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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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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0.08.18
    한국의 사회방역 취약점. 고령자, 극우보수, 종교.
  2. 2020.08.16
    한국 교회와 지역 커뮤니티.
  3. 2014.07.28
    성경과는 다른 성경.
  4. 2013.11.24
    천주교와 새누리당, 그리고 개신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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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판데믹 상황을 보면서 각 국가마다 방역에 어려움이 있는 약점, 취약점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또한 다를 바가 아니고요.


미국 같은 경우 인종차별, 저소득 흑인계층, 안티백서, 반사회적 음모론자 및 방종주의자.[각주:1]

유럽의 경우에는 인종차별, 이민자와 난민, 안티백서, 방종주의자.

싱가폴 및 중동 부국은 처우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외국인 노동자 문제.

남미나 저소득 빈곤국가는 관리가 안 되는 빈민촌과 이를 매개로 하는 범죄, 반군조직.

일본은 관료조직과 정치체제, 정치문화 자체(...)


한국은 고령자, 극우보수, 종교가 그러한 사회취약점이고요. 이번 8.15 태극기 집회에서처럼 동일 시위했던 다른 집단에 비해 분명하게 방역지침을 무시했고, 코로나를 확산시켰습니다. 그 때문에 우려했던 2차 파동이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이번 사태는 신천지보다 위험하고 파괴적일 겁니다.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자료에서 고령자의 반사회적인 행동들은 방역과 행정, 치안에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번 사태에 한정해서조차 그렇고 오히려 더더욱 노골적입니다. 심지어 이들 세대는 높은 복지 부담을 안기고 심각한 빈곤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세대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근대화, 문명화'가 되기 이전의 세대이기 때문에 60~80년대의 폭력적이고 구시대적이며, 심지어 중세적이기까지 했던 가치관을 수십년 동안 겪어온 이들입니다. 다시 말해, 한창이던 젊은 시절 형성된 세계관은 지금 기준으로 후진적이고 반사회적이기 일쑤라는 거죠.


그탓에 현 세대 사람들과, 그리고 현 시대의 행정과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마찰을 빚기 쉽죠. 복잡하고 어려운 건 모르겠고, 그러한 필요성을 이해할 생각도, 능력도 없으며, 문제가 생기면 목소리를 키우고 위압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최소한 상대방의 말을 전혀 수용하지 않은 채 자신의 주장만 반복해서 우기기만 합니다.


왜냐면 자신이 살아왔던 시대는 그렇게 해야 이기고 손해를 안 보고 때로는 이익을 보기 때문이죠. CCTV도 없고 블랙박스도 없고 고도화된 전산이나 행정 시스템도 없던 시절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면 목소리로 찍어누르면서 무조건 우기면 최소 반반 가져간다 이거거든요. 지금이야 CCTV나 블박이 있어서 교통사고만 해도 증거가 있어서 뒤집어지는데 여전히 자기 아니라고, 오히려 상대가 박았다고 박박 우기는 이들도 있죠. 


이번 사태에선 아래 자료가 대충 그런 예시죠.




극우보수는.. 예전부터 꾸준히 하던 말이지만, 한국 극우보수의 수준은 정말로 중세적이거나 아무리 현대적 수준에 가까워도 군사독재 시절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정신세계 자체가 그 시절에서 진보하길 거부했고, 발전하기엔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포기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권력과 정체성 자체가 그 시절 그것에 있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건 세계관의 붕괴와 가치관의 상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발전할 수가 없죠.


다시 말해, 시대는 변해가는데 문제적 시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여전히 유지하고 그대로 세상에 적용하겠다는 욕심이죠. 이 욕심 덕분에 한국에 여러 갈등과 문제, 모순들이 발생하는 거고 그 모순이 또 새로운 갈등과 충돌을 야기합니다.


2019/08/15 - [취미/이야기] - 한국 극우보수의 반공과 민족주의적 특이성에 대한 단상.

2019/05/13 - [취미/이야기] - 나경원의 반국가적 국민 인식과 처절한 쉴드.

2018/11/04 - [취미/이야기] - 한국 보수의 태생적 한계와 근원.

