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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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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96건

  1. 2024.01.26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변하게 되는 이유.
  2. 2024.01.03
    이재명 피습 사건, 왜 짐승은 보수인가. 3
  3. 2023.11.01
    권위에 관하여.
  4. 2023.10.29
    False Patriot 틀린 애국심.
  5. 2023.10.11
    하마스는 왜 괴물이 되었는가?
  6. 2023.09.24
    한국에서 발생하는 국가 정체성의 위협.
  7. 2023.09.21
    진보는 체념, 보수는 본색을 드러내는 시점이 됐나 봅니다.
  8. 2023.09.19
    나라를 일본과 미국에 팔 수 있으면 북한과 중국에도 팔 수 있어야 합니다.
  9. 2023.09.03
    북진통일에 관하여. 1
  10. 2023.08.29
    각자도생 사회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1. 2023.08.27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에 관한 단상.
  12. 2023.08.06
    1년 동안 한 게 없는 무능한 윤석열 정부의 세계 잼버리 실패와 남탓 정부. 1
  13. 2023.08.03
    무능한 윤석열 정권의 잼버리 축제 맥락 팩트체크 및 비판. 3
  14. 2023.07.23
    학생과 교사간의 규칙에 관하여.
  15. 2023.06.28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보수 진영의 사교육 시장 정치 공격. (2) 3
  16. 2023.06.28
    보수진영의 수능, 사교육 카르텔 이슈 선동. (1)
  17. 2023.06.13
    이재명-중국 대사 만남 및 윤석열 정권의 언행 맥락 비판.
  18. 2023.06.09
    제국의 기억, 제국의 경험.
  19. 2023.06.05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20. 2023.04.27
    워싱턴 선언과 한반도 비핵화 관련 맥락 및 의미 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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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면 기준적 윤리 역시 형성된다. 그렇지 않으면 집단을 유지시킬 일정한 규칙이 마련되지 않기 때문이며, 규칙이 마련되지 않은 집단이란 언제든 해체될 수 있는, 혹은 애초에 집단 자체가 환상에 불과한 현상이 된다. 이러한 기준은 반드시 윤리일 필요가 없다. 그저 일정한 규칙이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준은 대개 윤리적 기준으로 형성되고, 그것을 요구하게 된다. 2023년 조사 기준, 천사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 성인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10명 중 7명으로 미국이다. 이는 미국인들이 그만큼 무식하거나 종교적이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후자에 조금 더 집중할 경우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미국인들의 신앙심이 투철하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는 자기검열의 수단으로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봐야 한다.

기실 윤리적 기준은 스스로를 검열하게끔 하는 도덕적 지침이 되지만 도덕과 윤리는 같은 이름과 믿음으로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신앙에는 방향이 없이 깊이와 밀도만 존재하기 때문에 신앙심이 깊다는 것이 그 사람이 선하다는 의미 역시 아니다.

그런 관점을 수용한 후에 진행하건데, 미국인들에게 종교는 삶과 삶의 방식에 있어 아주 밀접한 것이고 종교적 믿음이 윤리에 작용하는 바는 아주 강력하다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종교적 신앙은 미국인들을 아주 강하게 검열하고 있으며,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라기보다 피상적으로 요구된다. 즉, 자기 희생이나 약자에 대한 실천적 보호, 지원보다는 누군가 천사를 믿느냐는 비현실적인 것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해야 하는 방식이다.

미국인들이 실제로 천사를 믿느냐 아니냐, 혹은 그것이 진짜로 있느냐 아니냐와 같은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신앙심을 지키는 행위이기도 할 뿐더러, 그렇게 요구 받는 윤리적 기준의 존재 때문이다. 그들이 천사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라고 답한다면 그들은 스스로를 규율하는 윤리적 기준에 위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양심에 어긋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인, 혹은 과반에 가까운 기준으로 작동하는 사회의 경우, 이것은 하나의 사회적 요구처럼 동작한다.

이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소아성애와 결부시켜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실제로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든, 사실이든 그렇지 않든 소아성애적 표현을 하거나 그것을 드러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소아성애는 끔찍한 범죄가 되고 그 어떤 사회에서도,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가장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범죄로 인정 받고 멸시, 차별, 배척 받는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소아성애에 속하는 행위나 가치관은 그리 드문 것이 아니었고,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에 대한 성애, 결혼, 약혼, 성교나 성적 요구는 꽤 흔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그 시대의 사회적, 관습적, 문화적 사유로 인해 요구되는 형식이었다. 물론 지나치게 어린 아이에 대한 나이 차이가 나는 성인의 그것은 그 시대 기준으로도 지탄 받은 행위 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론 윤리적 기준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중 하나이고 소아성애를 긍정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든, 심지어 별 의견조차 없든 그렇게 요구 받는 윤리적 기준, 도덕적 잣대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증명을 요구받을 때 일정한 답변이 정형화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자신의 신앙을 증명하지 않으면/자신의 혐오나 증오를 증명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의심 내지는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해야만 하는 사회적 요구가 되는 것이다. 신을 믿고 신앙을 가진 자신은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천사를 믿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고, 소아성애에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든, 심지어 그 본인이 소아성애자라 하더라도 그에 대한 증오나 혐오를 보여줘야만 한다.

서구의 범죄자나 갱, 혹은 그와 유사한 폭력 집단이 자신들의 소아성애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증명하기 위해 소아성애자(혹은 동성애자)를 공격하여 폭행하거나 살해하는 것은 그러한 요구의 극단적 표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스스로 그러한 것에 강렬한 적대감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그러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심지어 범죄적인 것이라 하여도 사회적 윤리 기준에 편승하여 정의로운 것으로 여겨지거나 그에 준하는 행동으로 평가 받는다.

한국 사회에서도 그러한 기준이 있다. 반공이 국시이던 시절에 좌파적 사상에 대해서는 공공연하게 혐오와 증오, 적대감을 강렬하게 표현할 수록 그것은 바람직하고 정의로운 것처럼 평가 받는다. 심지어 그것이 당연히 실현 불가능한 말 뿐인 것이라 하여도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훌륭한 것이 된다. 가령 북괴 빨갱이에 대한 무제한적 살상과 학살을 통해 지구상에서 북괴 빨갱이를 절멸 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고 폭력적 어조로 웅변한다면 모든 경우에 그렇지만은 않겠지만 어떠한 경우, 꽤 많은 경우 바람직하고 훌륭하며 애국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윤리/도덕적 기준이 그렇게 평가하도록 한 사회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에게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는 거대한 흐름으로서 존재하기에 개인의 사상이나 지성, 양심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개인은 사회 속에서 진영논리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영향을 받는다. 설령 본인은 어떠한 진영에 속하지 않는 팩트만 본인의 양심과 지성에 따라 공정하고 정확하게 말한다 해도, 그러한 언어는 특정 진영, 집단에 유익하게 될 수밖에 없다.

북한 문제에 관해 진보, 보수, 좌파, 우파적 기준에서 완전히 탈피된 새로운 의견이 나올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반공이 국시인 시절에서 벗어났지만 아직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반공적 가치관을 정의롭고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고, 적어도 인구 절반에 가깝게 그러하기에 이를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거나, 최소 그에 준한다고 말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그리고 그들은 그 반대 절반에게 자신들의 윤리 기준을 요구한다.

북한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을 언어와 행동으로 증명하라고, 그러나 결코 북한에 대한 직접적 적대 행위, 공격 행위로 증명하지는 말하는 것이다. 소아성애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자들이 직접적인 살해를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적은 것처럼, 그러한 범죄적 행위를 행하는 자들은 한국 내에서도 매우 특정할 수 있는 소수에 불과한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향해질 비난과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러한 상황이나 요구에 검증적 반응을 요구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람직한 것일까? 자유주의적 관점 내에서 이러한 사회적 요구가 특정 답변, 태도의 강요로 작동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지성과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며, 본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회 내에서 일정한 윤리적 기준이 형성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을 비윤리적이라 비난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다.

소아성애에 관한 개인의 생각이나 관점이 어떠하든 그것은 자유로운 지성의 결과이겠지만 모든 개인은 오롯이 독립적일 수 없고 사회라는 집단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다. 어떠한 윤리, 도덕적 기준은 그 근간 논리와 사례가 존재해야 구성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생각이나 관점은 진실로 자유로운 사유의 결과일 수 없고, 설령 그러하다 치더라도 개인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객체이기 때문에 사회적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자유가 합리성과 유리될 수 없으며, 외부적 조건에 배율적일 수도 없음을 이유로 한다.

사회도 국가도 타인도 없는 자연 속에서 어떠한 윤리적, 도덕적 요구도 받지 않는 자가 눈앞의 포식자를 두고도 자유로운 사고의 결과 그것을 피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지적 능력을 자유롭게 활용한 것이겠지만 그 결과는 피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 내에 존재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으나 그 결과에 대해 공개적으로 표현할 경우 그에 대한 대가, 혹은 책임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자유에 따라야할 것이 책임이기 때문이며 나의 자유를 타인이 인정하는 것과 그 자유에 대한 결과로 따라오는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대저 자유를 근거로 특정한 표현에 대해 일반의 비난과 비판을 받는 경우 그 자유로운 표현의 결과 따라오는 책임을 자유와 혼동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만 그에 책임이 부여되는 것은 응당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러한 책임을 부여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본심이나 판단을 공개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면서도, 그 요구가 비이성적이거나 극단적일 수 있다. 사회의 보편적 윤리 기준은 그 사회 구성원의 윤리 기준의 평균에 기인한다.

그러나 특정한 가치에 있어서 유독 극단적인 요구가 이루어지는 경우와 합리적이지 않은, 때때로 감정적이거나 비합리적일 수 있음에도 그것이 도덕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 내국인에게 좌파적이거나 온건한 형식에 사상검증을 요구하며 그 기준을 충족시키기 못할 경우 비난하는 것이 그럴 것이고, 후자의 경우 적에게서 국가와 민족 등 사회 구성원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나 행위, 사상을 비난하거나 폄하할 때가 그러하다.

특히 후자가 역사적 문제로 분노할 이유는 충분하나 현실적 필요로 그들과 무조건적으로 적대하거나 책임을 요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할 것인데, 그러나 인간/집단의 감정 문제 역시 합리적으로 다뤄야할 문제인 고로, 합리적이지 못하거나 비이성적인 것 그 자체가 반드시 틀림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는 것은 특정한 목적성을 가진 교조적인 태도일 것이다. 합리성을 어떠한 주장이나 가치에 합치시키기 위한 도구적 활용으로 말이다.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구체적 사례에 관해 어떤 것이 옳고 그르고, 그것이 어째서 그렇게 구분되어지는가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굳이 다루지 않겠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고 개별적으로 많은 근거와 논리, 사례를 열거하며 비교해야 하는 일이 될 것이기에 지리한 일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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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피습 당했다“에 환호 나온 與 대전 신년인사회..한동훈도 당혹
https://amn.kr/46441

 

 

이재명 피습 사건 이후, 언론과 대중들의 반응은 아주 흥미로운, 한편으로는 역겹기 그지 없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수엔 사람이 없고, 야만적인 짐승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니 보수는 인두겁을 쓴 자들밖에 없다는 거죠.

 

이재명이 피습을 당했을 때, 보수 진영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만세를 외치고 잘 됐다며 환호한다.

2.즉각적으로 음모론과 가짜 뉴스를 유포한다.

 

이런 반응이 참으로 보수다우면서도 비인간적인데, 언제나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정치적 기준을 두고 인의와 도덕, 윤리를 확실하게 내다 버린 태도를 보여주는 게 바로 보수 진영입니다.

 

사람이 목에 칼이 찔렸는데 거기에 대고 만세를 부른다는 건 그 사람이 죽기를 바란다는 거고, 잘 죽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한 나라의 야당 대표인데 죽기를 바란다는 것부터가 민주주의적인 시민의 태도가 아니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서의 함량에 미달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현장의 한동훈을 비롯한 인물들도 당황스럽게 여겼죠. 정치적으로 당연히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고, 그걸 떠나 그런 반응 자체가 상식을 갖춘 주변인의 시선을 생각한다면 함부로 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사회성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이건 정치 테러이고 극우의 백색테러입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진보적 측면은 정치적 패배가 실존하는 개인, 혹은 가계, 집단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군부 독재나 특히 공산주의 독재, 왕정이나 과두정 같은 체제에서 정치적 패배로 인해 집단의 수장이나 구성원이 실제로 숙청 되는 경우는 흔합니다. 당장 북한이나 중국만 봐도 심심찮게 발생하는 일이죠.

 

민주주의에서 정치적 패배는 그저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이고 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습니다. 민주정에서 정치란 의사결정을 위한 고도화된 최상위 행위이고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란 의사 결정으로 누군가의 생사를 가를만한 일이 아닙니다. 즉, 민주주의에서 정치란 독재 등에서의 정치와 같이 생존이 걸린 게 아닙니다. 설령 다신 정치를 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의 생명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먹고 살 수 있죠.

 

그런데 이러한 백색테러는 그러한 민주주의의 원리를 정면으로 위반합니다. 이러한 테러가 허용된다면 정치란 야만적인 시절의 죽고 사는 문제가 되어 내가 살기 위해 적을 죽여야 하고, 적을 죽임으로서 본인과 진영의 이익과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이 됩니다. 당연히 국민 일반의 행복이나 효용과 아무런 관계 없는 권력다툼으로 변질이 됩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은 구분되는 게 아니게 될 것이고요.

 

이번 테러는 명백히 극우주의자의 의도적인 살인 미수이고, 민주 정치에 대한 테러입니다. 야당 대표는 국가 의전 서열 8위로, 부총리급 대우를 받습니다. 즉, 국가의 최상위 인물 중 하나인 것이고, 개개인이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대표라는 점에서 더더욱 위협적인 시도입니다.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더더욱 반국가적이고 비애국적 행위입니다. 저런 건 박정희에 총질하던 빨갱이나 할 법한 시도라는 거죠.

 

그런 사건에 만세를 외친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민주주의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지속해나가야 한다는 믿음 자체가 없다는 겁니다.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 보수 진영의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 보수 진영의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암살하는 테러가 빈번히 일어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국가와 안보를 위한 것일까요? 당연히 아니죠. 보수 진영은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장 계엄령 내리고 관련자들과 진보, 좌파 진영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고 부르짖을 겁니다. 평소에도 그런 이들이 있을 정도니까요.

 

 

테러에 사용된 칼. 실제 찌르는 영상은 올리지 않겠음.

 

 

두번째는 더더욱 정치적인 행동인데, 사건 이후 즉각적으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이게 처음부터 즉각적인 지령이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소식이 당도하자마자 쇼입이다! 쇼! 라고 짖어대는 것만 봐도 정치병 환자들이 많고 거기에 진심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호응하는 정치병, 혹은 정신병자들이 많은 것이 보수 진영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사건에서 그런 패턴은 보수 진영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죠.

 

그들은 유튜브 등지에서 즉각적으로 가짜 뉴스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는 진영에 피해가 오기 전에 즉각적으로, 비판이 돌아오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자발적인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그 이후 어떠한 지침이 내려지거나 공유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주장이 음모론이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보수 진영에서 지령, 지침이 공유되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하는 소립니다. 당장 국정원부터가 그러했던 주범이었고요.

 

이재명 대표 피습 음모론 살포하는 수구 유튜버들
처음부터 '자작극' 단정 후 이 대표 주변 상황 끼워맞춘 음모론
https://www.goodmorningcc.com/news/articleView.html?idxno=302330
이재명 서울 이송은 가족 요청… 부산대병원 “유감 표명은 사실무근”
https://n.news.naver.com/article/658/0000062260?lfrom=twitter
"이재명 피습 쇼" 돌출발언…온라인선 "자작극" 황당 주장도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158864

 

 

보수 진영은 언제나 팩트와 진실이 중요한 진영이 아니었습니다. 유리하다면 거짓이라도 사실로 믿고, 불리하다면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만들고 유리한 가짜 뉴스를 만들어서 선동하며 음모론을 만들고 핵심에서 벗어나 물을 흐립니다. 지금 당장 떠도는 음모론부터가 나무젓가락이었다, 손가락으로 찔렀다, 종이로 찔렀다, 기절한 척을 했다, 부산대병원 거부하고 서울대변원으로 갔다, 그래서 부산대병원이 유감을 표명했다 등등 음모론을 만들어 유포하고 있으며, 야당 대표가 응급 의료를 위해 헬기를 타는 걸 특혜라고 욕하는 것까지 다양합니다.

