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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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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2.10.29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는가.
  2. 2022.05.12
    자본주의는 또 다른 한계점을 맞이하는가. (2)
  3. 2016.03.14
    맑스의 공산주의와 인공지능. (1)
  4. 2013.06.17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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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해 사람의 욕심을 고려하지 않았다거나 지나치게 이상적이었다는 등의 피상적인 접근으로 분석하곤 한다. 이것은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대표적이고 쉬운 설명이 될 수는 있으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백년전 사람들이 바보도 아니고 욕심에 대한 이해가 없을 수도 없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체제라면 반세기 이상 유지될 수가 없다.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글에선 어째서 공산주의가 실패했는지에 대해 개괄적으로 서술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시작과 예견된 한계.

인간 노동은 기계로 대체되었다. 기존 수공예 숙련공들은 기계의 등장에 따라 노동의 시장가치가 줄어들었고, 저임금 노동자에 의해 완성되는 면직물들은 더 싸게, 더 많이 팔려나갔다. 지금은 일부 영역에 불과하겠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많은 노동은 기계로 대체될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부분에 있었다. 인간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어간다면, 그리고 돈을 받지 않고 생산하는 기계를 통해 부를 축적한다면 노동자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직업이 없어졌기에 돈을 벌 수 없게 되고, 자본가는 그들의 주머니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있든 살아남기 위해 소비하는 것으로 끝없이 자본을 축적할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자본주의는 효율을 위해 비용을 줄이고 최대의 이익을 추구한다. 인간노동보다 기계가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이 생산하며, 더 적은 비용을 발생시킨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문제가 된다. 노동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가질 수 없어 돈을 벌 수 없다면 어떻게 소비를 한단 말인가? 노동자가 소비할 수 없는 시점이 바로 기업-자본가의 사망선고점과 같다.

 

자본주의에서 자원은 순환해야하고, 노동자가 돈을 벌면 그것을 통해 소비하며 경제는 발전한다. 그러나 노동자가 돈을 벌 수 없어 소비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죽게 될 것이고, 소비할 사람이 없어 팔 수 없는 환경에선 자본가 역시 고사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노동에 대한 인식과 그 권리보장이 처참했을 시기 어떤 사람들에게 그 미래는 그리 머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자본주의는 굉장한 가능성을 내포했지만 본질적 모순에 의해 필연적으로 종말이 찾아올 수밖에 없는 체제였던 것이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마르크스의 등장.

산업혁명기 노동의 가치는 낮았다. 노동자는 많았고 노동법과 같은 권리는 미비했다. 5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발암물질을 들이키며 굴뚝을 닦았고 10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손가락과 팔뚝이 기계에 껴서 잘려나가고 비틀렸다.

 

누군가 일하다 죽는다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고, 모든 책임은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 되었다. 언제 어떻게든 해고해도 문제되지 않았고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은 끔찍하다못해 이전 시대 농노들보다 비참했다.

 

분명 시대는 발전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욱 비참하고 잔혹한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불만을 터뜨리며 자본가와 의회, 정부에 요구했고 그들의 방해와 강경대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권리를 조금씩 얻어나갔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모순을 통찰한 이들이 몇 있었다. 프로이센의 카를 마르크스가 그러했다.

 

마르크스는 기존 공상적이거나 이상적이었던 사회주의를 비판하며 더 현실적이고 더 과학적인 공산주의 이론을 전개했다. 철학의 대가였던 그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설명했으며 그 한계 역시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발달한 끝에 공산주의로 도달할 것이라 말했고, 그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비인간적인 노동환경과 불합리한 부익부 빈익빈을 기본으로 하는 체제는 모순적이기에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고, 그러한 상황에 반발한 이들과 그러한 모순을 통찰한 이들에게 자본주의는 매력적인 체제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것을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그러했고, 이것에 호응했던 노동자-혁명가들이 그러했다.

 

 

혁명의 시대.

레닌은 러시아에 혁명을 성공시켰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건국된 것이다. 그 이전에도 수많은 혁명가들이 자본주의 세계를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계를 만들려 했고, 파리 코뮌 역시 그러했다. 이들은 실패했지만 레닌은 성공했다.

 

이후로도 세계의 수많은 국가들에게 공산주의 혁명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이 어떤 곳인지 찾아본다면 이상한 사실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혁명이 발생하고 성공한 국가 중, 자본주의가 발전한 국가는 없었다는 것을.

