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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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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3.01.07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2. 2022.04.05
    왜 저소득층은 독재자-극단주의 세력을 선호하는가? 2
  3. 2020.06.15
    북한을 그냥 미친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4. 2012.12.21
    독재자의 딸이자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인 박근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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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걸주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조를 창건한 것도 쿠데타지만 처벌받지 않고 폭군을 물리친 건국 서사로 인정 받는다. 망해가는 고려가 개혁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리고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도 건국왕의 업적을 말하지 쿠데타의 수괴라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단순히 역취순수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 그들은 성공했고 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승자가 승리를 굳히는 건 모든 이들이 그 체제를 긍정하는 때이다. 정확히는, 그 체제를 부정하지 않을 때이다. 만약 고려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조선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각지에서 변란이 일어났다면 조선은 어떻게 대응해야 했을까? 역적 이성계의 세력을 몰아내겠다고 일어난 이들을 모두 죽여 없애야했을까?

 

그러나 민초들은 조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고, 고려와 왕씨 왕조를 어떻게 생각했든 결국 그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조선을 받아들였다. 마음 속으로는 조선과 이성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그것은 규합되고 행동으로 나설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 성계탕은 단지 그들의 불편한 마음의 발로일 뿐이지 이성계를 찢어 죽이고 싶다는 증오의 피상이 아니었다.

 

쿠데타, 역성혁명으로 만들어진 체제는 본디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서 정당화 된다. 역사는 승자가 쓰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우리의 쿠데타와 역성혁명은 정당했다고. 그리고 그 정당함의 근거는 그 체제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체제를 받아들였음으로 증명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는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역사적 사실에 가까운 판단이라는 것이다. 정당성을 만들지 못하고 역사의 승자가 되지 못한, 중과부적인 왕조와 국가들은 아주 짧은 기간만 존속하고 사라졌다. 그 짧은 기간 때문에 그들의 존속은 별 관심을 못 받을 뿐 그들은 실패한 것이다.

 

 

86년 6월, 한국은 독재를 끝장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사실일까? 국민들은 전두환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대선을 치뤘고, 양김의 갈등 끝에 노태우가 당선됐다. 노태우의 정치와 정책들은 독재의 정통성을 이어갔다고 평가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권력을 근거했던 쿠데타를 부정하진 않았다.

 

이후 김영삼 시대에나 겨우 그들은 법정에 설 수 있었고,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결국 집행은 취소되고 그들은 사면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 지점이다.

 

법원에서 어떤 선고가 내려졌든 독재와 반란의 핵심을 살려두는 것은 아주 나쁘다. 그들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반성하여 세력을 무너뜨렸다면 달랐겠으나, 전두환은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지 않았다. 처벌받지도, 반성하지도 않았기에 그들이 만들고 형성시킨 독재와 반민주의 정신은 살아남아 한국 사회의 중핵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정말 독재를 무너뜨리고 그 정신을 끝장냈다면 전두환은 살아있어선 안 되고, 설령 그렇다 해도 철저한 책임추궁 하에 비참한 삶을 살다 죽었어야 했다. 부와 존경받은 채 천수를 누릴 게 아니라.

 

인정해야한다. 한국인들은 독재를 무너뜨리지도 못했고 그 정신을 끝장내지도 못했다. 독재가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인 다수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이유는 단지 한국이 자본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목적을 지닌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적 성장은 그것의 재투자로 이어진다. 더 높은 성과와 효용을 발휘하기 위해서다. 더 고도화된 경제시스템과 효율적인 부의 창출을 위해서 구성원들은 교육을 받아야 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자유를 추구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자유는 경제적 자유를 기반으로 한다. 가진 게 없는 이들은 힘이 없고 힘이 없는 자들은 요구할 수 없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교육 받은 국민들은 독재보다 더 나은 체제를 추구했던 것이고 그 이유와 사유가 어떤 것이든 구조적으로 독재를 거부할 토양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독재 시스템이 더 공고하고 강력하게 통제할 수 없었던 기술적, 제도적 이유와 한국이 본래 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헌법에서부터 그러한 성질의 문장으로 한국의 체제를 규정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헌법과 법률에서 반민주적인 성질의 것을 적어놓았다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로 출발한 이상 그 내용을 전면적으로 뒤집지 않는 한 민주주의에 검은 색칠을 하고 부품을 갈아끼운 것일 뿐이다. 가령, 결국 투표를 해야 했다던가 언제 어떤 시대의 한법이든 한국 헌법 1조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라는 문장은 단 한번도 지워진 적이 없다. 그것이 한국이 본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당위가 되었다.

