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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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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24.02.14
    권력에 관하여 : 혐오와 차별의 정서적 근원 중 하나. 1
  2. 2021.06.11
    윤리로 휘두르는 정의의 폭력.
  3. 2020.10.20
    극단주의와 반지성주의, 정의를 독점한 편협한 바보들.
  4. 2019.03.09
    여성은 약자? 약자의 폭력성.
  5. 2018.12.02
    페미들의 현실감각 문제와 정신병적 공격성의 구조. 6
  6. 2018.08.05
    한국 페미의 젠더 감수성 주장의 위선과 편파성.
  7. 2017.05.16
    성적 대상화와 성욕의 문제.
  8. 2017.03.19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근본적 한계. 4
  9. 2016.09.07
    메갈이 왜 페미니즘이 아닌가. 5
  10. 2016.07.23
    웹툰 작가들도 독자들에 대해 짜증은 가지고 있었을 겁니다. 18
  11. 2016.07.20
    넥슨 성우 사건 관련 메갈 물타기 선동으로 놀아나는 작태. 6
  12. 2015.12.01
    일베와 메갈, 성혐오에 대한 단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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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쓰는 것에 의미가 있고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 쓰이지 못하는 권력은 그 자체로 도덕적이지 못하고 문제적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것을 행사해야 할 필요를 요구 받고, 어떠한 결정, 판단, 결재, 거부, 임명 등 다양한 부분에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필요한 조치들이 작동하지 않게 되고 이는 그 조직의 발전과 역량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할 필요까진 없지만 필요한 권력을 적합하게 행사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해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다. 앞서 권력을 지키는 것에 의미를 둬선 안 된다고 했지만 이는 권력을 그 자체로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떠한 적합한 행사를 하는 것을 거부한 채, 그 권력자의 부덕함과 필요성을 부정한 뒤 새로운 사람을 그 자리에 올려 그러한 권력을 행사하게 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은 역시 비도덕하고 문제적이다. 즉, 의무나 책임보다 감투를 지키는 자의 권력을 말하는 것이다. 

권력은 적합한 사람이 적절하게 행사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 행사되거나 행사되지 않을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행사할 의지도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행사해야할 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부적절한 인사인 셈이다. 권력도 써본 사람이 잘 쓰는 것이고 써본 경험이 있어야 더 큰 권력을 다루는 법을 알게 된다. 능력과 경험에 비해 지나치게 큰 권력을 위임하는 것 역시 문제적이고 능력 있는 자에게 아무런 권력도 주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크고 작은 권력을 지닌다. 작게는 학급에서 주먹과 카리스마, 리더쉽으로 얻는 권력이나 반려동물간의 수직적 관계가 있을 수 있고, 가정에서 부모가 가지는 권력이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의 관계도 있으며 대통령과 각 부 장관의 관계나 사장, 혹은 대표와 직원들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중 어떠한 관계는 권력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권력이라기 보단 의무에 가깝기도 하고 어떠한 사회적 관계와 다른 자격과 소양을 요구하는 관계도 있다.


사회구조적 관점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떠한 권력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구매자-판매자의 관계나 고용주-직원의 관계와도 다르다. 후자의 경우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큰 층위에서의 이야기이다. 가령,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관념에서 이루어지고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진짜 권력을 가져본 적 없고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경우 내세울 수 있는 자부심이나 정체성이 부족하다. 


그렇기 때문에 생득적으로 부여되는 정체성으로 자신의 권력 구조를 형성시키길 바라는데, 피부색에 따른 우열로 인종차별을 가하며 권력 관계를 형성시키는 경우나 성별을 근거로 이성을 열등하고 나약하며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 경우가 그러하고, 민족에 따라 우열을 설정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이것은 실질적 권력 관계는 아니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성향 내지는 믿음에 따른 행사이다.

대부분의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와 같은 이들이 대부분 저학력, 저소득자인 이유는 그들이 단순히 못 배웠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보다 더 열등한 자들을 멸시하고 공격하며 자신의 사회적 층위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함에 가깝다.

이는 노비가 해방될 때 양반이 아니라 양민들이 반발했던 것과 유사한 이유이다. 물론 그들에게 노비가 자신들과 맞먹으려 든다는 계급 반역적 현상을 거부하는 것 역시 결코 작지 않은 이유일 테지만, 아래로 가해지는 계급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로 최하층민의 존재는 어떤 면에선 위안적일 지경이다. 또한 전근대적 사회엔 대체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받이용 계급이 존재하곤 한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사회엔 명시적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져 있으며 더 다각적이고 복합적인 사회가 되었다. 전근대적 관념은 사멸하지 않았으나 다른 형태와 밀도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이유로 차별과 혐오가 발생한다. 저소득 하층민들에게 그들이 가장 밑바닥이 아니며 가장 쓸모 없고 무가치하지 않은, 자존감과 정체성을 무너뜨리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들이 표심으로서 정치적 향방을 흔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그것이 미디어와 진짜 권력자에 의해 유도되고 조장되었다곤 해도, 그들은 비로소 권력을 가지게 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적어도 그들의 요구나 한 표가 실제 결과로 증명되었을 때 그들은 그렇게 믿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그들은 권력을 가져본 적도 없고, 행사해본 경험이 적다. 그들은 권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며, 누구에게 줘야 하는지 등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지고 있을 뿐 그것을 쓰는 방법은 지나치게 원초적이다. 그들은 장기적이거나 생산적인 비전을 가진 게 아니고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보다 더 우월했으면 하는 것이고, 그들이 낙인 찍은 적을 몰아내거나 싸워서 물리치거나, 죽여 없애는 것이다. 

즉, 그들이 진짜 권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 줄 몰라 써선 안 될 방식과 방향으로 그것을 휘두르는 것이고, 그렇게 하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이 선거에서 행사하는 권력, 민주적 요구는 차별적이고 혐오에 근거하고 있는 셈이다. 좌파 빨갱이를 몰아내야 한다는 둥, 흑인들이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둥, 이민자를 쫓아내야 한다는 둥, 여성의 사회적 진출보다 가정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등의 것 말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은 국가의 권력을 가진 자들임에도 왜 그들은 권력을 가진 적 없으며, 그렇게 느낄까? 바로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는 이들 중 월 180만원을 벌며 대출 빚이 1억이 있는 가정의 고졸의 말보다 대기업 회장의 말이 더 강력하게 작용할 것이고, 지방 전문대 출신 직장인보다 인서울 재학생의 발언이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돈이 있고 권력이 있는 자들, 엘리트들은 그들의 돈과 권한, 인맥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움직일 수 있다. 

특정한 의제를 공론화 시킬 수도 있고, 묻을 수도 있고 물타기를 하며 바꿔치기를 감행할 수도 있다. 특정 직종의 이권을 보호할 수도 있고 위협할 수도 있다. 그들의 규모는 국가에서 n%에 불과하거나 그 이하일 것임에도 그들의 힘은 국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위 층위자는 언제나 권력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고용이 되었고, 결코 높은 자리라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타인의 존경과 존중을 받기에 어려운 위치에 있다. 설령 겉으로 그러한 대우를 요구하고, 그렇게 보인다 해도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법이다. 그 자신 또한 그랬을 테니까.

그렇기에 그들은 스스로 우월할만한 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든 사회적 성취와 성공에 실패 했으니, 내세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을 것이기에 가진 것이라곤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 스스로 노력하거나 얻어내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생득적인 것이 공통적으로 선택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데, 인종, 민족, 그리고 성별이 그러하다.

왜 어떤 이들은 여혐 일베나 하고 어떤 이들은 남혐 페미나 하고 있을까? 그들의 사회적 신분과 경제 상황은 어떠할까? 일베는 그나마 더 넓은 범위의 사상을 다룬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외교안보적 영역에서 제나름의 세계관을 가진다. 그 세계관의 완성도와 논리성, 합리성이 어떠한지와 별개로 더 다양한 층위와 계층을 포함할 여지와 역량이 있다. 그러한 이유로 일베 류 가치관은 엘리트에게도 입맛에 맞는 논리와 주장을 형성하고, 사회 하층민에게는 더더욱 특별한 사상이 되어줄 수 있다. 

엘리트들은 그들이 우월하며 더 많은 특혜를 받아야할 이유를 말하고, 보수진영엔 진보좌파를 탄압하고 권력을 확보해야할 정당성을 제공해주며, 하위 층위에겐 증오하고 혐오하여 우월한 기분을 느끼게 해줄 것 내지는 공격해도 좋을 적을 제공한다.

 


반면 페미에겐 성차별에서 기인하는 남성 혐오적 정서와 논리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나도 처참할 정도로 부족하고 비합리적이기에 정신병적 증상과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들의 소아병적 펨셀꼴값병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경제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고, 설령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서조차 기묘한 사상적 중독을 제공한다. 

이는 여성 특유의 여성 편향적 태도의 끼리끼리 문화에서 근거하는 바가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잘못이나 비난에는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편을 들어주고 맞서 싸워주는 것, 총체적으로는 여성들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공감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겪어온 차별과 핍박에 따른 약자들의 단합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40대 이상 세대에게나 통용될 것이고, 30대 초반 이전의 여성 세대에겐 정당성 없는 주장에 가깝다.