2017/04/22 - [취미/이야기] - 우리의 주적은 누구인가.

2017/02/16 - [취미/이야기] - 헬조센론. 국민가축론.

2017/11/07 - [취미/이야기] - 내가 왜 극우보수만 비판하는가?

2016/12/03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의 사상적 근간. 마초 오르가즘.

2016/07/12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보는 미개한 개돼지들.

2016/06/29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교육을 건드리는 이유.


한국 극우보수 자체가 현대화된 사회체제에 걸맞는 수준이 아니라는 게 가장 큰 표면적 이유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방역지침을 공격하고 온갖 것에 독재라는 이름을 붙히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잘해나가는 정부를 공격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깍아내리길 서슴치 않죠. 


옛 이야기속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연전연승을 이룩하는 장군이 너무 큰 공을 세운다고 처형하고 나라가 망하거나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잘하고 있는 이를 정치적 득실 문제로 공격하는 근시안적이고 반국가적 세력이 극우보수입니다. 자기들이 책임질 것도 아니라면서요.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이전 정권을 욕하고 탓하면 그만이니까.



심지어 한국 극우보수와 개신교회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미 전광훈, 이만희와 같은 종교인이나 소망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 한기총의 수뇌와 친밀한 관계에 있다는 건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요. 더욱이 산발적이긴 하나, 몇몇 교회에선 보수편향적인 정치적 주장과 선동을 목사, 장로라는 사람들이 공적으로 연설하는 경우조차 알 사람은 알 겁니다.


종교적이라는 용어는 대체로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에서 거리가 있는 무조건적 믿음과 근거 없는 신뢰를 비판할 때 쓰이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광신의 뉘앙스가 있는 말이죠. 그리고 이번 사태에서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등 여러 교회에서 발생하는 방역 적대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교인들의 행동은 종교적 리더쉽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자생적이고 산발적인 반사회적 행동들이죠.


그리고 그 행동들은 종교적입니다. 가령 그들은 문 정권이 자기들을 타겟팅하여 음성인데도 양성으로 조작한다고 믿고 있죠. 이는 전광훈을 비롯한 목사들의 종교적 리더쉽 하에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만희와 다른 점은 이만희를 잡아서 신천지의 조직력과 활동을 와해시키는 것과는 별개로 이들의 행동은 단일 조직적이거나 수직적 위계의 권위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말했듯이, 자생적이고 산발적입니다. 전광훈과 사랑제일교회 등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구호는 종교적인 게 드뭅니다. 거의 다 정치적인 구호들이죠. 다시 말해 이들은 종교적 활동이 아닌 정치적 활동을 종교적 리더쉽하에 이루는 것이며, 단순히 종교적 이유로 방역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이유로 방역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즉, 정치적 동기와 종교적 조장에 선동된 거죠. 그냥 선동된 게 아닌 그게 세계관 자체이고 그 세계관에 합치되는 내용에 등떠밀고 부추겨진 것이기 때문에 거부감조차 없습니다. 스스로의 신념적인 행동인 셈이죠. 자생적이라는 말의 의미이고 산발적인 이유입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단지 조직적이기에 그 실천이 적극적일 뿐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교회와의 연결고리가 삶의 핵심을 차지하는 요소라는 겁니다. 그 비중이 너무 크다보니 단순히 소모임이나 회식, 활동 같은 거 하지 말라는 것조차 그들에겐 삶과 사회적 활동의 일부를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거부감이 큰 거죠.


이런 모든 이유 때문에 정부의 지시와 방역지침을 개무시하고 반사회적인 활동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미 신천지 때문에 한국 개신교회의 방역 적대 행위와 테러행위는 수차례 발생했습니다. 교회 자체가 돈과 관계된 이권이 상당하고, 그런 수익을 포기하기 어렵다보니 이런 시국에서도 계속 교회를 열려는 거고 수익 땡기려는 거거든요.


심지어 정치성향이 정반대에 문 정부를 아예 북한과 결탁한 세력으로 낙인 찍고 협의나 협조, 대화의 대상이 아닌 없애고 무너뜨려야할 적이란 관점으로 바라보니 대화가 안 통하죠. 이권부터 정치적 관계까지, 적대적인 게 너무 커서 말도 안 듣고, 도리어 정신병적 광신과 극우적 정치병이 합쳐져서 이 사태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한국에서 방역 취약점은 고령자, 극우보수, 종교입니다.