 

실제로 자본주의가 발달했던 서유럽, 중부유럽과 북미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있었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 이것을 이미 체제를 장악한 자본주의가 경쟁체제의 성장과 발전을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고, 단순히 체제의 경쟁력 면에서 자본주의보다 우위에 있을만한 것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진국에서 공산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후진국민들에게 공산주의는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어떻게 후진국의 체제가 되었을까.

후진국들은 대체로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와 같은 제3세계의 국가들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서구의 밖이었고, 자본주의는커녕 유럽 문명 기준 중근세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들이었다.

 

그런 국가들은 제국주의 당시 서구의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주장했던 사상이었고 그들을 신음하게 만들었던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후진국 구성원들은 자본주의를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고 교육수준이 낮았다. 이들에게 상상력의 발휘는 직접적이고 간단해야했다. 가령, 모두 잘먹고 잘 사는 게 뭐가 나빠?와 같은 문장은 그들에게 쉽게 이해되고 동의할 수 있는 개념일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권은 머나먼 개념에 가까웠다.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도덕과 규칙들은 있었지만 그만큼 폭력과 불합리 역시 만연했다. 그들의 세계는 협소했으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 곳에서 자본주의는 깊게 뿌리내리기 어려웠으며 기존 체제보다 우월하다 말하기 어려웠다. 자본주의가 처음 발흥했던 영국의 노동자들은 얼마나 비참했는가.

 

노동권 역시 서구와 비서구의 수준이 다르듯이, 20세기 초중반 혁명의 불길이 올랐던 국가들에게도 노동자들에게 권리는 산업혁명기 영국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언제나 약자였던 그들에게, 아직 전근대적 관성하에 권력자에게 죽창을 휘두르던 민란과 반란의 인상이 남아있던 노동자들에게 공산주의가 말하는 것들이 어떻게 들렸을까. 전근대 지주보다 더 가혹하게 노동자를 다루는 공장주와 해가 뜨고나서 일을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던 농경 시절보다 더 통제되는 환경에서 시간은커녕 분 단위로 노동을 다루는 공장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논과 밭에서 그들은 그 스스로가 관리자이자 노동자였다. 자영농의 경우 그 스스로가 주인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농사를 지으며 스스로 해왔고 스스로 노력하고 노동을 조절해왔다. 오랫동안 농사해오며 배우고 깨우치고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장에서는 단순 노동자 한명에 불과했을 것이고 스스로가 주인인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한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단지 정해진 공정대로 반복해서 움직일 뿐이다. 더 나을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독하고 비참한 환경에서 누군가 찾아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건 뭔가 잘못됐어. 뭔가 바뀌어야 해. 우리의 권리를 찾고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기본적인 노동권과 사상, 공산주의 이론을 딱 필요한 만큼만 가르치고 지하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노동에 대한 인식과 실제 현실이 처참할수록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매력적이게 들릴 것이다. 그들에게 공산주의 혁명은 좀 더 조직화되고 좀 더 큰 대의를 담은 민란과 다를 바 없었다. 지역 관리가 부정부패해서 백성들이 먹고 살기 어려울 때 들고 일어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던.

 

 

왜 실패했는가?

반대로 질문해도 좋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지구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어딘가에 투입해야 한다면 당연히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는 쪽이 우월하다. 그것이 노동력이 됐든, 땅이나 나무 열매, 종자, 혹은 기계와 같은 생산성이 됐든, 더 간단하게 돈이 되었든.

 

자원은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만큼이나 다양하고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제각기 다양하게 연관되어 있고 다양하게 가공될 수 있으며 조합될 수 있다. 부족사회는 부족의 인구만큼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었고, 그러한 노동력이 채집하고 보관할 수 있는만큼의 자원만 동원될 수 있었다.

 

왕국은 왕국의 인구만큼의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었고 그러한 노동력이 채집하고 생산하고 보관할 수 있는만큼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체제와 수단에 따라 그 이하, 혹은 그 이상을 동원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어떠한가. 자본주의는 자원의 효율적인 소비(혹은 투입)와 생산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따라서 그 어떤 체제보다 우월한 생산성을 갖추고 있고, 그 어떤 체제보다 압도적인 자원을 보유할 수 있다. 식량생산이 인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듯이 어떠한 요소는 다른 요소와의 복합적인 관계성을 가진다.

