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rodinger

블로그 이미지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 Total hit
  • Today hit
  • Yesterday hit

'애니메이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6.04.28
    무엇이 좋은 감정인가. 인사이드 아웃 리뷰.
  2. 2013.11.26
    현대판 국보법 : 아청법, 게임중독법 2
  3. 2013.10.12
    강대국의 조건 4
  4. 2013.08.24
    만화, 중2병, 모에, 욕구
반응형


인사이드 아웃은 11살 소녀 라일리가 가지고 있는 다섯 감정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영향을 받는지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처음 태어났을 땐 기쁨을, 그 뒤 슬픔을, 그 뒤엔 까칠, 버럭, 소심함 등이 태어나죠.


픽사와 같은 애니메이션 회사의 작품들이 다 그럿듯,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매우 간단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자는 것이죠.


기쁘다는 감정은 좋습니다. 우울하고 슬픈 것보다, 기쁜 것이 훨씬 긍정적이고, 밝고, 행복하니까요. 자기 자신이 그렇고,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자신, 혹은 자기 자식은 언제나 기쁘고 행복하며, 슬픈 일은 없길 바라죠. 라일리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 감정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라일리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한시도 빠짐 없이 지켜보고 보살펴주고 행복하게끔 이끌어주는 감정들.


라일리의 다섯 감정 중 리더로서 역할하는 감정은 바로 기쁨입니다. 그리고 뒤에 보이는 기억과 장기 기억들 대부분이 즐겁고 행복한 노란색입니다. 그만큼 어린 시절의 라일리는 많은 기쁨을 느꼈다는 것이고, 감정들도 기쁨이 주축이 되어 라일리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만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는 의미죠.


라일리의 기쁜 생활은 샌프란시스코로 오면서 뒤바뀌게 되는데, 그런 동시에 라일리의 마음 속에서도 기쁨이와 슬픔이가 문제를 일으키며 감정 본부에서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본부엔 까칠, 버럭, 소심이만 남게 되죠.


기쁨이는 빨리 돌아와 다시 라일리를 기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우 긍정적인 태도지만, 기쁨이의 모습을 잘 살펴보면 매우 독선적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슬퍼서는 안 되고, 오직 기뻐야만 한다는 태도죠.


그 과정 속에서 어린 시절의 상상 속의 친구인 빙봉이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빙봉의 존재는 라일리의 동심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풍부한 상상력과 세상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이 빙봉이라는 유쾌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죠. 하지만 그러한 존재들이 다 그렇듯, 점점 조금씩 잊혀져갑니다.


기쁨이가 슬픔이만 놔두고 라일리를 위해서라며 자기 혼자 감정 본부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복귀에 실패하고 빙봉과 함께 절벽 아래에 떨어진 부분이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빙봉과 기쁨이가 로켓타고 빠져나올 때, 빙봉은 자기희생을 하며 기쁨이를 올려보냅니다.


그리고 빙봉은 사라지죠. 이는 어린시절, 정확히는 유아의 끝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빙봉과 같은 유아 시절의 상상속의 친구가 완전히 잊혀서 사라져버리며 어른으로서의 한층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라일리의 정신적 성장을 이룩하게 하는 역할이었던 셈입니다. 


하여튼, 그렇게 올라온 기쁨이는 이제 다시 슬픔이를 찾아야 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기쁨이는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장기 기억 구슬을 문지르다 색이 변하고 기억의 편린을 보게 된 것이죠. 기쁘기 이전에, 슬펐던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요.


이는 감정이란 복합적이고 단순한 것이 아니며, 기쁨이란 슬픔이 있을 때 그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며 안심할 수 있고 고통을 덜어낼 수 있음을 의미하죠. 이는 나중에 라일리가 가족에게 돌아가 사실대로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고 가속의 품 속에서 불안함을 해소하고 안심하게 되면서 나타납니다.