이 사태가 어떻게든 끝난다면 추후 필수목표는 단순 시스템만 잘 만들거나 만들어진 시스템 아무리 잘 굴려고 판데믹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 전국적 감염병 발생시 방역을 무력화하는 정치사회적 취약점을 잡아내고 그에 대한 선제적이고 공격적 대응이 필요한 연구사례가 되지 싶습니다.


가령 방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세력에 대한 초동적 조치나 집중적 감시와 관리, 방역이 뚫린 상황에 대한 즉각 대응체계의 수립 같은 것 말입니다. 



덧.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전체 개신교회 중 일부만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 시설 중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이(알기론 전부가..) 교회라면 그게 종교의 문제라는 건 비약이되, 교회의 시스템이든 교인이든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발생한 이후 그들의 반사회적 활동과 동기는 종교적 리더쉽 내지는 상호관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카톡 등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피해자 심리를 형성하며 어떤 태도나 대응을 해야할지 정하기도 합니다. 종교가 문제라면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지될 수는 없었겠죠. 하지만 교인과 신도들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1. 자유주의자라고 하기엔 너무 무책임하기 때문에 임의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자유주의가 깊게 뿌리내린 유럽 등 서구 국가에서 자유라는 이름하에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을 통칭합니다. 가령, 국가는 자신들의 자유를 통제해서는 안 되며 그에 대한 반발심리로 도리어 마스크 등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고 밖에 나가서 사교 활동을 하는 이들처럼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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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근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각 마을, 고을 등에는 여러 계층과 집단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었습니다. 고을처럼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라면 직종이나 고을내에 구분되는 지역, 성별 등으로 구분되는 커뮤니티가 있었을 것이고, 작은 마을이라면 요즘으로 치자면 마을 회관 같은 곳, 마을마다 있는 정자 같이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곳에 동네 사람들이 모이면서 소통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전근대라곤 해도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진 않지요. 다만 필요한 정보의 종류와 용도가 달랐을 뿐이고요.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고 농사가 잘 되는지, 어느 집 누구가 누구랑 무슨 일이 있었고 누구 집 소가 새끼를 얼마나 낳았는지, 윗 고을에 가봤던 김씨네가 하는 이야기들이나 간혹 들리는 장사꾼들의 딴 지역 이야기, 소금 가격이나 새로 부임한 고을 원님 소식, 나랏님들 이야기 등등..


작고 정체되어 발전이라곤 그리 없을진 모를 마을이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필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꾸준히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작은 사회 나름의 소속감과 안정감을 유지시켜주는 핵심 요소이기도 하고요. 서로가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실용적으로 사용하거나 인간관계를 조정하기도 하고, 앞서 말했다시피 그 자체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기도 하죠.


이러한 지역 사회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은 지금도 전 세계에 존재합니다. 미국 중산층들은 여러 모임과 식사 초대, 파티, 아예 봉사활동이나 자경단 활동, 스포츠 등 여러 사회적 활동 등을 이루며 사회적 관계를 꾸준히 유지시킵니다. 그러한 사교적 활동은 간혹 과하다싶어서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왕따를 당하거나 기피되는 경우도 있으며 그런 이웃이나 지역 내의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으면 손가락질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하죠.



이러한 커뮤니티의 해체는 사실 거의 모든 국가들이 크고 작게 겪는 일이긴 합니다. 산업혁명을 필두로 산업화, 근대화가 되가면서 기존의 농촌사회가 해체되며 도시로 상경하는 등 지역 발전과 인구 이동이 발생했죠.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제시기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농촌이 점점 해체가 되었고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등 농업 사회의 커뮤니티는 그 크기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도시의 근대적 학교나 일자리, 교회나 성당 따위에서 새롭게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했죠.