여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에 모자람이 없다 하여도 남혐 하는 꼴페미가 될 수 있다. 혐오가 비합리적인 이유에서 기인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혐오하는 자들은 언제든 어디든 존재할 수 있고, 뻔뻔한 가해자보다 모든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한 선한 피해자가 되고 싶어 하는 졸렬한 피해자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남성에게 피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를 받는 기분이 들기에 피해 망상에 빠진 것이고 누군지도 모를 여성이 남성에게 피해를 받았다고 그것이 자신인 것처럼 이입하여 타자와 자아의 구분을 하지 못한 채 가해자 전체 집단을 사악한 집단으로 매도하기를 즐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성을 증오하고 혐오할 이유이고 명분일 뿐이지 실제로 그들 전체가 사악한 집단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도리어, 그들이 사악해야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만들어서라도 공격하고 싶어 한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피해자로서 모든 도덕적 정당성을 독점하고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PC, 페미 진영은 사회적 신분도, 경제 상황도 좋지 못하기에 적을 찾고 낙인 찍어서 혐오한다. 일베 류 가치관보다 더 좁은 범위의 사상을 다루기에 확장성은 떨어지고 합리성은 더더욱 부족하지만 크게 보아 단 두개 뿐인 성별을 기준으로 했기에 단순하고, 단순한 만큼 다른 이해관계를 떠나 이분법적인 구성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PC충 페미 세력은 일베보다 규모가 적다. 단지 더 시끄럽고 노골적으로 문제적일 뿐이다.

페미 진영이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기에 그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고자 한 근거가 바로 생득적으로 부여되는 성별이다. 여성 혐오적인 남자들의 성차별이 그들이 성취한 것도, 가진 것도 없는 것에서 기인하는 태도였다면 페미 진영의 남성 혐오적 성차별 역시 같은 이유에서 근거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성 관계에서도 못생기고 뚱뚱한 자신의 모습에 있어 관리를 하거나 다른 매력을 만들고 찾으려는 노력보단 먹고 자는 것만을 즐기던 이들이 자신의 못난 외모를 Do not need a prince라는 표어와 탈코르셋이라는 용어로 일부러 꾸미지 않는다는 둥 자기들 입맛에 맞는 명분을 찾은 것 뿐이지 본질은 게으르고 못생긴 것 뿐이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자들은 타고난 만큼 대단한 노력을 평생 동안 하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페미 진영은 소아병적인 궤변을 일삼는 것 뿐이다. 그들이 연애 시장에서 왜 선택 받지 못하는 Femsel이 되었겠는가? 그들이 선택 받을만한 매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더 나은 경제적 위치에 서지 못했을까? 군대를 가지 않아 최대 2년의 시간에 특혜를 받는데도 말이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서라도 보는 것이 맞다.

모든 여성이 페미가 아닌 이유는 다른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서도 그들은 노력한만큼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부한만큼 성적이 나와 대학을 가고, 노력한만큼 직장을 가져 일하며 돈을 번다. 그들은 사회 생활과 무난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혐오와 차별에 힘을 쏟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차별 정서나 공감대가 있을지언정, 페미라고 하긴 어렵다. 평범한 남성들도 어떤 영역이나 분야에 있어서 성별에 따른 차별적인 피해를 받거나 불합리하다는 생각을 가지곤 있지만 그렇다 해서 여혐 일베충이 아닌 경우가 있듯이 말이다.

그러나 페미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적으로 성취가 낮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 단지 방송국, 유튜브, 기자 등 눈에 크게 띄는 이들이 많아서 착시 효과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들이 직장이 있어야 하는 블라인드, 메이플 환불 및 탈퇴 등에서 보여주는 화력을 보면 간접적으로 그들의 수준이 드러난다. 하위에 속하는 자들이 생득적인 요소로 우월감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일베가 가해자 내지는 행사자로서의 권력을 추구한다면 페미는 피해자로서 가해의 정당성을 독점하는 것을 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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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는 아니었겠냐만, 최근 들어 극단주의가 더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극단주의의 종류인데, 어떤 사상이고 가치관이고를 떠나서 파시즘적 극단주의화가 눈에 띕니다.

 

조국 사태나 윤미향, 심지어 최근의 박지성 논란을 보면 하나같이 정치적 문제라기 보단 차라리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가까운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고, 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들이 위선이니 뭐니 하는 걸 떠나서 그들을 비판하고 욕하는 이들을 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치, 사회적 논란 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건사고에 똑같은 방식으로 공격하는 이들인데, 이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상대가 잘못했다면 그건 악이고, 그걸 비판하는 나는 정의이며, 그 정의의 기준은 윤리이되, 내가 휘두르는 폭력은 또 다른 악이 아니라 정의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나쁜 놈에게 휘두르는 절제 없는 폭력은 정의로운 비판이자 정당한 처벌이라는 겁니다.

 

 

그들이 비판의 대상이 될만한 논란을 가진 이들을 비판하는 거 자체는 이상할 게 아니고 때로는 정당하고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들에겐 한가지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바로 나는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력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이라는 전제죠. 그렇다보니 상대방의 논란이 완전히 밝혀지기도 전에 일단 악인으로 낙인찍고, 정의로운 본인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처벌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걸 가지고 있습니다.

 

불의나 잘못된 것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비판을 하거나 평가, 판단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사회적 윤리, 도덕의 기준을 재확인하는 것도 있어야 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입니다.

 

근데 이들은 그 선을 훌쩍 지나쳐버리는 게 문제라는 거죠. 마치 사회에 속해있으면 안 될만한 악, 혹은 적, 또는 적그리스도 따위로 설정하면서 그들을 몰아내고 척결하며 말소시켜버리는 것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 할 정도로 극렬하고 증오와 혐오를 절제 없이 드러냅니다.

 

그렇게 드러낸 감정일수록 본인 스스로는 정의롭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죠. 문제는, 그들이 아무나 잡고 그 지랄을 하는 게 아니라 명백히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때로는 정말 잘못된 것에 그러한 공격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윤리적 기준을 두고 폭력을 휘두르는 거고, 그 폭력을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는 게 진짜 문제라는 거죠.

 

당사자에겐 마땅히 받아야할 처벌이라고 생각하면서요.

 

 

더 우스운 건 그들에게서 어떠한 철학이 없거나 윤리적 기준점이 모호하여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겁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준은 있는데, 그 기준은 바로 자신이 느끼는 말초적 감정입니다. 정확히는 분노. 이거죠. 자기가 얼마나 분노하느냐에 따라 받아야할 처벌의 강도가 달라지고 얼마나 사악한지가 결정됩니다.

 

딱 파시스트들이 지들 꼴리는데로 모여다니며 몽둥이 휘두르며 정당성 없는 제재를 일삼는 것처럼요. 스스로를 정의이자 질서라 생각하며. 사회의 적과 싸우는 고결한 투사를 연기하며.

 

 

그러다보면 이들은 점점 자신들의 "역할"에 빠져들어버립니다. 마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면서요. 일베, 메갈 투사들처럼 스스로 어떤 신념이 있다고 생각하고 마치 어떤 철학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부적으로 형성되는 감정적 분위기 내지는 어떠한 선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방향성에 따라서 움직이는 좀비들이죠. 실제론 스스로의 판단은 전혀 없고, 스스로도 언어화시키지 못하는 인상과 엉성한 가치관을 기반으로 무엇은 옳고 무엇은 나쁘다. 라는 식의 단순한 세계관만 있을 뿐이거든요.

 

그런 이유로 사안에 따라서도 폭력의 강도가 달라지고, 심지어 똑같은 문제라고 해도 그 사건 당사자에 따라서 아예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고 무시되기 일수이며, 마찬가지로 똑같은 종류의 사건임에도 사안마다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일관적인 기준이 있어서가 아니라 감정적으로 형성되는 인상이 중요한 거고, 그 인상에 따라서 개별 사건마다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활동은 실상 사회적 이익을 발생시키는 게 전혀 없고, 오히려 귀만 어지럽히기 마련이며, 때로는.. 아니, 꽤 자주 그들 스스로 논란을 만들어내기 마련인데, 스스로를 정의롭다 여기니 외부의 비판을 적의 공격으로만 여길 뿐이지요. 또한 정의로운 활동이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니 그러한 사건사고에 열심히 자신의 감정을 배설해냅니다. 그 감정적 배설을 정의의 증명이자 당사자가 받아야만하는 마땅한 처벌로 생각하죠. 그리고 지나친 공격에 상대가 고꾸라지면 정의의 증명이라며 환호합니다.

 

 

정말로, 최근들어 어떠한 사건사고가 터지면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욕먹을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이라기보단 지독할 정도로 고결한 윤리적 기준을 적용시키며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악인이고, 심지어 그러한 악인을 만들고 싶어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왜냐? 악인이어야만 자신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정의라는 정당성이 생기고, 그러한 무절제한 폭력은 쾌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문제를 일으킨 이들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윤리 기준을 만들거나,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굴 두들겨 패며 즐기고 싶은데 정의롭고는 싶은 이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과장시키고, 과대해석하며 과몰입하면서 두들겨 패죽여도 무방한 악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는 거죠.