슬픔은 그 자체로 슬픈 것만이 아니며, 그 슬펐던 기억, 감정 또한 충분히 소중한 기억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연출은 감정에 대해 솔직하자는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무조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감정만을 추구하는 것보다, 보다 인간적이고 자연스럽게 많고 다양한 감정을 받아들일 것을 충고하며 그것이 맞는 겁니다. 화날 땐 화를 내야 하고, 슬플 땐 울어야 하며, 기쁠 땐 웃어야죠. 결국 어려울 건 없었습니다. 슬픈 상황 자체를 피하는 것보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자체로 소중하게 간직할 수도 있고, 훗날 기쁨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도 있죠.


감정이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고, 간단하면서도 다양한 것입니다. 온전히 기쁠 수도 있지만 슬픔과 함께 기쁠 수도 있죠. 일명 기쁨의 눈물 같은 것.


이러한 사건 이후 좀 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진 라일리의 감정 본부를 보면 두가지 이상의 색이 섞여 있는 기억 구슬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감정이란 그런 거죠. 온전히 슬프기만 하고, 온전히 분노하기만 하며, 온전히 기쁠 수만은 없는 법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해지고 다섯 감정들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기쁨만이 최고이고, 가장 나쁘고 피해야 할 것은 슬픔이라는 편견을 깨뜨린 것이죠.


이는 결국 라일리의 정신적 성장으로 이어지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하나인 셈입니다. 


반응형
AND
반응형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아청법과 게임중독법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60~80년대 한국의 국가통제적 멘탈리티가 보입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의 정통적 보수주의자, 극우주의자라는 사람들의 국가, 사회에 대한 신념은 60년대 박정희라는 인물의 등장 이래 제시된 군사, 병영문화적 통제, 준파시스트적 사회통제, 격렬하고 폭력적인 반공주의, 노동에 대한 자본의 절대적 우의 등등의 것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죠.


87년도 6월 항쟁을 통해 전두환 정권이 퇴진하고, 90년대를 거쳐 양김정권과 노무현 정권을 지나서 이명박 정권에 들어서야 다시 그동안 국가권력을 수십년간 독점해왔던 이들이 그들의 권력을 탈환하듯 되찾았고 90년대부터 2008년까지, 약 20년에 달하는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바뀐 세상을 그들이 원하는 마인드의 것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으며, 어쩌면 그들은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죠.


그들, 새누리당과 그들이 대표하는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자들의 이상향은 여전히 60년대적 병영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나라와 좋은 국민은, 결국 상명하복의 권위적 수직체계 아래 위에서 명령을 내리면 아래에선 불만없이, 일사분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죠.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관은 획일화이며 국가와 사회 모두 수월하게 통제되는 부하들이 위에서 내려온 명령에 따라 별다른 요구없이 착착 해나가면 그에 따라 국가가 강성대국으로 전진해나간다. 라고 믿고있는 것이죠.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국론통합을 이루고, 끊임없이 자유와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과 그 북한과 한 패거리가 틀림 없는 사회의 모든 불순분자들에 대해 성전을 선포하여 일제히 배제하는 그런 것을 바라는 겁니다.



그들을 상징하는 법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국가보안법일 것이고, 게임중독법과 아청법은 문화, 여가생활에 대한 국보법이라 부르기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말로 게임의 중독성이 너무나 심각하고 위협적이라 그것을 막고 배제해야 하는지 따위나, 강제적 규제와 세금걷기(돈 뜯기)가 중독을 막을 수 있을지, 청소년들의 범죄 등 일탈문제가 정말 그런 게임이나 만화 따위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건, 그 법안의 핵심이죠. 국보법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나서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라고 지정해주는 것입니다. 국민은 우매하고 스스로의 판단을 내버리게 두어 서로 다른 개성과 선택이 나와버리면 그들이 원하는, 그들이 지향하는 사회의 질서가 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라에서 직접 우매한 국민을 위해 이렇게 시시비비를 가려주면, 국민은 당연 그것을 반발없이 수용해야하죠. 그에 대한 반항? 국가체제에 대한 도전이고 종북의 반항입니다.