 

정상적인 판단력과 상식적인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멍청한 소리는 하지 않죠. 실제 영상이 있고 병원과 경찰, 당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걸 다 가짜, 조작이라고 의심할 거라면 이미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어 있어야지 야당 대표를 하지 않습니다. 병원 측과도 논의한 결과로 서울로 올라간 것이고,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가족과 주변 지인 다 있는 서울로 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며, 이를 문제삼는 것은 사태의 핵심을 벗어난 물타기 선동입니다. 사람이 다쳤는데 왜 저런 비판을 가하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이상한 비판이죠. 그러면서 유감 표명을 했다는 가짜뉴스를 만들어 명분을 조작하기까지 하죠.

 

음모론은 정신병이고 현재 이재명 관련 음모론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주워 삼키는 이들은 속은 게 아니라 그냥 머리가 나쁜 겁니다.

 

이러한 활동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행해지는 스피커 싸움이고, 진실과 팩트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정치 진영에 돌아올 비판과 손실을 최소화하는 정치적 행위이며 공정하거나 정의로운 행동인 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사악한 행동이죠. 박근혜 커터칼 사건에 대해 음모론을 주장하던 이들을 비판할 거라면 이것도 문제가 되는 거라 인정해야 합니다.

 

[단독]이웃들 "이재명 습격범, 법 없이도 살 분…깜짝 놀라"
https://v.daum.net/v/20240102185030694
"이재명 죽이려고"…충남서 부산까지 온 60대男, '민주당원'?(종합)  <- 현재 기사 제목에서 '민주당원?' 부분 삭제됨.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981104?sid=102

 

 

이재명 피습범에 관해 가장 먼저 올라온 것 중 하나입니다. 왜 직후부터 좋은 소리를 해주는 말들을 담아서 서사화하여 기사화 했는지도 의심스러울 수 있지만 그러한 추정은 일단 넘어가고, 곧바로 민주당원이라는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 일단 제대로 조사를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범인이 위장 잠입한 건 사실이니 표면적인 것만 바로 기사화 했다고 참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사로 보수들은  신이 나서 민주당을 공격했고요. 하지만 당연히, 곧바로 진실이 따라왔습니다.

[단독] 이재명 습격범 ‘태극기집회’ 조카 증언…“유튜브 계속 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71216?sid=100
“맨날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있어
4~5년 전 태극기집회…보수였다”
국힘 "4년전 탈당한 동명인물 있을 뿐"…피의자 당적 논란 '유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7269022?sid=100
2024.01.03. 오후 12:53
이재명 피습, 60대 오랫동안 국힘 당적 보유…국힘은 ‘침묵’
https://v.daum.net/v/20240103140152126
2024. 1. 3. 14:01
[단독] “이재명 싫어 범행”…피의자, 습격 전 민주당 입당해 일정 파악한 듯
https://n.news.naver.com/article/021/0002614014

 

 

국힘당은 언제나처럼 발뺌하며 유감을 표했지만 약 1시간 뒤 당적 보유가 분명하게 확인되자 침묵을 했습니다.

 

즉, 국힘당 소속, 혹은 출신 극우보수에 의한 야당 대표 살인미수 테러 행위가 사실이라는 것이죠. 대한민국에서 3차례 이상 헌법을 파괴하고 독재를 했으며, 쿠데타를 2번 이상 시도 했으며 불법적으로 가장 많은 한국인을 죽인 국내 정치 진영의 전통에 따라 또 한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정치인에 대한 살인 의도를 가진 테러를 저지르는 게 바로 보수 진영입니다.

 

그리고 보수 진영은 그러한 사건에 대해 비판이 아니라 음모론과 발뺌, 가짜 뉴스 유포로 극단적인 정치 행위를 전방위적으로 가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정상적인, 사회 일반이 요구하는 도덕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번 사건에 대해 좋아할 수 없고, 만세를 외칠 수도 없습니다. 기분이 좋을 수도 없고요. 정상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를 최소한이나마 가지고 있고,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긍정하는 시민이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테러에 대해 정치적 피해를 막기 위한, 가짜뉴스와 음모론 살포, 선동과 조작을 가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은 그러고 있습니다. 정치적 관점을 떠나서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닙니다. 사람이 다쳤는데 기분이 좋은가, 환호할 수 있는가와 별개로 그것을 공개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행동은 사회성을 학습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능력이 없는 짐승들이나 하는 것이고 사람의 꼴을 하면서 짐승의 태를 하니 인두겁을 뒤집어 썼다고 하는 겁니다.

 

박근혜 테러 사건 때도, 박원순 폭행 사건 때도, 마크 리퍼트 테러 사건 때도 그렇고 정치인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자들은 하나 같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극단주의적 위험분자거나 인생 말아먹은 밑바닥 병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그러한 비정상성에서 기인한만큼, 그들의 행위에 동조하거나 찬양, 환호하는 것은 행위자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상 내지는 비정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즉, 정신병자의 행위에 동조하는 건 정신병자나 한다는 소리입니다.

 

유독, 이상할 정도로 보수 진영에서만 이러한 행위들이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관찰됩니다. 유독 보수 진영에서만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짐승들이나 보수가 되는 것이고, 보수인 사람들이 야만적인 짐승 수준이라는 겁니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으니 현 보수 진영의 수준이 이토록 낮아진 겁니다.

 

유독 보수만 이렇습니다. 그들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위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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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는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개인적 권위, 사적 권위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 권위이다.

 

개인적 권위, 혹은 사적 권위라 부르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그것은 개인의 카리스마, 리더쉽, 능력 등 개인의 타고난 요소나 역량에 의해 형성된다. 어느 무리에서 자연스럽게 리더 역할을 맡게 되거나 뛰어난 지성을 인정 받는 경우, 단순히 싸움 실력이나 잘생긴 외모조차 개인의 권위를 형성시키기도 하며, 더 직관적이고 일반적인 예시는 일을 아주 잘하는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개인적 권위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타고난 요소나 노력을 통한 성과로 만들어지는 만큼,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 권위는 자기 영역을 벗어나면 영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것이 적용될 수 없는 다른 영역, 집단에 소속된다면 그의 권위는 어디까지나 그가 그러한 사람이었다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 가령 수능 전국 1등에 서울대생조차도 군대에 입대하여 훈련병, 이등병이 되면 그냥 짬찌 1일 뿐이다.

 

이러한 권위는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 여하에 따라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다. 권위는 발언권과 동일한 의미가 되기도 하여 어느 집단 내의 의사 결정이나 향방, 지시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일을 잘하는 에이스의 말은 모두가 귀담아 듣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아무리 훌륭한 사상과 대의를 품은 웅대한 영웅의 뜻을 품고 있다 할듯 일 못하는 아무개일 뿐 누구도 그가 하는 맞는 말에 귀기울이거나 의미를 담지 않는다.

 

이러한 권위는 마찬가지로 상실하기도 쉬운데, 그것은 일을 잘 못하거나, 신뢰를 잃는 경우가 그러하다. 몇가지 예시를 들자면 회사의 에이스가 연달아 실수/실패를 하게 되면 처음 몇번은 그래도 해놓은 게 있기 때문에 크게 책임추궁을 하진 않지만 반복될 경우 빠르게 권위를 잃어버린다.

 

이러한 잃어버리는 권위는 발언권보다는 신뢰라 부르는 게 나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사람을 믿고 큰 일을 맡길 수 없다거나, 회사의 대표가 어떠한 조직적 갈등 상황, 내외적 위험 상황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회사 대표는 직원들에게 신뢰를 잃는다. 부서간 갈등 상황에서 대표가 교통정리를 하고 적절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거나, 하지 않는 경우, 이러한 보고가 올라왔음에도 문제 해결 의지는커녕 상황에 대한 이해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 대표에 대한 책임은 명시적인 제재가 아닌 신뢰에 대한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대표가 일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게 되고, 조직 내 갈등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할 때 중간 관리자이자 현장 책임자인 자신은 어떻게 행동하고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가 등등. 이는 조직적 리스크가 된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다. 비슷하거나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에 일을 잘하면 된다. 즉, 에이스가 권위를 형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소에 일을 잘해서 한두 번의 실수나 실패를 용인 받고 재평가의 여지를 크게 주지 않는 것이 그러하다. 평소에 하는 일을 잘 하기만 해도 이러한 권위 상실은 충분히 복구 가능하며 일반적인 경우 권위에 큰 타격을 주지도 않는다.

 

 

공적 권위는 이것과 다르다. 공적 권위는 사람이 아니라 자리에 부여되는 성질의 것이다. 예컨데 대통령의 자리가 그러하다. 대통령의 자리는 그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물론 그만한 제도적 자격과 개인적 능력을 보였기 때문에 오르는 것이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자리 그 자체가 권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부적격자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 하여 그 자체로 권위에 실추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부적격자나 부정한 방법으로 대통령과 같은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당연히 그 자리의 권위와 가치 역시 추락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권위가 높고 강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권위는 민주적 권위 역시 부여되겠지만, 민주주의적 선택과 아무 상관 없는 사기업 대표, 팀장, 군 장교나 장군 등의 자리 역시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자리가 권위를 가지는 까닭은 단지 그 자리가 보장하는, 혹은 그 자리로부터 얻을 수 있는 권한 때문이다. 즉, 어떠한 자리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 바로 권력을 형성시키고, 권위를 만들어낸다.

 

대통령의 막대한 인사권과 정책 결정권, 정치, 사회, 문화, 외교적 영향력은 그 자리가 가진 막대한 권한 때문이고, 이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한 자체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형성되고 또 부여되는 것이 바로 권위이다.

 

이러한 자리, 혹은 직책은 그 자체로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권위를 지니며, 이것은 그 자리에 아무 사람이 앉아 있지 않는다 하더라도 빛바래지 않는 종류의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 자리에 올라선 사람은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능력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 자리의 권위를 입을 뿐 그 자리 자체와 동일시되지 않는 것이다.

 

직책/직위의 주권과 그 주권에 편승하는 개인의 인격은 분리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공적 권위는 그 자리가 소유하는 권한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권한을 빼앗거나 없어진다면 자연스럽게 추락하는 종류의 것이다. 또한 자리가 사람을 만들듯, 사람이 자리를 훼손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개인의 실패와 실패의 누적이 그 자리의 공적 권위, 신뢰를 훼손시키는 경우이다.

 

예컨데, 경찰이 법을 제대로 모르고 무고한 사람을 부정하게 체포하여 부당한 수사를 벌이며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 반복되거나, 검찰이 무고한 사람을 기소하고 수개월간 의미 없이 수사하며 범죄를 창작하여 처벌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실질 생계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 여럿 발생하거나, 회사의 대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거나 관리하지 못하며 직원들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등 실패를 반복하고 의무를 방기할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럴 경우 사람들은 그들의 권한에 권위를 느끼지 못한다. 이것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지만, 그 자리가 부여하는 권한을 휘두르다 발생한 실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패의 누적은 직원이 직장 상사, 혹은 대표의 능력을 의심하고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들고, 특정 권한을 가진 집단에 대한 공적 신뢰를 상실하게 만든다.

 

검찰과 경찰을 믿지 못해 공권력의 권위가 실추되고 법을 신뢰하기보다 법을 조작할 수 있는 수단--전관 변호사, 인맥--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거나 사적으로 해결하려는 생각을 공공연히 퍼뜨리게 한다.

 

또한 부정한 방법으로 해당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에도 자리의 공적 신뢰가 훼손되기도 하다. 돈을 주고 자리를 사거나, 인맥으로 추천받아 다른 경쟁자보다 우위를 차지하거나, 낙하산으로 들어오는 경우 그 사람의 능력과 자격이 부적절하기에 도리어 자리의 권한이 무시 받는다. 권한 그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자리가 가진 권위에 맞는 대우를 받기는 어렵다. 그리고 권한이 형해화되거나 무력화되지 않는다 해도 권위는 훼손된다.

 

이러한 설명은 앞서 이야기한 부정한 방법이든 충분한 능력, 실력, 자격을 가지지 못한 부적격자가 어떤 자리에 오른다 하여도 자리그 자체의 권위에 실추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리에 부적격자가 있을 때만 발생하는 현상으로, 자리가 가지는 공적 권위를 복구하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그 자리의 권한을 입은 부적절한 인사를 그 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이다. 그러한 경우 그 자리는 다시금 권위를 회복하고, 자격과 능력 모두 적절한 사람을 올려 권한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하면 증명되는 문제이다.

 

 

권위와 권위주의가 서로 다른 함의를 품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인데, 권위를 지닌 이는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자신의 권한과 권위 내에서 올바른 방식으로 행사하지만 그렇지 못한 권위주의적 개인은 사적 권위와 공적 권위를 일체화하여 인식하고, 개인의 실패를 자신의 실패로 인식하지 않고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자리(직위, 직책, 계급, 직급 등)의 공적 권위의 실패로 인식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그 자체로 훼손되는 것이 아니고, 훼손되지 않는 권위를 자신의 사적 권위와 동일시 했기 때문에 자신의 실패로 인해 발생한 사적 권위의 실추와 훼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즉, 스스로 우월한 권력을 지닌 무오한 개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집단적 입장과 사상이 되면 그 집단은 어떠한 결정과 행사에 있어 실수나 실패가 없는 무오하고 전선한 집단이 되어야 하는 당위가 만들어진다. 검사와 판사는 잘못 판단하지 않고, 경찰은 적절한 증거만 수집하여 범인을 만들어 내서라도 치안을 지키고, 행정부나 국가는 죄를 짓지 않는다 믿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수나 실패에 대한 책임추궁은 공적인 신뢰에 대한 검증이나 복구를 위한 것이 아닌 그들 자신에 대한 위협적인 도전이 되는 셈이다.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의 권위와 권한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권한을 위임 받은 한시적인 것일 뿐임에도 공적인 권위와 사적인 권위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 하여 어떠한 사건이나 범죄 등에 관한 책임추궁을 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며 반발하고 없는 것으로 만들거나 조작하여서라도 축소하고자 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책임을 묻는 자들이나, 반발하는 집단은 반국가집단으로 규정되어 탄압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 역시 흔하다. 공과 사의 구분을 못하는 자들이 권력을 소유했을 때 발생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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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은 사악한 자의 미덕이다.

- 오스카 와일드

False Patriot 틀린 애국심.

애국자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미덕으로 여겨지며 공통된 지향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애국에 대한 비판과 금언들이 그것을 경계하는 것은 그것을 내세우는 것이 실질적 긍정성에 도움이 되느냐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령, 입으로 애국을 말하는 자가 단기적으로, 그 이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회적 신뢰를 깎고 제도적 불공정과 경제적 불평등에 조력을 가하며, 정치적 경쟁을 자극하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애국자와 비애국자를 가르며 비애국자로 구분된 자에 대한 공격성을 보인다. 그러한 행위는 공동체가 지켜야 할 공통된 도덕과 유리된 경우가 많으며 애국의 기준이 자신이 믿고 지지하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총체적으로 국가적 이념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즉, 애국자는 적을 찾으며 자신의 애국심을 증명하려 한다.

그것은 자신의 국가를 이롭게 하기 위한 공통된 선행, 봉사, 발전이 아닌 자신이 구분 지은 적에 대한 배격, 차별, 증오, 혐오, 공격 등 배타적 성질의 행위로 나타난다. 그러한 활동에서 성취감과 충만함, 그만큼의 위기감을 느끼며 자신의 애국심을 강화한다. 