 

요즘 발생하는 논란과 사건 사고를 대하는 걸 보면 그런 경향성들이 보이고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회적 윤리 기준이 점점 모호해지고 지리멸렬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반대로 보자면 전통적 윤리기준들이 해체되고, 의심 받고, 비판 받으며, 다시 형성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마 둘 다가 아닐까 싶더군요. 일베, 메갈 등 극단주의적 정치병자,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무너뜨려 자신의 패악질을 정당한 자유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의 분탕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 마땅히 변화하는 과정에 끼어들어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구성하려는 시도 같은 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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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난 당시에, ‘여성’의 역할에 갇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어서 화가 난 상태였다.

뒤돌아보면 그건 사회적 억압과 내 성정체성, 썩 불행했던 가정사 등등이 섞인 결과였다.

어렸을 때야 우리편 vs. 니네편으로 모든게 단순했지만. 돌아보면 그건 결코 단순치 않았다.

사람 일이 얼마나 복잡한 건데. 하지만 그 때는 상관없었다.

내 정신적 불행을 잠시나마 외면하는 데 ‘사상’만한 게 없었으니까.

일단 겁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 오빠와 차별대우하는 부모가 싫었고, 너무 일찍 자각한 내 정체성이 싫었고,

내가 짊어진 짐을 이해할 수 조차 없는 세상이 싫었고. 기타 등등. 모든게 내가 여성이기 때문이면 간단했다.

근데 돌아보면 그냥 이런 생각이 드는거. 그게 뭐? 내가 불행한게 내 주변 개인들 탓인가?

IMF때 폭삭 망한 부모가 나 미워서 날 내보냈을까? 오빠는 잘 되고 나 망하라고 등록금 안보태줬을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굳이 호모포비아라서 날 외면했을까?

나에게 겹쳐진 불행들이 어떤 한 사람, 한 집단의 탓인가? 울분을 토하면 그게 사회운동인가?

하지만 그 때, 그쪽 집단 안에 있을 때는 몰랐다.

거의 절대 다수의 내 문제들은 사실 ‘우리편 vs. 니네편’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걸.

나를 둘러싼 상황은 더럽게 복잡한데, 이게 단순히 ‘여성의 억압’이라는 필터로 단순화되었을 뿐이라는걸.

난 내가 20년쯤 젊었더라면 요즘 흔한 애들처럼, 깨어있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후략)


한 레즈비언 아줌마의 넋두리.


현대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전문가라고 해도 현실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그 외의 영역에선 남들보다 조금 더 낫거나 남들과 큰 차이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선 다양한 의견과 다각도의 관점들을 수렴해야만 하고, 그러한 다양성이 충족되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의 조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주의자, 반지성주의자들은 그러한 사회를 너무나도 간단한 형식으로 파악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큰 오류를 범하고는 하는데, 그들의 지성이 뛰어나지 않거나 관점이 너무나도 편협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죠. 


문제는 그들이 단지 멍청하기만 한 게 아니라, 고집까지 세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른 시각과 관점을 알지 못하고, 심지어 받아들이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이고 자신의 관점이 진리라고 여깁니다. 저는 이를 독선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들이 어떠한 사회문제나 정치를 판단할 때 자신의 판단이 정의이고 다른 관점과 다른 생각은 틀린 것, 혹은 잘못된 것으로 기준하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그들의 모자란 지성과 편협한 시각과 함께 쓸데없는 자존심과 고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상을 판단하고 평가할 때 한두 가지의 간단한 논리와 딱 그 수준의 사고로 제단한다는 겁니다.



제가 보는 소설 중 천마신교 낙양지부(2부는 낙양본부)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작가가 무공에 대해 흥미로운 관점으로 서술하였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정공은 불세출의 천재(입신의 경지)가 어마어마하게 넓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전체를 그려 만든 무공이기에 뛰어난 오성(재능)을 가지고 그가 만든 체계를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는 인재라면 시간이 느릴 뿐이지 꾸준히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반면 마공의 경우 위가 아닌 아래에서부터, 자신의 논리와 관점을 점점 체계화시켜 마공을 뜯어고치고 발전시킨다는 점인데, 문제는 이럴 경우 낮은 수준의 체계에선 충분히 통할 정도의 논리와 형식을 갖추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그 체계를 그대로 쌓아올리다보면 체계 스스로 모순이 발생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할 때 주화입마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잘해야 마공을 잃고 평범or폐인이 되거나 나쁘면 걍 죽죠.


그럼 천마신교의 마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느냐면, 서로 다른 관점과 개념을 가지고 무공을 만들거나 발전시켜가는 다른 마인과의 교류를 늘리는 방식으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저변을 넓히는 것이죠. 자신의 무공을 나누고, 자기가 준 만큼 다른 무공을 배우며 자신의 무공이 가지고 있는 근본 한계를 넓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가지 시각으로 바라보면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개념, 현상이 닥쳤을 때 반드시 오류가 발생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시각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체계 내로 편입시키면서 모순과 오류를 해결한다는 겁니다.


이는 무협이라는 소설 내의 설명이지만 이러한 관점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느껴지더군요.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바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반지성주의, 혹은 극단주의라 부르는데, 이는 반지성주의와 극단주의가 같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공유되는 교집합적인 부분, 혹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가 되어주기도 한다는 쪽일 것입니다. 반지성주의자이기 때문에 극단주의자가 되거나, 극단주의자이기 때문에 반지성주의로 빠지거나.. 


일베나 메갈류가 그렇죠. 그들은 매우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수준 낮은 논리와 사고로 판단하려 합니다.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그러한 것을 판단하기 위한 지적능력이나 소모해야할 인지력이 부족한 이들에게서 더 쉽고 광범위하며 빠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라면 그것이 왜 문제인지 제나름대로 분석하고 판단할 지적능력이나 그 능력을 활용할 정신력(인지력)이 필요한데, 여유롭지 못할수록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전라도 혐오와 한국 혐오. 가해자의 피해자 혐오.

https://konn.tistory.com/703


앞서 짚었던 편협한 시각, 저열한 지성을 고려해보면, 복잡하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을 가진 이들일수록 더 간단한 논리의 선동이 잘 먹힐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많이 비판받고 지적이 나오는 사이버렉카와 그들의 추종자, 무사트와 그 직원들에 대한 공격을 하는 자들이 많고 그러한 행위에 죄책감이나 가책 따위가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행동을 정의롭다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들이 비판하는 문제 삼는 현실의 여러 현상과 객체들은 제각기 더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 것들인데 너무나도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걸 더 떨어진 지성으로 판단하다보니 저열한 결론이 나오고, 그들의 쓸데없는 고집은 자신을 정의의 포지션에 설정하는 거죠.


애당초 모든 인간들은 자신을 정의롭고 공정한 판단을 한다 여기지만, 객관적 현실은 전혀 다르게 판단될 수 있듯이, 그들이 비판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에 있지 그들의 주관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가지는 한계 덕분에, 그들의 철학도, 신념도 정교하지 못하고, 허술하나 최소한 체계가 정립된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한계와 함께 어떤 것을 판단할 때의 유일한 기준은 자신들이 소속된 커뮤니티에 형성된 분위기거나 그저 자신의 기분, 비위에 불과합니다.


더닝-크루거 효과에 대해서는 익히 아실테니 굳이 설명하고 넘어가진 않겠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똑똑하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가르치려들면 감히 나를 가르치려한다며 역으로 가소롭게 여기죠. 정작 본인들의 저열한 지성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고요. 


너 자신을 알라는 시대를 초월한 금언인 이유가 있는 법이죠. 하여간 자신의 무지함과 편협함을 자각하지 못한 이들이 자신이 독점한 정의의 자신감을 기반으로 오히려 남들을 가르치려하고 넌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일베, 메갈이 자신의 태도와 가치관을 자랑스럽고 비판받거나 논파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죠. 지금은 내가 잘 몰라서, 니가 말이 안 통해서 포기하는 거지 내 관점과 사상이 틀린 건 아니다. 라고.


그런 이들이니 공정이나 정의라는 것도 앞서 언급한 기준에 따라갑니다. 소속된 집단의 분위기나, 자신의 기분과 비위. 이걸 직관이라고 하면 직관이겠지만, 그 직관도 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통찰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기존의 윤리나 가치관, 철학이나 사상을 비웃고 비판하고 하는 거야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부터가 그러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서는 언제나 이중적이고 사안에 따라 다른 기준이 될 수밖에 없죠. 그 기준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다르고 자신의 비위에 따라 달라지는 가볍기 짝이 없는, 가변적인 물건이 되는 거고요.


일베와 메갈을 위시하는 극단주의자들의 편협성과 독선성이야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태도들이고, 단지 이들 집단 뿐만 아니라 현실과 인터넷 어디에서든 존재합니다. 심지어 우리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다면 중요한 건 정도죠. 선을 넘거나, 지나쳤다는 표현이 존재하는 이유는 누구도 아닐 수 없는 요소에서 남들과 다름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인터넷의 악플러들이 연예인이나 일반인을 죽이고, 누군가의 아내를 유산시키거나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이 생기게 괴롭히는 이유는 그들이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정의라 여기는 편협한 바보들이 독점한 정의를 휘두르는 쾌감에 빠지고 싶을 뿐이기 때문이죠.


반성도, 성찰도, 고민도 없고, 무언가를 판단하고 적절히 설명해내기엔 판단력과 합리성이 부족한 겁니다. 그런 주제에 자신이 대법관이라도 되는 양 모든 것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뛰어난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죠. 기껏해야 인터넷에 나돌아다니는 글 몇개 주워읽은 것이 다일 것인데 자신의 판단을 과신하며 뭐라도 되는 듯이 굴죠.