 

즉, 전두환 정권이 무너진 것은 그들이 더 강력한 독재를 시행할 능력과 기술이 없었고, 경제성장에 따라 국민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열망 역시 강해졌다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것이 올바르고 완벽한 정답은 아니지만 이러한 관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고 사형을 선고하는데 성공했지만 집행은 실패하고 사면했다. 독재의 하수인들을 골라내 불법적으로 얻은 부와 권력을 회수하지도 못했고 강력하게 처벌하는데에도 실패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승리에 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정치적, 법적, 제도적 방식으로 처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러한 요건이 되지 않거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사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 독재를 긍정하는 국민들이 약 절반은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 비율은 현재까지도 30%는 되며, 경우에 따라 독재적 가치의 위험성보다 다른 가치를 더 우선시하는 이들이 합세하여 약 50% 안팍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쿠데타는 그렇게 불법이나 불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 되었다. 이성계는 단지 역사적 상징일 뿐이다. 실질적인 힘은 독재자와 그들의 정신이 살아남아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에 있다. 독재자 중 한명은 반인반신이 되어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 신화는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숭앙 받았다.

 

성공한 독재는 처벌하지 못한다며 살아남았고, 부와 존경을 받으며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그의 자손은 그 부와 영향력을 통해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킨 주역이지만 그를 쿠데타 수괴라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역사는 승리한 자가 기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쿠데타라는 군사반란, 국가반역이 제대로 청산받지 않았기에 그들은 힘을 잃지 않았고 지배적인 위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통해 정치적 승리를 할 때마다, 정권을 얻어낼 때마다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 수정주의적 시도가 있었다.

 

군사반란을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하고, 성공한 쿠데타라며 처벌할 수 없다고 말이다. 쿠데타를 통해 만들어진 독재정권이 그렇게 정당하다면 한국 사회는 쿠데타를 권장하는 사회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단지 그들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이권과 주도권을 빼앗기는 것이 싫기 때문에 새로운 쿠데타를 긍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의 힘과 부의 원천이었던 과거의 쿠데타를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에 하는 것이지. 물론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새로운 쿠데타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실제 쿠데타 시도는 몇년 전 분명히 있었다.

 

이번에도 5.18은 교과서에서 사라진다는 말이 나왔다. 정권을 잡은 승리자가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정신적 근간을 긍정하고 정당화하는 쪽으로 기록하려는 것이다. 그 당시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고, 사회의 지배적 위치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은 지배적 사상이 되어 우리 세대 독재의 정신을 가진 후예들을 양산하고야 말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를 긍정한다면 그것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체제는 어떤 성과를 일궈냈든 긍정할 수 없다. 그것을 역사화하여 그러한 사실이 있었다. 라고 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었다거나, 필요했다며 정당화한다. 그들은 헌법 1조에 살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들은 절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던지겠다.

 

한국 사회는 정말 86년 6월, 독재에게서 승리를 거두었나? 6월 혁명은 성공했는가?

 

성공했다면 왜 패배자들은 살아남았고, 이 사회의 권력자로 기득권을 행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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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예전에 했던 말들의 재탕이긴 한데, 그냥 그 말들을 적당히 모아 새로 글 하나로 다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1.자기 언어의 부재, 철학의 부재.

 

예전에 미국 쪽에서 이걸 다룬 다큐멘터리 같은 게 있었습니다. 대충 10년쯤 전 내용이라 정확하게 토씨 하나하나 기억나지는 않지만, 요는 평소에 불만이 많고 다소 반사회적이었던 이들에게 철학책을 주고 그것을 계속해서 읽도록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임무를 잘 수행했고, 나중에 가서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되었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많은 것에 불만이었지만 왜 불만이었고 뭐가 문제였는지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화가 났고 무엇에 화가 났는지 모르니 아무 곳에나 그것을 분출했다. 그러나 철학책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을 잘 정리하자 문제들이 보였고 그것을 설명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감정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다..

