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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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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력'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20.11.13
    지적 자극과 정치사회의 관계.
  2. 2016.11.15
    트럼프 당선과 대중정치의 함정.
  3. 2016.07.30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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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까다로운 인지작업과 유혹의 도전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1~2분 동안 7자리 숫자를 기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 케이크와 건강에 이로운 과일 샐러드라는 두 가지 디저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 시스템 2(이성)가 바쁘면 시스템 1(본능, 직관)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시스템 1은 단 것을 좋아한다.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인지 부하가'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면과 마찬가지로 음주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이 수행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들을 보면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나 자제력 유지 노력이 피곤한 일임을 거듭 확인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아이는 자극이 부족할 수록 성장발달이 느려진다고 합니다. 비단 아이 뿐만 아니라 정신의 성장에 있어서도 다양한 자극과 극복이 있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적능력의 성장 또한 지적 발달을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하며, 이는 대체로 공교육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형성되죠.


중요한 건 단순히 자극을 받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자극을 받되, 그것을 올바르게 풀이할 수 있어야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 단순히 문제에 자극을 받기만 하고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트레스가 되고, 더 나아가 한계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 문제를 풀 수 있어야 성장, 발달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그만한 정신력, 인지력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사고와 그 사고에 투자되는 정신력. 그러한 인지작업은 그만큼의 정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한 자원이 충분히 전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삶에 더 여유롭다는 것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지작업에 도전 받아도 그것에 쏟아부을 수 있는 정신 에너지가 여유롭지 못한 쪽보다 더 많고 더 오래 투자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가령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 선비나 귀족의 경우 수년간 충분히 공부에 전념할 수 있고 지적능력 발달에 투자할 수 있으며 그것은 낮은 단계의 인지작업부터 더 높은 차원의 인지작업을 충실히 따라올랐다는 것이기도 하죠.


반대로 매일 일을 해야 하는 농민, 혹은 현대의 일 12시간씩 일하는 막노동꾼이나 시장 장사꾼, 그 외 높은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을 가지는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경우 그러한 인지작업에 쏟아부을 정신 에너지가 극도로 부족합니다. 이는 육체노동부터 정신노동까지 하루 동안 소모되는 양이 많기 때문이며, 대체로 하루이틀 쉰다고 회복되지도 않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적은 시간 쉬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더 복잡하고 여유를 가져야할 일에 많은 정신, 시간의 투자가 어렵게 됩니다.



더 여유로운 삶을 사는 이가 지적 발달에 우월한 조건을 가지는 요인 중 하나는 그러한 자극을 취미, 혹은 자발적 자기계발로 선택하여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책이나 방송, 다큐멘터리, 심지어 네이버 지식인 활동조차도 다양한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요인이 되는데, 책이나 방송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식인 활동조차도 평범하거나 어려운 질문부터 황당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는 공간이기에 다양한 생각과 정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컨데, 그러한 공간에서 답변자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거의 결코 생각하거나 정리하거나 찾아보거나 분석할 여지가 없었을 영역이나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생기긴 한다는 겁니다. 즉, 더 많은 지적 자극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일반적인 경우, 더 많은 지적 자극과 그에 대한 처리가 가능한 쪽은 그렇지 못한 쪽보다 지성에서 우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양한 자극(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다양한 결론(답변)을 내놓았기 때문에 생각과 관점의 폭이 넓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훈련된 지적능력과 인지능력이 곧 통찰력으로 환산될 것입니다.



마시멜로 실험 오류 가능성...어렸을 때 잘 참으면 훗날 성공?

https://www.mk.co.kr/news/it/view/2018/07/445129/

(전략) 다만 가정 수입이 적은 아이들의 경우에는 마시멜로를 빨리 먹는 경향이 나타났다. 부모의 소득이 높지 않은 경우 당장 눈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기다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덧붙였다. (후략)


경향성의 관점에서, 더 부유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고소득층, 정확히는 고소득층의 자식들의 경우 좋든 싫든 교육에 투자되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강제되곤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더 여유로운 일상을 누릴 수 있습니다. 더 다양한 경험을 겪을 수 있고, 그들 중 지성에 관심이 있다면 남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지적능력을 쌓을 수도 있지요.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더 차분하게 사용하여 고등한 사고로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더라도, 설령 틀렸더라도 내용 자체는 더 차분히 정리된 결론을 내놓기에도 유리합니다.