게임중독법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것이죠. 사회적 통제의 강화 및 청소년문제에 대한 희생양 만들기, 아청법도 마찬가지죠. 아동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컨텐츠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그 법의 모호한 기준관계를 통해 줄줄이 엮어 집어넣을 수 있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 등 컨텐츠에 대한 억압이죠. 이미 여러 문제없을 작품들이 걸리는 것이 뉴스에 나온 적이 있었죠. 애매한 기준에 애매한 선별이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러한 법률은, 국가가 국가의 권위를 통해 지정한 공공의 도덕률을 확립하고, 그것을 모든 국민.. 만민이 수용하여 일사분란한 가치판단기중을 마련하여 수월한 사회통제를 위해 만든 것들입니다. 혹은 그렇게 이용하겠죠.


아청법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등에 대한 국보법이고, 게임중독법은 게임매체에 대한 국보법이에요. 벌써 문화와 여가생활에 대한 국보법이 두개나 만들어진 겁니다. 그리고 이 법안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부터 대상이 되는 모든 매체 및 컨텐츠의 주요 수요를 구성하고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국가적 정신개조가 이루어지겠죠.



불만은 있지만 익숙해지면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치관의 깊은 곳에서 뭔가 이질감 따위를 느끼고 자기 자신을 옥죄게 되죠. 그리고 가치판단과 정신적 성숙, 사회의 경험이 부족한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정신개조는 뉴 에이지 지지자들을 양산하기 위함입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의 부품으로서 써먹을 수 있는 가치관을 지닌 이들이 되어 성장하겠죠.



이젠 정말로 한국 사회가 유신시절로 회귀하고 있는 겁니다. 예전엔 총칼이었다면 이번엔 법률을 통해 이루어내겠죠. 예전처럼 총칼을 사용할 수 없으니, 이전보단 느리지만 안전하고 확실한 법률로 말이죠.. 세련된 수법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게임과 아청법, 이번 신의진 의원은 성중독에서 볼 수 있듯이 섹스까지.. 그 다음은 뭘까요?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등 하나하나 다른 분야에까지 통제과 규제의 손길이 퍼져나갈 껍니다. 80년대로 돌아가기 위해서죠.

반응형
AND
반응형


강한 국가라는 단어에서 견지하는 강함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군사력을 이야기할 수도, 혹자는 경제력을 이야기할 수도, 혹자는 문화의 발전 정도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각각의 것들은 그 나름대로의 국가의 강함을 기준하지만 기실 강대국이라는 단어에는 어느 하나만의 강함만을 두고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어떤 분야에서 강세를 보일 뿐이기에 문화 강대국, 군사 강대국 같은 한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요.



미국은 강대국입니다. 일본도 강대국이죠. 이들이 강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은 경제력, 둘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졌죠. 일본은 평화헌법에 의해 제한되고는 있지만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그 한계 내에서 상당한 화력을 갖추고 있지요. 미국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문화라는 관점에서 일본은 수십년, 아니 백년도 전에 서구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지금도 오타쿠 문화의 총본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또한 헐리우드를 필두로 한 문화라면 안 지는 문화강국이기도 하죠.


이렇듯 누구에게 물어봐도 강대국이라고 하는 국가는 어느 한 분야에서만 강세를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경제라면 경제, 군사라면 군사, 문화라면 문화, 학문이라면 학문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타국에 비해 밀리지 않고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저에게 한국은 강대국이냐 말한다면, 저는 그렇다고 말하면서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한국은 분명 경제와 군사적으로 강한 편이 맞습니다. 전세계에서 한국 정도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는 국가는 많지 않고, 비슷한 수준을 찾자면 분명 유럽 등지의 국가가 으레 비교대상이 되기 쉽지요. 문화라는 부분에선 K-POP과 드라마, 게임 등이 동남아 등 아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강대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째서 아니다라고 하느냐라고 묻노라면 게임은 해외에서 얻어들이는 수익과 프로게이머들의 명성이 있으나 그것을 마약과 동급으로 취급하며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탄압하고 짖밟기 마련이고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은 거의 죽었다고 봐야하며 그나마 독자적으로 자생적 환경과 덩치를 지니게 된 웹툰 또한 한 차례 탄압을 겪어본 바가 있죠.