만약 그 적이 진짜 적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구체적인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에 대한 평가와 판단은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누군가 그것을 옳은 것, 해야 하는 것, 국가가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할 지라도, 누군가는 그것을 국가적 손실, 체제에 대한 위협, 안보의 파괴, 경제적 불평등 심화, 매국적 외교 등으로 상이하게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가 역사적 사건에 관해 판단할 때 일반적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고 어떤 것은 그러한 해석이 옳은 해석이 되는 것처럼, 현재 이루어지는 정치적 향방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역사적 관점에서 그것은 하나의 주류 해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지금 우리는 확언 할 수 없다고 해도, 미래의 후손들은 현 정치적 상황에 있어 누가 애국을 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나치 시대 대부분의 대중들은 스스로를 애국자라 여겼겠지만 현재에 와서 나치에 반대하고 자유와 인권을 위해 투쟁한 이들에게나 애국자라는 평가를 붙힐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가치의 최상위에는 인권과 도덕이 존재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는 애국적일 수 없다. 모든 공동체는 집단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존재 가치가 없다. 헌법에서 스스로 규정하는 국가 최고 규범적 가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행정부와 정권은 집권 자격에 흠결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인권과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혹은 인권의 기반이 되는 범도덕적 원리에 단호히 반대하는 세력은 전체 집단의 생존과 번영이 아닌 특정 집단의 생존과 번영만을 추구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문제는 그것이 민주주의적 원리, 혹은 자본적 우위, 무력의 독점을 통해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윤리란 자본의 축적을 의미하고, 독재에서 윤리란 독재자, 혹은 독재 정당의 절대 권력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말하는 윤리와 도덕은 우리가 인권을 기반으로 하여 인식하는 규범과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타인, 혹은 대중, 국민, 시민이라 불려지는 자들의 권리를 인정치 않고, 그들 삶의 풍요와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가치 체계이다.

인권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이 다수의 행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간의 집단에서 행복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한 개인이 생명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절대 다수가 불행한 사회가 장기적으로 생존 가능하며 항구적 발전과 평화를 이행할 수는 없는 법이다. 불행과 불만은 충돌과 갈등을 빚고, 시간에 따라 증대하는 사회 비용의 엔트로피는 그 사회의 여력과 자산을 갈등과 분쟁의 해결에 투입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 사회는 스스로 붕괴한다. 즉, 집단의 구조적 모순이 집단의 생존 가능성을 스스로 불능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모든 집단이 붕괴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수많은 왕조와 국가들은 구조적 이유만으로 붕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사상 대부분의, 혹은 적지 않은 집단은 내부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하거나, 그 원인이 된 경우는 무수히 많다.

또한 인권에 대한 보장이 어느 수준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민중 대다수가 비참하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국가는 존립할 수 있다. 그들이 생존이 가능한 상태이기에 생존에 몰두하며 협력과 연대보다 상호 경쟁하는 것에 몰두하는 상태, 혹은 아예 생존만을 위해 남은 여력을 모두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빈사의 상태. 전근대의 경우, 민주와 국민주권을 상상할 수 없는 체계 속 개인.

이러한 상태에서 첫번째의 경우 일정 정도의 권리는 보장이 되지만, 구조적 모순을 사회적 규칙으로 받아들이길 요구하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들에 의해 유지되는 경향이 크다. 극소수의 기득권이 어떠한 이유로든 막대한 특권과 자본을 독점하며 그것을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 받아야 한다 믿는 경우 그러한 기득권에 도달하고 싶거나, 그들에 의해 사회의 안정과 발전이 이루어진다 믿는 그렇지 못하는 자들에 의해서 구조적 모순은 해소될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인식되거나 인정받지도 못한다.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를 구성하는 민주주의 체계는 근본적으로 국민주권을 인정해야 하고, 그러한 국민주권은 본질적으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국민 스스로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인해 소수의 집권 기득권에 의해 다수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방지하고 다수의 의견과 주장을 모아 더 나은 결론을 낼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결정권자는 스스로 생각하여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애국자라고 하는 이들은 자신이 믿는 어떠한 가치를 위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와 체계를 위협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들에게 다양한 낙인을 찍고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적은 외부에 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내부에 존재하며, 외부의 적과 싸우는 것보다, 외부의 적에게 비난하되, 싸우는 건 내부의 동조자를 향한다. 그들이 상상하는 국가에는 모종의 순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해치는 것에 병리적인 면역 반응을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알러지 반응이지 병원균 반응이 아니다.

물론 내부의 적과 싸워야 할 것이다. 국가 정체성을 거부하고 외부 정체성을 받아들인 채 그것을 주류로 만들고자 하는 이들, 직간접적으로 잠재적 적국이나 경쟁국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자, 국가의 원리와 규범을 형해화하고 파괴하려는 자들.

말은 언제나 옳다. 어떻게 규정하고 인식하는가의 문제에 있어 평범한 국민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되어 사냥을 당할 때도 있고, 사회 개혁을 위해 노력하거나, 소수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국가의 적으로 공격 당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와서, 누군가의 애국이 누군가의 비애국이 될 수 있는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스로 애국을 한다 믿는 자들도 순수한 활동이 오판에 따른 비애국적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가치판단의 문제에 있어 모든 이들의 행동이 결과적으로 애국심에서 출발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정녕 비애국적 행동은 없는가? 끝 없는 충돌과 논쟁을 발생시키며, 서로가 서로를 공화국의 적성 행위라 규정 짓기도 하는, 진보의 애국도, 보수의 애국도 모두 똑같은 애국일까?

나는 과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나치 시대의 애국이 진정 애국이 아니었고, PATRIOT Act가 글자 그대로 애국적이지 않으며, 노동자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적성 행위가 될 수 없고, 노인에게 더 윤택한 삶과 청소년, 어린이에게 더 안전하고 부당치 않은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비애국적이라 할 수 없다. 사회적 안전망을 구성하여 취약한 이들이 한번의 실패만으로 그들의 삶이 복구 불가능한 상태로 남는 것을 방지하는 게 비애국적일 수 없다. 부정부패와 비윤리적 차별을 정당하게 처벌하고 방지하자는 것이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닐 수는 없다.

그것이 국가 최고 규범이 규정한 인권을 지키는 행위이고, 민주국가의 주권자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졌다면 당연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보다 다른 누군가가 더 우월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역할이 존재할 뿐 계급적 우열이 존재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을 넘어 기회의 균등과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고, 법적, 제도적 정의를 지켜 사회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 역시 국민을 지키고 그들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모든 집단은 목표를 가진다. 적과 싸우고 구성원을 지키기 위해 형성된 것이 전사 집단/군대이듯이, 국가란 모든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특정할 수 있는 소수 특권 계급을 위해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된다. 최소한 우리의 헌법은 그렇게 규정했다. 그렇다면 애국과 비애국을 구분 짓는 기준은 이미 준비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부정부패의 처벌과 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비애국적인가? 당파와 진영의 소속에 근거하지 않는 한 부정한 자의 권력 행사는 보호 받아선 안 된다.

차별받는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운동이 어떻게 비애국적인가? 그들에게 투입되어야할 세금이 다른 곳에 쓰여야 한다는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또한 그들의 표 행사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서 받을 표가 계산된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개인적 이익 내지는 부당한 보복을 우려하여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한 기소와 판결을 내리는 판검사를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비애국적인가? 그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과 그들의 권력을 지지하는 자들이 아닌 이상에야 비애국적이라 할 수 없다.

정치적 승리를 위해, 또는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지 못한 사건을 정치화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비애국적인가? 그러한 책임이 특정 진영으로 향해 정치적 불리함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다수의 정의와 소수 이익의 대립 속에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어떻게 비애국적인가? 그러한 대립에서 정의가 훼손되어도 이익을 원하는 자들은 비애국적이라 할 것이다.

군납비리를 저지른 지휘관을 해임하거나 처벌하라는 요구가 어떻게 비애국적인가? 스스로 군대를 약화시킨 지휘관이 병력의 전투력을 온존시키고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리라 믿지 않는 한에야.


어떤 애국이 진짜 국가와 사회, 그리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애국인지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온전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와, 그 가치관이 어디에 기인하여 형성되었는지로 알 수 있다.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적 시장에 혼란을 가져와 경제를 왜곡시킨 경제사범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나올 수 있는 결론인가? 더 나쁜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처벌과 책임추궁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나오기 어렵다. 일정 규모와 수준의 사회에서 대체하지 못할 것은 드물다. 그것은 CEO나 대통령이라 해서 다를 게 없다.

이 나라의 최고 규범은 인권과 자유, 민주를 기치로 삼았고,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자들이 바로 비애국자이다. 말은 행동보다 강력하지 못한지라, 그들이 말하는 자유, 인권, 민주, 애국, 정의란 단어는 그들의 가치관에 맞는 의도를 내포한다. 그것은 단어 그대로의 뜻이 아니다. 목적에 따라 가공된 단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너와 나의 구분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말하는 너는 우리의 적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상에서 촉발되는 그들의 행동은 적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 폭력과 차별로 발현된다.

그렇다면 누가 애국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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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에는 계획이 없습니다. 더 큰 증오를 증명하기 위한 계획이 있을 뿐이죠. 우리네 독립운동가와 비교하긴 꺼림칙하나, 모든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진정 자신들의 활동으로 나라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강력하고 진지하게 가지진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30, 40년대에는 더더욱이요.

 

그럼에도 독립운동을 해야 했던 이유는 그게 민족의 대의인 동시에,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침략자 일제에 대한 증오일 겁니다. 침략하여 빼앗고 죽인 자들을 상대로 우리가 이길 수 있고 현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대신 하나라도 더 많은 적들을 죽이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 역시 있었을 겁니다.

 

물론 독립운동가와 그대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 독립운동가 정도면 그나마 꽤 온건하게 한 편인가 싶을 정도이기도 하고요. 최소한 무차별 민간인 테러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나 극히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으니까요. 이 경우엔 그 테러, 보복의 장소가 국내이고 피해자로 같은 조선인들이 많을 거라는 것도 이유이긴 합니다만.

 

요는 독립운동이든 하마스의 활동이든 IRA의 활동이든, 그들의 활동 기저에는 정의와 자유만큼이나 분노와 증오가 크다는 거고, 사람에 따라, 조직에 따라 그 비중은 크게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너무 오래, 너무 많은 사람에게 지나치게 분노를 응축시켜놓으면 그 반발 역시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통제와 관리를 할 머리들을 죄다 잘라놓으면 더더욱 터질 때 폭주할 수밖에 없죠. 분노 역시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데나 튀거든요. 임정에서 일본인이면 민간인 무차별 씨몰살하자, 왜놈 유충들 참수하자고 하는 놈은 없었습니다.

 


하마스는 추악한 행위를 저지른 테러리스트지만 그런 테러리스트들은 어디 땅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이스라엘이 만든 괴물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테러와 잔악 행위가 역겹다 한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 그렇게 만든 이들이 있는 한 단순 사악한 괴물 테러리스트라고만은 할 수가 없죠.

 

약자가 항상 정의는 아니고, 싸우면서 정의를 챙기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며, 당하면 당할 수록, 잃으면 잃을 수록, 억압 받고 차별 받고 죽기를 바랄수록 악에 받힐 수밖에 없게 됩니다. 가진 게 없고 약하기 때문에 더 비도덕적인 집단이 되기도 쉽고요. 홀로코스트를 피해 도망 온 사람들에게 자기 집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해줬는데 그 대가가 은인에 대한 침략과 학살이며 말살을 목적으로 하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이라면 당연히 증오와 혐오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되겠죠. 

 

애 어른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고 싶을 정도로요. 사람이 괴물이 되는 건 대단찮은 이유가 아니죠. 당했는데 갚아줄 힘이 없을 때 괴물이 되는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갚아주기 위해 지켜야 할 선을 하나하나 포기하다보면 그렇게 되죠. 가끔은, 한번에 여러 단계를 추월하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어느 소년은 자폭 테러를 한 자기 누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같은 길을 갈 거라고 하더군요.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다른 선택지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정해진 선택지가 있는 법일 겁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만드니까요.

이기고 싶어서 싸우는 게 아닙니다. 죽이고 싶어서 싸우는거죠.

 

하마스가 갑자기 생겨났을까요? 그들의 잔악 행위가 그들이 원래부터 사악한 괴물들이라 그럴까요? 중국군이 한국을 장악하고 지역별로 게토를 만들어서 감옥화 시키고 재미 삼아 쏴죽이고 물도, 전기도 제대로 공급 안 해주며 신나게 죽이고 고문해대면 한국인 중에 증오에 머리가 터지고 악에 받혀 중국인이기만 하면 한명이라도 더 죽여버리겠다며 몸뚱이에 폭탄 묶고 자폭할 사람 없을까요? 다 같이 총에 칼차고 기습 공격해서 중국인 민간인 잡아다 신나는 보복을 하고 싶은 사람 하나도 없겠습니까?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혹하고 끔찍하며 반인륜적인 행위가 보복, 되갚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쾌락이 될텐데요.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북한군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 중국인에게 강간 살해 고문을 현재 진행형으로 당하고 있는 위구르인들은 그들에게 잔혹한 보복을 상상하지 않을까요? 당연히 하죠.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하마스가 딱 그런 상황입니다. 온갖 개짓거리란 개짓거리는 수십년 동안 죄다 당했는데 증오와 혐오, 분노가 뼛속 깊숙하게 자리잡지 않으면 죄다 성불해서 부처가 되어야지 테러를 하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일개인의 잔인하고 반인륜적인 범죄를 보고 가죽을 벗겨야 하네 팔다리를 포떠야 하네 산 채로 불태워야 하네 하는 건 잔인하다 축에도 못 낄 온갖 기발한 고문과 살해 방식으로 분노하는 이들이 실제로 그보다 더 한 피해를 입은 자들의 분노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위선입니다.

 

 

하마스가 잔혹한 테러를 저지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건 이스라엘이죠. 가해자는 신나게 가해하는데 악에 받힌 피해자의 보복에는 비난한다니, 같잖기도 해라.

 

아 물론 하마스가 저지른, 이스라엘에 비해 특별할 것도 없는 행위가 잔혹한 건 맞고 미디어에서 부정적으로 다뤄지며 세계인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씌워지는 건 맞는데, 그게 그토록 잘못이라면 다 같이 손잡고 팔레스타인에 쳐들어가서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면 노인부터 신생아까지 쏴죽이고 찔러 죽이고 묻어 죽이고 태워죽이고 목졸라 죽여서 지구상에 팔레스타인인이라는 단어는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도록 멸절시켜야죠. 마찬가지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무제한 인종멸절권 부여하고요. 힘 센 가해자는 무조건 무죄고.

 

이스라엘이 억울할 게 뭐가 있습니까. 자기 업보인데. 이런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하마스의 개새끼짓에만 분노하는 게 바로 위선입니다. 선비짓도 그런 선비짓도 없죠.

 

 

참고로 전 하마스의 행위 자체를 옹호하는 게 아닙니다. 당할 짓을 했으니 당하는 거고, 그게 잔혹하든 그렇지 않든 혈채를 갚은 거라는 걸 인정하는 것 뿐이죠. 애들 참수하고 외국인 시체 조리돌리는 거? 물론 통제되지 않은 죄악이고 무분별한 공격입니다.

 

근데 미쳐서 눈깔 돈 놈들이 사리분별 못하고 총들고 브레이크 댄스 추는 걸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걸 통제하고 관리할 팔레스타인, 하마스 측 인물들 단 한번도 멈춘 적 없이 암살해댄 건 이스라엘인데. 그래서 업보라는 겁니다. 약자가 정의롭지만은 않듯이, 그 약자들의 분노가 광기가 되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분출되는 것 역시 있을 수 있는 현상입니다. 

 

그걸 이해해야 일차원적 하마스 개새끼 소리가 얼마나 유치한 줄 아는 거죠. 개빡쳐서 눈깔 돈 놈이 자기 말리는 사람한테도 주먹질 하는 게 드문 일입니까? 하도 조롱 받고 괴롭힘 받은 사람이 피해망상에 빠져 중립적인 사람의 평범한 행동에도 너도 나 놀리냐며 쌍욕 박는 게 그리 신기한 일인가요? 똑같아요. 거기에 피와 시체만 추가 된 것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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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는 말이야."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에 기대 살아간다. 그것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떠했던 사람이었는지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그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들은 정말 많이 있다. 개인에게 있어 그것은 민족, 역사, 종교, 직업, 출신, 지역 등등 다양한 것이 있을 것이고 그것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이루는 재료가 되어 비중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이 어떤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그것에 자부심을 느끼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인데, 한국인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한국인을 규정하고, 한국을 이루는 요소들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다. 예컨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역사에 자부심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부심.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어떠한 가치를 중요시 여기느냐 하는 것이 첫번째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동치 시킨다는 점이 두번째이다. 이순신의 업적은 그 본인의 업적이지 21세기를 살아가는 나 자신의 업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순신의 위업을 위대하다 여기고 자부심을 느낀다. 이순신의 승리는 그 당시 조선과 조선인의 승리일 뿐이다. 일본인은 이순신의 승리에 자부심을 느낄 수 없다.