 

정확한 발언은 아니었지만, 제가 기억하는 맥락은 이러했습니다. 즉, 그들은 사회현상과 정치현상,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는 철학적 기반에 대한 지적 부재가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를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로 다가왔고, 그 때문에 뭔가 불만은 있는데, 그 불만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거죠. 해소될 수 없는 불만이니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터져나왔던 겁니다.

 

분노했지만, 무엇에 분노한지 모르는 사람들이 극단주의에 쉽게 경도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사색의 기반이자 자기 언어를 가져다주는 것은 더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해준 철학입니다.

 

 

2.정신력과 인지력.

 

...몇몇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까다로운 인지작업과 유혹의 도전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1~2분 동안 7자리 숫자를 기억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 케이크와 건강에 이로운 과일 샐러드라는 두 가지 디저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 시스템 2(이성)가 바쁘면 시스템 1(본능, 직관)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시스템 1은 단 것을 좋아한다.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인지 부하가'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면과 마찬가지로 음주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이 수행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들을 보면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우마이스터는 의지나 자제력 유지 노력이 피곤한 일임을 거듭 확인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정치적 현상과 메시지들을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인지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저소득층은 그것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을만한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스스로 공부하지 않은/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남들보다 더 각박하고 고난하게 살아가기 때문에 당장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할 시간과 정신력, 체력이 많이 할당되고 정치, 사회적 현상을 파악에 할당되는 자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말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첫차타고 일터로 나가 6시까지 일하고 7시부터 11시까지 일해서 12시에 돌아오는 아주머니가 정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복잡한 이론을 이해하거나 스스로 전개할만한 능력은 부족할 겁니다. 이는 배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만큼 일에 정신력과 체력이 소모된다면 일과 무관한 복잡한 지적 활동을 하기 어렵겠죠.

 

저소득층은 교욕수준에서부터 정치현상을 파악하고 판단하기에 지적, 철학적 기반이 부재된 경우가 많고, 자아가 고갈된 사람들이기에 깊게 파고들어 분석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삶에 여유가 없기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정신적 여유가 없고 뉴스를 보며 인지 자원을 동원한 작업을 하기 어려우니 더 간단한 말과 더 직관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지지를 표하게 됩니다.

 

더불어 그들은 자신의 삶에 있던 불만들을 해소해줄 것 같은 언어들을 씁니다. 이명박은 물론, 박근혜 정권 역시 선거철만 되면 사회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포퓰리즘 공약을 내거는 것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공약 플래카드들은 대표적인 예시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뒤통수를 맞고, 그럼에도 잊어버립니다. 당장의 삶이 고난하기에 정치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일을 계속 기억해두는 것조차 힘겹기 때문입니다.

 

 

3.선동과 액션의 중요성.

 

더 간단한 표어와 더 직관적인 메시지는 선동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넘어 가장 이상적입니다. 선동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기실 이 선동이라는 단어는 꽤 중립적인 용어인데, 가령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나 복지를 밀어붙힐 때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것의 필요성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설득은 논리적이고 많은 근거를 제시하며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간단하고 경제적으로 선동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죠.

 