반면 고노동 저소득층일수록 그러하기 어렵죠. 부모부터가 자식을 관리하고 교육시키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자식에 투자할 인지력도 부족하게 됩니다. 자식 또한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육비 등 교육에 대한 투자도 받기 어렵고요.



지적 자극을 받고도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는지는 그것을 잘 처리할 수 있는 환경에 따라 갈립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자본력에 기초할 가능성이 크고요. 물론 자본의 정도에 따라 인지처리능력의 정도가 얼마나 차이가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각박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하위 노동자와 그 반대에 있는, 다시 말해 삶의 양극단에 있는 사람의 경우 상당한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다양한 지적자극은 다양한 사고와 결론을 내놓을 것이고, 그렇게 형성된 통찰력과 지성은 정치, 사회, 역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것입니다. 애초에 현대의 다양한 지적자극들은 대개 그러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들이 많은 편이고요.


문제는 충분한 정신 에너지, 인지력을 갖추기 어려운.. 일상적인 자아고갈에 빠져 있는 계층인데, 정말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지만, 돈 자체는 적게 버는 사람들일수록 정치, 사회에서 발생하는 지적자극에 충분한 투자를 통해 품질 있는 결론을 내놓기 어렵게 됩니다.



전라도 혐오와 한국 혐오. 가해자의 피해자 혐오.

https://konn.tistory.com/703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그러한 것을 판단하기 위한 지적능력이나 소모해야할 인지력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더 쉽고 광범위하며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지적능력이나 그 능력을 활용할 정신력(인지력)이 필요한데, 여유롭지 못할수록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음.. 이거 꽤 자주 인용하게 되는군요. 위 링크의 글에서 했던 말은 사실 이전에도 간간히 여러 곳에서 자주 했던 말이긴 합니다. 다만 좀 더 짧고 자세하지 못했을 뿐이죠. 저 내용은 본 글의 관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정치에서 계급배반현상은 오랫동안 관찰되었고, 분석되고 연구되는 주제이긴 합니다. 이 현상에 대해 어떤 분석과 결론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사상이나 이념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나 사회적 위치와 무관하거나 상반되게 존재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고, 지금은 거기에 정신적 여유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극단주의와 반지성주의, 정의를 독점한 편협한 바보들.

https://konn.tistory.com/706


현대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전문가라고 해도 현실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영역에선 남들보다 조금 더 낫거나 남들과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의견과 다각도의 관점들을 수렴해야만 하고, 그러한 다양성이 충족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의 조건일 것입니다.


정치, 사회적 현상과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함을 간과하고 너무나도 간단하고 편협하게 해석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계급적 관점에서 하위 계급일수록 노동은 많이 하지만 정작 소득은 적은 이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건에 더 많은 정신력을 인지작업에 투자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이유로 복잡하고 어려운 분석의 과정을 스킵해버리고 아주 쉽고 간단한 설명으로 대체하려고 하지요.


가령, 한반도 평화와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에 자본주의의 영향력을 확대하여 북한 스스로 개방하거나 개방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하거나, 현 체제에 한계를 요구하게 만들어 무너뜨리게 한다는 등의 목적을 두고 대북온건책을 시행하는 이들에게 그러한 정책과 관점을 이해하거나 상상하기보다는, 저 새끼가 빨갱이라 나라 팔아먹고 북한에 돈 주려고 한다. 가 더 쉽고 간단하며 말초적으로 빠르게 더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죠.