 

 

어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훌륭하고 위대한 사람일 수는 없다. 그 사람이 가장 고점일 때가 있고 가장 저점일 때가 있을 것이며, 가장 화려했던 순간과 그렇지 못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훗날 과거에 천착해 살아갈 때가 있다. 그것은 고점을 찍은 이후 꾸준히 추락하여 비참해지거나, 스스로 그렇다 여기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다. 한 때 모든 이들의 우상이 되어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연예인이 퇴물이 되어 뒷골목 술집 가수가 되며 무대 뒷편에서 약에 취해 있으면서도 약이 아닌 화려했던 순간에 중독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가장 열심이었고, 가장 가치를 인정 받았던 젊은 시절과 다 늙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언제 짤릴 지, 은퇴할 지 눈치만 보던 이들이 자신의 젊은 시절에 향수를 느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지금 자신의 비참함을 견디기 위한 정신작용이다.

 

사회성은 물론 성격, 성적, 운동능력 등 잘난 게 없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 역시도 어떠한 가치를 추종하며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일반적인 것은 아닐 경우도 많다. 어떠한 경우 범죄적인 것이거나 반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보다 나은 것은 마이너한 장르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좀 더 일반적인 경우를 보자면, 대부분은 SNS를 비롯한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는다.

 

커뮤니티에서 유명하고 인정 받는 자신이라는 정체성을 현실에서의 비참하고 아무 것도 아닌 자신보다 우선하고 그것을 본질이라 여기며, 현실에선 누구와도 대화하지 못하는 대신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커뮤니티 중독자들의 현실은 사회적 교류가 사실상 단절된 이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찾는다.

 

 

한국인들은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한국인으로서 산다.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비판하며 민족주의에서 탈피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있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느 집단에 속하느냐는 본능의 영역에서 발현되는 현상인지라, 자신의 정체성을 소속된 사회에서 찾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부덕한 일도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자연스러운 구분법은 그 옛날 부족 사회에서조차 우리 부족과 다른 부족을 구분했던 본능 단계의 인지적 작업이었기에 민족주의나 그와 유사한 개념, 그리고 거기에서 기인하는 현상들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지나치면 무엇이든 독이 되는 것처럼, 민족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 정체성과 별개로 지나친 배타성과 공격성만 통제할 수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족주의가 등장한 이후, 유럽인들이 자기 집단과 민족이라는 정체성에서 탈피한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던가? 그저 조절되었을 뿐이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반드시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직관적인 예시로 유럽의 중동 이민자들을 한번 살펴보자. 그들은 중동에서 유럽으로 왔다. 이민자 1세대야 자신들의 뿌리를 잊을 수 없고 자신들의 정체성은 완전하게 세탁할 수는 없겠지만, 이민자 2세대와 3세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들은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 환경을 겪은 이들이다. 그들에게 고향은 유럽이고 태어나 자란 모국과 사회 역시도 유럽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그들은 같은 유럽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2세대고 3세대고 그들은 여전히 중동인이고 아랍인이며 무슬림이다. 그들은 유럽 사회의 메인 스트림,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고 그러한 혼란과 불만이 그들을 테러로 이끌게 되었다.

 

유럽인으로서의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유럽인들이 같은 유럽인이라고 하지 않으니 그들은 유럽인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 그들은 자신의 뿌리를 되돌아 볼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시각으로. ISIS가 발흥할 당시 적지 않은 유럽 이민자 2세대, 3세대들은 ISIS에 동조했다.

 

그것은 그들이 유럽인이 아니라고 배척하던 유럽에 대한 반동에 불과하다.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정당한 결과 외부 정체성인 이슬람, 그것도 분노의 표출을 정당화해줄 극단주의 이슬람은 너무나도 적절했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슬람, ISIS의 이름과 함께 찾았고, 그 표현은 테러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아?"

 

 

한국은 일제강점기 이후 상당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는 일제의 문화통치와 분열책, 식민적 교육의 성과이지만 그 이후 한국의 권력을 차지하고자 한 이들이 외부 정체성을 확실하게 몰아내지 못했거나, 그러지 않았던 것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한 외부 정체성이 본토 정체성을 위협하고 있고, 실제로 정도의 차이일 뿐 외부 정체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하거나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이 적지 않게 했으며, 심지어 사회 고위층에서 막대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국가를 지켜야할 국방부장관 지명자가 매국노 이완용에게 어쩔 수 없었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기이할 정도로 한국의 국익보다 일본의 국익을 우선하는 정부들이 있었으며, 한국과 조선의 역사를 일본보다 열등하다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한국인이라 말하고 심지어 애국자라 말하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착란 증세이다. 말은 행동보다 강력하지 못한 고로, 그들의 행동은 스스로의 말과 상반되며 그러한 이유로 말보다 실질적인 행동이 더 크게 평가 받아야할 것이다. 어째서 한국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찬성해야 하는가? 어째서 100년전 적극적으로 일신의 영달을 위해 노력한 매국노에게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를 내려도 되는가?

 

 

일제는 조선의 사회와 문화를 깍아내렸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역사에 대한 공정이었다. 조선에서 태어나 조선에서 자란 조선인들이 조선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히 조선의 역사이고, 자신의 뿌리가 된다. 따라서 이것을 먼저 무너뜨리면 조선인들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열등함에서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는 점이다.

 

내 뿌리가 지독하게 부끄러운 것이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자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열등한 조선인에서 우월한 일본인이 되고자 하는 이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조선의 역사를 조작했고, 부정적이게 해석했다. 그리고 그것을 조선인들에게 교육했고 그것들은 식민사학, 식민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교육계에서 이러한 식민사관은 반세기 넘게,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게 되었다. 최근에야 그러한 요소들에 대한 부정과 교정이 이루어지고 정보가 알려졌지만, 당연히 그보다 이전 시대에 식민사관의 영향을 받은 이들의 지식 업데이트는 거의 없거나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봐도 될 정도이다.

 

그외에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단지 주류 정체성에 거부감을 느낀 이들이나, 과거의 식민지배국이자 강대국, 선진국인 일본을 동경하다못해 친일적 정체성이 만들어진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국인과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인 면모들에 비판적이기에 비슷한 조건의 더 나은 국가인 일본을 우월하게 여긴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정말 많을테지만, 중요한 건 그들이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정체성보다 일본의 정체성을 더 우선시하거나, 우월하다 여긴다는 점이다. 그들이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취사적이고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경우가 많다. 한국 우파가 유독 친일적이거나 그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는 것처럼 우파적인 가치관과 일치하거나 부합하는 사건/현상일 경우가 그러하다. 한국 우파의 뿌리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면 특이한 일은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임에도 한국보다 일본의 국익에 복무하며, 한국의 정체성을 열등하며 미개한 것으로 규정하는 이들, 그들은 어떤 사람인가?

 

 

"배를 버려라!"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영리한 것은 가장 귀중한 물건을 가지고 가장 먼저 탈출하는 자들이다. 이완용은 그 자체로 욕설이나 다름 없는 이름이 되었지만 그가 대단히 영특하고 뛰어난 인재였던 것은 사실이다. 대단히 똑똑하고 통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러한 능력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쓰기보단 다 포기하고 가장 먼저, 가장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는데 일조한 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그 본인과 가족은 가장 대단한 특혜를 받은 친일파로서 부귀영화를 누렸다. 만약 그가 이재명 의사에게 저격 당하지 않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하지 않았다면, 혹은 애초에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그의 선택은 역사적 공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실패한 것이 되었고, 그 실패의 원인은 조선인의 성공이 아니라 미국의 성공이었다. 물론 우리는 조선인들의 독립 운동이 어떠한 성과를 냈고 어떻게 인정 받았는지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념적으로, 사상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필요에 의해서 부정하거나 긍정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안다. 친일파, 혹은 토착왜구라 불리는 이들에게 조선인들의 노력은 무의미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토착왜구들에게 있어 독립운동은 폄하의 대상이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자료나 해석을 왜곡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공정이 이루어진다. 한국인이 어째서 한국의 역사와 독립운동을 폄하하느냐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그들의 정체성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설정해본다면 설명이 된다.

 

그들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의 국익에 복무하는 것이며, 스스로의 정체성으로서도 한국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것을 깍아내리고, 더 우월한 정체성으로 덧칠하려 한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은 부정하고, 1948년 건국일을 긍정하며 일제 시기를 마치 나라가 없었던 것처럼, 친일을 했던 사람은 떵떵 거리며 사는 세상을 만들고, 독립운동 한 사람들은 돈도 힘도 없는 사회를 만든 것처럼, 한국인은 미개한 조센징이고 일본은 갓본이라 칭하는 것처럼.

 

더 나아가 한국 여성은 김치녀고 일본 여성은 갓본녀라 부르고, 한국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국방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더 강한 강대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끔 여기는 것 역시 그러하다.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그러한 나라이고, 그러한 나라여야 한다. 그들은 그것을 애국이라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익을 위한 일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

 

그렇게 한국은 한국의 역사가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지 못하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한민족을 위해 투쟁하던 독립운동가를 부정하며, 반공을 국시로 삼아 건국되고 작동했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을 긍정한다. 한민족은 본래부터 열등한 민족이었기에 스스로 자강한 게 아니며, 일본에 의해 선도되어 근대화를 이룬 나라여야 한다. 한국은 공산주의에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기에 강대국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한국 스스로 공산주의 적들과 싸워 이길 수도, 스스로를 충분히 보호할 수도 없는 약한 국가이기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 보호국은 미국과 일본이다.

 

즉, 이는 하나의 바꿔치기이다. 한 사회에 나누어진 두가지 정체성은 여전히 대립 중이고 그 중에서 반국가적이고 반민족적인 가치관이 우파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뿐이다.

 

어째서 보수 정부가 나타날 때마다 한국은 나약하고 위태로운 국가가 되는가? 어째서 자국과 자민족과 자국 역사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는 국가가 되는가? 언제 킹찍탈이라는 말이 나왔고 언제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왔으며, 그 단어는 언제를 기점으로 사라졌는가? 언제 갑자기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는가?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에 의해 나눠진 것은 결과적인 것이다. 본질은 그들이 어떠한 정신을 가진 어떤 인간인가에서부터 시작한다. 왜 어떤 사람은 식민지 시절 적극적으로 친일을 했고, 어떤 사람은 적극적으로 독립 운동을 했는가. 왜 어떤 사람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을 도덕과 윤리, 법과 원칙의 준수보다 더 유의미한 현실적 가치로 보는가. 왜 어떤 사람은 당장의 이익보다 사회적 자본을 더 중요시 여기는가.

 

왜 어떤 사람은 타인의, 사회의 손해보다 내 이익을 더 중요시 여기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이 본질에서 다양한 표현형이 나뉘어질 뿐이다. 부정부패한 기업인과 관료도, 친일 매국 토착왜구도, 사적 이익과 정치적 승리를 더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정치인도 다 그러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도덕과 윤리, 혹은 논리와 같은 명분을 필요로 하고, 그러한 이유로 역사는 왜곡되고 특정 가치는 부정된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사회적 자본을 훼손할 수 있는 이들에게 매국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야만 하고, 그래야 자신의 사적 이익 추구를 정당화 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때로는 생계형 범죄라고. 그들 자신에겐 그게 사실일 것이다. 나라를 팔고 국익을 팔아서 자신의 생계를 풍요롭게 하기 위함일 뿐일테니.

 

이러한 본질은 아주 위험하지만, 그 표현형이 별 거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더 나쁜 표현형이 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위협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만약 그들이 성공하고, 승리한다면, 가장 먼저 배를 버리는 것은 우리가 아닐 것이다.

 

배에 구멍을 낸 그들 자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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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선 이후 진보계엔 체념과 포기의 분위기가 은근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윤석열이라는 인간이 어떤 지는 대선 이전부터 꾸준히 알려져 있었고 이건 정치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둔 '제정신을 가진 사람'과 '상식적 가치를 으뜸 삼는 사람'은 사리분별을 통해 어떻게 될 지 너무나도 뻔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았고, 그 더 하는 것조차 예상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건 아니었다는 점이 놀랍다면 놀랄 일이었고요.

 

그래서 결국은 체념입니다. 이렇게 되겠지, 그리고 딱 그렇게 됐네. 어떻게 될지 뻔한데, 막을 방법은 없으니.

 

그렇다고 그런 기색은 의외로 또 잘 안 보였습니다. 비판과 비난은 여전히 하긴 했으니까요. 보수 진영 입장에서 여전히 진보는 입만 살아서 시끄럽게 하는 놈들이니 안 그래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포기해버린 상태까진 아니고, 체념한 상태로 지켜보자는 입장에 가까웠죠. 비판할 건 하면서요. 자연스럽게 나올 소리 하는 것 뿐이지만.

 

이렇다보니 진보 진영은 체념은 자연스럽게 지켜보기로 귀결되는 거고, 예전 디씨-일베가 지배적인 분위기까지 인터넷 문화와 분위기를 장악하지 못한 시대에서 인터넷과 별개로 여전히 진보적 분위기의 관성이 남아 있었던, 정확히는 보수의 극단적인 발언들이 본심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눈치를 받아온 시대에서 나온 말이 샤이 보수였죠.

 

보수의 '본심'이 보편적 상식, 정의와 도덕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입니다.

 

즉, 보수의 본심은 곧 사회적 정의와 상식과 거리가 멀었던, 욕 먹을 개소리들이었고, 그러한 사상을 함부로 하기에 아직 한국 사회의 도덕성과 상식은 심각하게 추락하지도, 역전되지도 않았던 셈이라고나 할까요. 사실 그 당시의 도덕성이 학폭이나 다양한 도덕적 문제에 대한 반응, 대응과 비교해 더 낫다고는 하지 못해도, 다른 쪽에선 극단적인 소리를 할 경우 공개적인 비판이 있었고, 그게 통하던 시절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선택의 반복이 더 나은 상태들의 합이라면, 더 나쁜 선택의 반복은 당연히 더 나쁜 상태의 합이 되겠죠. 그리고 전체는 언제나 부분의 합보다 크고요.

 

한국 사회는, 적어도 정치적인 면에 있어서만큼은 더 나쁜 선택의 반복이 있었던 셈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 결과이자 증거가 바로 윤석열 정권과 그 내각이고요.

 

 

사실, 보수 진영 그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60년대 수꼴 극우보수들의 미친 소리와 정신이 2020년대 수꼴 극우보수의 미친 소리와 정신보다 더 저열하진 않아요. 다만 세련되지 못했을 뿐이지. 60년대, 70년대, 80년대, 심지어 90년대와 그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한국 극우보수들은 그저 그 시대에 얼마나 어울렸는가의 차이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조차 어디까지나 형태적 차이일 뿐이지 그 정신과 가치관은 전혀 다를 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60년대의 그것과 향수마저도 느껴질 정도의 유사성이 보이는 거죠. 실은 그보다 더 이전과도 크게 다를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극우보수는 더 저열해지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죠? 이전에는 대놓고 본심을 꺼내면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고.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한국 극우는 장관 내정자가 공개적으로 반대 진영 전 대통령의 목을 따는 건 시간 문제이며, 이순신과 세종대왕 동상을 공격하고 우파라면 그래야 한다고까지 말합니다.

 

병사 하나 죽은 거 가지고 사단장을 날리냐는 말을 대통령이 했다면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말이 새어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라 큰 논란이 되어야 함에도 지금은 그렇지도 않고 별 타격도 없습니다. 일본의 심기를 거스르고 일본에게 공격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사라지고 없어져야 한다는 새로운 성역이 만들어지고 있고요.