국민들에게 여러 데이터를 제시해봤자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물론이며,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도 많고, 오히려 그러한 데이터를 반박하고 논쟁을 시도하는 이들조차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정부는 국민과 논쟁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법안이라도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정부는 국민들을 선동해서 원하는 목표를 이뤄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필요하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나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고, 그 이상으로 나쁜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 선동의 예시로 문재인 친중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면, 문재인이 중국몽을 언급한 원문을 본 사람은 교묘하게 중국을 비판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친중설을 선동하는 이들은 문재인 중국몽까지만 언급하며 왜곡하죠. 아주 간단하고 직관적인 한 문장만으로 맥락은 뒤집혔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재경부는 미래를 위해 돈을 아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 추경이나 지원은 불가하다는 부정적인 견해를 지속적으로 밝혔습니다. 실제로 연금 문제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예정해놓은 문제이고, 어떠한 해법이나 준비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지원 정책에 꽤 미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 역시 많아졌죠. 이는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을 선동하여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보수 세력은 진보 세력에 비해 이러한 선동적 능력이 탁월하며, 동시에 보수 지지자들은 진보 지지자들에 비해 이 선동에 더 쉽게 넘어가고 더 빠르게 감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수 지지자들의 수준이 진보 지지자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극우보수는 가짜뉴스에 더 쉽게 속으며, 스스로 그 가짜뉴스를 만들고 배포시키고, 그렇게 유포된 가짜뉴스에서 새롭게 생성된 컨텐츠가 스스로 속아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소득층은 더 직관적이고 간단한 극우보수의 선동에 더 쉽게 넘어가는 것이고, 그들이 TV에서, 언론에서 보여주는 직관적인 쇼들을 쉽게 이해합니다. 고고한 진보주의자들은 그러한 쇼를 하지도 않고 잘 볼 수도 없습니다. 그들의 말과 언어는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들이라 머리만 어지러워져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극우보수의 언어는 쉽고 간결합니다. 단순해서 이해하기 쉽죠.

 

물론 이 쉽고 간결한 언어가 어떠한 왜곡을 낳고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겁니다. 그런만큼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지 못하고 제대로된 해결이나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죠. 오직 더 나쁘게 되는 거 빼고는요.

 

독재자들의 액션들 역시 매우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습니다. 게다가 화끈하기도 하죠. 말 한마디면 높으신 분도 앞에 나와서 굴복해야 합니다. 강력한 메시지들은 우리의 적을 분쇄해야 한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가득차 있고, 그들은 정말로 문제입니다. 문제는 해결되어야 하고 해결하기 위해선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죠. 따라서 강한 이미지를 가진 이들,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강한 워딩을 쓰는 매파에게 지지를 표합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고 어떤 피해와 손해로 돌아오며, 그들이 진짜 매파인지, 아니면 치킨호크인지, 아니면 그조차 아니고 단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스트롱 워드를 사용하는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고 파악할 능력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돌려줄 것이며 자신의 삶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들이 어떻게 망가질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애당초 관심도 없습니다. 당장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한 문제이고 높으신 분들이 얼마나 빼쳐먹든 내 돈은 아닐 것이며, 권력자들이 자기 밥그릇을 어떻게 빼앗기고 누가 차지하든 그 역시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이야기죠.

 

심지어 경제, 복지, 노동 정책의 변화로 인해 진짜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되고 피해를 입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파악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파악하려면 자신의 한 표가 만든 정치인이 경제, 복지, 노동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기존과 어떤 것이 다르며 그러한 결과 어떠한 절차를 거쳐 어떤 이유로 자신에게 이러한 변화(손해)를 입혔는지 알아야 합니다. 몇가지 과정을 아무리 단순화 시키더라도 자신이 뽑아준 정치인이 바꾼 정책이 자신에게 어떻게 돌아왔는지 이해해야 하는데, 그걸 잘 못합니다.

 

심지어 주변에 그걸 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냥 어려워졌으니 어려워졌고 윗 사람이, 공무원이 개새끼라 그런갑따 할 뿐이죠. 한번도 삶이 편했던 적이 없으니 어려운 삶에 적응한 사람들입니다.

 

 

4.내 계급적 이익과 이념적 지향.

 

때로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무 어려운 사람들 말고 조금이라도, 살짝이라도 더 여유로운 이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내가 뽑아줄 정치인이 복지, 의료, 노동, 취업에서 나와 내 가족들에게 불이익을 안겨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정치적 사상과 이념에 있어서 상대 정당의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사람들 말입니다.

 

내 취업 조지고 내 동생 교육 조지고 내가 취업했을 때 더 많은 시간 노동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으며, 내 엄마아빠 병원비 더 비싸지고 우리집 월세 더 오르며 우리 집안 지원금 더 줄어들어도 반미친중친북 빨갱이 페미 민주당에게 정권을 줄 수는 없다는 사람들.