그리고 여기가 진짜 중요한데, 한국 전쟁이 터지고 나서 대규모 인구이동이 발생했죠. 이는 거의 기존 계급적 사회관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없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적잖은 양반 집안은 양반 가문의 어르신이었고, 노비는 여전히 노비였습니다. 수많은 천민들이 신분제가 없어졌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거의 인종차별 수준으로 존재했었죠.


한국전쟁은 그러한 신분적 관념 또한 불 속에 소멸시켰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섞이고 하다보니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신분이나 계급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게 되었죠. 숨기면 알 방법도 없고.


근데 이 한국전쟁은 많은 것을 없앴지만 지역 사회의 커뮤니티 또한 없앴습니다. 사람들이 피난가고 정착하면서 너무 많이 섞였거든요. 같은 도 내에서라곤 해도 사는 지역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 전쟁 이후 먹고 살기 위해 또 떠나거나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정보와 소식의 교류는 정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 거죠. 새롭게 재편된 질서와 재정립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면, 이익이고 뭐고 생존하기 위해서라면 정보가 필요했습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맺어지는 관계와 형성되는 커뮤니티도 있겠지만, 한계는 명확하죠.


옛날처럼 농부는 농부끼리, 상인은 상인끼리, 관료는 관료끼리 모여서 자기들이 속한 영역 내의 정보, 그 영역에서 필요한 정보만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직종과 계층의 정보들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작은 마을 수준도 아니고 변화와 발전이 빠른 도시이다보니 중심적 역할을 하는 커뮤니티가 꾸준히, 적당한 인구풀로 유지되기란 어려운 일이었죠.


여기서 교회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라는 소속감과 집단적 정체성을 제공해주고, 모일 공간과 소통할 장소를 제공해줬기 때문입니다. 직종이 다르고 집도 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나이도, 성별도 다 다른 이들이 신앙이라는 매개로 교회라는 장소로 모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서 농촌사회의 객채에서 산업도시의 주체가 되어 해맸던, 갈증에 시달리던 이들이 정보 교류와 사교에 매우 활발했다는 것 쯤은 알만한 일이지요.


정리하자면, 교회는 기존의 지역 커뮤니티가 해체된 이후의 근대화, 산업화된 사회에서 기존 커뮤니티 역할을 완벽하게, 혹은 그 이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창구가 되었다는 겁니다. 교회 자체가 지역 커뮤니티로 기능하게 된 것이지요. 이는 원래 유럽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역할이지만 말입니다.


그 덕에 교회는 쉽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고, 종교와 신앙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신실한 종교집단이라기 보단 세속적인 가치와 질서와 매우 가까운 형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전통 민간신앙과 섞여서 개신교라는 이름의 다른 무언가를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곤 합니다.


신앙과 종교 그 자체를 이유로 교회에 간 것이 아니다보니 말입니다. 물론 신앙이 없는 것도 아니고 배워서 나쁠 것도 없으며, 그 내용이 사실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닌 것도 사실이죠. 시기적으로도 신이라는 초인에 기대고 싶은 거친 시대였기도 했고..


물론 안 좋은 영향이라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중세나 왕정 수준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이들과 전쟁 을 거치며 남쪽으로 내려오거나 친일 행적 때문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이들이 종교인으로 둔갑해서 사회적 영향력과 존경을 받기 위해 생존형 목사 따위가 된 이들의 기독교와 엮여서 마치 중세 기독교가 보여줬을 법한 악덕을 발생시키기도 했고.. 돈과 사람이 모이니 정치권력이 군침을 들이거나 아예 적극적으로 야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돈 있고 영향력 있는 이들이 정치인, 법조인, 경찰 따위와 친해지려는 건 흔한 것처럼요. 혹은 본인 스스로 정치를 하기도 하거나.


한국 개신교가 가톨릭에 비해서 질적 관리가 안 되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인 경우도 많고 사실상 기업화된 사례도 있으며 여러 문제가 있고, 그런 문제가 있으면서도 여전히 세력이 거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종교 그 자체를 위해 만들어지고 신앙을 위해 사람이 모였다기 보단 여러 이해관계가 엮이면서 형성된 것이 한국 개신교회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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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존재합니다. 수십만명이 입석할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매우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죠. 아마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회를 가진 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통계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세계 어딜가든 이렇게 작은 나라에 이렇게 많은 교회가 모인 나라도 없지 않을까 싶군요.