 

수십년 전부터 존재했고, 일베 시기와 함께 보편화, 의식화된 '내지와 본국'의 당위적 우열은 하나의 팩트가 되어버렸고 수많은 지지자를 동반한 세계관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국체는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좀 보수적으로 보자면, 다음 정권 때 확실히 결정나겠지만, 전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진단합니다. 이는 윤석열 정권이 임기 내 탄핵, 하야라는 폭탄과 함께 침몰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지만 아마 그럴 일 없지 끝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요.

 

보수의 저열하고 비인간적이며, 소아병적이고 정신병적인 본색이 대놓고 드러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저지력이 없습니다. 체념 상태의 진보는 화력도 부족하지만 그럴만한 의지나 전략이 없거든요. 어떤 것이든 처음의 충격이 강력할 뿐이지 그것이 반복되면 단 두번째부터 화력도, 대응력도 약해집니다. 두번째 세월호는 박근혜 정부 당시보다 충격도, 화력도 약할 겁니다. 본질적으로, 형태적으로도 꽤 유사한 사건이 바로 이태원이었고요.

 

탄핵이든, 하야든 똑같을 겁니다. 박근혜 탄핵 사건만큼의 화력도, 타격도 주지 못할 겁니다. 단지 미국식 중간선거에서 졌네 같은 분위기 정도면 차라리 다행일 정도로.

 

윤석열과 그 정부의 인사들이 무식하고 거침이 없어서 더욱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의 무식하고 거침 없는 망언, 아니. 본심이 충분한 비판을 통해 저지되지 않고 그들의 발언이 정치적 책임으로 돌아오는 걸 보기도 어려워진 건 사실입니다. 예컨데, 박근혜 정부 당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과거사 망언으로 비판을 받으며 후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죠.

 

다만 문창극의 발언이 '진짜 문제' 였는 지에 대해서 대부분의, 최소한 적지 않은 보수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이 느꼈던 문제의식은 이건데, '그걸 공개적으로 말한 게 문제'였다는 점입니다. 즉, 그들 스스로도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건 알았는데, 그건 단지 자신들이 믿는 것, 지지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잘못되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이라기보단, 그게 남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정도는 알았다는 쪽에 가깝죠.

 

마치 나치가 자기들끼리는 유대인 가스실을 지지하고 그래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그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경우 어떤 반응과 반발이 일어날지는 알고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보수 진영은 본색을 드러내며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저 한쪽 진영 대깨X 깨시민 들 사이에서 호들갑 떨고 지랄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질 거고요. 

 

그런 사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오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우리가 일베가 처음 등장했을 때 호들갑 떨며 예견한 것들이 일부라도 현실이 된 이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윤석열 정부가 남길 유산과 씨앗들이 어떻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지 어느 정도 예견이 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바로 다음 총선인데, 지금의 샤이 진보들이, 그리고 극우보수의 개짓거리에 진절을 느끼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중도층이 보수층의 신나는 드라이브에 역충격을 가해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이전 시대의 보수 강세의 사회보다 더 비인간적이고 비상식적인 나라가 될 겁니다. 이제 한국은 후진국이 아니거든요. 옛 보수의 부정부패는 그들의 도덕성과 가치관, 탐욕 문제도 있었지만 후진국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것들이기도 했지만, 지금의 것은 그 성질이 조금은 다릅니다.

 

옛날엔 더러운 거 알면서도 무시했지만, 지금은 그 더럽고 비인간적인 것에 정의의 거죽을 덮어 씌우며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포장하기 때문입니다. 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궤변과 말장난으로 가득찬 개소리거든요. 단지 그 개소리에 완성도가 있기 때문에 좀 모르는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그냥 멍청한 놈들이나 평범한 어린애들은 아리까리 하면서 맞는 말인 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ㅇㅅㅇ식 개논리인데, 말 그 자체로만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논리와 주장, 표현은 그저 특정한 한 사건과 사례에 허수아비식 공격을 모아 딱 그 사례에만 적용되는 활자들을 붙일 뿐입니다. 그래서 ㅇ적ㅇ이 나온 이유가 바로 논리가 일관적이지 못해서 똑같은, 그러나 다른 사람이나 진영에게는 또 다른 논리를 가져와서 그렇거든요.

 

이처럼 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피상적 완성도의 일개 사례들만 분리적으로 보며 요즘 시대 보수적 세계관, 보수의 논리가 형성되는 거고요. 인국공 사건 당시 보수의 논리는 조악하고 저열했으며 논리적 허점마저도 있었지만 엘리트주의, 공정 담론과 결합하고 그것을 축으로 삼아 마치 그럴듯해 보이는 것으로 짜맞추었습니다. 그걸 부추기고 좀 더 세련된 활자로 정리한 것이 바로 언론이었으며, 그것에 대한 비판 여론을 마녀사냥식 물량의 폭력으로 찍어누르던 게 보수센징들이었고요.

 

그런 식인 거죠.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그런 식으로 변화해왔고 지금은 그 완성도가 그 당시보다 더 나아졌을 뿐이지.

 

 

진보 진영이 지금은 체념해 있지만 다음 총선 때 어떻게 집결할지가 관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심지어 다음 대선 때 진보좌파 진영이 승리한다 해도 보수 드라이브에 충분한 제동을 주긴 어려울 겁니다. 이미 관성은 10년도 더 전부터 붙어왔고, 문재인 정부의 시도는 제동이 아닌 탄성을 준 셈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냥 미친놈 세상 속 우리 정상인들은 좆됐다는 걸 인정하는 게 나을지도 모를 일이죠.

 

뭐가 낫냐고요?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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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이라는 인간이 일뽕 짓거리나 하고 있는 걸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이런 국까일뽕 종자들은 친일과 애국을 구분하지 못하고, 대개의 경우 애국은 하지만 그게 한국에 대한 애국은 아닌 경우가 많은데, 스스로는 그걸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친일과 일본에 대한 애국을 한국에 대한 애국으로 착각하는 증상도 매우 흔하죠.

 

같은 맥락에서 미국에 관해서도 비슷한 입장인데, 이전처럼 국기기밀을 유출시켜도 그 대상이 미국이면 괜찮다는 입장이라던가요.

 

정상적인 사리분별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복장이 터질 일인데, 이런 류의 저능아들은 스스로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없고 그냥 사안에 따라 그 주체가 누구이며 그 대상이 어디인가를 기준으로 가변적인 판단을 내립니다. 그래서 진보좌파의 북한이나 중국과의 대화, 협상, 교류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 빨갱이 레드팀 짓거리지만 극우보수의 친일친미 국가기밀 유출, 자가 사보타주를 통한 국익상실에 관해서는 일본이라 괜찮고 미국이라 괜찮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그것이 애국이라고 착각하거나 외교라고 하기까지 합니다. 일종의 거래라는 거죠.

 

하지만 아닙니다.

 

 

매국은 나라를 파는 일이지만 국익을 팔아넘기는 일이기도 합니다. 가령 KT에서 위성 팔아먹은 게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죠.

 

미국은 동맹국이고 일본은 대충 우방이니 괜찮다는 겁니다. 국익을 팔아먹어도 경제 활동이라고 하고요.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라면 동맹이고 우방이고 아무런 관계 없이 자국의 국익을 지켜야 합니다. 국가 기밀이 털리고, 스스로 팔아먹어도 동맹국이니까 괜찮다? 미국은 한국의 부모가 아니고 이해관계에 따라 외교 관계를 형성한 겁니다.

 

한국인이 지난 세기 원조, 지원 등 미국에 대해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고 든든함을 느끼든 그건 그 개인의 감상에 불과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작동해서는 안 되는 거고요. 미국은 언제나 국익을 우선시하는 국가이고, 이건 모든 정상적인 국가가 그렇게 합니다. 한국이 국익에 해가 된다면 한국에 피해를 입히는 건 고려할 가치도 없이 하는 일이죠.

 

지금까지는 한국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가 긴밀했던 거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국제사회입니다. 막말로 한국에 전쟁이 터졌는데 미국이 개입하려니 아주 높은 확률로 핵전쟁이 터진다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하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지 안으로 놓고 진지하게 고려할 겁니다. 그래야 하고요.

 

미국이니까 괜찮고 일본이니까 괜찮다. 그건 사리분별 못하는 놈들이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저능아나 다름 없는 소리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국익이 반드시 한국의 국익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고 그들에게 무언가를 양보 한다고 반드시 되갚아주는 것도 없어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할 수는 있는데, 할 이유가 없으면 안 해도 됩니다.

 

반도체와 같은 산업의 문제에서도 미국의 국익을 위해 한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인 태도로 정책을 밀고 있고, 일본 역시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일을 할 수 있고 했던 거죠.

 

 

무엇보다 나라를 팔고 국익을 파는 일에 있어서 국가적 이익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습니다. 즉, 국익을 팔아 국익을 얻는 거 자체가 언어도단에 가까운 말이죠.

 

나라를 팔고 국가 기밀을 팔고 국익을 타국에 넘기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철저히 개인, 극히 소규모 집단의 것에 불과합니다. 이완용이 조선을 팔아서 그 본인과 가족 수준에서나 막대한 이익을 얻었지 조선과 조선 민중 대부분은 손해를 봤죠. 한국이 열심히 자발적으로 국익을 상실하고 일본에게 이익이 될 행위를 하고, 미국의 침해에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 경우 이익을 얻는 자 역시 없다는 것 뿐이죠.

 

차라리 적극적으로 거래를 한다면 매국노 본인과 그 집단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기밀을 팔아먹는 장교는 적어도 그 대가를 받기는 하죠. 그게 공무원, 정치인, 기업인, 기술자, 연구자라 하더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맥락에서 미국과 일본에 매국을 하고 국익을 팔아 돈을 벌겠다면 북한과 중국에도 파는 걸 뭐라고 해선 안 됩니다. 결국 그 행위를 통해 개인은 이익을 얻는 건데, 여기서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니라 이익을 본다는 것 그 자체에 있거든요. 즉,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파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파느냐입니다. 어떤 나라에는 팔아도 되는데 어떤 나라에는 안 된다? 그런 기준 자체가 이상한 겁니다. 그건 주관적인 호오에 불과한 것이지 대한민국이 얻는 이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거든요. 애당초 매국 자체가 국가에 손해를 입히는 일인데 사는 쪽이 동맹이든 우방이든 적국이든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물론 다소간의 위험 수준에는 차이가 있겠죠. K9 자주포 설계도, 기술이 미국에게 넘어가도 그 기술이 한국을 향할 가능성은 낮지만 중국에 넘어간다면 그 기술을 도입한 무기를 만들어 한국을 향하게 하거나 약점을 분석해서 카운터 전술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도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한국에 도움이 되거나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걸 팔아먹은 개인의 이익에 귀속될 뿐이죠. 미국이 K9 자주포 기술로 비슷한 거 만들어서 팔겠다고 한다면 한국의 방산업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겁니다. 이게 날지 안 날지 모르는 전쟁보다 더 확실하고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손해죠. 미국이 새 자주포 팔아서 얻는 금액만큼이나 정확한.

 

 

그래서 미국과 일본에 국익을 팔고 넘겨서 이익을 얻는 게 문제가 안 된다면 삼성, 하이닉스 반도체 기술자가 중국 넘어가서 고연봉 받고 기술, 노하우 넘기는 것도 문제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것도 결국 국익이 넘어가는 거지만 그 국익을 넘겨서라도 돈을 버는 개인은 있거든요. 똑같이 팔아서 돈을 버는데 중국, 북한, 러시아와의 거래는 개새끼다? 개소리죠. 정상적인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들 눈에는 둘 다 좋게 보이지 않거든요.

 

심지어 대개의 경우 중국에 넘어가는 건 범죄조차 아닙니다. 대놓고 기술을 빼돌리는 게 아니라면 고연봉 받고 고급 기술자 모셔가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단지 몇년 뒤 팽 당할 뿐인데, 그것도 결국 그거 감안하고 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어차피 받는 돈이 중요하지 나라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매국에서 중요한 건 어떤 나라가 나에게 더 큰 이익을 안겨줄 수 있느냐이지 그 나라가 자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적국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어차피 이익을 얻는 건 나지 내 국가가 아니에요. 이완용이 나라를 위해 매국을 한 게 아님에도 쉴드, 재평가, 어쩔 수 없었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리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에겐 북한과 중국에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겠다면, 매국노가 그래서 욕을 먹는 거고, 자기가 친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는 놈들이 그래서 욕을 먹으며, 또한 위험한 이유가 이건데 욕을 먹는 놈들은 그 행위의 본질이 아니라 일본, 중국, 미국, 북한이라는 국가 타이틀에 따라 기준을 지 ㅈ대로 삼으니 못 배운 놈들이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되고 목소리를 키워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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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1.0 미만을 크게 밑돌며 0.7대까지 추락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의 규모를 심각하기 위협하는 현실이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고 그 실효와 질적 유지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즉, 대한민국 국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병력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편제와 전투력에 큰 하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지금보다 더 약해질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고려했을 때, 지금이 상대적으로 더 고점이라는 사실에서 북진통일의 필요성은 역설된다.

 

1.

북진통일은 왜 필요한가? 그것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위상, 가능성을 혁신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관해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법적인 다양한 난점과 제약은 존재한다. 그리고 필자 또한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것이다.

 

 

2.

먼저, 북진통일을 해야하는 첫번째 이유는 아직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핵무기를 탑재할 정도가 아닐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핵미사일 투발 능력을 갖추게 되는 순간 북진통일은 극도로 위험한 도박이 된다. 압도적인 재래식으로 북한 전역을 평탄화 하는 것은 가능하나, 그것은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지극히 압도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은 확실하고 발생 가능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군사적 선택이 바로 북진이지만, THAAD를 가지고 있음에도 핵무기의 대한민국 전역에 대한 타격 가능성을 완벽하게 방어하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는 한 그 위협 역시 현실적이다.

 

따라서, 수동적인 국방전략으로 북한의 남침만을 방어해내는 작계를 채택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타격하여 그 군사적 위협을 거세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현실적인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동시에, 대한민국 실질 점유 영역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선택지이다.

 

 

두번째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인구 문제이다. 저출산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국방 인적 자원은 갈수록 줄어들 것이며, 여성 징병은 필자가 자주 주장하였듯 전투력을 보장할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민자를 국방 인력으로 들이는 것 역시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을 가지지 않은 병력에 의한 안보 위협을 초래하는 상황을 연출할 개연성이 더 크다. 그들이 정말 위기의 순간 목숨을 걸고 자신이 살아오지도 않고 지켜야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땅을 위해 싸울 것으로 보는가? 한국은 미국이 아니다. 이민자나 이민 희망자로 일반 군대를 꾸리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무용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줄어들 대한민국 국군의 질적/양적 수준을 유지할 방법이 있는가? 여성 징병? 앞서 말했듯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부담 능력은 평균적인 남성보다 낮고 그들에 의한 전투력은 그들은 군 병력으로 징병하고 관리하고 시설을 만들고 하는 모든 비용에 비해 효용이 낮을 것이다.

 

저출산으로 인한 군 약체화는 필연적이고 이를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 국방 상황을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북진통일, 전쟁이다. 즉, 전투병력이 더 줄어들기 전에 그나마 앞으로 십수년 동안 부족한 국방 자원이 가장 강력한 지금 이 시점이 북진 통일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시점이 된다.

 

 

세번째 이유는 그것이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력을 신장시킬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더 넓어져야할 필요가 있고, 이는 실질 점유 지역의 확장을 필요로 한다. 즉, 이북 지역의 탈환 및 수복은 대한민국의 인구, 노동력, 군사적 가능성의 확장을 가져온다. 북한 지역의 자원 이득이지만 실질적인 채산성을 이유로 큰 의미가 없다 해도 상관 없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할 때도 있고, 무엇보다 땅은 그 자체로 대단한 자원이 된다.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 땅 그 자체다. 북한에 의해 형성될 전선이 수백km 북상한다는 것부터가 대한민국의 안보에 가장 유효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전쟁의 승리란 승전국에 대단한 위상과 권위를 가져온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위치를 변혁시키는 사건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양적, 질적 팽창을 해왔다지만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면 그것을 근거하는 숫자와 수치는 직관적이지 못하다. 미국과 같이 압도적인 숫자의 차이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얼마나 강한 국가인지, 혹은 그런국가가 됐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압도적인 전쟁 수행 결과는 주변국은 물론 전 세계 국가로 하여금 대한민국이 어떠한 국가인지 보여줄 것이다. 북한이 실질적으로 나약한 국가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만 실제로 힘을 보여주는 건 다른 이야기다.