 

부정부패 많이 저지르고 인성 문제 있고 범죄자인 것도 알지만 빨갱이 민주당에게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며 이명박 찍어준 사람들, 정치적 능력은 의심스럽고 인격적으로 덜 성숙했고, 아버지 후광으로 지지 받는 거 다 알지만 빨갱이 민주당에 정권 못 준다며 박근혜 찍어준 사람들. 다 알고 하는 겁니다. 다 알고 하는 건데 민주당이 반미친중친북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모릅니다.

 

이건 자기 삶과 별개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더 큰 거대담론과 이념, 사상을 지향하며 표를 던지는 이들입니다. 세금이나 부동산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며 민주당에 표를 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미련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겐 세계관적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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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만 보면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다행히 대북한, 외교 실무진들은 그럭저럭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지만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은 북한의 행동과 말들을 보고 그냥 미친놈이나 제정신 아닌 놈들로만 보는 건 아주 큰 오해입니다.


북한도 국가고 국가인 만큼 전략적인 판단하에서 외교를 이끌어갑니다. 도발도 그런 계산하에 이루어지는 정교한 행동이죠.


기본적으로 북한은 독재국가입니다. 그것도 평범한 독재국가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사실상 전제국가나 다름 없는 체제이자,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위험성을 현실적으로 지니고 있는 체제이죠.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지만, 솔직히 그 체제나 기반(경제, 문화, 사회 등)이 튼튼한 편은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무너질 수 있고, 내부적인 불만 또한 작지는 않은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북한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위험한 상황이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북한 주민들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죽이거나 고문하기도 합니다.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잔혹한 수준은 아닐 수 있더라도, 중국과 다를 바 없이 국민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주죠.


북한은 오랫동안 1인 독재국가였고, 이는 1인의 통제력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최근에야 김여정에서 일부 역할을 나눠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좀 생략하고 보자면, 여전히 김정은은 일인 전제 독재자입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독재국가에서 독재자 개인의 위상은 매우 중요하죠.


내부 분열과 통합, 통제를 위해서 어떠한 성과들이 반드시 필요하고, 전쟁이 됐든 발전이 됐든 통합의 기치가 필요하고요. 북한의 외교적 무대에서 쓰기엔 폭력적인 언어들을 쓰는 건 그것이 독재국가이기 때문이고, 내부의 시야를 고려한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약해보이면 안 된다는 거죠. 적에게 머리를 굽히거나, 마치 질 것처럼 보이는 말과 행동은 그 자체로 독재자의 위신과 정당성을 훼손합니다. 이는 통제력의 약화로 이어지고, 그 끝은 체제와 정권의 붕괴를 의미하죠. 북한이 하는 말들. 겉으로 보이는 문자는 내부적 시야를 의식한 것 뿐이고,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이는 다른 국가들의 외교적 수사처럼 말안의 의도와 목적을 분석해서 이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북한이 공개적으로 하는 언어는 한 번 더 포장을 까야 한다 이거죠. 매우 색다른, 다른 종류의 외교적 수사인 셈입니다.



북한이 하는 도발조차도 계산된 행동입니다. 어디까지 해야 전쟁이 안 나면서 위신과 성과를 챙길 수 있을까. 그러한 성과로 내부 통제력을 가질 수 있을까. 북한을 설명할 수 있는 많은 체제 중 하나가 군국주의입니다. 단지 전쟁을 하지 않고, 사실 그럴 생각도 없어보이는 것 뿐이죠.


국방위원장, 장군 같은 칭호는 군대의 수장이라는 뜻이죠. 실제로 북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고 억제하는 건 군대이기도 하고 가장 먼저 군권을 장악해야 국가를 통제할 수 있기도 하죠. 이건 다른 정상적인 국가도 마찬가집니다. 독재국가에서 군대라는 의지를 강제할 수 있는 폭력은 가장 먼저 독점해야 하는 자원이죠.


이는 북한은 언제나 전쟁의 위기를 조장하고 그러한 위기를 위해 단결해야 함을 주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통합, 단결시키지 않으면 분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자유가 억제되는 이유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죠.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당연히 정권에 대한 적대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어서요. 그리고 그런 통합, 단결의 명분은 전쟁과 전쟁의 위기입니다.