 

다르게 말해서 자본주의는 공산주의보다 더 우월한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체제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는 21세기 이전의 체제들간의 비교에 불과하다. 공산주의는 후진국에서만 성공한 체제이고, 애초에 자본주의는커녕 근대에 접어들지도 못했던 이들이 근대에 접어들기 위해 선택한, 그들의 요구에 부응한 거의 유일한 체제에 불과하다.

 

자본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상이었고, 그러한 서구 제국주의를 거부했던 후진국 피지배국은 서구의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그것을 거부하는 공산주의를 택했다. 어차피 자본주의가 성공하지도 않았기에 자본가들은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혁명을 요구하는 이들을 억누르고 제압할 정도로 많지 않았다.

 

애초에 자원이 부족했던 국가들에게서 공산주의가 성공한 것이고, 당연히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가진 자원도 부족했는데 그것을 생산하는 체제 역시도 뛰어나지 못했다. 후진국 특유의 부정부패와 후진적 의식세계는 더 경쟁력 있는 사회를 건설하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소련, 현재의 러시아 역시 그러한 후진적 의식와 부정부패에 의해 자원이 낭비되고 비효율적인 국가가 되었다. 이는 그들이 공산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후진국들이 다 그러하다. 민주주의가 됐든, 정치적 성숙성이 되었든 그것은 대중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 이는 곧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민주적 전통과 관습이 충분히 뿌리 내리기 위해서 서구는 수백년의 시간을 보내어 겨우 지금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을 100년전 근현대에 도전한 후진국들이 이제 막 서구와 동등한 수준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공산주의 국가나 그랬던 국가들이 쉽게 독재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역시 민주주의는 건국된 지 반세기는 더 지나야 가능했음을 인지하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를 공산주의라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하고 기계로 대표되는 압도적 생산성이 지구를 지배한 이후 자본의 존재는 그 의미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기계가 모든 노동을 대체했을 때를 생각해보자. 자본가만이 무한하게 자본을 축적했으나 노동자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오직 가진 돈을 모두 쓸 때까지 소비만 할 수 있다.

 

그마저도 더 이상 소비하지 못할 시점이 찾아오며 끝날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끝이 난다. 그러나 이를 분배의 방식으로 해결한다면 어떨까? 정부는 자본가-기업에게 세금을 걷고 노동자에게 돌려준다. 노동자는 그것을 통해 다시 소비하고 살아갈 수 있다. 자본가와 기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막대한 세금을 내면서 노동자가 소비한 돈으로 계속해서 기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본가는 자신의 돈을 결코 풀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노동자보다 자본가의 편을 들었던 것이 실제 역사에서 증명된 바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그런 맥락에서 등장한 개념이다.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에게서 자원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게 하는 막대한 권력을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후기에 러시아나 중국을 비롯한 후진국에서 공산주의의 발생 가능성을 인정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나, 공산주의는 애초에 오래 유지될 수 있는 체제가 아니었다. 자본주의라는 체제와 경쟁을 했지만 동원 자원과 능력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압도할 수 없었고, 후진국의 전근대적 관성들은 부정부패나 정치적 성숙에 있어서 서구보다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오히려 이전 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었거나 더 나빴다.

 

선진적 제도들은 더 많은 자원을 다룰 수 있었지만 만연한 부정부패에서 그것은 더 많은 자원 유출과 비효율을 발생시킬 뿐이었다. 이건 공산주의의 한계가 아니라 전근대에서 진정으로 벗어나지 못한 사회의 한계이다. 서구 유럽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면 유럽의 공산주의는 생각보다 더 잘 돌아갔을 것이다. 최소한 소련보다는.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했다. 소련은 만연한 부정부패를 방지하고 더 효율적인 행정 및 계획경제를 가능케하기 위해 오가스(OGAS)를 구상했지만 당시 컴퓨터 성능으로는 불가능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구성원들은 후진적 의식을 가졌기에 공과 사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부정부패했다.

 

그렇다고 부정부패를 충분히 통제 가능한 기술력이나 행정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고, 행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유지 및 지속 가능한 체제가 아니었다. 단지 가진 자원과 생산을 통해 최대한 오래 버텼던 것 뿐이고 이는 체르노빌 등의 악재들이 없었다해도 기껏해야 수십년 더 이어졌을 것이다.