그들의 태도는 소아병적이고, 비대한 자아가 여물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좁아터진 세계관 속에 남이 자리할 공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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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의 실험으로 잘 알려진 우리 속 두 비둘기의 사례는 흔히 복종의 자세를 취하면 공격을 멈추는 본능적 장치가 있는 늑대와 이미 패배한 한 쪽을 죽을 때까지 공격하는 비둘기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여러 사색으로 이끌기도 하죠. 약자인 비둘기의 잔혹한 폭력성이라든가.. 


물론 이는 비둘기와 늑대의 생태와 집단생활에 따른 본능의 차이를 염두해둬야 합니다. 가령 비둘기는 원래 싸움에서 지면 도망가야 하지만 가둬뒀기 때문에 두 비둘기의 생활권에서 쫓아내기 위해선 어느 한 쪽이 죽어야만 끝날 싸움이 된 것이죠. 원래라면 걍 싸움에서 지면 도망갔어야 했다는 겁니다.



로렌츠의 실험, 관찰과는 궤가 다르지만, 실제로 약자의 폭력성이 더 잔혹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데 저소득층, 막노동꾼이 자신보다 더 약자에 있는 이들(알바생, 공무원 등)에게 갑질을 하는 경우가 있죠. 실제 소득수준이 다른 지역에서 모두 알바 생활을 해본 이의 말에 따르면 더 잘사는 쪽이 더 유하고 예의있게 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도 있죠. 가진 자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손해나 피해에 더 관대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관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없는 자는 항상 부족하고 없기 때문에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고, 그만큼 조그마한 손해에도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죠.



페미를 위시한 여성계는 스스로를 약자라고 낙인찍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반대로 Girls can do anything, Girls do not need a prince라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히는 표현을 쓰며 약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죠. 공통점은 자존감이 낮다는 점입니다. 후자는 단지 여성 특유의 허세, 강한 척, 의연한 척을 하며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는 감정과잉에 빠져 있다는 거죠. 


사실 여성은 약자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맞지만, 페미 진영에서 말하는 약자라는 말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캐치프라이즈 따위에 더 가까울 겁니다. 사실, 여성은 여성이라는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죠. 아니, 그 이상입니다. 여성은 자기가 여자라는 점을 어필하며 그걸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죠.


유리천장이 있으면 유리바닥도 있다고 하는데, 여성들은 여자라는 성별을 유리바닥으로 써먹습니다.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특혜와 유리한 진형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죠.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공격하면 되려 찌질하다거나, 비논리적인 것을 가져와서 공격을 시도하죠.



여성이 약자일 때는 분명히 있고, 사회구조와 직업선택, 연봉에 있어서 불리한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실제 통계로 증명된 사실이고요. [각주:1][각주:2]


하지만 반대로 여성이 갑의 위치에 있을 때 더 노골적이고 뻔뻔한 갑질과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버지뻘' 원사에 반말하고 40세 중사 정강이 발로 차며 폭행한 20대 여군 대위

https://www.insight.co.kr/news/210538

'인벤’,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 “여성 CEO, 남성 직원들 술자리 데려가 사욕 채운다”

http://www.sporbiz.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0817
조현아 남편의 이혼 청구 사유는... "아내의 폭행·폭언 때문"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5/2019021502358.html
갑질, 어디까지 해봤니? 조현민 엄마 이명희의 ‘몰상식 DNA’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41687.html


위와 같은 사례는 단지 일부일 뿐이고,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사례일 뿐이지, 더 작고 흔해 빠진 권력형 공격은 일반적인 일상생활에서의 인간관계나, 특히 연애 관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다 그런 것도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여성은 섹스를 여성인 자신이 남성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시혜를 퍼주는 거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섹스 권력이죠. '내가 안 주면 니가 뭘 어쩔 수 있는데? 그러니 니가 나한테 굽실거려야지. 내가 갑이니까.'



폭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가 그 폭력에 더 쉽게 취할 수 있고, 돈이 없었던 이가 그 돈에 더 쉽게 취할 수 있으며, 권력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이가 그 권력에 더 취할 수 있듯이, 여성 또한 마찬가집니다.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의 위치에 쉽게 취하는 거죠.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약자라 낙인 찍고 스스로를 약자라 믿기 떄문에 권력과 힘을 가질 때 더더욱 잔혹하고 노골적이며 뻔뻔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성은 약자다? 원할 때, 약자인 것이 갑질(을질?)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약자인 겁니다. 선택적 약자이고, 자기가 더 유리할 수 있을 땐 언제든 폭군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입니다.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런 여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특히 자기가 페미를 한다는 이들은 백이면 백 그렇죠.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활동은 100% 여성 스스로를 위한 게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쾌감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싸울 대상과 전장 또한 자기들이 유리한 쪽으로만 취사선택하죠. 만만한 쪽만 건드리고, 공격하며, 불리하거나 건들기 무서우면 결코 건드리지도 않습니다. 같은 여성 피해자라도 건드리기 껄끄러운 상대가 저지른 일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고, 만만하고 약해보이고 그 대가가 돌아올 거 같지도 않은 이들에 의한 문제에는 미친 개새끼마냥 덤벼들고 물어뜯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여성은 약자다. 라는 말이 정치적 캐치프라이즈일 뿐이지, 실제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통찰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시키고 날조하면서 만들어낸 허상을 가지고 현실인 척 내뱉는 거죠. 그런 이유로 이들의 활동은 또한 여성의 인권과 사회정의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전략 자체가 틀렸고요. 적을 마구 만들었으니 그에 대한 반대급부가 오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 그들이 여성인권에 힘을 써줄까요? 적어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아닐 겁니다.



여성은 약자가 아닙니다. 어떨 때는 약자일 때도 있죠. 하지만 반대로 남성 또한 마찬가집니다. 남성은 약자가 아니지만, 어떨 때는 약자일 때도 있죠. 그리고 솔직히, 보편적으로 남자가 더 약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강요되는 무언가야 있겠지만,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앞서서 죽어야할 때가 강요되는 경우, 여성은 공감하기 어려울테죠. 그렇기 때문에 군대와 군인, 병역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거고요.

  1. https://sovidence.tistory.com/1000 [본문으로]
  2.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4035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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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사회생활과 같이 기존의 집단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환경과 인간관계의 경험을 접해보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현실감각이 뒤떨어진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일베와 메갈과 같은 비정상적인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메갈과 같은 페미를 한다는 여성 진영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현실감각과 개념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를 너무 자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특기할만한 요소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이는 비단 페미를 한다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여성들이 가지는 이상한 착각들이 있습니다. 페미거나, 페미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하는 경우 특히 더 그렇더군요.


가령 이수역 사건이나 아래의 방송에서 가지는 남성에 대한 이상한 관념이 그렇습니다. 흉기를 찾아온 가해자를 제압할 수 있느냐 물어놓고, 남자는 막을 수 있다. 제압할 수 있다는 듯이 말합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죠. 남자 또한 사람이고,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여자들이 참 이상한게, 남자들을 무슨 초인, 슈퍼맨 같은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보니 자기들이 때려도 별로 안 아픈 줄 알고, 세게 때려도 안 다치는 줄 알고, 무슨 엄청난 힘이나 맷집, 신체능력을 지닌 줄 압니다. 그러니 저런 가해자가 흉기를 들고 와도 제압할 수 있을 거다. 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죠.




이는 이수역 사건 때도 여성 가해자측이 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발로 차서 언니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았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나 나오는 연출이지 일반적인 남성이 일반적인 여성(이라고 하기엔 체급이 뛰어났으나)을 발로 찬다고 공중에 날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가 되려면 체중이 거의 두배는 되어야 하고, 근육질이어야 하며, 여성은 평균보다 더 작고 체중도 적게 나가야 합니다. 가령 그 움짤 있잖아요. 최홍만이 여자가 들고 있는 짐볼을 발로 차니 뻥 하고 날아가는 그런 거. 그마저도 짐볼의 탄력 때문에 더 날아간 거지, 맨몸에 차서 그 정도 날아가려면 맞은 사람 내장 터질 정도로 온 힘을 실어 차야할 겁니다. 


이수역 폭행, 불편한 진실? 상대 커플 女 “언어강간·조리돌림 자매가 먼저” 반전 주장

http://www.gnmaeil.com/news/articleView.html?idxno=386474


그는 “가만히 있는 우리를 비웃으며 계속 쳐다봤고 5명의 남자가 끼어들어 비난하고 공격했다”라며 “폭행 후 도망가려던 남성을 붙잡는 중에 발로 차서 언니가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서 계단 모서리에 뒷통수를 박았다”라고 주장했다.



뭐 어렸을 때부터 남성성이 부각되고 남자들 스스로도 허세 좀 섞어서 과장하는 면이 있고 그런 영향을 좀 받았다고 해도, 나이 먹어서도 그런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거 자체가 현실감각이 없다는 겁니다. 남성과의 접점과 현실에 대한 탐구심이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실제 남성의 현실적인 상태와 능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특히 이는 젊은 쪽일수록 심한데, 반대로 나이가 좀 있거나 결혼을 한 사람들은 그런 정도가 훨씬 떨어집니다. 남성과, 배우자와 더 현실적인 관계와 경험을 더 많이 했기 때문에 이상한 환상이나 관념이 상당히 깍여나간 상태죠.