북한이 하는 도발은 그러한 전쟁 중이라는 상황, 또는 우리의 적을 쳐부수었다는 성과를 내기 위한 거고, 그 선은 매우 정교히 계산해서 행동합니다. 핵의 존재를 떠나서 북한의 도발이 한국이나 미국의 전면전을 발생시켰던가요? 심지어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마저도 한국군의 반격은 있었지만 전면전은커녕 제대로된 보복조차 못했습니다.


왜냐? 안보는 보수라고 했지만, 실제 보수정부가 외치는 안보의 적은 내부의 적이지 외부의 적은 아니거든요. 외부의 적인 북한은 어디까지나 내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정치적인 명분이기 때문입니다. 적대적 공생관계죠. 적의 존재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명분이 되어줍니다. 다시 말해서 적이 정말로 없어진다면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하고자 하는 행동의 명분이 사라지며, 권력의 획득을 위한 기반이 사라지거나 줄어든다는 거고요.


물론 오바마 정부의 미국이 병신같은 대북정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명박이 빡쳐서 북한에 대한 보복을 하려 했지만 오바마가 윤허하지 않아서 말이죠..--; 상상력의 영역이긴 하지만 미국과 오바마의 성향을 가장 먼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친다면 연평도와 천안함이라는 상상도 못할, 전쟁의 정당성을 내준 사건을 벌이고도 무사할 수 있었던 셈이려나요?..


진짜로, 연평도나 천안함 사건은 그 자체로 전쟁을 벌여도 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어쨌든, 북한은 생존의 스페셜리스트이고, 그만큼 자국의 생존과 관련된 요소들을 첨예하고 정밀하게 분석할 겁니다. 이명박근혜 때는 했지만 지금은 그만한 수위의 도발이 없죠. 문재인의 대북정책의 성과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문재인과 정부의 성향을 죽어라 분석했기 때문에 앵간한 거 잘못하면 큰일난다는 결론을 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미치광이 전략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아주 또라이니까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거죠. 북한은 내부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외부적으로 그런 폭력적인 말들을 하는 이유 또한 그러한 전략에 근거한 겁니다. 당장 돌아보세요. 북한은 미친놈이다. 김정은은 미친놈이다. 라고 대다수의 대중이 믿고 있죠.


북한은 비이성적이고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언제든 뒤통수치고 포 쏘고 도발할 수 있는 놈들이고, 갑자기 미쳐서 전쟁할 수도 있는 놈들이라고 믿게 만들었죠.


하지만 북한의 지상목적은 생존입니다. 


핵무기는 외교적으로도 쓸 수 있는 카드이고, 내부적으로도 성과를 보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인 동시에,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기 위한 필수요소입니다. 북한은 그 어떤 나라에도 의존하지 않습니다. 중국도 북한의 역할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원하고 밀어주는 거지, 진짜 북한을 혈맹으로 보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북한도, 김정은도 중국을 믿고 신뢰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니 혈맹이니 형제니 어쩌니 하는 거죠. 중국이 북한에 주는 게 있으니 립서비스 해주는 겁니다. 물론 주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지만,(정확히는 중국 정도와만.) 정확히 뭐가 오고 가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건 다른 분이 더 잘 알겠죠.


북한이 중국에 의존한다면 중국이 나중에 북한이라는 폭탄이 부담스럽거나 필요가 없어서 버리면 그대로 붕괴하는 건 북한입니다. 또한 중국이 북한을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있게 되기도 하겠죠. 그러나 그런 상황 자체가 북한의 독립성과 자주성이라는 기치에 크게 어긋나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의존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애당초 의존을 하지도 않죠. 북한이 오랫동안 떠드는 자력갱생은 그러한 의미도 내제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지원을 포기하고, 심지어 적대한다고 해도 스스로 버틸 수 있어야 한다고요. 핵이 있으니 함부로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 믿고요.


하나 더, 아랫 것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타국을 향해 비난을 하거나 공격적인 어조로 비방하는 건 위에서 시킨 것도 있지만, 그 스스로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기 때문인 것도 있습니다. 독재국가이기 때문이죠. 외부와의 관계를 신경쓸 필요도 없고, 그러한 충성이나 애국심을 증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더 강하고 노골적으로 할수록 인정을 받는 겁니다. 왜 군대나 회사 같은 곳에서 윗사람 보여주기식 쇼 있잖아요. 북한은 그게 외교 무대에서도 이루어지는 것 뿐입니다.