그리고 이를 잘 아는 이들일수록 더 간단한 논리와 더 자극적인 문구로 이 계층을 공략합니다. 간혹 기사에서 볼 수 있는 어처구니없이 멍청하고 일방적으로 특정 세력이나 인물을 공격하는 자극적인 발언들은 그들이 딱 그 수준의 지적능력이나 사고력, 사상의 극단성을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그들의 사회적 성취과 그 기반이 되는 지적능력을 고려했을 때 인지작업에 투자하기 어려운 하위 계층을 조준하고 날리는 정치공학적 계산의 산물일 수 있는 것이겠죠.



인민들을 너무 배불리면 딴 생각을 품게 된다. - 김일성.


그리고 그들의 지지는 생각보다 튼튼하고, 많습니다. 60년대, 80년대, 심지어 90년대와 IMF를 겪어왔던 세대가 여전히 살아있고, 각 세대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왔다고 해도 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60년대의 대한민국과 80년대의 대한민국은 물질적으로 한 세대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발전을 겪었고, 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지금 2020년에조차 그러한 시대적 차이는 단순 시간적 차이로 설명하기 어려운 거대한 간극이 있지요.


다만 90~00년대 세대 아래 쪽으로 공통점이 있다면, 먹고 살기 어렵고 각박함을 실제로 겪어왔던 세대라는 겁니다. 그리고 더 어려웠던 시기를 살아온 이들에 의해 여전히 잔재해 있던 구시대의 관성은 여전히 정신적인 세계를 지배했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에도 80년대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실제 80년대엔 60년대 이전의 각박하고 더 중세적인 태도로 살아가던 이들이 있었을 겁니다. 물질문명만큼 사람들의 의식수준이 따라가지 못했다는 표현으로 정리되는 간극이죠.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 그러한 어렵고 배고픈 시대를 겪었던 이들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러한 시절의 관성이 여전히 희미하게라도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배를 곯진 않더라도, 그러한 시대를 살아왔고 충분한 교육, 혹은 여유를 가지고 살지 못한 이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정신적 유연성이 더더욱 굳어져갔을 겁니다.


그리고 과거 생각해왔고 받아들여왔던 가치관과 관점으로 여전히 현 시대를 바라보겠지요. 누구누구는 빨갱이고, 어느 정당은 빨갱이이며, 어느 진영과 이념은 빨갱이다. 그리고 빨갱이는 물리쳐 없애야할 적이지 타협하고 협상하는 대화의 대상이 아니다. 까지...


먹고 사는 문제로 여유롭지 못함이 사고와 인지능력에 좋은 영향을 주진 않았을 겁니다. 이는 교육을 통한 기술과는 다릅니다. 농부가 농사일과 농사 기술에 통달했다고 해도, 오랜시간 동안 지식을 쌓아오고 다양한 지적 자극을 처리해왔던 선비의 큰 그림을 보는 능력, 사회적 통찰력에는 전혀 비교될 수 없을 가능성이 큰 것처럼요. 


정치적으로 안정되거나 수준이 높은 국가는 선진국들이 많습니다. 민주주의나 법치, 문민통제, 교육 시스템 등 여러 제도들을 오래 경험해왔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그 나라의 국민들이 그만한 의식수준에 도달해있었기 때문이며, 그러한 의식수준은 그만한 경제적 여유로움에서 찾아올 수 있는 것이지요.


곶간에서 인심나듯이, 각박한 사회였다면 각박한만큼 더 천박하고 더 야비하게 자신의 이익을 찾으며 사회적 신뢰나 정치, 사회적 불문율이 무너지며 관습적 도덕 영역이 조금씩 침해되었을 겁니다. 더 건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유지하던 조건들이 하나하나 사라져가는 것이지요.