 

 

네번째 이유는 추가적인 안보적 위협에서 대한민국의 전략적 거리를 확장시키는 일이다. 가령, 중국이 공격해올 때 서해안과 남해안, 공중만 방어하면 된다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북한을 이용하건 그 북한을 점령하며 남진하든 중국 북부전구의 목적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영향력 행사이다. 전쟁이 벌어질 경우 대한민국은 북진이라는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판단을 해야할 것이고 그 결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고 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잡아먹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연출하며 어떠한 선택지를 고르든 둘 다 전략적 불리함을 안을 수밖에 없다. 만약 북진하게 된다면 너무 늦었고, 북진하지 않는다면 휴전선에서 밀고 내려오는 중국군, 혹은 북중 연합군을 맞딱뜨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진통일을 실현했다면 전선은 수백km 북쪽에서 형성될 것이고 얼마나 잘 방어하느냐와 별개로 거리로 산출되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전쟁 발발 시 대한민국이 남진하는 병력을 파주나 고양에서 방어하는 것이 낫겠는가, 평양이나 하다못해 개성에서 방어 하는 게 낫겠는가?

 

한국인들의 대북정책에 관한 생각은 아무런 생각이 없거나 북한이 자연스럽게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모든 땅과 인민과 자원이 평화적이고 당연하게 한국의 것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믿음에는 별 근거가 없다.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붕괴하든 그것은 중국의 개입을 불러 일으킬 것이고, 근미래 한국의 전망이 건강하거나 부강할 것으로 예상되진 않기 때문에 그나마 더 나은 상태와 명확하게 더 나쁜 시기가 오기 전에 군사적 결단을 내리는 것은 어떤 면에선 합리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북한이 스스로 리스크를 불러 일으키거나 중국 스스로의 필요와 논리에 따라 한반도에 전화를 불러 일으키거나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때는 높은 확률로 중국이 적절한 준비와 근거를 갖추고 행동에 나설 것이나 그러한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 북진통일이 이루어지고, 중국 입장에서 필요 이상의 손해와 예상 밖의 전개가 이루어진다면 소극적인 판단으로 흐를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다섯번째 이유는 북한의 군사력과 정신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군사 강국인가? 북한의 군대는 강한 군대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바로 그 점을 믿기 때문이다. 북한의 군대는 나약한 군대이고 전투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의 정신력에 대한 대한민국 보수 진영의 별 근거 없는, 북한의 선전적인 정보와 90년대 이전에서나 볼 수 있는 고르고 고른 고급 인력의 파편적 사례를 일반화하는 착각 내지는 망상에 불과하고, 실제 북한군의 정신력은 극도로 나약하다.

 

심지어 이것은 군사적 훈련과 교육도 거의 받지 못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비교해도 그렇다. 이들은 종교적 광신 때문에라도 죽을 전투를 수행하는 경우가 있겠으나 북한군에겐 그러한 믿음과 필요가 부족하다. 그들이 죽어서 수십명의 아름다운 처녀가 준비된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고 북한 정권에 충성하며 목술 걸고 싸워봤자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그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없다.

 

반대로 압도적인 전력과 화력, 고급 장교들에 의해 수립된 작전 계획을 기반으로 말살전에 가까운 고화력전을 수행하는 동시에 핀포인트로 공개된 주요 지역 및 첩보로 알게 된 군부대 와 중요 시설에 대한 타격이 전개되며 북한의 전략적 선택지는 빠르게 제거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수백만발의 포탄과 폭격은 그들의 정신력을 빠르게 파괴할 것이며 이는 즉각적인 항복과 죽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상황은 연출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전쟁 시작과 동시에 생각보다 빠르게 북한군은 항복할 것이다. 싸울 이유보다 항복하여 얻어먹을 식사가 그들의 항복에 더 유효한 동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화력에서 밀리고 정신력도 빠르게 붕괴할 군대는 금세 와해될 것이며 북한 전역에 대한 점령보다 이들에 대한 관리가 더 중요한 임무가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반항이나 그럼에도 제정신 못 차리고 공격할 부대는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럴만한 동인은 부족하다. 북한이 진짜 완전히 폐쇄되어 외부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추지 못한 외행성 국가가 아닌 이상 얼추 알 것은 다 알고 있고 실제로 목도하게 된 한국의 강력한 화력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줄 것이다. 강력한 힘은 자국의 군사력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만큼이나 빠른 포기와 체념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북한이 자기네 정권에 정말로 충성하고 사랑할 것이며 자부심을 느낄 것이라 생각하는가? 한국인조차도 꼭 그러하진 않을진데 북한의 저열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강력한 애국심과 충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는 본인의 상상력 만큼을 기대할 수밖에 없겠다. 내 상상력이 말하는 바는, 충격적인 무력은 충성할 이유가 없는 상관과 정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항복과 도주(탈영 등)를 더 현실적인 선택지로 강요할 것이라는 점이다.

 

도리어 일부 한국인이 생각하는, 강력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북한군이 역사적 유물 병기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용맹하고 강력하게 저항하며 전쟁을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여 국군의 군사력 증강을 추구하는 바는 국방부/국군 조직의 합리적인 전략적 행동이지만 시민 하나하나가 그걸 진심으로 믿을 이유는 없다.

 

그러한 믿음이 바로 북진통일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내부적 장애가 될 것이다.

 

 

3.

그러나 이러한 북진통일론은 현실적인 난점과 제약들이 존재한다. 가장 먼저 헌법이 그러하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중략)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후략)

-대한민국 헌법 전문.-

헌법 제 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헌법 제66조③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은 평화적 통일을 추구한다. 정확히는, 그러할 것을 규정해놓았다. 즉, 북진통일이 전쟁인 이상 평화통일을 수행해야할 민주국가의 대통령은 헌법을 위반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 헌법적 규정은 3개 조항에 걸쳐서 강조되어 있고, 대한민국 헌법 3조인 대한민국의 영토 규정과 연관하여 생각할 경우 통일은 무력이 아닌 평화적 방식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것이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발생한다면 당연히 무력을 통한 통일을 수행해야겠지만 일부 국민들이 망상하는 것처럼 북한이 먼저 대한민국에 전쟁을 거는, 침략을 발생시킬 상황은 0%에 달한다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번 이야기한 바가 있다.

 

또한 중요한 것 중 하나,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해서 조금만 이야기해보자면, 전작권은 엄밀히 말해 한미연합사에 있다. 그러나 한미연합사의 사령관이 미군이기에 실질적으로 미군에게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이 한미연합사에 의한 전작권이란 한미가 함께 싸우는 연합 작전에서 행사되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의 도움 없는 전쟁이나 도움을 받지 못하는 분쟁에 대해서까지 간섭하는 일은 없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한 한국은 어떤 나라와 전쟁을 해도 전작권은 한국이 행사한다.

 

무엇보다 수도방위사령부, 제2작전사령부, 특수전사령부는 전작권과 별개로 한국이 지휘권을 가지는 곳이다. 당연히 이들만으로 북한 전역을 점령하거나 작전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양적으로도 문제지만 수방사 같은 경우 목적성에도 위배된다.

 

이렇듯, 법적인 규약이 바로 첫번째 이유이다.

 

 

두번째 이유는 더욱 더 현실적이다. 현대엔 예방전쟁을 비롯해 공세적인 작계 역시 국방부는 보유하고 있고 현실적인 고려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채택될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에 적극적인 고려가 잘 되지 않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북진통일에 문제가 되는 두번째 이유는 무엇일까? 첫번째 이유의 연장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답은 바로 주변국의 반발이다.

 

북중동맹조약은 북한의 급변 사태에 중국이 개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명분 중 하나이다. 기본적으로 북한이 공격을 받는다면 중국은 자동적으로 참전하게 된다.

 

제2조
체약 쌍방은 체약 쌍방 중 어느 일방에 대한 어떠한 국가로부터의 침략이라도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취할 의무를 지닌다. 체약 일방이 어떠한 한개의 국가 또는 몇개 국가들의 련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

제6조
체약 쌍방은 조선의 통일이 반드시 평화적이며 민주주의적인 기초 우에서 실현되여야 하며 그리고 이와 같은 해결이 곧 조선 인민의 민족적리익과 극동에서의 평화 유지에 부합된다고 인정한다.

 

조약 제2조가 말하는 바와 같이, 북한을 공격하는 것은 중국의 참전 명분을 주는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먼저 말하건데, 바로 그러한 위협을 막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와 외교부는 먼저 중국이 북진통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과 협상을 먼저 전개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이 참전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북한 전역을 점령해야 하는데, 후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여튼, 이러한 이유로 주변국, 그 중에서도 중국의 동의 내지는 묵인 없이 북진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이북지역 뿐 아니라 한반도 전역을 전쟁터로 만드는 위협을 감수해야하며, 미국과 중국의 참전을 강제하는 조건이 될 것이다. 심지어 미국이 동의하지 않았다면 미국은 참전할 이유조차 없다.

 

현실적인 이유로 미국은 참전할 것이지만 그에 대한 대가는 극도로 비쌀 것이다. 북중동맹조약이 실질적으로 북한의 모험주의적 행보를 통제하기 위해 체결된 것을 고려하면 한국 역시 그러한 제약이 아주 강력하게 가해질 것이다. 실질적으로 북한이 멸망하거나 통일된다면 그러한 군사적 모험을 할 대상 역시 없어지겠지만, 보복적 조건들로 한국의 향후 행방을 좌우할 것이다.

 

예컨데, 중국을 달래기 위해 통일 한국의 군사력은 전쟁 전보다 약해질 것마저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북중동맹조약을 떠나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고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며, 이미 세계 10위권의 군사 강국인 대한민국과 전선을 만들게 될 지 모른다는 가능성 역시 강력한 안보 위협이 될 것이다.

 

전후 중국이 한국군의 북상을 극히 경계할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만주에 전개되어 있는 북부전구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길 것이다. 이러한 군사적 갈등을 어떻게 봉합하고 합의할 것인지는 양국 정상들의 협상력에 달렸지만, 결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드는 것이 쉬울 수는 없다. 심지어 미군마저도 이북 영토에 배치 되는 것은 통일 자체를 침략주의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는 중국의 전략 자산이나 다름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휴전협상 문제다.

 

국제련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하는 하기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류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와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하기 조항에 기재된 정전 조건과 규정을 접수하며 또 그 제약과 통제를 받는 데 각자 공동 호상 동의한다.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 쌍방에만 적용한다.

정전협정 서언(한국어)

본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쌍방이 공동으로 접수하는 수정 및 증보 또는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하여 명확히 대체될 때까지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

정전협정 제62조

 

한국은 협정 당사국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있는 국가이고, 이는 심지어 중국 역시도 실상이 그러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정전협정/종전협정은 국제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되는 주제이다. 가령, 한국은 정전협정의 당사국이 아니라던가, 인민지원군 해산으로 협정 당사국 지위가 다소 모호해진 중국이라든가. 마찬가지로 중국이 참여하지 않은 종전협정은 성립될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뒤집어질 수 있다던가 하는 등.

 

여튼, 정전협정 역시 목표하는 바는 평화통일이다. 그리고 이 당사국은 보수적으로 잡는다 해도 중국, 북한, 미국인데, 이러한 이유로 중국이든 미국이든 이러한 협정을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한국 단독의 북진통일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중국은 그러할 것이다.

 

정전협정 이후 한국이 30여개의 섬을 점령했을 때 이 협정을 근거로 다시 북한에 되돌려 줘야 했던 것처럼 불법적 침략을 그만두고 아마 죽거나 사로잡혔거나 무력화 됐을 김씨 일가를 대신하여 중국이 추천한 사람을 이북 지역의 새로운 대표로 삼아야 한다고 할 것이다. 당연히 극도의 친중인사일 것이며, 한국이 점령한 땅을 다시 북한에 돌려 줘야 한다 주장할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한국이 중국의 말을 그대로 따를 이유는 없으나, 중국이 실력을 발휘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북한의 위협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고 그러한 확전 내지는 핵전쟁에 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은 한국에 양보를 강요할 것이다. 최소한 북진통일은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며 이는 또 다른, 더 위험하고 현실적인 위협들로 뒤바뀔 것이다. 제대로된 권위와 통제력을 갖추지 못한만큼 일부 지역을 얻어냈다 해도 한국은 그것에 대한 관리 문제가 발생할 것 역시 우려되는 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북중동맹이라는 조약으로 참전 명분을 가지고 있고, 민주주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싶어하지 않아하며, 미군과 한국군의 북상 배치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에 북한이라는 완충지의 존재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산이며, 이것을 잃는 것은 동아시아 역학에서 중국의 영역을 제거해나가는 일이며 중국은 그에 대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북한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중국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으며, 그것은 한반도 전역을 전쟁터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이북 지역을 점령하거나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북조선 친중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국가는 중국의 입김과 지원 하에 이전보다 더 위험하고 껄끄러운 적이 될 가능성 역시 크다.

 

중국이 장악한 한반도 북부 지역을 얻기 위해 한국 정부는 중국군에게 발포할 수 있겠는가? 한국 지도부가 어지간히 미친 게 아닌 이상, 그리고 중국이 먼저 한국과 한국군을 공격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모든 가능성 중 최악의 결과는 중국은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을 매우 강력하게 경고할 것이라는 점인데,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일 가능성조차 있다.

 

따라서, 중국은 한국의 북진통일은 물론 평화적 통일조차 원하지 않는다. 요는, 중국에게 북한이 필요하다는 점과, 통일 한국의 존재를 원하지 않는다는 필요에 따른 결론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한국의 통일을 바라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이 강해져봤자 일본의 경쟁력에 도움이 될 일이 전혀 없고, 한국을 일본의 하위 구조로 편입시키고 그것을 확정시키고 싶어하는 일본에게 한국이 벌이는 전쟁에 이익을 얻고 싶어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이익을 바라지는 않으며, 도리어 더 큰 피해를 입기를 바랄 것이다.

 

한국이 압도적인 무력과 외교력으로 일을 잘 처리한다면 일본은 어떻게든 승전에서 이익을 얻고자 할 것이지만 그게 아닌 이상 일본은 한국의 전쟁 수행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방해할 개연성이 크다. 한국의 성공적인 승전으로 일본이 얻는 건 그다지 없고 한국이 얻을 것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국의 성장과 성공이 일본에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을 고려하면 일이 잘못될 경우, 일본의 방해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 역시 동아시아에서 전쟁이라는 통제하기 어렵고 관리하기 어려운 리스크를 발생시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만약 무언가 잘못되어 확전이 되거나 중국의 적극적인 참전이 한반도 전체는 물론 일본 열도와 대만 섬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 이상으로 남중국해의 동남아 국가의 안보 위협까지 불러온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하는가?

 

마찬가지로, 그것이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미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할까? 미국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얼마나 비용을 지불해야할 것이며, 그에 대한 대가는 누구에게 받아내야 하는가? 확실한 것은,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미국의 동의와 승인 없는 북진통일에 대한 대가로 한국은 많은 것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참전이라는 어마어마한 리스크와 북한의 핵 사용이라는 국제적, 안보적 리스크를 고려하면 미국은 대통령이 미친놈이거나 그럴만한 상당한 합리적, 현실적 필요성이 있지 않는 한 북진통일은 한국만의 불편한 광기로 치부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미국의 의사를 무시하고 북진을 감행한다면 한국은 얻은 것만큼이나 내야할 것이 많게 될 것은 자명하다. 설령 북진통일이 매우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또 한가지를 고려해보자. 북한의 군사력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거나 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핵무기라는 실존하는 병기는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과 별개로 아주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현재로선 그것을 미사일에 탑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북한이 미국을 지나치게 자극하기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억제하는 기술적 제약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로서 미사일에 탑재하지 못한다는 점은 핵무기의 실사용에 크나큰 제약이 된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핵지뢰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국 정부의 실질 점유 지역에서 폭발하지 않는다는 점은 위안이 될 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충분한 정보력으로 모든 핵무기의 향방과 포격, 항공폭격, 미사일 타격, 특수부대 전개 등을 비롯한 방식으로 완전히 통제하거나 선제타격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결과 대한민국 국군 중 적지 않은 숫자, 최소 수천에서 수만 명이 핵지뢰의 폭발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작전 수행은 물론 전쟁 자체에 대한 비판과 전쟁 이후의 책임 문제는 극도로 위험할 것이며, 그러한 모든 문제를 떠나 수천~수만명의 청년이 사망한다면 대한민국의 국력 역시 거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 그러한 군사적 모험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 될 것이다. 어떤 대한민국 정부가 그러한 리스크를 감당할 것인가?