 

공산주의는 태생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에서 비롯됐고 너무 일찍 발생했다. 자본주의는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고 공산주의를 적용한 사회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탄생한 적도 없었다.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물결에 의해 자본주의가 멸망하고 지구상 유일한 체제로 공산주의가 작동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오래 유지될 수 없었다. 그것이 작동하기엔 시대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제 경쟁은 그런 의미에서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정의해야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왜 끝장나지 않았는가.

공산주의와 그것을 추종하는 이들이 혁명을 요구했고 실제 행동으로 나타난 적도 많다. 자본가와 정부는 그들의 힘이 (아직 소련이 등장하기 전에서조차도) 무시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들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는 등장한지 오래된 것이 아니었고, 노동자의 요구는 느리더라도 지속적으로 응답받았으며 그렇게 자본주의는 수정되었고 또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그 모순을 '어느 정도' 교정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그 수명을 연장했다. 사회주의적 원리는 그들의 적 역시 성장시켰다. 혁명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거부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자본주의는 균형을 맞춰갔다.

 

그리고 그 덕분에 자본과 노동의 균형은 어느 정도 맞아갈 수 있었으며 처음 지적되었던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역시 발전하고 수정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그들의 믿음이 승리하리라 믿었겠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공산주의가 더 심각했을 뿐이다.

 

자본주의 역시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것이 다시금 자본주의가 폭주하여 모순을 해결할 수 없게되었을 때가 되었든,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자동화와 인간 노동의 탈피를 통해서일지는 그때가 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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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다른 곳에서 대화하다 나온 이야기인데, 전부터 생각을 좀 정리하던 게 있어서 여기에도 마저 정리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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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또 다른 한계점에 맞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제적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이 너무 심해졌습니다. 수치적으로도 수십 년 전과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임금격차, 자본 격차가 발생했어요. 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는 80년대~9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 크지 않았던 걸로 압니다. 한국 또한 대졸자와 고졸자의 소득을 비교하면 예전에 비해 지금 격차가 훨씬 커졌고요.

 

 

 

문제는 어느 나라든 중산층이 얇아지고 있는 상황이며 이렇게 중산층에서 탈락하여 빈곤층, 저소득층이 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으로 이어집니다. 사회불안과 불만은 더욱 커지고, 정치와 사회에 대한 고민과 관심 역시도 줄어들고 포퓰리즘이 횡행하게 됩니다.

 

또 이런 상황에서 파시즘이나 그와 유사한 극단주의가 발생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 됐죠. 나치 독일은 대공황과 인플레이션에서 급격히 성장했고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자신의 계층이 하락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경제적인 이익은 이념과 사상에 무관하게 호응받을 수 있는 주제이며, 그것이 설령 가능성이 없고 실현 의지조차 없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하는 말, 혹은 국익을 저해하고 미래를 팔아서라도 당장의 생존에 직결되는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사람들은 그것에 환호하고 지지를 표할 겁니다.

 

 

트럼프는 그러한 환경에서 당선되었죠.

 

 

 

문제는 이젠 물리적 방법(혁명)이나 정치적 방법(개혁) 역시 쉽지 않아 졌습니다. 혁명은 그 경제적 격차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해졌습니다. 더 가진 사람들은 더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받습니다. 예전처럼 테러, 암살을 하기에 쉽지 않게 되었고 운이 좋다면 설령 그런 공격에 부상을 입어도 발전한 의료기술의 덕을 볼 수도 있겠죠. 아무리 비싸도 의료비 내는 건 어렵지 않을 재산이 있으니까요.

 

부자들이 아닌 정권이나 정치 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이전에 비해 전술적 자유도와 가능성은 너무나도 커졌고, 이를 훈련받지 않은 대중들은 결코 이겨낼 수 없습니다. 살상무기는 물론이고, 비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군대나 경찰집단 역시도 너무 강해졌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적을 상대하는 것 뿐만 아니라 대중과 국민들을 통제하는데에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죽이지 않더라도요.