먹고 사는 게 여유로울수록 정신문화는 발달하게 됩니다. 영화나 음악, 미술과 같은 연예, 예술도 그러하겠지만 철학이나 미학, 인문학과 같은 정신적 세계를 다루고 파고들어가는 체계 또한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이는 개개인에게도 그러한 문화를 더 폭넓게 접하게 하고 더 기준이 높은 눈을 가지게 되죠. 전체적인 의식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반면 그러한 점을 알고 있는 일부 정치인들, 권력자들은 그러한 상황을 경계합니다. 더 낮은 임금 수준, 더 긴 노동시간, 문화에 대한 탄압 등으로 삶에서 인지력의 소모를 발생시키고, 정적을 꾸준히 공격하고, 논란을 내보내면서 그에 대한 대중의 인지력 소모를 유도합니다. 조국에 소모된 대중의 화력은 이후 지금까지 이어진 여러 사건, 공격에서 그 당시의 화력과 집중도가 떨어지죠. 이미 조국 사건 때 많은 화력을 소모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정신 에너지, 인지력에 소모가 발생할수록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얼마만큼 문제가 있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사건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집니다. 이런 저런 사건으로 꾸준히 소모되고, 삶에 치이며 이미 자아 고갈에 다다랐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고 하나하나 따져가기엔 투입될 수 있는 정신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정치와 사회가 건전하고,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개개인이 여유로운 환경에 놓여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찾아오는, 맞닥뜨리는 지적자극을 처리하면서 말이죠. 정치와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더 많은 정신 에너지와 인지력을 투자할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복잡한 사고를 하면서 더 나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접하고 조잡한 논리와 결론을 내놓으며 잘못된 판단을 내놓는 것보다 훨씬 훌륭한 사회를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적자극을 더 여유롭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여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고, 이는 경제적, 정신적인 여유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함의하는 것은 많을 것입니다. 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든지, 청년 실업을 해결해야 한다든지, 교육열을 줄이고 잉여로운 시간을 더 늘리게 해줄 수도 있고, 최저임금을 높혀 더 여유로운 경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줘야 하거나, 복지 등 사회안전망으로 정신적 여유를 보장, 부담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사람들이 다양한 지적자극을 회피하거나 단순무식하게 처리하기보다 더 여유로운 상황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건전한 정치환경을 만들 것이라는 겁니다. 지적자극을 처리하면서 형성되는 세계관, 가치관, 관점은 지성만큼이나 다양할 것이고 그러한 다양함은 또 다시 건전한 사회를 구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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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주주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대중, 국민들의 인기를 얻는 자가 승리합니다. 그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줌으로써 달성할 수 있죠. 이는 경제적 안정, 안보적 성과, 사회적 문제해결, 교육제도 개편 등의 여러 분야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경제, 정치적인 요소들을 큰 틀에서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은 그만큼 큰 변화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고 그 영향력은 역시 무척 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은 그 본인이 준전문가급인 되어야 할 것이고, 적어도 그 주변의 보좌관들이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그들의 의견을 경청해야하죠.


이런 필수불가결한 능력적 전제는 정치인이라면 매우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할 능력들입니다. 적어도 멍청한 소리를 하거나 국가,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식으로 작용해서는 안 되죠.



2.

대중은 그 자체로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개인은 똑똑해도 대중은 멍청할 수 있죠. 사실 이는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요. 대중은 기본적으로 사회상규, 사회적 상식 수준에 맞는 의견을 보편적으로 가집니다. 이는 대중을 이루는 개개인들에 의한 그 사회의 한계이자 동시에 사회지성의 평균이기도 하죠.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사회적 상식이 달라진다면 대중들의 태도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령 1950년대 대중이 가지는 상식과 2016년 현재 대중이 가지는 상식은 다르죠. 이는 사회적 환경, 문화적 토양, 교육수준 등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의외일진 몰라도, 일반적인 정치인들의 지성은 보통의 개인들보다는 훨씬 뛰어난 편입니다. 그 지성을 어떻게 쓰느냐는 다른 문제이니 일단 넘어가도록 하고, 그런 정치인과 특정 분야에 있어서는 훨씬 뛰어난 지식을 갖춘 보좌관들의 모임, 그리고 정치인과 보좌관의 정보와 지식, 의견이 종합된 그들의 발언이나 정책 발의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거나 파악하기 쉬운 것이 아닙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일반 민중은 어느 정도 복잡한 사회적, 법리적, 정치적 문제를 이해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또한 대중은 그런 어렵고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것을 즐기지 않습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럴만한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부족한 경우가 많죠. 차라리 이 편이면 다행인 거고, 그럴만한 지성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신력, 인지력의 여유와 복잡한 문제에 대한 인지작업에 대한 관계는 다음의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2016/07/30 - [취미/이야기] -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3.