 

 

4.

그렇다면 왜 북진통일을 해야 하는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왜 추구한단 말인가?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과자가 될 것이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다.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고 사람 목숨마저도 달렸다. 모든 군사적 충돌이 목숨을 전제로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북진통일은 얻는 것에 비해 너무 위험할 수 있는 과제이다.

 

그러나 모든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들은 현실적인 가능성을 맞춰나가는 과정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일단 법적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분명 대한민국의 헌법은 평화통일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일단 이것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가능하다. 바로 예방전쟁 개념이다. 예방전쟁은 선제타격과 다르게, 발생 가능한 위험이 임박해있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고, 대응을 지체할 경우 지나치게 심대한 위협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한 공격이다.

 

가령, 북한이 핵무기를 미사일에 탑재하게 될 경우나 쿠데타 및 지도자급의 급사에서 비롯된 지도력의 상실과 그에 따른 혼란 등의 급변 사태로 한반도 전체에 심대한 위기를 초래할 경우, 반복적인 핵실험으로 안보적 위협을 지속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

 

이는 북한이 어떠한 의지와 의도를 가지고 있든 한국에겐 모두 실존하는 위험이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지로 기능함이 옳다. 따라서 한국은 평화를 위해 예방전쟁을 선택지로 둘 수 있고, 둬야만 한다.

 

물론 이는 한국의 내적인 논리가 될 것이고, 중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들은 한국의 침략 행위라고 규정하고 대응할 것이다. 중국은 어떠한 경우에서든 한국의 통일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만약 한국이 북진통일을 시도할 것이라면 가장 먼저 중국과 미국에 협상을 시도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수차례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부정했듯이, 그 의도는 명확하다. 군사적인 영역에서만큼은 핵무기 없이, 재래식 전력만으로 북한을 다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북진통일을 허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트럼프 정부 당시 북폭이 실제 의제로 떠올랐던 것처럼 미국의 특정 정권은 북진통일 내지는 북폭에 긍정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어떠한 방식과 논의 과정이든, 어떠한 결과를 도출해내든 미국은 이미 한 차례 가능성을 보였다. 그것이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과거 북한이 소련에 50여 차례나 전쟁을 요구했던 것처럼 한국 역시 비공식적으로, 비밀리에 북진통일을 주장해야 하고 그것에 대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 관리될 수 있는 리스크를 주장해야 할 것이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미국의 안전과 중국의 향방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중국을 설득해낸다면 미국에게 꽤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찌해야 하는가. 중국에게 북한이라는 완충지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자산이고 한국의 성장은 달갑지 않은 안보적 위협이기도 하다. 전쟁 승전국이 된 한국을 얌전히 두고 보는 것도 불쾌하고 불만이 있다. 심지어 중국 지도부와 별개로 중국인들의 불만 역시 컨트롤하거나 하는 것에 조력해줘야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는 점에서 한국이 중국에 지불해야할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국이 중국에 제안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토? 그것은 불가능하다. 일부 지역을 조차하는 것조차 정서상 가능한 선택지라 보긴 어렵다. 다만 한시적으로 중국군을 미군과 함께 점령지의 치안 유지에 투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들이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어떤 정보원을 얼마나 많이 심고 정보 조직을 얼마나 구성할 지와 같은 위험은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경제적 이권? 재건하는 이북 지역의 건물이나 인프라 건설에 중국 업체를 대거 선발하거나 일부 비중을 넘겨야 할 수 있다. 심지어 황해에서 어업권을 보장 받거나 일정 거리까지 양국이 공유하는 수역으로 공동 관리하는 것조차 협상 테이블에 낼 수 있는 아이템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승전을 했음에도 한국의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부 불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까진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고작 그런 경제적 이권 때문에 중국이 북진통일을 묵인하거나 동의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중국의 경제 문제가 지나치게 심각해서 그 정도 이익마저도 필요로 하는 급박한 상황이어야 할 것이다. 한국이 IMF 당시 극약처방마저도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이다.

 

모든 조건은 한 두가지로 결정되는 게 아닌만큼 경제적 이권을 챙겨주는 것은 당연히 한국이 내밀 수 있는 조건일 것이다. 그럼 또 다른 조건들은 무엇이 되어야 적절할까.

 

아마 그것은 한국의 군사적 확장을 중단하고 일정 정도 군축을 감행하는 것과, 주한미군의 축소 내지는 철수까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명분 역시 단순하고 효과적이다. 북한이 사라졌으니 명시적이고 명백한 군사 위협이 제거되었고, 따라서 군축은 물론 주한미군 철수나 축소 역시 가능한 주장이다. 한국인들은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북진통일은 그만큼 내줘야 할 게 많은 과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욕심만 부릴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가장 껄끄럽게 여기는 것은 어찌됐든 한국이 친미국가라는 점이고 중국의 이익과 전략에 부합할만한 국가이냐에 관해 의문점이 남는 지점이 많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이 중국에 이런저런 이권을 내주고 여러 약속들을 이행한다 쳐도 그것은 결국 한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이 다시 전후의 비용들을 재건하고 나면 주한미군은 언제든 다시 돌아오거나 돌아오려고 할 것이다. 중국은 당연히 그것을 원하지 않고 아주 장기적이거나, 불가역적인 관계를 바랄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군의 영구 주둔 금지 같은 것이라든가, 중국제 무기를 일정 비율, 일정 기간 동안 사야 한다거나, 양국간의 합동 훈련이나 반도체 등 전략 자산 거래 관련 조약이나 합의가 있을 수도 있다. 청진이나 라선시의 항구 이용권조차 조건으로 나올 수 있다.

 

이 정도로도 부족할 수 있다. 중국의 욕심은 상식적이지 않고 그 정도로 과할 정도의 조건을 내지 않는 한 중국은 북진통일을 허가하거나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반응은 어느 정도 무시해도 좋다. 일본은 한반도 문제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이고, 전쟁 가능한 군대를 만들지 못한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북진통일/2차 한국전쟁 때 한반도에 물자를 팔아먹는 것 이상으로 병력을 상륙시키길 바라겠지만 전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5.

북한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무엇보다 출혈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유일하게 그걸 감당할 수 있고 해야할 필요가 있는 나라는 중국이지만 그마저도 한국이 충분한 조건을 제안하고 낮은 가능성이지만 중국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묵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게 남은 수는 핵 뿐인데, 그것조차 미사일에 탑재하지 못한다면 전략적 가능성은 크게 제약된다. 설령 시설이나 무기 담당자의 배신이나 항복, 한국과 미국의 전략적 공격으로 핵무기를 사전에 제압해버린다면(그리고 그것은 실제 전쟁 선포나 북진보다 선행될 것이며 그래야 한다.) 김씨 일가에 남은 것은 비밀통로로 탈출하거나 비밀 지하 벙커에 숨는 것 뿐이다. 둘 다 큰 의미는 없다.

 

당연히 이러한 가능성의 열거는 희망적인 전개일 뿐이지 실제 발생할 현실은 더더욱 어렵고 위험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어떤 약속을 하고 어떤 제안을 하든 북진통일에 찬성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렇다고 중국을 무시하고 한국 단독으로 북진을 감행할 경우 피를 포함하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할 것이고 북진은커녕 잃는 것만 남을 가능성은 너무 높다.

 

미국부터가 그것을 바라지 않을 것이기에 실현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해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어떠한 한국의 정치 세력도, 정권도 단순 선동용으로 북폭, 북진통일을 꺼낼 뿐이지 그것을 실현시킬 의지를 가진 집단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국힘당 같은 보수당도 대북정책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가 골자인 것을 보라.

 

대북 강경발언을 아무리 쏟아내도 실질적으로 북한에 무언가를 행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별 의미도 없는 경제제재를 하거나 그마저도 미국과 함께 하는 정도이다. 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은 국내의 정치세력과 반대진영이지 북한이나 중국이 아니다.

 

 

6.

이러한 이유로 북진통일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는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편이다. 단지 현실적인 제약들을 어느 정도 해결했다는 전제 아래이긴 하지만, 만약 그런 난점들을 해결했다면 어느 정도의 피가 흐르더라도 난 북진통일에 찬성하고 지지를 보낸다.

 

평화통일이 불가능하다면, 적극적인 북진통일 내지는 북한에 대한 무력 공격 역시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선택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필요하기까지 한 일이다.

 

나는 평화를 사랑하지만 평화만이 유일한 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최선의 전쟁보다 최악의 평화가 낫다고 말하지만 내 의견은 다르다. 최선의 전쟁이 최악의 평화보다 나을 수 있고 최선의 전쟁이란 새로 발생하는 문제보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더 많으며, 무엇보다 빨리 끝나는 전쟁이다. 윌리엄 테쿰셰 셔먼 장군은 전쟁의 잔혹성을 부정하지 않을 뿐더러 심지어 필요하다고 여겼다. 나 또한 동의한다. 전쟁을 빨리 끝낼 수만 있다면 많은 피가 흐르는 것에 찬성한다. 때때로 더 많은 피가 필요할 때조차 있는 법이다.

 

전쟁은 합리적으로 발생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전쟁 역시 합리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입으로만 북한을 욕하고 막상 싸우길 두려워하는 이들은 그들이 북한을 혐오하는 만큼 전쟁에 관해서도 찬성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하겠다면 아가리를 닫아야 할 것이다. 전쟁은 광기로 치닫는 결과가 아니라 합리성 아래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짖어대며 위협하는 건 개들이나 하는 짓이고, 성벽 뒤에서만 용감한 자들이 너무 많다. 전쟁은 비극이겠지만 한편으론 그 결과마저도 비극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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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각자도생 사회 분위기가 강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은 진보 정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회 분위기를 크게 변화 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관성은 결코 줄어들지도 않고, 경제가 크게 더 나아진 것도 아니며, 사회적으로 보수 분위기는 진보 정권 아래에서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며, 디씨-일베 문화 역시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윤석열 정부. 이전 정권에 억눌린 게 많았는지 강력한 반동적 현상이 이루어지며 너무나도 빠르게 사회의 역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놓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스탠스와 입장, 철학을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만큼 사회 안전망 역시 해체되고 있습니다. 청년, 소상공인, 중소기업 지원과 복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각자도생이라는 게 뭘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흔히 생각하는 건, 그냥 '알아서 잘 하는 것.',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 따위를 생각할 겁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원래 사회는 그랬어요. 남을 도와주지도 않고 남의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는 건 원래 그랬어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특히 넉넉하고 인심 후하던 시기엔 조금이라도 남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각자도생이 함의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닙니다.

각자도생이 함의하는 바는, 부정하고 부패한 사회에서 가진 바 재산과 신분에 따라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처우가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누군가 피해를 보더라도 공정한 판단과 집행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사회적 신뢰와 공적 신뢰 역시 바닥에 추락하고 당연히 믿어야 할 것들을 믿지 못하는 사회를 말하는 거죠.

좀 더 구체적이고 쉽게 말하자면, 내가 범죄 피해를 보더라도 상대가 돈 많은 좋은 집안 자식이라면 제대로된 수사와 기소도 이루어지지 않고 법정까지 가도 공정한 재판과 판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럴 것도 없이, 단순히 길가다 사고가 나거나 미친놈에 의해 피해를 입더라도 경찰은 귀찮다는 이유로 CCTV 하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현장 탐문 따위도 하지 않으며 그거 못 잡는다 증거가 없다느니 법정까지 가봐야 오히려 손해라는 둥 수사조차 시작할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나 그 가족 스스로가 직접 증거를 찾고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직접 관계 법령 및 판례를 찾아가며 공부하여 법정까지 끌고가든 말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각자도생 사회죠.

 

정부, 제도의 작동을 기대하지 못해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사회. 직접 범인을 잡아와야 하고 직접 증거를 채집해야 하며, 직접 필요한 서류를 찾아서 발급 받고, 제출하며, 때에 따라서 변호까지 해야 하는.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를 건 없는 사회.

 



그럼 왜 이런 각자도생 사회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쉽게 말해 사회적 신뢰, 그 중에서도 공적 신뢰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표창장 위조했다며 자살하라는 듯 수백 곳을 압수수색하고 몇년 째 재판을 끌고가며 어떻게든 깜빵 속에 쳐넣어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는데 누구는 똑같거나 더 심한 범죄임에도 언론은 잠깐 반짝하고 열심히 입을 다물고 있으며, 경찰과 검찰은 사건 그 자체는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범죄에 관해서도 너무나도 관대한 처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 어미아비는 여전히 국회의원, 당직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고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부정부패한 이들이야말로 제대로된 처벌은커녕 수사도 잘 되지 않는데 믿을 수 있겠느냐는 공통된 인식, 그리고 실제로 발생하는 경찰과 검찰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수사의 실제 사례들. 누구는 롤스로이스로 사람을 박아놓고 멀쩡히 돌아다니다 여론 의식해서 며칠이나 더 주면서 뒤늦게 체포하네 어쩌네 하는 사례까지.

 내가 피해를 봤을 때 공권력과 수사기관을 믿을 수 있을까? 경찰에 신고한다고 죄인이 벌을 받을 수 있을까? 이걸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 사회적 신뢰 중 공적 신뢰는 박살나고 그때부터 각자도생 사회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정부가 복지를 줄여서 내 힘든 삶을 알아서 관리해야 하고, 정부가 투자를 줄여서 내 직장과 경제적 상황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며, 정부가 경찰 인력을 줄여서 우리 동네 치안은 스스로 조심해야 하고, 정부가 의료보험을 개편해 미리미리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고, 약도 받아놓아야 하며, 정부가 서민 증세를 한다고 자기 재정 상황을 미리 계획해야 하기도, 정부가 실업급여 줄이기 때문에 실업 이후 여유가 줄어들 것까지 고려 해야 하는 사람들까지.

 

다종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보호해줬던 사회적 안정망이 해체되고 지금껏 신뢰해왔던 시스템과 제도적 장치들이 사라지며, 그 시스템을 다뤄왔던 이들의 평향적이고 불공정한 차별, 공공연하게 보도되는 실제 사례들까지.

 

각자도생 사회는 그 사회가 얼마나 해체되어 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정부가, 국가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생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말이 나오는 거죠.

 

즉, 우리 사회가 견고하지 못하여 무너질 때나 나오는 말입니다. 그 극단은 정부가 사라지거나, 권위가 무너진 사실상의 무정부상황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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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16 - [취미/이야기] -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할과 전근대적 계급 관념.

2022.06.04 - [취미/이야기] - 엘리트 카르텔의 선출직 권력에 대한 무력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0.

대한민국 헌법 1조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권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한 국가 정체성의 규정이다. 이 조항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이며, 주권이 어디에 있고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1.

민주주의라는 '사상'에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한다. 이는 민주라는 체제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원리를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며, 그러한 이론상으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 또한 이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대전제이며 이 대전제 위에서 모든 원리와 이론들이 존립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국민들이 평등하기 때문에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계급이란 어떠한 계층이나 직위가 아닌 왕정, 귀족정 체제와 같은 명시적인 계급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동일한 국민, 혹은 시민이라는 단일한 계급 하나만을 가지고 있고 필요에 의한 직위가 아닌 명시적 계급에 의해 권리나 권한이 제한되지 아니하며 그 권리는 동일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선거를 예시로 들었을 때, 누구는 2표, 누구는 0.5표로 제한되거나 특혜를 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2.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체제'에서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간주'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 했던 바와 상당히 다른 이야기이다. 간주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차이를 무시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실제로 계급이 발생함을 추정한다.