 

그렇다고 개혁 역시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그 자본에 의해 언론, 학술계에 의도를 투영하기 쉬워졌습니다. 로비, 혹은 이권, 심지어 정치적 이념에 따라 학자들은 정치적 담론에 편향적일 수 있고 언론은 편파적으로 자기들이 지지하는 진영에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이고 객관적인 사실인지 구별하지 못할 것이며 알고리즘, 본인의 선택과 비토를 통해 원하는 이야기만 듣고 그렇지 않은 목소리를 거부하고요.

 

그렇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아도 그걸 달성하기 위한 싸움이 너무 무용하고 무익한 걸로 싸우고, 그렇게 싸워서 얻은 것조차 무가치하게 됩니다. 이겨서 얻는 것도 없는데 싸우는 이유조차 핵심과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처음 자본주의에 가장 심대한 위협을 줬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등장했던 때와 유사한 상황에 치달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데, 문제는 공산주의는 소련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실패한 체제가 되었고, 이에 대한 도전이나 견제가 가능한 대안, 혹은 경쟁적 이념은 등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계는 명실상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요.

 

즉, 자본주의는 현재 견제할만한 사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경쟁자 때문에라도 살아남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유주의나 프로테스탄트적이지 않은 전통적 기독교 윤리, 인본주의, 애국심, 참정권과 함께 이어지는 대다수 노동자들의 요구 등 다양한 관점과 사유로 노동법이나 노동환경은 점차 나아졌고 자본주의는 지나친 비인간성이 줄어들어 현재와 같은 체제에 이르게 됐습니다.

물론 지금도 비인간적이고 지나친 부분들은 여전히 많이 보입니다만, 산업혁명 초기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 역시 사실이고, 그에 대한 이유 중 하나로 공산주의라는 강력하고 위협적인 경쟁자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죠.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키기보단 자본가들의 이권 조금을 떼어 주는 것으로 그들의 불만이 역치(혁명)에 다다르기 전에 누그러뜨리는 쪽이 낫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소련의 멸망 이후 경쟁자가 없어진 자본주의는 다시금 산업혁명 당시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지금의 노동환경과 자본-노동의 관계가 산업혁명 당시처럼 암울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노동자와 자본가, 노동자 사이에서조차 많은 경제적 요소들의 갭Gap이 커진 상황은 지표상 얼마나 경제가 성장했든 불안한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는 대부분의 불만은 경제적 원인 때문이고, 심지어 경제와 무관해보이는 사회적 갈등과 젠더갈등조차 경제적인 원인이 해결될 경우 적지 않게 해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빈부격차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고, 이는 코로나 상황이 더더욱 심화시켰습니다. 이 불만과 두려움이 공격성으로 이어지며 극단화 되면서 뚜렷하게 극단주의가 횡행하게 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상황을 해소하기엔 모두가 잘못된 선택을 내리고, 올바른 선택을 내린 사람들조차 올바른 이유나 판단의 결과로 선택하지 않은 경우조차 많습니다. 어쩌다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경우 역시 많다는 거죠. 또한 이 옳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선택지에 비해 더 낫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지 객관적인 정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분배에 있습니다.

 

그 이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 자체가 거세되어가고 사멸해져가는 환경에도 있지요.

 

 

이 경제 문제에 대한 유일한 희망은 기계와 인공지능을 통해 인간노동의 완전 탈피를 통해 초과생산 초과수요로 자본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정도 말고는 없지 않나 싶은데, 이것 역시도 자본주의 디스토피아가 될 가능성 역시 내포하고 있죠. 점차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능력이 사라지고, 사람 또한 그럴 필요조차 못 느끼는 시대가 옴에 따라 우리는 정치적으로 교란된 메시지들로 인해 대중 대다수에게 이익이 오고 더 나아가 모든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이 있다 하더라도 극소수의 기득권, 권력자에게 가장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선택을 위해 서로 피튀기게 싸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객관적이고 건조하게 바라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단순한 사실조차 정치적 이념과 진영논리에 따라 진실을 거부하고 피상적이고 파편화된 사실을 조합하여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점점 넓은 시야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그 부와 권력을 쥔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자기 이익을 아무 이유 없이 때어줄 이유도 없고,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자본주의 디스토피아도, 사실 자본주의를 유지할 이유 자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급의 존재 그 자체를 위해서 그러한 디스토피아 세상을 만들고 장기간 유지하는 것조차도 그런 이유에서 발생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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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의 창시자 맑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공산주의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이후에 넘어가는 단계로 설명을 합니다. 후대의 혁명가들(레닌, 트로츠키 등)은 그러한 발전 없이도 공산혁명이 가능하다고 봤고, 실제로 혁명에 성공하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러한 성공은 완전하지 못했고 또 약 1세기가 못되는 시간만에 혁명은 실패를 증명했죠.