이러한 문제를 역으로 뒤집는다면, 대중들은 한마디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더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더 자극적이고 민감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 마디, 한 줄 짜리 선동문구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이기 쉽고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이죠.


이는 복잡한 사회정치적 문제를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인지작업을 할 필요가 없고,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사회적 안전이나 국가적 안보, 경제적 문제 따위에 대해 그 원인이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체류자, 혹은 유대인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편이 전세계적 불황과 국내 산업불균형, 최저임금, 노동법, 사회구조, 인구구조 등에 있다고 하는 것보다 더 쉽고 받아들이기 좋은 내용이라는 것이죠.


외부적 문제요소가 내부적 안정을 해친다는 자극적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내용이라는 겁니다. 딱 보고서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생각-인지작업-을 해야 하는 것보다 쉬운 내용이며, 무엇보다 어떠한 심리적 갈등도 없이 남탓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이요. 오히려 배척해야할 적이라는 인식은 그들에 대한 감정적 동조나 공감을 마비시키고 더 거칠고 무자비한 공격이나 그런 종류의 부정적 심리작용을 이끌어내기 쉽죠. 그리고 그것은 같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보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4.

이는 요컨데, 어렵고 지적인 표현을 쓰는 진보매체보다 자극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표현을 쓰는 보수매체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쉽고 이해하기 쉽거든요. 복잡한 정치사회적 분석보다 남탓(종북탓, 진보탓, 야당탓, 외국인탓, 노동자탓 등등 많은 나라에서 이와 같은 남탓 선동을 합니다.)이 더 쉽죠. 적당한 소스만 버무려주면 어려운 인지작업을 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요.


이는 대중의 지성적 한계와 맞물려 아주 잘 먹히는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기실 모든 정치적 발언들은 선동이기도 하고요. 공개토론, 질의응답, 청문회, 기자회견 등등 모두 다요. 그걸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고 응용하는 지가 정치인들의 실력이기도 합니다. 선동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고, 그 선동을 어떻게 사용하는 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뿐입니다.


뛰어난 능력과 양심을 가진 정치인이 선동을 통해 국가적, 범사회적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정책을 실현시킬 수도 있고,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양심과 도덕성이 극히 낮은 정치집단이 선동을 통해 특정 집단만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정책을 밀어붙힐 수도 있는 법인 셈이죠.



5.

이러한 대중들의 한계는 정치인들을 한계로 이끄는 면이 있는데,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해도 선동능력이 떨어진다면 그 능력을 제대로 필 수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선동능력이 뛰어나다면 능력 이상의 자리를 얻어낼 수도 있다는 말이 되지요.


대중은 똑똑한 존재가 되지 못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인지작업보다 한 줄로 이해하기 쉬운 선동문구를 선호합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대중에게 원하는 말을 해주면 인기를 얻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는 말인 셈이죠. 이는 트럼프나 이명박과 같은 종류의 인간들이 능력 이상의 자리를 얻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것이나 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거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 할 수 없기에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는 정치인보다 대중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는 이가 더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가령 이명박은 자신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했지만 이명박 5년 동안 서민경제를 악화되기만 했으며, 이렇다할 경제적 성과도 없고 이제 와서는 오히려 그의 경제정책이 한국의 경제의 발목을 죄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곤 했으며, 박근혜가 한 공약 대부분은 아무런 실현 가능성도 없고 의미도 없었던 것들이었을 뿐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약을 폐기, 미시행으로 이어졌죠.



6.