다르게 말하자면, 여성은 남성에 대한 성적 감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무슨 초인이니 슈퍼맨이니 할 법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에서 온갖 특혜를 보고 있으며, 그에 대한 반대급부, 나름의 차별성을 겪고 있지 않거나 여성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한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더불어 여기엔 여성 특유의 비극 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모든 도덕적 정당성과 정의를 갖추고 있는 무결한 존재이자 그런 입지에서 죄인에게 무엇을 요구해도 정당한 피해자라는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가 뒤섞인 극도의 감정적 이입과 함께 성 권력의 압도적인 우위를 원하고 있죠. 


모든 여성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상황을 겪는 여성들에게 있어 그러한 경향성은 여성 특유의 생물적 성질 중 하나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페미를 한다는 둥의 그런 여성들은 그게 정신병적으로 작용하고 발현되는 이들이기 때문에 앞서 서술한 기제들과 합쳐서 한심할 정도로 현실감각이 없습니다.



그러한 현실감각이 없는 여성들에 대한 비판은 같은 여성이자 워킹맘의 맘카페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해본 것도 아니고, 혹은 그리 해본 것도 아니며, 판단력과 이성적 사고력이 증발한 채 자기 개인의 감정에 매몰된 여성들이, 혹은 그럴 수 있는 여성들이, 여성 특유의 끼리끼리 모이고 자기들끼리 뭉치며 동조해주고 심화되어가는 성질에 따라, 자기 집단의 폐쇄성과 막장성만큼이나 관념의 문제는 심각해지면서 자정작용을 잃고, 더 나아가 맘카페와 같은 배타적이고 까다로우며, 비정상적 집단으로 비화되기 쉽습니다.


즉, 여시, 메갈, 워마드, 맘카페와 같은 독재적 환경, 또는 종교적 광신도들이 모인 페네티시즘 타운이 형성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곳을 채우는 개인들은 현실감각이 없고, 여성 특유의 감정매몰에 빠진 정신병적 환자들이죠. 현실감각이 없으니 온갖 헛소리와 개소리와 병신논리가 판을 치고, 이성적 사고력과 정상적 판단력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소음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광신성과 접목되어 하나의 신앙이 되고, 그 광신적 신앙은 배타성을 가지며 타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작동하죠. 


현실을 살지 못하니 현실에 없는 이야기들을 만들거나,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헛소리를 해대는 겁니다. 오직 자기들끼리 태울 장작이 필요한 거고, 진실은 아무런 필요 요소가 아니니, 자기들끼리 맞장구 쳐주고 동조해주고 끼리끼리 모이며 소속감과 동지의식에 심리적 만족을 느끼는 여성 특유의 집단의식을 위해 특이할 정도로 많은 페미들의 증거, 증언, 사건 자체를 조작하는 사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요. 


이수역 사건에서도 당연히 들킬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거짓말을 해대는 건 그들이 정신병적 광신성을 가졌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 모집단에 태울 땔감을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자기 편을 들어줄 병자들이 많으니까요.


그렇다고 반박 당하거나 부정 당한다고 태도가 변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정신병이라고 하는 거죠. 아니라고 해도 자기들끼리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에 따라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거 자체가 정신병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환빠들이나 일베들처럼 말이죠. 둘 다 완벽하게 논리와 증거와 근거가 논파되고 박살난 채 쫓겨나거나 스스로 도망가도 결국 조금 지나서 다른 곳에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단지 페미들이 더 질이 나쁜 건, 자기 감정에 대한 매몰 문제인데, 당장 지 기분이 나쁘면 옳고 그름도, 증거와 근거도, 논리와 합리도 무시된 채, 무조건 자기 기분을 나쁘게 한 놈이 개새끼인 거고, 씹새끼가 되기 때문입니다. 뭐 어디 행사나 매장 같은 곳에서 뭐 안 되거나 할 수 없는 거 요구했다고 안 된다고 하면 바로 조금 기분 나쁘다고 바로 사람 무시하는 소리(ex.아 뭐래 찐따 같은 게.) 뒤돌아 서면서 툭 던지고 훽 가버리는 것처럼요. 


즉, 다른 병신들이 개털리면 아가리 닫고 꼬리 말고 떠난다면, 페미는 쳐털리고도 인정 안 하고 눈앞에서 뻔뻔하게 군다는 겁니다.




덧- 그런 현실감각의 문제는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더불어 자극되는 신데렐라 컴플렉스에 빠진 여성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죠. 진짜 별 것도 아니고 스펙도, 가치도 없는 여성이 도대체 뭘 믿고 그러는지 대단한 재벌이나 뛰어난 인재, 돈 많이 벌고 잘생기고 성격 좋고 자기만 바라봐주는 남자를 낚아서 결혼하길 바라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운 좋게 만나서 사귀고 결혼하게 되는. 


하지만 현실은 자기 자신은 별 다른 능력도 없고 스펙도 안 되고 외모가 훌륭한 것도 아닌 주제에 그런 것들을 한 없이 바란다는 겁니다. 노력도 안 하고 그냥 글자 그대로 운 좋게 멋진 남자, 조건 좋은 남자 걸리길 바라며 근처 카페에서 시간만 죽치고 있는 것처럼요.


딱히 머리가 좋지도 않고 인성이 좋아 보일 거라고 생각되지 않고 그냥 몸매와 얼굴만 예쁜 골빈 창녀 같은 여자만큼 자기 관리와 타고난 미모가 뛰어나질 않으니 반대로 남들의 기준을 낮춰서 평균을 자신에게 맞추고자 하는게 현 페미들의 탈코르셋의 실체입니다.


코르셋을 입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탈코르셋이라는 명분을 얻고 그걸 이용하는 거죠. 전형적인 인지부조화인 겁니다. 노력과 관리로 얻은 뛰어난 몸매와 외모는 (자기들이 얻을 수 없기에) 신 포도이니까 화장과 관리를 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외모를 기준화 시키는 속 보이는 짓거리죠. 자기들끼리는 여러 논리와 명분을 대겠지만, 애초에 자기 감정에 매몰된 정신병적 환자들이 하는 자기세뇌에 불과합니다. 자기들은 전혀 아니라고 하겠지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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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오늘의 유머 회원 성폭행 조작 사건

https://www.fmkorea.com/168560237

https://namu.wiki/w/%EC%97%AC%EC%84%B1%EC%8B%9C%EB%8C%80%20%EC%98%A4%EB%8A%98%EC%9D%98%EC%9C%A0%EB%A8%B8%20%ED%9A%8C%EC%9B%90%20%EC%84%B1%ED%8F%AD%ED%96%89%20%EC%A1%B0%EC%9E%91%20%EC%82%AC%EA%B1%B4


이거 말고도 예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젠더 감수성'이라는 것의 허명과 실체를 까발리기에 이만한 사건도 없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젠더 감수성이라는 건 이성의 성별이 다름에서 나오는 차이와 간극을 이해하고 동감할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개념과는 다르게 그러한 것을 극도로 편파적이고 진영적으로 사용하는 게 현 한국 페미들의 현실입니다. 심지어 같은 성별을 가진 이들 또한 진영적, 정치적 소재로 사용하면서 옳고 그름이나 정의, 법의 문제가 아닌 진영적, 정치적 승리를 위한 떡밥이자 도구로 사용하죠.


가령 위의 여시 조작 사건의 경우 그들은 진정으로 해당 인물의 성폭행 사안에 대해 걱정하고 공분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그러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것을 이용할 목적으로 반응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선 저러한 눈에 보이는 위선적 반응들이 나올 수가 없고, 나중으로 가면 서로 말이 바뀌고 글, 댓글이 삭제되며 일부는 손절 들어가는 게 아니죠.


심지어 이 사건에서 나온 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이러한 사건에 진짜여야 하는데! 하는 식으로 나온 적도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해당 캡쳐본을 찾을 수가 없는데, 누군가 발견한다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들 스스로도 젠더 감수성을 의미 있게 여기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남역 살인사건 때도 여혐사건이 아닌 정신질환자의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에서 발생한 범죄였지만 그 타겟이 여성이었다는 점을 들어 여혐사건이라 조작을 시도했죠. 심지어 추모 현장에서 싸움질, 비난 하는 행태가 이어졌고, 그런 성갈등 현장으로 비화되자 유족의 오빠 되는 분이 분노하기도 하고 유족들이 그러한 이유는 역시 그 사건의 본질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반감을 가지며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작 여성 측 진영에선 되려 유족들을 공격하고 자기들은 뭐 다른 목적으로 하는 거네 어쩌네 하는 식으로 나왔죠.


처음부터 정치적인 이용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몰려갔던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지, 피해자의 애도나 더 나은 건설적인 담론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죽음 또한 수단과 도구로 사용하는 지독한 소시오패스인 셈이죠. 


그런 주제에 젠더 감수성을 따진다는 건 정신병적입니다.



이러한 것은 남성에 대한 태도가 특히 다른데, 남성 관련 사건, 남성의 죽음에 대해선 조롱하곤 하죠. 간단히 검색만 해봐도 무더기로 나옵니다.