학문의 경우에선 대학은 이미 대학으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말하기 부끄럽고 이공계는 물론 심지어 인문계 분야까지 배우면 당장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경영학 정도의 분야가 아니라면 취급이 좋지 않죠. 한국의 이공계는 그 처절한 인식과 대우에 힘 입어 그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가기 일쑤에 인문계 또한 순수 학문은 이공계에 비해 더욱 취급이 안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대국의 강함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강함 이전에 그 기반이 되는 토양이 있습니다. 군사 분야는 기초 학문과 이공계의 기술력이 절대적이고 문화적, 사회적 토양은 대학의 학문적 업적 및 그 지식의 배분이 이면에 존재하죠. 돈? 지식이 돈을 버는 시대에 그러한 지식은 전방위의 분야에서 해당되는 법이고, 그것이 IT, 그래픽이 됬든 수학과 철학과 같은 학문이 됬든 혹은 경영학이 됬든 모두 동일합니다. 가령 프로그래밍이라면 컴퓨터에 앉아서 자판만 두들겨도 아파트 수채는 지어서 벌 돈을 얻을 수 있겠죠.



한국은 강대국이면서도 강대국 워너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작 강대국이 갖춰야할 필수요소가 되는 분야에 있어서는 전멸에 가깝고 이런 대학과 순수학문의 지적 사막화는 현재진행형에 문화적, 기술적 환경에 인력은 탄압받고 다른 나라 좋으라고 해외로 빠져나가게 만드니까요. 같은 맥락에서 우리나라는 노벨상.. 노벨평화상을 제외하면 다른 분야에선 정말 절대 못 딸 것 같습니다. 그런 환경과 투자와 인력이 없으니까요.

반응형
AND
반응형


상대적으로 10대 청소년층이 많이 보는 네이버 웹툰의 신의 탑이나 노블레스, 갓 오브 하이스쿨, 헬퍼, 완결이 났지만 폭풍의 전학생 등등.. 여기서 찝은 웹툰들은 네이버 웹툰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와 인기를 가진 웹툰들입니다. 폭풍의 전학생이 연재될 당시엔 현재 월요일 최고의 웹툰인 신의 탑이 2등에 머물렀고, 노블레스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높은 인기를 얻고 있죠.


그리고 그 웹툰들이 높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 때문인데, 바로 주인공의 강함, 주인공이 절대 무시받지 않는 최강, 최고라는 설정이기 때문이죠. 영화가 됬든 소설이 됬든 그것을 즐기는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 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겪은 고통을 독자가 공감하며 똑같이 가슴 아파하고, 주인공이 느끼는 기쁨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깁니다.


10대 청소년 세대는 강한 것, 멋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작중 최강에 가까운 강함을 보여주는 미소년인 밤, 공식적으로 최강이고 똑같이 미소년이며 혈통적으로도 우수한 노블레스 라이제르, 갓 오브 하이스쿨은 보진 않지만 똑같이 주인공이 굉장히 강하죠. 폭풍의 전학생 같은 경우 약해빠진 약자이지만 굉장한 운빨로 인해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10대 청소년에게 일진이 되고 싶다, 일진처럼 되고 싶다.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기에 충분한 끝판 운빨을 가지고 있고, 결국 마지막에 가선 학교 1짱이 되버렸죠.


작품의 주인공을 자신과 동일화하며 공감한다는 것을 통해 판에 박힌 설정, 내용과, 그 수준도 크게 높지는 않으나, 캐릭터의 디자인, 설정 등등을 통해 10대 아이들의 욕구를 대리만족으로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노블레스 같은 경우 아예 최강이고 나서기만 하면 모든 사건을 해결시켜버릴 수 있으며, 미남에 돈도 많고 머리도 좋고 심지어 강하기 까지한 이사장을 부하고 대리고 있는 라이제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큰 인기를 누릴 수 있었죠. 그 강하고 프라이드가 높은 귀족들이라는 종족들마저도 자신보다는 약하다는 것은 강함에 매료되기 쉬운(그래서 일진에 대한 워너비 심리가 가득하죠.) 10대 아이들에게 반응이 뜨거운 거겠죠.