트럼프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백인, 노동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줬습니다. 트럼프가 한 수 많은 막말들은 역설적으로 많은 이들이 흔히 말하는 사이다 발언이라 여기고 그에게 호감을 주게 되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대선 때 많은 득표율과 선거인단을 가져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막말이나 주장, 공약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이민이나 인종, 여성, 특정 종교나 신념에 대한 증오와 차별과 같은 혐오로 일관됩니다. 그의 캐치프라이즈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와 같은 성격의 발언들은 모두 마초 오르가즘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런 쉽고 감정적인 자극을 이끌어낼 수 있는 언어들이 그를 지지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즉, 트럼프를 지지했던 수 많은 백인 및 특정 산업 종사자-노동자들은 그들이 듣고 싶어했던 말을 해줬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것이죠.



7.

이는 트럼프가 했던 말이나 주장의 정당성이나 합리성과 무관합니다. 그가 무슬림을 모두 쳐죽이자는 말을 했고 수 많은 미국인들이 그에 동의를 했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하거나 옳다는 것이 아니며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공약이나 주장 대부분은 현실적 가능성도 부족한 것에 대부분이고요. 물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하여간, 그의 발언이나 주장은 현실적으로 매우 비상식적이고 도덕적으로도 큰 결함을 발견할 수 있는 문제성 발언들이었으며 증오와 혐오, 차별을 담고 있고 실제로 많은 이들을 자극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죠. 이는 그를 지지한 대중 대부분의 지적 능력이나 상식이 그들이 지지한 트럼프의 발언과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특정 인족이나 국가, 종교를 혐오하고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그와 같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공유하는 수 천만명의 민중이라니.. 정말 끔찍한 일이죠.



8.

트럼프의 당선은 나치당의 집권이나 융성과 비교할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대중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고, 그 이야기들은 자극적이고 짧은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해서 내뱉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좋지 않은 내용들이고 옳지 못하게 사용했다는 점이 문제이죠. 둘 다.


세련된 정치인이란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가 선한 의지로 국가적, 사회적 이익을 위해 일하며, 그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며 그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이를 말한다고 봅니다. 어떠한 사회문제에 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그것을 해설하며 대중을 설득하려는 것은 멍청한 짓입니다. 대중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고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좀 더 나은 방법, 세련된 방법을 사용했어야 하죠. 예컨데 쉬운 언어를 사용하며 이것이 어떻게 이익이 되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를 선전하여 선동하고 필요하다면 약간의 꼼수를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고 보거든요. 분석과 연구는 지식인들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진 이들은 그들이거든요. 그러나 대중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쉬운 말을 써서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더하기 빼기 수준의 계산을 유도하는 식으로 스스로 판단한다는 착각을 심어주어야 하죠. 정치란 그런 법입니다. 진보정치가 대부분 실패하기 쉬운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들은 똑똑하고 능력적으로도 나은 인력들이지만 정치적 방법론이라는 면에서 극히 무능합니다. 도덕적, 논리적 우위에 진보가 있다고 해서 대중이 그것을 자동으로 알아주는 게 아닙니다. 그것 홍보하고 선전하며 선동해야죠.


선거를 하면 항상 진보가 지고 보수가 이기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문제가 많은 이들이지만, 그들의 정치적 선동은 항상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고 표를 얻어가기 때문이죠. 물론 그 이후 듣고 싶은 말을 실제로 실현해주는가와는 별개로요.



9.

트럼프의 승리를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대중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는 것. 반면 힐러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점. 물론 선거전략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만,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기 보다 -본인이 판단하길- 해야 할 말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죠. 심지어 그녀가 파악하고 긁어줬어야할 이들은 내버려뒀고 그들은 힐러리가 아닌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던 트럼프에게 표를 줬고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명박 때나, 박근혜 때나. 실질적 가능성이나 문제점 따위는 무시하고 일단 막 던지고 보는 식으로 공약을 남발했죠. 대중이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들이었고요. 그리고 현실에서 그것들은 대개 폐기되거나 이행되지 않았고 말을 바꾸었습니다. 