그러니 걸러들을 건 걸러듣고, 중요한 위치에서 그런 말을 한다면 앞뒤 상황과 내부적 상황을 유추하면서 분석해야하는 워딩들입니다. 도발을 할 때도 얘네가 내부통제가 필요한 상황인가보다 하고 쿨타임이 돌았다고 보거나, 혹은 뭔가 원하는 게 있어서 저러나보다 할 수 있는 거죠.


도발의 종류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확히는 도발로 보일 수 있는 행동인데, 이명박근혜 때는 직접적인 공격이나 그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위협이었다면 문재인 이후로는 내부적인 훈련과 실험 등으로 선회했습니다. 문재인의 대북정책, 트럼프의 북폭 등등을 고려한 셈이죠. 함부로 자극하면 안 되니 타국 정부를 자극하지 않는 선 내에서 내부 통제력을 챙기려는 겁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 북한인들에게 보여주는 메시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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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났습니다. 결국 앞으로의 5년을 이끌 대통령은 박근혜가 되었지요.


개인적으로 박근혜가 당선되는 것을 어느정도 예상안에 두고는 있었습니다만 막상 실제로 겪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왠지.. 말이 안된다는 느낌이었죠.


왜냐면.. 그동안 박근혜를 증명한 것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박근혜의 무능을 드러낸 증거까지 있었으니까요.


예컨데 5선 국회의원 할 동안 발의를 단 15건 했습니다. 이를 가지고 검증된 정치인이라고 하기 어렵죠. 알다시피 박근혜의 전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은 철저히 보여주지 않고 그저 아버지 빽, 후광으로만 정계에서 '공주'가 되었죠.


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느냐는 우리는 알고있을 겁니다. 그녀는 무능하니까요. 그 유명한 산소가스, 이산화가스는 물론이요 이번 대선토론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털리기만 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녀를 지지하던 이들도 실망했을 정도죠. 물론 이를 가지고 보고싶은 대로 보는 분들은 박근혜의 압승!을 주장하고.. 실제로 미주 조선일보에선 그렇게 내보냈다죠?


쩝.. -_-a;;


특히 박근혜의 무능을 알린 것은 대선 토론이었을 겁니다. 운동권에서 단련된 리정희의 왠만한 논객과 맞먹는 화려한 말빨과, 리정희 사퇴한 이후에 문재인과의 토론에서 재밌는 말들 많이 해주셨죠.



뭐.. 지난 일 계속 이야기해봐야 뭐하겠냐만...


개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해서 먼저 우려가 되더군요.


김대중, 노무현 10년동안 한국의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발전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갔지요. 실질적 민주주의는 못되도 형식적 민주주의까지 발돋움 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저같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줬고, 실제로 사찰건이니 뭐니해서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볼 수 있죠. 5년동안 30년 후퇴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G20의 국가를 독재국가로 만든다거나 아예 망가 뜨려버릴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그건 너무 말이 안되죠.


앞으로 5년 동안 박근혜에게 남은 것은 무겁고 어려운 국정운영에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고,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박정희딸 별거 없구나 라는 것만 보여줄 것입니다. 그리고 5년 동안 국가가 충실히 후퇴하는 모습을 자각한다면 박정희 신화를 끝이 날수도 있는거지요.



아무튼, 민주주의.. 뭐.. 박근혜는 적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당선되었고 이에 대해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국민은 그 국민들 수준에 맞는 정부를 얻게 된다고 했고 앞으로의 5년은 국민들의 수준을 증명하는 시간이겠죠.



......



당최.. 제갈량의 자식이 제갈량이 아니듯이 박정희의 딸이 박정희가 아닌데...



아, 그리고보니 교과서 문제도 있겠군요. 5.16은 혁명이 되겠고 위안부등 과거사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겠죠. 오히려 내부에서만 떠들다가 일본 눈치나 보며 금방 흐지부지 될 것 같고.. 답답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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