이런 수준임에도 젠더 감수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그러한 개념을 방패, 혹은 무기로 사용하는 목적입니다. 흔히 나오는 공부 하세요. 같은 말과 같은 맥락의 것이고, 그들이 불리할 때는 젠더 감수성, 유리할 때도 젠더 감수성을 운운하며 우위에서 계도하겠다는 소아병적인 정치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단적으로 보자면, 병역 문제에 대해 한국 여성들의 젠더 감수성은 없는 수준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 특히나 그런 문화가 강한데, 이는 성갈등의 영역 이전에 여성들의 군대, 병역에 대한 무관심과 어쩌면 의도적인 무시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다른 나라 여성의 경우 병역에 대해 의외로 관심을 가지거나 재밌게 들어주는 사람이 많다지만, 한국은 오히려 지겹고 짜증나는 이야기로 여기죠. 자신들이 포함될 수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 비슷한 것인지, 남성 위주의 마초 집단에 대한 결벽증 같은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병역 문제에 있어 남성들은 여성에 비해 무조건 손해입니다. 남자들은 군대를 선택하지도 않고, 그것에 동의하지도 않았습니다. 국가가 법으로 강제로 끌고 가는 거죠. 그리고 성인으로서 청년의 황금기를 겪어야할 20대 초반의 2년이라는 시간을, 20대의 1/5의 기간을 군대에서 날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잃는 건 너무 많죠. 심지어 건강이나 생명마저도.


근데 여자들은 그거 이해나 하던가요? 군대가 뭔지도 모르고 뭐 하는 건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고 아예 듣기도 싫어하죠. 병역 이야기에 대해 임신 이야기를 꺼내는 머저리들이 성별 안 가리고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고, 병역 논리에 대한 방어 논리로 임신을 끌고 오는 여성들도 있다만, 병역과 군대에 대해 이해하고 아는 여성은 극히 없지만, 반대로 남자들은 임신의 고충과 고통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압니다. 특히 찾아보거나 관심 있는 이들은 더 잘 알죠. 개월마다 어떤 문제와 고통이 있고 .. 심지어 임신 중에 여자는 거의 보물단지처럼 봐줍니다. 조금만 무거운 거 옮기려고 해도 남자가 대신 해주고 움직일 때도 손 잡아주며 부축해주고 할 정도로.


심지어 그 임신조차도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고 안 한다고 처벌 받는 것도 아니며 군대의 2년 가까이 되는 시간에 비하면 그 절반의 기간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서로 논쟁의 대상이 아니고, 전혀 관계 없는 요소를 억지로 싸움 붙히는 거라 멍청한 짓인 거고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이해를 안 하고 무시를 하고 소통을 거부하며 무조건적으로 군대는 모르겠고, 니들이 우리를 이해하라는 간접적인 강요를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하는 겁니다. 그게 불만이라면 자기들도 군대를 가거나, 아니면 남자들도 군대로 끌고가지 말라고 모병제 전환 시위라고 하면서 공동전선을 이루며 남자들의 입장을 지지해줘야죠.



이 점이 바로 여성의 젠더 감수성이 없다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여성들이 남성들이 겪는 병역의무에 대한 고충을 이해하거나 최소한 알기라도 하던가요? 전혀. 오히려 군대 이야기 나오면 지루하게 여기고 무시하고 그만 하라는 식으로 눈치주죠. 


병역의무는 명백히 성별의 차이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제도적 착취와 인생 전반에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그러나 젠더 감수성을 운운하는 이들 치고 이러한 진짜 젠더 감수성이 발휘되어야 하는 지점에 대해선 아무런 관심도 없죠. 아니, 사실 남성의 고충과 현실에 대한 모든 지점에서 그렇습니다.


왜냐면 처음부터 젠더 감수성은 정치적 의도로 사용되는 개념이지 성평등과 건설적 발전을 목적으로 사용하고 활동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그들은 정치병에 걸린 극단주의 집단이고, 반사회적인 집단일 뿐이지 어떠한 건설적 이상을 가진 이들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제되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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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남성에 대한 이야기, 비판에 대해서 반드시 구분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성(혹은 남성)의 성적 대상화와 남성(혹은 여성)의 생물학적 욕구 그 자체죠. 이는 분명히 다른 것이고, 구분되어야할 것들입니다. 많은 페미전사나 그들의 논리와 주장에 반박하는 이들이 논쟁을 하며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착각하는 경우거든요.


여기서는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남성의 생물학적 욕구라는 틀로써 표현을 하겠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주로 문제가 되고 실제로 더 많이 발생하는 일반적인 사례가 이런 요소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성의 성적 대상화라는 것은 그 여성을 하나의 주체로서 보는 것이 아닌 남성의 전유물, 전리품 같은 객체로 본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가령 수 많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여성을 남성 성공의 전리품이나 종속되어 헤롱 거리는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객체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죠.


이는 여자라는 존재를 생각하고 판단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가진 주체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닌 글자 그대로 물건이나 도구, 혹은 애완동물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킨다는 문제는 가집니다. 뭐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주변 여자들을 그렇게 대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정 성별이나 성별의 주체들을 객체화시켜 유희, 향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인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이어지는 거죠.


나는 여자를 그렇게 안 보는데? 라고 할 수 있지만 뭐, 특정 사상에 경도 된다면 그 반대되는 사상에 대해서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경우는 이상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저만해도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정작 여성을 객체화시켜 바라보지 않느냐, 그러한 묘사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느냐, 성적 대상화 하는 것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느냐 한다면 아예 아니라곤 말 못하거든요.


사실 남자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고, 그러는 게 현 시대에 있어서 이상한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러한 사상, 관념, 인식, 가치관은 분명히 남성우월적이며, 성차별적입니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그러한 인식과 가치관이 자신의 시각과 생각, 행동으로서 나타나거나 발현될 가능성을 지닌다는 거죠.


누군가 메갈이나 워마드를 아예 안 한다고 해서 그러한 주장과 논리에 동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메갈, 워마드와 같은 짓거리를 하거나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적지는 않을 수 있죠. 뭇 남성들이 그런 여성에 대해 우려를 하거나 고깝게 보지 않는 이유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쉬울라나요?


저 또한 이 문제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문제에 대해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니 뭐라 더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난 남자지만 여자를 그렇게 보거나 대하진 않아. 라는 말이 반드시 맞는 말이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언행으로 표출하는 것과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다른 문제고, 다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언제든 남성이 여성에 대한 우월감을 가지고 성범죄나 미소지니적 행동으로 이어짐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특정 시점이나 조건에서 특정 행동을 하게 유도될 수 있다고 볼 뿐이죠. 가정에서 간간히, 혹은 꽤 자주 마누라나 딸에게 대하는 태도 등으로.




뭐 이건 일단 이렇게 넘어가고, 남성의 생물학적 욕구 부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건 이상한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아닙니다. 많은 메갈이나 워마드 등의 꼴페미전사들이 자지로 대표되는 남성의 성욕 그 자체에 대한 원죄론을 주장하며 그 자체로 나쁘고 악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 데, 이 경우 반대 논리도 성립되어야 합니다. 여성의 성욕 그 자체 또한 나쁘다고요.


당연하지만 이는 무조건 틀린 말입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정당하고 선한 것입니다. 물론 자연계의 모든 것이 인간 문명에서 선하고 정당한 건 아닙니다. 인간은 문명과 사회라는 시스템을 만들어왔고, 이는 자연계가 아닌 인공적인 계(System)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독자적이고 인공적인 법칙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살인과 강간, 절도나 강도 같은 것이 선과 악에 따라 구분될 수 있다는 말이죠.


하여간, 성욕 또한 생물학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생물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이것을 부당하게 억제하거나 그 자체로 죄악 취급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자극에 반응을 하는 것이 죄악인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배고픔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이 죄악이 아니듯이 성욕 또한 그 자체로 정당하고 선한 것입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성욕을 어떻게 표출하는가, 혹은 억제하지 못하는가의 문제죠. 우리가 성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자극 받았다고 해서 누군가를 성폭행하거나 강간하거나 성희롱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설계해온 법칙이 있고 그에 따라 돌아가야 정의로운 것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남성의 생물학적 욕구 또한 그 자체로 이상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많은 꼴페미들이 이를 오해하거나 자신들의 지적, 사상적 노력을 간편히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발생한 극단적인 사고의 한 일면일 뿐이죠. 쉽게 말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거 생각하기 싫으니까 그저 저 좆대가리가 문제. 라는 간단한 명제 하나만 신성불가침의 법칙으로 설정해놓으면 만사해결이라는 무책임한 태도의 발로라는 거죠.


또한 그것은 남성혐오일 뿐이기도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남성의 생물학적 욕구, 성욕이라는 것을 화두로서 잘못되었다고 주장하고, 그 논리 위에 올려진 모든 주장은 비단 개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잘못된 근거/논리 위에 합리적인 주장이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이런 주장 뿐만 아니라 꼴페미전사들이 주장하는 대부분의 논리나 주장을 사실 그 자체로 반대로 뒤집어도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마찬가지로 남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한 문제로 지적할 수 있고, 그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논리는 거꾸로 해도 적용되죠. 남성의 성욕 욕구를 공격할 수 있듯이, 여성의 성적 욕구 또한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자체로 주장이 틀렸다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논리 그 자체의 합리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런 논리를 주장으로 가공하면서 그것이 자기 자신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뿐이죠.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지적하는 논리는 그것을 그대로 뒤집어 재범오빠 찌찌파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논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논리를 어떻게 주장으로 가공하여 사용하는 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원리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것이지 특정 세력에게만 유리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공통 논리는 특정 대상을 향해서만 날을 세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따라서 같은 논리는 스스로를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올바른 주장을 하거나, 아니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원리로서의 논리를 설계해 모두에게 적용하면서도 특정 세력을 비판할 수 있는 도구로 가공해야 합니다. 



