아 그 한계점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한계점을 최대한 유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그 한계점은 한계 영역이라는 이름으로 커다란 구의 형태로 그려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부의 규모에 따라 크고 작은 구들이 존재하고요. 소수의 부자가 더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면 자본주의의 한계 영역 내 적지 않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중산층, 서민, 빈자들은 그보다 훨씬 작은 구로 나머지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고요. 문제는 전 지구상 보유하고 있는 부의 양은 한정되고 있고 한계영역이 더 넓어지지 않는 한 최대한 부를 추구한 부자들에 의해 영역 내 거대 구형들은 더 크기를 키우겠지만 반대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크기는 더 작아지며 영역이 줄어들 것이라는 겁니다.

 

점차 이 공간들은 좁아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들이 남아 있을 겁니다. 이론상 그 부분들은 더 작은 구체로 채워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커다란 구는 부피 대비 표면적이 적기 때문에 도형의 공간을 채운다는 목적에선 비효율적인 빈 공간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더 큰 구체들을 쪼개고 쪼개어 부피를 줄이는 대신 표면적을 늘리는 식으로 한계점을 유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합의, 더 나은 체제를 발생시킬 여유가 될 것이고요. 현실의 대다수 개인들에게도 부정적인 내용은 아닐 겁니다. 다만, 현행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다르며 오히려 공산주의에 가까운 개념으로 도달한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든 자본주의의 한계점을 더욱 확장시키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찾아올 미래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봅니다. 그때가 된다면 자신의 부를 나누기보단 그러한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에 의해 자본주의 자체가 붕괴할 수 있는 것 역시 가능성 있는 미래 중 하나라고 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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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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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권력을 가지면 욕심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돈이 생기면 더 부족하게 느껴지고 권력을 가지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는 거죠. 단지 더 커진 욕심 때문에요.


하지만 이건 너무나도 1차원적인 이해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권력, 혹은 돈이 생기면 더 많은 걸 가지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기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끝 없이 붙는 욕심의 가속도가 붙게 된다는 건 설명하기에 덜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권력, 자본주의 사회에선 자본이 될수도 있겠죠. 이러한 권력을 가지면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권력을 얻고자 하는 가속도가 붙는 것에는 단순 인간의 내적 욕심이라는 기제 뿐만 아니라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비용의 발생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보편적인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권력을 유지시키는 것은 쉬운 게 아닙니다. 단지 가지기만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기 위해 투자하고 사용되어야 할 많은 비용들이 있으며, 그것을 획득한 이후에도 유지시키기 위한 비용 또한 있습니다. 즉, 권력을 얻고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꾸준히 나가는 것이 있다는 거죠.


권력을 자본으로 비유하자면, 권력은 자본이고 유지비용은 부채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자본의 순이익과 부채의 간극만큼 만족도가 상승하게 됩니다. 순이익이 높은 수록, 부채는 낮을 수록 권력에 만족도가 높을 수 있다는 거죠. 


실제로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다각적인 인간관계, 사내정치, 정신력, 인지력, 가정, 커리어, 미래 등에 소모되고 투자되고 이것저것 발생하는 비용들 또한 높은 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신의 연봉만큼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불행하다고 여길 것이고, 버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더 많은 돈을 벌고 싶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가고 싶어하게 될 것이죠.


마찬가지로 실제 정치인, 고위 공무원 등의 수 많은 권력자들은 그만큼 높은 업무 강도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강도를 버티는 능력적으로는 굉장히 뛰어난 인재들인 것은 사실입니다. 단지 높은 곳으로 갈수록 큰 그림을 보는 통찰력과 그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안목에 따라 실무 행정능력과는 별개로 유능함과 무능함이 갈리는 거겠지만요.


하여간, 그러한 상승성 있는 인간들은 거기에서 다 내려놓고 모아놓은 것을 가지고 만족하고 사는 것보다 -비록 타성에 젖은 행동일순 있어도- 더 비용을 투자하여 높은 직위를 얻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으려 하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권력에 대한 획득 욕심의 가속도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하는 거죠. 자신이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대비 만족도가 낮다면 더 높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하는 겁니다. 욕심은 부족함에서 발생하는 거고, 부족한 만큼 추구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걸 아주 간단히 통찰하자면 권력(돈)을 가지면 가질 수록 더 원하게 된다. 즉, 욕심이 더 커지게 된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너무 함축된 설명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설명에 설득력을 가지기엔 모자라죠.