민주당의 실책이나 문제점, 박통에 대한 향수나 종교적 광신에 가까운 -박근혜나 박정희는 물론 북한에 대한 혐오나 보수에 대한 찬양 등과 같은 종류의 종교적 믿음을 의미함.- 지지 같은 요소들도 있었지만 정치집단으로서의 새누리당의 선동은 모두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식이었죠.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실제로 하는가와는 완전히, 완전히 별개로 말입니다.



10.

앞서 말했듯, 대중은 그 자체로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며, 상식적 수준에 맞는 의견을 보편적으로 가집니다. 이는 대중을 이루는 개개인들에 의한 그 사회의 한계이자 사회지성의 평균이기도 하고요. 이는 사회적 상식이 달라진다면 대중의 태도 또한 달라진다는 것이고, 이걸 반대로 말하자면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것은 마찬가지로 사회적 상식 또한 변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50년대와 2016년대의 상식은 사회적 환경, 문화적 토양, 교육수준 등이 달라졌기에 차이를 가지는 것이며, 이를 뒤집어보면 사회적 환경, 문화적 토양, 교육의 문맥이 달라지면 그 상식 또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국가에 따라 대중의 상식과 시민의식이 차이를 보이는 이유입니다. 노무현 정권 당시의 상식과 박근혜 정권 하의 상식은 분명하게 차이가 있죠. 10년은 긴 시간이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변화하기엔 그리 짧은 시간도 아닙니다. 10년 전엔 상상도 못한 일이 지금와서는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그 감정적 반발이나 경악할 사실을 생각보다 더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러한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분명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했다는 것인데, 각종 비리, 부정부패, 국기문란이 늘어났다는 것이고, 그렇게 늘어난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조금씩 적응하며 받아들이는 수위가 변화 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노무현 때는 웬만한 이유로도 청문회에서 털렸다면 지금 수준에선 웬만한 문제로는 문제 삼지도 않고 넘어가거나 얼굴에 철판 깔고 강행하면 되는 수준이 되었죠.


노무현 5년의 한국과 이명박 5년은 한국은 달랐고, 이명박 5년의 한국은 박근혜 5년의 한국과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오바마 8년의 미국과 트럼프 4년의 미국 또한 다를 수 밖에 없죠. 빌 클린턴 4년의 미국과 조지 W. 부시 4년의 미국이 달랐듯이.


그러한 시간을 극복하고 다시 돌아오거나 더 진보하여 나아갈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동력이고 저력이긴 하지만, 다시 이전과 같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더더욱 길 것입니다. 이는 모든 민주주의 국가가 마찬가지고요. 부수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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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되어 서로 다투는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 에이브러햄 링컨, 1858년 연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익으로 분열되고 범죄로 뭉친다. 

- 볼테르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는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 보상을 통해 살아남은 학생의 부모와 죽은 학생의 부모를 분열시켜 싸움을 붙혔죠.


또한 어버이연합를 비롯한 보수단체를 동원하여 돈 때문에 정부에 반대한다는 선동을 했고, 지적수준이 낮은 보수국민들은 그에 홀라당 넘어가서 국민을 분열시켜 싸움을 붙혔습니다.


이러한 국민분열을 통해 새누리당과 정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죠. 1) 자신들에 대한 이슈, 책임론의 집중 흐리기 2) 대중의 이슈에 대한 정신력 고갈 3) 논란에 따른 이슈 늘어뜨리기 4) 그러한 시간 벌이와 분열적 다툼을 통해 유가족들의 포기 유도.


이러한 분열을 통한 논란과 이슈 생성은 대중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신력(인지력)을 고갈시키게 만듭니다. 그러한 정신력의 고갈을 통해 나오는 아주 질 나쁜 말이 바로 '이제 그만하자. 지겹다.'입니다. 지겹진 하겠죠. 몇 주 몇 달 동안 같은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누가 잘못했냐, 뭐가 문제냐, 어떻게 할 것이냐 등등이 새롭게,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니까요.


물론 세월호 때는 고작 며칠만에 지겹다 그만하자 같은 선동이 나타났지만..