뭐, 하여간 성 담론에 대한 논쟁에 있어서 특정 성별의 성적 대상화 문제와 특정 성별의 성욕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구분해서 사용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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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여기서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최근 한국의 여성시대-메갈리아-트위터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와 논리에 한정됩니다.



기존, 서구와 같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나라들의 공통점은 특정한 시기와 개별 사안에 있어서 범주에 차이가 있을 뿐, 보편적으로 인권 전체가 향상되어 왔습니다. 남성의 인권 확대는 여성의 인권 확대까지 이르고, 노인에 대한 인권 확대는 반드시 아동에 대한 인권 확대로 이어졌죠. 이는 한 쪽의 인권향상은 당연히 사회공동체 모두의 인권의식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며, 그 변화는 다른 인권의 향상이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흑인에 대한 인권 향상, 여자에 대한 인권 향상, 노인에 대한 인권 향상, 아동에 대한 인권 향상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인권에 대한 학문적 발전, 의식적 진보의 성과인 동시에 그것에 대한 향상을 이끌어왔습니다.



현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페미라 말하는 자들의 실질적 남성혐오, 여성우월주의는 그들이 말하는 페미니즘과 완전 반대의 논리와 텍스트, (의식하든 그렇지 않듯) 레토릭을 가졌고, 이런 문제는 결국 자칭 페미 스스로의 고립과 사회적 분리만을 이끌어내죠. 이들의 페미니즘 운동은 보편적 인권 향상에 관심도 없고,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고, 그에 따라 반대의 결과를 이끌어낼 뿐이죠.


뭐, 설령 그들의 논리와 행동에 따라 여성 집단의 인권향상이 이루어졌다고 쳐도, 이는 특정 집단의 인권향상일 뿐이고 그게 그들에게 있어서 이익일 진 몰라도 결과적으론 보편적 인권의 후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할 여지는 분명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정규직 노동자만을 위하는 단체가 있다고 쳤을 때, 이들이 정규직을 위한 운동을 했을 때 바람직한 발전방향은 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도 이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정규직만을 위한 운동을 전개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대결 프레임을 스스로 뒤집어 쓰게 되고, 이는 연대를 흔들리게 만들며, 서로 반목하게 만들면서 결국 전체 노동환경의 후퇴를 불러일으킨다는 거죠.


바로 이점이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근본적인 한계입니다. 제 생각엔 이미 한국 여성과 페미니즘, 페미니스트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져만 가고, 하나의 낙인이 생겨나 성갈등이 더 심해지고만 있으며, 그에 따라 한국 여성에 대한 공포증, 혐오증, 거부감만 더 커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설령 그들이 그런 활동을 통해 여성 인권에 대한 한정적 상승을 이끌어 냈다고 해도 이는 결코 이익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남성의 인권엔 관심이 없고, 오히려 그것에 대해 증오심마저 품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인권에 대해서도 어떠한 관심이 없죠. 아동이나 노인 등.. 그들은 자기들이라 여길 수 있는 범주에 대한 인권향상만을 원하고, 그 반대로 다른 범주에 속하는 이들의 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합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보편적 인권의 후퇴를 불러일으키죠. 남성과 여성의 연대를 통한 여성 인권 상승, 그에 따른 보편적 인권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성갈등을 통한 인권의 후퇴만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연대할 수 없는 진보운동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근시안적으로 성공으로 보여도, 거시적으로는 실패할 수 밖에 없죠. 한국 페미는 연대를 거부하고 같이 힘을 합쳐야할 대상을 증오하고 공격하며 적으로 규정짓습니다. 이는 굉장히 저열하고 위험한 전략이며, 또한 싸울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기도 합니다. 문제에 대한 피상적 이해는 이처럼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원인으로 작용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페미니즘 운동은 근본적인 한계를 지닌 것이며, 이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만을 낳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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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갈이나 워마드가 페미나치 소리를 듣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에코나치, 페미나치, 피보나치, 문법나치, 네오나치 등 뒤에 나치가 붙는 것들은 그 행태에 대한 비판과 조롱으로서 붙는 건데, 본질에서 크게 벗어난 극단주의자들을 나치에 비유하는 거죠.


여기서 본질 타령하면 그럼 그 본질이 뭐냐고 하는 이들이 있는데, 페미니즘은 여성이 불평등하게 차별, 억압 받고 상대적으로 낮은 여권을 신장시키며 성평등을 추구하는 운동 내지는 사상입니다. 이게 본질이죠. 메갈이 페미니즘이려면 여권의 신장을 주장해야 합니다. 남성의 거세를 주장할 게 아니라. 페미니 남성우월이니 어쩌고 할 꺼면 좀 배우고 입을 털어야 합니다.


리얼 페미니즘 알못들이 메갈 쉴드치려고 여성우월주의랑 페미니즘이랑 구분도 못하는 꼬라지보면 진짜 답답합니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보다 권력이 적고 차별 받는다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향상시켜야지 자본가들 머리를 돌로 까야 됩니까? 똥멍청한 거죠.


남성 권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걸 낮추는 거랑 애비충 똥꼬충 명예ㅈㅈ 한남충 거리는 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납득 가능한 합리적 설명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남성권력을 휘두르는 걸 막는 거랑 그거랑 똑같은 짓꺼리 하는 게 진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까요? 폭력에 대한 폭력은 개싸움이지 발전적 토론이 아닙니다.


미러링 어쩌고 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는 궤변에 불과합니다. 실상은 그저 방종한 욕구와 가학적 쾌락을 즐기는 데에 있어요. 성차별, 페미니즘, 남성우월, 여성혐오.. 자기들이 내세운 명분이라지만 그건 다 핑계에 불과합니다. 일베가 스스로 애국보수나 우파를 자칭하지만 실상은 방종한 집단에 불과하듯이요. 


미러링을 하려면 구체적인 대상을 가지고 그 논리를 그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있지도 않은 허수아비 만들어서 싸우거나, 자기들 가학적 쾌락을 위해 특정한 대상이나 논리 없이 남성을 혐오한 뒤 미러링이라고 변명하는 게 아니라요. 미러링은 구체적이고 특정한 대상과 논리를 가지고 하는 겁니다. 똑같은 주장과 논리에 단어 몇개 바꾸면 그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될 수 있도록 하여 그 논리적 허술함과 주장의 멍청함을 조롱하는 비판법이죠. 자세한 건 아래의 글로.


2016/05/20 - [취미/이야기] - 조롱적 비판. 올바른 미러링 방법.


앞서 말했듯 메갈은 성평등이니 그런 게 아닙니다. 자기들이 내세울 수 있는 성평등, 페미니즘, 여성혐오에 대한 대항, 남성우월에 대한 반발은 그저 변명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정말 그런 것들을 위해 움직인다면 여성의 권익과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지 남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휘둘러선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일베가 자신들의 방종한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애국보수나 우파와 같은 자유를 보장 받을 수 있는 요소들을 이용한 것과 같습니다. 메갈도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고 보장 받을 수 있을만한 명분과 정당성을 찾았을 뿐이고 그게 성평등이나 페미니즘과 같은 요소들일 뿐이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건? 남성에 대한 거세죠.


솔까 여성들이 진짜 성평등을 위할 줄 안다면 메갈 같이 해선 안 됩니다.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이 더 적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동안 남성권력에 의해 억눌려졌던 여성이라면 이 반발 때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A 스프링과 B 스프링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때 B 스프링에 의해 A 스프링이 눌려왔다면 그 힘만큼 그 반발심도 더 강할 수 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A 스프링이 반발할 때 반대로 B 스프링도 똑같이, 혹은 더욱 압축될 겁니다.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죠. 그 동안 여성이 억눌려왔다면 그 압력이 줄어들 거나 반발할 수 있을 때 더 크고 강한 반발력이 발생할 겁니다. 지금처럼요.


하지만 사람은 스프링이 아니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고 거기서 멈출 수 있다면 훨씬 성평등의 이상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개개인이 이런 생각을 가지며 성평등에 가까워지고 사태가 잦아들며 잘못된 생각을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듭니다. 하지만 언젠간 그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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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이 발단이긴 하지만 독자부심 부리면서 작가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고 품평도 하고 지 맘대로 욕도 하고 그러면서 자기잘못된 점이나 수준의 덜떨어짐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갑'질하는 꼬라지 진짜 보기 싫었을 거에요.


물론 그걸 대놓고 드러낼 이유도 없고 그럴만한 사유도 없었겠죠. 이번 사건이 그 발단이 되었을 뿐.



진짜 웹툰들 보면서 댓글란 등에서 자기가 월급 주는 사장님인양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이래라 저래라 등등.. ㅈ도 아닌 것들이 갑질 하는 꼬라지가 진짜 더럽고 역겹긴 했거든요.