물론 이러한 설명은 불완전하고, 권력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쾌감과 같은 보편적인 원인 또한 존재할 겁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면 욕심이 더 커지기 때문에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싶어한다. 라는 고전적이고 일차원적인 설명보다는 더 보편적인 원리를 더 말이 되게 설명할 수 있지 않나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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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혈통입니다. 왕의 자식, 왕가의 혈통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서 권력과 권위는 발생하죠. 물론 그러한 권력이 발생하기 위해서 무력, 경제력, 영향력, 계약 등이 필요하긴 하지만, 왕이 되었다는 건 그런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거기도 하죠.


하여간, 왕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상가치는 혈통이고, 혈통에서 권력이 보장됩니다.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귀족의 권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고, 왕족으로 태어났으면 왕족의 권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며, 평민으로 태어났다면 평민으로서의 권력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속적 권력은 정치적인 것이며, 실재하는 것입니다. 



반면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지상가치는 자본 그 자체죠. 자본은 그 자체로 단순 물질일 뿐이지만, 그것이 실제로 시장을 돌며 권력으로 작용합니다. 즉, 왕정에선 혈통에서 권력이 나온다면, 자본주의에선 자본에서 권력이 나옵니다.


자본주의가 왕정, 귀족정, 독재, 민주정과 다른 점은, 그러한 권력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본에 의해 권력이 나오지만 그러한 자본은 위임 받고 계약을 통해 보장될 수 없는, 움직이고 줄거나 늘어날 수 있는 것이죠. 자본을 가지고 있으면 권력이 생기는 것이고 그러한 자본이 줄어들면 그만큼 권력도 줄어듭니다.


이는 권력이 실제로 존재하며 작용하지만, 그 권력 자체는 실재하는 것이 아닌 셈이죠. 또 하나의 특이성은 왕정에서는 그러한 실질적인 무력과 권력의 존재에 대해 견제장치가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선 그러한 견제장치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혹자는 이 말에 대해 대기업, 재벌, 자산가 등이 존재함을 지적할 수 있지만, 왕족이나 귀족들에겐 권력이 없어도 그러한 견제장치가 작용하지만 자본주의의 자본가들은 그러한 실재하지 않는 권력인 자본에 의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없어질 수도, 심지어 초월할 수도 있다는 점이 다르죠.


따라서 그들 대기업, 재벌, 자산가 등은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자본의 유무에 따라 그 범주에 속할 수도,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며, 그러한 것은 기존의 세속적 혈통이나 불변의 기준에 의해 구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현실에서 재벌이나 대기업, 부자들라고 범주화해서 특정할 수 있고 집단화시켜 부를 수 있지만, 그들은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분명히 집단화시켜 부를 수 있는 존재라고 할 순 없습니다. 혈통은 변하지 않지만 자본은 변할 수 있죠.



물론, 마찬가지로 현실에선 자본에 대한 견제장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경험적으로도, 이론적으로도 여러 해석과 실전을 겪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법인세, 재산세, 누진세 등의 제도를 통해 그 자본을 견제하고 있죠.


하지만 자본의 권력은 다릅니다. 자본 그 자체를 견제하는 건 가능하지만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선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몇몇 요소를 제외하면 --심지어 불법이거나 비상식적인 사례가 있긴 할 정도지만-- 건드리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게 세속적 권력과 자본적 권력의 가장 큰 차이점이죠. 제도적인 견제장치가 개인, 집단에게 있어서 그 권력의 사용을 제한하고 견제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에 의한 권력은 실재하는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고, 단지 실제로 현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을 가진 것은 사실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그것이 곧 권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상가치이기 때문이죠. 


신분제 사회에서는 기회가 되고 할 수 있다면 다른 이를 죽여서 귀족이나 왕이 되려고 했지만, 자본주의에선 자본을 얻기 위해 다른 이를 죽여서--혹은 짓밟아서-- 그 범주에 편입되고자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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