성경에 보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내려놓고 봉사해야 자신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희생과 봉사를 업으로 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수모까지 겪었는데, 그 분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고 참칭하여 돈과 권력을 쌓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자가 곧 교회인 것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만들고 그것을 자랑스레 생각하며, 십일조라는 이름으로 많은 돈을 걷고는, 세금조차 내지 못하겠다 합니다. 전 하나님의 은행에서 발행한 돈을 본 적 없는데, 과거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며 황제에게 세금을 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매일같이 보는 성경에도 적혀있습니다.


신앙심은 교회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말 뿐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는 공염불이라는 말이 있는데, 생각하지 않고 단지 말로만 떠드는 불경을 의미합니다.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고, 실천치않고 신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는 모습은 공염불이 아니고 무엇인가 생각되게 하는 군요.


수많은 대형교회와 목사들은, 그리고 그들을 믿고 따르는 신도들은 생각해봐야할 것입니다. 과연 나는 성경의 말씀대로 하고 있는가.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아닌가. 자신의 재산을 내려놓고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가. 그리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가.



이태석 신부와 교황의 행보를 보고 무언가 느끼는게 있더라면, 진심으로 신의 사랑을 실천하고 진실된 모습을 마음에 담아내고자 노력하는 자를 보았기 때문이며, 그 진심은 타인에게 흘러갈 것이고 그들이 있기에 진정한 신앙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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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천주교 시국미사에 ‘종북’ 딱지 붙이려 안간힘



조중동이 천주교 시국미사에 종북 딱지를 붙이려 한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조중동의 이런 공작과 이유는 역시 시국미사 때문인데, 이에 대한 새누리의

반응이 일품입니다.



새누리 “시국 미사, 대한민국 끌어내리는 반국가적 행위”

與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불순함 극에 달해”
靑 "정의구현사제단 조국 어딘지 의심스러워"

의도와 명분이 너무나도 뚜렷합니다.

현재 새누리당이 보여주고 있는 각종 나라망신과 불법적 대선조작,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물타기용으로 썼던 NLL 논란. 자신들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비밀이 보장되야할 문서를 까발리
자고 하며 실제로 까발리며, 더욱이 그것에 조작과 거짓 프로파간다로 상대 세력을 종북, 나쁜
놈 딱지를 붙히는 짓을 행했죠.

이에 따라 수많은 국민이 분노했고 이번엔 천주교의 신부들이 미사를 통해 새누리당과 각 사건
들을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보시면, 그들이 예전부터 자주 했던 말이 다 나와있네요. 불순함, 반국가적 행위,
조국이 어디냐는 등.

불순함이라면 국가정보기관과 군, 민간인까지 엮어 인터넷에서 조작을 한 것과, 대선자체에 불법
적 행위를 저지름과 동시에 자신들의 정치적 우위를 얻기 위해 또 다른 사건을 터뜨려 나라에 혼
란을 일으킨 새누리당이 불순한 것이며,

국가의 법을 만들고 받들어야 할 이들이 헌법과 헌법정신을 부정하며 민주주의의 핵심 중의 핵심인
선거마저 조작하고 그 혼란에서 물타기를 하기 위해 NLL 문서를 터뜨려 또 다른, 큰 혼란을 야기한
새누리당이 반국가적인 것이고,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헌법도 무엇도 무시하고 각 기관 및 언론과 손 잡고 마땅히 올바른 경쟁
을 해야할 상대 정당과 그 정당을 지지하는, 혹은 자신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을 종북, 나쁜 놈
등, 반국가 성향을 지닌 오염된 존재로 인식하고 공격하며 조국에 혼란과 싸움, 증오와 반목만을 낳
으며 그런 행위는 결과적으로 적국 및 타국에만 이익을 준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이 사건의 모든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조국이 의심되는 바입니다.


그런 와중에
교계, “동성애와 종교인 과세 반대” 시국선언
기독교 단체 "세금 내는 것은 헌법 위배"


헌법을 들먹이며 세금 못 내겠다 하는 개신교는 왜 반국가단체 소리를 안 들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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