특히 주목해야할 작품은 폭풍의 전학생인데, 주인공이 자신들과 비슷한 평범한 학생(정확히 하자면 얼굴만 험악한 약골 허접)임에도 불구하고 전학을 가자 마자 각 반의 짱들을 운으로 이기고 종래에는 학교의 1짱이 되버리는 것은 그들의 워너비 심리를 가장 강하고 직접적이게(학교라는 공간이 작중 배경이니깐.) 자극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재밌는 것은 진짜로 작중 최강의 싸움 실력을 가지게 된 리메이크 판에선 오히려 불운으로 주인공이 그 강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절이나 하고 앉아있으니 그런 워너비 심리를 가진 이들이 불편하디 불편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리메이크 판을 연재하는 동안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했죠.


중2병이 넘치는 작품이라곤 해도, 그것을 소비하는 세대가 그것에 가장 매료되기 쉬운 10대인 만큼, 게다가 그러한 증상이 매우 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부류의 작품은 꾸준히 나올 것이 당연하고.


모에같은 경우는 조금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데, 잘 생기고 몸매 좋고 성격 좋으며 여러 미모의 이성에게 인기가 많아 그들에게 들러붙혀 사는게 일상인 것을 묘사함으로서 그들의 워너비 심리를 또 만족시켜줍니다. 이 모에의 부류, 종류에도 여러 장르(?)같은게 있어서 뭐라 꼽찝어서 이야기하기엔 많은 예시들이 있지만, 결국엔 워너비 심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것들임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흠, 예컨데 내가 아가씨 학교에 서민샘플로 납치당한 사건의 경우가 그러하겠군요. 여러 속성을 지닌 이성들과, 그런 이성들이 꽉차있는 여학교에 자신, 단 한명의 남자가 입학하게 되고 여자들에게 둘러쌓여서 생활하게 됬죠. 일명 하렘 속성을 지닌 이 작품은 인물들의 성격과 사건들이 매우 작위적이게 혼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인물들과 사건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죠. 일단은 교양있는 미모의 여학생들만이 있는 학교에 평범한 남학생이 입학하는 것과, 그곳에서 만난 각기 다른 성격과 속성을 지닌 여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며 그곳의 여학생들에게 주인공은 매우 관심을 받는 설정이고, 그곳에서의 사건들(실수로 회장이 목용하는 곳에서 마주쳐버린 다던가, 게임기를 가지고 놀다 무슨 남친놀이같은걸 하게 된다던가) 또한 남성의 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것들 뿐이죠.


사실 작품에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이게 잘 안되는 작품은 그야말로 기본이 안되는 셈이죠. 십대 청소년 세대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것들은 이러한 노블레스나 신의 탑, 폭풍의 전학생의 주인공과 비슷한 요소를 가진 캐릭터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능력이 제대로 길러지지 않은 학생들이 어떤 캐릭터를 만들거나 할때, 흔히 자케라고 하죠? 자신의 창조해낸 대표 캐릭터.. 이들의 능력을 매우 비정상적으로, 먼치킨스럽게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설정을 가지고 작품을 만든다면 너무 강하고 똑똑하고 외모적으로 매력적인지라 재미없는 작품이 나오기 쉽상이죠.


노블레스나 신의 탑 같은 만화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고 작가도 나름의 애정도 있으며, 이것들이 사랑받는 이유가 중2병스러운 설정들과 그것에 동조하기 쉬운 독자들 때문만은 아닐 겁입니다. 하지만 제가 노블레스를 저평가하는 이유들이 그러하다면 그러하겠죠. 사건의 플롯이 거기서 거기에 가깝고 주인공과 주인공의 부하는 먼치킨에 주인공의 친구인 고등학생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강하고 신체스펙이 좋거나, 똑똑하고 귀엽거나, 예쁘고 몸매 좋거나, 심지어 거기에 유명하기 까지한 연예인까지 있는, 그야말로 10대 청소년의 욕구를 노골적으로 충족시켜주는 만화니까요.

반응형

'취미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테러를 악이라 치부할 것인가.  (4) 2013.08.28
반지성주의적 지성경쟁  (0) 2013.08.27
언론에 대한 단상.  (2) 2013.08.16
국가적 번역 기관의 필요성  (4) 2013.08.15
로마가 위대한 이유  (2) 2013.08.14
AND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849)
취미 (849)
백업 (0)

RECENT ARTICLE

RECENT COMMENT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