기실 현실의 공산주의 국가들은 맑스의 예지와는 정반대의 경우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은데, 베트남, 북한, 쿠바는 물론, 그 소련마저도 사실은 경제력이 그렇게 뛰어났던 국가는 아니었지요. 소련의 경우 뛰어난 인력풀에 의한 국가운영과 중공업에 대한 투자에 따른 경제성장을 경험했지만, 대다수의 다른 공산국가들은 그러한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한 채 소련의 지원에 의존했었고, 혁명 이전이나 이후에나 경제적으로 궁핍한 후진국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중요한 건 맑스의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이후의 단계로서의 공산주의' 부분인데, 이러한 결론이 나온 이유는 당대의 사회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자동화 기계를 통한 생산력의 폭발적인 증대인데, 임금을 받지 않으며 쉬지 않고 생산할 수 있는 기계는 단순 유지보수만 해주면 아주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더 성능이 좋은 기계를 늘리고 노동자를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고용한다면 자본가는 적은 비용지출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러다이트 운동인데, 기계가 자신의 일자리를 대체함에 따라 실직한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등의 운동을 일으킨 것이죠.


하지만 그런다고 뒤돌아갈 시대가 아닙니다. 현재 자동화는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노동자의 필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더 많고 복잡한 일을 기계-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은 상당한 수준인데, 인공지능이 스스로 뉴스 기사를 작성하거나, 심지어 소설까지 작성하며, 실제로 금융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힘을 빌리고 있기도 합니다. 또 이번 이세돌과의 바둑에서 대국한 알파고처럼 인간의 직관과 통찰력을 뛰어넘는 판단력을 보여주기도 하죠. 물론 이러한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은 특정 분야에 한정되었지만, 앞으로 더더욱 발전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죠.


단지 인공지능 뿐만 아니라 기계적 성능도 충분히 발전해가고 있으며, 점차적으로 더 많은 일을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되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껏처럼 더 많은, 다른 직업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만,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이전 시대까지의 기계는 어디까지나 기계적으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만이 가능했기 때문에 인간의 영역인 유연하고 자유로운 판단력과 직관, 통찰 및 더더욱 세밀하고 불특정한 조작에 있어서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동작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점점 인공지능은 발달해가고, 기계적 성능은 더더욱 높아져가는 상황에서 이전까진 불가능했던 영역들이 점차 정복되어가고 있죠. 따라서 그만큼 인간이 산업과 경제의 부분에서 필요가 없어지고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이를 좀 더 극단적으로 끌어올린다면, 언젠간 인간이 필요한 분야가 모두 없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스스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유지보수, 심지어 설계와 보완 및 발전이 가능한 인공지능이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없죠. 마치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 《최후의 질문》에 나온 '멀티백'처럼요.



따라서 인간의 직장 대부분은 기계와 인공지능에게 대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봐도 됩니다. 차량 운전부터 물자 운송, 금융과 소설 등의 예술분야까지.


그렇다면 인류 대부분은 돈을 벌지 못하고 소수의 자본가만이 영원한 부를 축적하게 될까요? 뭐, 어쩌면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그건 너무 아포칼립스적인(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전망이고, 실제로는 좀 다르게 흘러갈 겁니다. 하지만 기계와 인공지능에 발달에 따른 과정에서 그러한 상황은 분명하게 일어날 겁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부의 분배'에 있어서 정신병적,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국가에선 더더욱 오랫동안 고생해갈 거라고 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더 현명하고 합리적인 국가가 먼저 사회주의적 부의 분배를 선택하겠죠.


왜냐하면, 생산을 포함한 인간의 영역을 기계로 대체해갈 수록 인건비는 떨어지고, 단순히 기계와 인공지능의 유지보수 비용만 나가면 되기 때문에 그만큼 지출은 적어지면서, 상품의 판매 등으로 수입을 늘어납니다. 이전의 산업혁명, 러다이트 때와 마찬가지죠. 그럼 그 동안 실업자가 된 사람들에겐 어떠한 부의 분배나 사회적 안전망이 두텁지 못하기 때문에 수 십년 동안은 그러한 실업자들은 고생할 수 밖에 없어요.