독자도 독자로서의 선이 있고 작가도 작가로서의 선이 있는데, 그런 선에 대한 기준도 머리 속에 없고 오직 내가 봐주니까 니가 먹고 사는 거다. 라는 개사장 갑질하는 태도로 작가를 대하는 것들이 진짜 너무 많아요. 그러니 작가들이 독자들한테 감사하다 어쩐다 하지만 이면에는 진짜 ㅈ같은 새끼들이라는 염증도 달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감사하는 마음 자체가 거짓이고 위선은 아니겠지만요.


이번 메갈, 성우 관련해서 사실관계만 잘 파악했어도 그런 개소리들은 나왔을 리가 없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 섞인 조롱과 비난만 해댔으니 결국 서로의 아집에 따라 내가 옳고 너는 틀려로 귀결될 수 밖에 없죠. 그러니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이 나올 수도 없고.

소비자와 판매자의 관계에 있어서 판매자가 을일 수는 있지만, 소비자가 절대 갑인 것도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켜야할 선이 있어요. 흔히 갑질이라고 하는 게 왜 잘못되었는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심지어 작가들, 성우들에게 갑질 하던 놈들도 평소엔 대기업,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등등 소위 고관대작 높으신 양반들 갑질 하는 거 욕 많이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갑질에 대해선 한 없이 관대하고 그게 잘못되었다는 인식 자체가 없는 게 헬죠센 백성의 수준이라면 수준이겠네요. 그런 갑질해대는 독자들 보고 그런 갑질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작가들 입장에선 어떻겠습니까. 같은 창작, 표현을 하는 직종 종사자로서 (사실관계에 대한 파악은 잘 되어있지 않지만) 소비자들에게 마녀사냥 당하는 꼴 보면 감정이입하며 공감할 수 있겠죠.

물론 사실관계에 대한 인식 때문에 웹툰 작가들이 개헛소리 날리게 된 것도 사실이고 이건 웹툰 작가들에게 잘못이 있긴 하죠. 페미니즘이 아니라 혐오집단에 대한 문제였으니까. 심지어 그 메갈4가 봐준다는 소송 중 하나가 같은 웹툰 작가인 마인드C가 고소한 것도 있었죠.


웹툰 작가와 소비자, 예스컷은 완전 자충수 중의 자충수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만 주는 끔찍한 자폭이에요. 

진짜 멍청한 거죠. 이성과 합리성은 눈곱만큼도 없이 자폭질 자충수만 두는 꼴입니다. 그게 결국 자기네들에게 손해로 돌아올 수 밖에 없고 장기적으로 산업이라는 분야 자체에 큰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말이죠.

아무리 웹툰 작가들이 개헛소리 뻥뻥 날려주고 있다고 해서 예스컷은 진짜 아닙니다. 이건 진짜 너무 나아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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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 문제를 티셔츠 판매 수익이 메갈 쪽 소송 비용으로 사용된다는 것이지, 티셔츠 한 장이나 그것에 사용된 문구의 문제가 전혀 아니거든요.


근데 지금 메갈의 물타기 선동질은 그러한 본질이 아닌 겉으로 보이기 쉬운 '성우가 여성', '티셔츠 문구'로 국한하여 그것을 문제 삼고 있다는 거죠.


다른 단체, 다른 정상적인 페미 단체가 그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판매하고 실질적으로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에 투자를 한다고 하면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판매 수익이 메갈 쪽 소송비용에 사용된다는 겁니다. 이건 티셔츠 문구와 성별 문제와 완전히 무관해요.


메갈은 자기들끼리는 페미니 뭐니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혐오단체로 변질된지 오래이고, 그러한 상태에서 메갈 쪽을 후원하게 되면 당연히 비판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티셔츠에 뭐가 적혀있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혐오단체가 그 돈을 받는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걸 메갈 쪽에선 여성이라 짤렸다, 티셔츠 한 장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티셔츠의 문구 때문에 발생했다. 라고 물타기 하면서 선동하고 있는 거거든요. 굉장히 저열한 선동인데 이거에 다들 놀아나는 겁니다.



다른 쪽에서 나온 비유인데, 똑같은 신은 위대하다고 적힌 티셔츠라도 미국 이슬람 단체에서 만들어서 판매하여 그 수익을 불우이웃돕기나 노숙자 지원에 사용되고, 다른 한 쪽은 IS의 테러 지원금 및 식량구매에 사용된다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전자에는 아무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지만 후자는 분명하게 문제가 되죠. 왜냐? 그에 적힌 문구가 어찌됐든 그것이 실질적으로 혐오, 테러, 살인 등에 사용될 것이니까요. 문제의 본질이 바로 그겁니다. 어떤 문구인가가 아니라, 그 돈이 어디로 가느냐. 어떻게 쓰이느냐.


바로 이게 본질이에요. 


메갈은 아주 저열하게도 문제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표면적으로 보이는 문제인 성우가 여성인 점과 티셔츠의 문구가 페미니즘을 표방한다는 점을 들고 물타기 선동을 하고 있는 거죠. 여기서 놀아나는 꼬라지도 웃기지만, 무엇보다 그딴 짓을 하는 새끼들이 문제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딴 저열한 물타기 선동에 놀아나지 말고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좀 봅시다.



+그리고 이 사건과 완전 별개로 제가 생각하는 살짝 더 중요한 문제는 그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느냐는 겁니다. 본인이 말한 목적에 따라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아니면 소위 '횡령'이라고 할 수 있게 지 멋대로 쓰이고 있는지. 그걸 알아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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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걔네들이 이성을 혐오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걔네들은 이성과의 접촉이 거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 이성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밖에 얻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이성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지 알지 못한 채, 인터넷에서 쉽게 회자되고 떠돌기 쉬운 자극적인 이야기들로만 개념이 형성이 되죠.


그리고 그게 가장 큰 문제인데, 가령 여성의 남성에 대한 혐오는 성폭행이나 성차별 등의 인터넷 기사, 썰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다면 남성의 여성에 대한 혐오는 김치녀에 대한 썰, 인터넷 기사가 대부분이죠.


이 둘의 공통점이라면 각각 


(1)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으며,

(2) 인터넷 기사로 올라올 만큼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예컨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이성에 대한 썰은 그것이 사실인지 알 수 없고, 과장되거나 왜곡되었을 수 있고, 심지어 사실관계 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같은 인물이 여러 뉴스란에서 다른 신상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면서 여혐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사건 자체를 소설로 쓰는 경우도 있죠. 네이트판도 마찬가지의 사례로 둘 수 있습니다.


또한, 인터넷 기사로 올라올 만큼이라면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것을 일반적인 사례인 양 생각하며 여성 전체를 폄하한다면 매우 비논리적인 행동입니다. 어느 한국 남자가 이성을 심하게 성폭행 했다고 한국 남자 모두가 그런 변태성욕자 예비강간범이거나 그러한 취급을 받아선 안 되는 것처럼요.



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잘 지내는 커플들인데 그들 죄다 여혐종자의 말마따라 김치녀에게 통수 맞고 어장 당하는 호구이거나 반대로 남성의 폭력에 굴복당하고 성착취를 당하고 차별 당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거죠.


앞서 말했듯이, 애초에 이성과 제대로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인터넷 자료에 가치관이 형성되는 거고 그런 식으로 여혐과 남혐을 가지게 되거나, 혹은 그러한 성향이 강해지는 겁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변명하곤 하겠죠, 내가 겪었던 사례를 말하거나 이렇게나 증거가 많은데 등등.. 하지만 말했듯이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남녀커플은 많고 인터넷에 회자되거나 하는 이들은 전체에 비하면 절대 많은 수가 아닙니다. 또 그러한 경험조차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본인의 주관적 감정과 기억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런 요소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예 그런 식으로 악용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은 자기가 잘못했는데 남탓을 하는 식의, 그런 류의 종자들은 남탓을 아주 쉽게 해버리곤 하니까요.



예컨데 메갈은 자신들이 외모 때문에 차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외모보단 자신들의 인간성 문제가 크다고 봅니다. 외모가 좀 못생기거나 살이 많다고 해서 친구나 이성과 큰 문제 없이 잘 지내는 경우 많습니다. 진짜로요. 처음 본 사람에게나 차별을 당하지 친구나 지인 정도 되면 다들 잘 받아들이고 지냅니다.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친구가 없다면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성격이나 인간성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문제의 원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는 거죠. 일베도 마찬가집니다. 자신의 성격과 인간성이 문제가 되니까 여자가 안 좋게 보고 피하는 겁니다. 본인들이 말하는 돼지씹치녀는 줘도 안 먹는다는 것처럼요. 아주 큰 착각이거나, 아니면 피해망상 같은 겁니다. 인지부조화죠.


그러한 자국이성에 대한 혐오는 곧잘 해외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같다는 걸 모르는 거죠. 해외에 대한 경험도 없고, 자국 이성에 대한 경험도 없다보니 사실상 허공에 ㅈ질하는 꼴이랄까요. 실체없는 대상을 까는 거랑 똑같은 겁니다. 문제는 그러한 피해의 대상은 실존한다는 거고..



하여간, 일베나 메갈이나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좀 놀아보고 이성들이랑도 어울려보면 자기가 알고 있던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자기 자신들의 문제부터 해결하고 말이죠. 자기 자신의 -관계를 이탈하거나 부정할 정도로- 큰 문제 때문에 관계를 끊고 피하는 것은 자신의 외모나 재산 따위를 이유라고 생각하는 것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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