하여간, 이러한 분열은 대중들로 하여금 수평폭력을 발생시키게 합니다. 볼테르의 말처럼, 이익으로 분열시키는 거죠. 어린이집, 임금피크제 등, 이러한 정책은 대중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그들의 목적이든 아니든, 분명하게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죠.


물론 이익만으로 분열시키는 건 아닙니다.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 따위로도 분열시키죠. 사람의 목숨과 제도, 부정부패의 문제를 정치적 갈등으로 선동하여 프레임을 짜고 그에 맞게 싸움을 붙혔던 것도 세월호 때 나타난 사례고요. 



이러한 정신력과 인지력에 대해 설명한 좋은 글이 있습니다.



...몇몇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까다로운 인지작업과 유혹의 도전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1~2분 동안 7자리 숫자를 기억하라느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 케이크와 건강에 이로운 과일 샐러드라는 두 가지 디저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 시스템 2(이성)가 바쁘면 시스템 1(본능, 직관)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시스템 1은 단 것을 좋아한다.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인지 부하가'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면과 마찬가지로 음주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이 수행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들을 보면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우마이스터는 의자나 자제력 유지 노력이 피곤한 일임을 거듭 확인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훌륭한 설명이기에 더 덧분힐 것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 몇개 있죠.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 세 부분이 핵심입니다. 여러 이슈를 만들어내어 그 이슈에 대해 판단력을 발휘하게끔 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것들을 한참 나중에 등장시키는 것은, 단지 그것에서 비롯된 갈등과 논란이 많고 논의에 따른 결과가 그만큼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역할을 통해 대중들의 정신력(인지력)을 고갈시키고 자아 고갈 상태인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의도했던 결과만을 내놓고 납득, 인정시키거나, 혹은 그에 대해 더 싸움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넘어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분열은 그러한 논란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적절한 것인데, 책임소재가 명확하고 단일된 입장의 대중과 싸우는 것은 필패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책임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들고, 단일된 입장을 분열시켜 그 자체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어 정신력을 고갈시키는 것은 해당 책임자, 정치세력에겐 매우 현명하고 바람직한 방법이 되죠.


물론 그것이 정의롭거나 올바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각자에게는 그것이 필요할 뿐이죠. 비정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새누리당을 위시한 보수정당은 오랫동안 기민하게 살아남았죠.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기사는 그들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죠. 자신들이 하는 나쁜 짓을 남들이 한다고 모함하며 선동하는 것. 사례는 많습니다. 당장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이용하며 했던 어용 대중선동들부터가 뿌리가 깊죠.



박 대통령 "분열 꾀하며 북한 옹호하는 세력 막아야"



하지만 정작 생각해보면 국민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새누리당의 전문입니다. 성주 사드, 세월호,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이용한 어용 선동, 테러방지법, 메르스, 교학사 교과서, 국정교과서, 노동개혁, 임금피크제, 철도 민영화, 귀족노조, 국정원-새누리당-청와대-군의 여론조작 선동.

위 링크의 말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보수 세력 전반이 곧 빨갱이, 북한 옹호세력이 되는 겁니다. 우스운 일이죠. 링컨의 말마따라 대한민국을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안보, 경제 이슈를 주장해온 보수 그 자체라는 점이요.


이러한 분열이 잘 먹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국민들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보수 국민 대부분은 확실하게요. 

2016/07/12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보는 미개한 개돼지들.

2015/12/31 - [취미/이야기] - 정치병의 발병원인.

2013/12/19 - [취미/이야기] - 판단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카너먼이 말하듯) 피상적인 판단을 하며, 진영에 따라 입장을 정하고 언론이나 정부 등 자기편이 하는 말만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외의 것은 무조건 배격하는 등의 태도 때문에요. 전혀 민주적 소양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그들의 태도와 지적수준과 사상적 빈약함이 선동에 있어선 최고의 조건이니까요.



참고로 이러한 '자아 고갈' 현상은 단순히 사회적, 정치적인 혼란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아 고갈 현상은 저소득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 보수정당에 표를 주고 지지하는 계급 배반 현상 또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설명하게 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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