또한 그들에게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자본가들의 부의 축적 또한 불가능하고, 장기간의 성장도 불가능합니다. 직장을 잃어서 고정적이고 장기적인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니 돈이 없기 때문에 기업들의 상품을 구매하지 못하고, 그럼 기업 또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멍청한 피드백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더 편리하게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게된 기업들에게서 세금의 형태로 부를 걷어, 실업자들에게 분배하면서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사회주의적'인 경제체제가 성립되어야 하죠.



그렇게 극도로 발달한 상태에선 결국 무제한적인 생산과 그에 따른 무제한적 부의 축적, 그 부에 대한 국가의 무지막지한 세금, 대다수 국민에 대한 부의 분배, 다시금 무제한적 생산품에 대한 무제한적 구매가 이루어지면서 결국 '공산주의'가 도래하게 될 겁니다.


쉽게 말해서, 생산이 극도로 초과공급되는 상태에선 모두가 원하는 것을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구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부에 따른 계급은 무의미해지며, 따라서 자본가도, 기업가도, 노동자도 필요 없어지는 상황이 오기에 사유재산은 특별한 의미나 가치를 지닐 필요가 없어지며 생산수단은 걍 국가에 맡겨버리면 되는 편리한 시대가 오게 된다는 의미죠.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산주의'의 도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전인데, 이 발전은 공학이나 인공지능의 발전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회체제나 정치제도에 대한 발전 또한 포함하는 것입니다. 생산력은 발전하는 데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죠.



이렇게 본다면, 산업혁명이라는 '처음'의 시점에서 기계문명 발전의 끝을 통찰하고 결과적으로 어떠한 체제, 상태가 도래할 것인지를 꿰뚫어본 맑스는 정말 철학의 대가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인류의 대단한 지성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빨갱이네 뭐네 할 것도 없이, 그러한 상태는 결국 오게 될 겁니다. 그걸 거부하는 건 시대를 거부하는 것이고 다른 국가들보다 더 늦어질 뿐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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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헷갈리시는데, 이 글에서 이것에 대해 정리하고자 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정치체제가 아닌 경제체제입니다.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이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왕정, 과두정, 금권정, 귀족정 등 국민에게 주권이 없는 모든 체제를 아우릅니다. 이건 기본이니 알고 갑시다. 간혹 민주주의의 반대를 공산주의 사회주의라고 알고 있는 분들도 왕왕 계시더군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있고 맑시즘적 맥락에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일정한 차이를 지니고 있으며 이에 대해 혼동하기가 쉽죠.


전자의 경우, 계급간의 평등을 주장했던 모든 이념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매우 이상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다분히 철학적인 성격을 지닌 이론들이었고,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인 <공산당선언>에서 이것들에 대한 비판을 하죠. 어째서 이러한 이념들이 이론적으로 불충분하고, 모자르며 어째서 실패 할 것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은 그에 반해 그러한 이상적이고 감상적이었던 기존의 사회주의와는 다른, 경제학과 유물론에 입각한 새로운 사회주의 이론을 주창하는데, 그것이 바로 "과학적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라는 명칭은 맑스가 생시몽, 오웬같은 철학자들과 다른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붙힌 명칭이구요.



이후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이론들, 다시 말하자면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을 제외한 이론, 이념들은 현실적인 영향력을 잃고 사라집니다. 이제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맑스의 사회주의를 의미하게 되죠. 그리고 마르크스는 자신의 공산주의를 조금 더 정교하게 수정, 보완하여 더욱 발전시키게 되는데, 여기서 또 (맑시즘적 맥락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개념이 갈리게 됩니다.


전환적이고 과도기적인 체제인 사회주의와, 그 끝인 최종단계의 공산주의로 구분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주의는 각종 혁명과 개혁을 통해 자본주의적 체제를 무너뜨리고 공산주의 체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거쳐지나가는 하나의 과도기적 체제로서의 성격을 가지게 되고, 공산주의는 그러한 혁명과 개혁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주의의 최종 형태, 즉 공산주의로 끝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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