 

민주주의는 분명 시민이 평등하건만, 어째서 실제로 계급이 발생할까?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민주주의 국가, 민주공화국은 민주주의 하나로만 작동하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채택하는 체제는 다양하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정치적 체제로서 틀을 구성하며, 그 틀의 원리 아래에서 여러 체제를 포함한다.

 

예컨데, 대부분의 국가는 자본주의를 채택했다. 자본주의는 경제체제이며 자본의 축적과 투자, 성장을 목적으로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본이며, 자본의 양으로 실질적 권한과 권리가 발생한다. 1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10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진 바 할 수 있는 선택지의 규모와 개수가 다르다. 마찬가지로 1억을 가진 사람과 100조를 가진 사람의 자본 권력은 숫자보다 더 거대한 차이를 발생시킬 것이다.

 

3.

대한민국에서 모든 국민들은 평등하다고 간주된다. 이는 실제로 투표권을 비롯한 정치적 권리 등 국민으로서 보장되는 여러 권리들일 뿐이지 실제로는 평등하지 않은 삶을 산다. 이는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를 채택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가령 돈이 많은 사람은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최고의 의료진들에게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은 약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대기업 사장의 발언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영역에서조차 평범한 노동자의 것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법 위반에 대해서도 돈이 많은 사람은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국선 변호인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심과노력을 기울이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검사는 검사를 기소하지 않고 의사의 범죄는 제대로 조사되지도, 정당하게 처벌받지도 않고 설령 어떠한 경우라도 의사 자격증은 견고하게 보장된다. 언론사와 일개 기자조차 여론을 다룬다는 이유로 선출직 권력과 대기업 권력조차 그들을 존중하게 만든다.

 

분명 국민은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이는 첫째로 자본주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자본의 양에 따라 실질적인 계급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본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며 보게 되는 대부분의 불평등은 대개 자본주의에 근간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즉,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평등하지만, 자본주의에서 소비자, 혹은 자본가로 구분되는 자본 소유자는 자본의 규모에 따라 실질적 계급이 나뉘게 된다.

 

또한 둘째로 가진 바 권한과 지식에 의해 계급이 발생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권과 수사권은 법을 매개로 하는 최고의 실권자이며 의사의 전문 지식은 대체될 수 없고 고소득이라는 이유로 대단한 특권을 용납받았다. 언론은 실제 여론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지녔기에 어떤 직종의 누구도 그들과 싸울 수 없게 만든다. 언론사와 싸운다는 건 국가 전체와 싸운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4.

자본주의에 대해서만 먼저 이야기해보자. 자본에 의해 계급은 형성되지만, 그 계급은 명시적으로 구간이 정확하게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999만원을 가진 사람과 1000만원을 가진 사람의 자본 권력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날 리는 없다. 그러나 1000만원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것과 1억원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숫자보다 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1억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에게 1만원을 주고 한 공간에 모이라고 했을 때 1만명을 모을 수 있지만 100조원을 가진 사람이 1만원을 주고 사람을 모은다면 지구 전체 인구보다 많은 1000억명을 모을 수 있다.

 

수치상 1만원에 정확히 한명을 모았을 뿐이기에 정확하게 계산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직선 그래프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자본의 규모에 따라 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지고 그걸 유지할 여력을 따진다면 자본 권력은 그 양에 따라 지수 그래프를 그릴 것이다.

 

통장에 1억이 없는 일개 노동자와 시총 수백조를 움직이는 재벌 대기업 총수는 법에 명시된 정치적 권리는 동등하나 자본으로 규정되는 자본 권력은 정치적 권력의 격차보다 극단적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대체로 민주주의, 그 중에서도 법치주의에 귀속되어 통제를 받고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는가? 보수적으로 대답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좀 더 비관적으로 바라보자면 그렇지만은 않다. 한국도 그러하지만 특히 심각하게 작동하는 미국은 초거대 자본에 의한 실질적 금권정과 유사한 과두정으로 작동하고 있다. 거대 여론은 자본 권력에 의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며 초호화 변호인단의 소송 전략은 누가 봐도 유죄인 사건을 무죄로 바꿔버리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부자병은 미국 법정 현실의 한 일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가 있는 모든 국가, 체제에 동일하게 존재한다. 민주주의가 아닌 명시적 계급을 설정하지 않은 독재에서도 자본에 의해 권력과 계급이 형성되고, 사우디 같은 왕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리어 이러한 비민주정의 경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적극적인 야합, 혹은 동일성이 관찰되기도 한다. 자본에 의한 정치 개입 역시 활발하게 시도되는 현상이다.

 

5.

그러한 이유로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는 민주적 권력과 제도를 추월해서는 안 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본에 의한 정치적 개입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물론 그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실현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평등하지만 실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렇게 간주될 뿐인 것처럼.

 

그럼에도 최대한 국민의 평등을 추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의 고민인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느냐 역시 정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고민이 된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억압해야 한다거나, 기업 활동을 억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 명제에서 자본의 분배라는 주제 역시 다른 맥락으로 작동한다. 분배를 우선하는 경제관념을 지닌 이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의 항구적 발전과 시민의 경제적 민주화, 서민경제 활성화와 같은 맥락이지만 이 경우 부의 분배는 자본주의의 민주주의 침해/역전 현상을 막기 위해서 나올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불필요하다면 부의 분배는 채택되지 않을 수단이다.

 

6.

권한과 지식에 의해 발생하는 계급은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검사는 검사를 기소하지 않는다. 정치적이거나 조직에 대한 반역의 경우가 아니라면, 혹은 너무나도 심각해서 감히 덮을 수가 없거나, 혹은 그 정도로는 큰 타격이 없을 때나 기소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온당하지 않고 그들의 이권과 특권에는 별 타격이 없다.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그들의 권한과 지식을 기반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개개인의 권력은 아주 대단한 게 못 될지라도 그들이 모였을 때 선출직 권력조차도 흔들 수 있다.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환자를 희롱해도 문제가 되지 않고 의료사고로 사람을 죽여도 문제되지 않는다. 심지어 공무직에 속하는 군인들조차 고급 장교들은 비리를 저질러 국가 안보를 문란케 해도 생계형 범죄라는 포장을 받는다. 설령 전역한다 해도 연금은 연금대로 받고 가진 인맥을 통해 이런저런 사업을 하거나 참여할 수 있다.

 

7.

이러한 직종은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 형성되고 만들어지고 길러내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의사를 교육시켜 의료 현장에 투입시킨다. 법과 제도에 의해 사람을 수사하고 유죄를 증명하기 위해 법치주의를 채택한 나라에선 검사와 판사, 변호사와 같은 인력을 만든다. 전문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해 대학을 만들고 대학생을 가르치며 대학원생을 길러 연구 역량을 늘리고 전문 연구 인력을 기른다.

 

민간에서 다룰 수 없거나 다뤄선 안 되는 영역은 국가가 담당할 영역이고, 그것을 다룰 실제 인력으로 공무원을 쓴다. 공무원은 각기 다양한 영역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하고 그 중 어떤 영역에서는 전문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들이 가진 바 권한과 지식을 이용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보단 자신들의 이익과 특혜에 몰두한다는 점이다. 검사는 범죄자를 만들 수도 있고 수사할 수 있다. 설령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기소하여 조사를 하며 질 것이 뻔한 재판으로 끌고 가는 것만으로도 기소된 사람의 삶은 피폐해진다. 많은 시간과 돈을 잡아먹고 개인의 정신과 평판을 소모할 수밖에 없다.

 

의사는 사람을 살리는 전문 지식을 가졌기에 쉽게 대체될 수 없다. 그들 자신이 환자들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어 파업을 하거나 위협하는 것만으로 정치권을 흔들 수 있다. 사람들은 욕하겠지만 그런만큼 절박한 사람들은 많다. 전문 의료인은 대체될 수 없기에 그들이 결코 포기할 리 없는 특권과 생업을 걸고 협박하면 당장의 정치적 부담은 크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특권을 지켜왔다.

 

LH 공사와 같은 부동산 관련 공공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부동산 관련 특급 정보들을 손에 쥐고 있고, 사업을 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어떻게 투자를 하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는지 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실제 막대한 돈을 벌었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민주주의적인가? 실제로 발생한 건 그들의 권한과 지식을 이용한 하나의 계급이다. 그러한 특권 계급으로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와 이익을 얻어왔고 우리는 그것을 부정부패와 특권, 특혜라 불러왔다. 사회가 부여한 적 없는 것이다.

 

8.

물론 민주주의에서도 계급, 혹은 신분은 발생할 수 있고 발생한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이상한 일이 전혀 아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계급과 신분이 발생한 이후 그것이 고착화되고 특권과 특혜를 독점하는 카르텔이 형성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법 전문가로 이루어진 법조인 계급은 만들어질 수 있고, 재벌 대기업이라는 자본 계급이 만들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계급이 실질적 비민주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논리나 사회적 권한으로 발생하는 제도적 권력의 격차와 무관하다. 그것이 정치적 불평등으로도 이어진다는 게 문제다. 단순히 대학 교수, 군 장성, 경력 있는 관료, 대기업 사장 및 회장 같은 이들이 정치적 결정에 조언과 자문을 하는 것이나 협의 하는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대학 교수가 정부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나팔수 역할을 하거나, 군 장성이 군 내에서 발생한 사건을 덮거나 조사를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그러한 행위를 묵인하는 경우, 경력 있는 관료가 유관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하여 기밀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고 현직 관료와 연결되어 불법적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우, 정치인이나 검사, 변호사에게 막대한 금품이나 정보를 미리 제공하는 식으로 정치적, 법적 이익을 얻거나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경우, 경제인과 정치인 및 정권이 야합하여 불필요한 사업을 벌이며 그 과정에서 돈과 자리를 공유하는 경우 등.

 

불법적 특혜를 창출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계급 그 자체보다는 그 계급을 통해 특권화 하는 과정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 사회는 그들의 그러한 부정을 허락한 적이 없고, 그런 것을 하라고 권력을 위임한 것도 아니며, 그러한 행위를 하라고 법과 제도를 다루는 자리를 만든 것도 아닌데다, 그러라고 자본의 축적을 제한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즉, 권한을 지닌 자들은 그러한 권한을 부정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하고, 부패한 자들은 권한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적절한 처벌을 하라고 한 것이며, 그것이 너무 큰 잘못이나 유사한 잘못이 반복될 경우 그 자리에 있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발생한 계급은 특권을 형성하고 엘리트 카르텔화 시킨다.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매개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9.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물론 나는 구체적인 제도와 법령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역할과 전근대적 계급 관념이라는 이전에 작성한 글에서처럼,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는 계급, 직종, 직위는 하나의 사회적 역할로서 기능해야 한다. 대부분의 계급은 거의 죽을 때까지 상실되지 않고 어떤 것은 세습되기도 하지만 귀족은 죽을 때까지 귀족이지만 판검사, 의사, 관료, 장성은, 그리고 그 중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들이 원로의 위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종사한 직종과 위치에서 은퇴하게 된다.

 

즉, 그들은 결국 자기가 발휘하던 권한과 권력의 영향력을 대부분 상실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들의 역할이 끝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다. 거시적 사회구조 속에서 그러한 엘리트 개인들은 일정한 시간 동안 사회적 역할을 수행한 뒤 은퇴하여 자신의 노후를 보내게 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인식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노력해서, 혹은 물려 받은, 때로는 선출되거나 임명되어 얻어진 이 권한과 권력,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이 자신의 숙명적인 권리나 특권이 아니라 한시적으로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로 받아들어야 한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해서 남들과 다른 우월한 위지와 지위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감각 속에 빠지는 게 아닌 특수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뿐이라고 말이다.

 

10.

그렇다면 그러한 인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스로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 계급에 속한다는 전근대적 계급의식의 연장선을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답은 결국 시간일 것이다. 근대 유럽이라도 현 한국과 같은 인식이 없었을까? 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된 미국 역시 대통령 워싱턴을 왕과 다르지 않게 인식했다. 그것은 인민의 대표라는 대통령과 국가의 유일한 주권자인 왕의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대통령이라는 높은 사람은 왕과 특별히 구분지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왕과 귀족 전통이 훨씬 오래 이어졌던 유럽은 어떻겠는가. 그들에게 법관과 장관은 귀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떤 귀족이 법관의 복을 입었고 어떤 귀족이 장관의 직위에 섰던 것 뿐이다. 민주주의, 공화주의 등 현대 민주공화국을 이루는 원리들이 도입되었을 때 당대인들의 인식에서 선출직과 귀족의 차이는 쉽게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대통령을 왕을 일컫는 나랏님이라 불렀고 비교적 최근 2010년대에서조차 박근혜를 주군이라 부르며 무릎 꿇고 눈물을 흘려대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지만, 한국엔 여전히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 전근대적 계급 의식과 원리를 긍정하고 있고 그것을 세계관 및 가치관으로 받아들인 사람들.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보다 우월하고, 그러한 우월함이 입장과 자격, 행위에 대한 대가 역시 차이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유럽이 현대에 와서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걸렸을까? 200년? 300년? 못해도 한 세기는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도 그러하다. 임시정부를 제외하더라도, 실제 대한민국 정식 정부가 출범한 48년을 기점으로 잡았을 때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직 80년이 채 못 되었다. 심지어 그 절반에 가까운 기간은 독재와 그 관성적 정권들로 얼룩졌고, 대한민국 국민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학습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35년, 더 짧게 잡는다면 약 20여년이 조금 넘을 뿐 아닌가. 한국인에게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려면 아직도 반세기는 더 남지 않았을까. 무엇이 민주주의인지 스스로 경험하고 오차를 줄여갈 수 있다면 한국은 결국 뿌리 깊은 민주주의 국가가 될 것이다.

 

11.

그러나, 앞서 이야기 했듯이, 한국에는 여전히 누군가가 누군가보다 더 우월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적극적으로 차별을 긍정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왕정이 끝장난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전근대에서 탈피하지 못한 이들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지도 못한 자들이다.

 

그들은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 믿고 그렇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결국 가장 크게 평가 받아야 하는 것은 행동이다. 그들이 다른 세대, 다른 지역, 다른 성별, 다른 진영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그것을 하나의 원리이자 동력으로 삼는다면 이 나라는 결코 민주주의 국가일 수 없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모든 국민을 평등한 존재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국민 스스로가 그러지 않는다면 어떻겠는가.

 

12.

사람은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더 견고한 제도를 만들어왔다. 법률, 정부, 제도, 심지어 관습과 도덕, 윤리의 영역까지. 사람에 의한 잘못을 사전에 방지하고 적절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평균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실수나 실패를 교정할 수 있게 틀을 잡아주기 위해서 말이다.

 

즉,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으며,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어떤 것을 어떻게 해야 하며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을 미리 정하며 그 내에서 자율적인 업무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에게 부여되는 사회적 역할이다.

 

문제는 결국 모든 제도를 다루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법률을 다루고, 정부를 구성하며,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완벽할 리는 만무하므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악한 의도와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권한을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

 

검사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증거를 수집하지 않은 채 재판에 나간다면 그 피고인은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아주 사소한 것까지 수사하거나 특정 법률을 무리하게 해석하여 기소한다면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를 이루는 요소 중 국민을 제외한 모든 것은 다 수단이다. 그리고 그 수단은 다루는 사람에 따라 목적성이 달라지는 바, 비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계급 의식과 차별의식을 기반으로 수단을 다룬다면 그 나라가 민주주의적일 수 있겠는가? 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민주주의의 국민들이 해야할 일이 바로 그러한 민주적 위험 요소가 공적인 권한과 권력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을 선출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선출한 민주적 선출직으로 하여금 비민주적/반민주적 가치관을 가진 인사를 임명하지 않도록 요구해야 한다. 만약 그 요구에 불응한다면 그 자에게 선출 권력을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그것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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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3 - [취미/이야기] - 무능한 윤석열 정권의 잼버리 축제 맥락 팩트체크 및 비판.

 

무능한 윤석열 정권의 잼버리 축제 맥락 팩트체크 및 비판.

https://www.fmkorea.com/best/6031612973 실시간으로 나라망신 중이라는 한국의 잼버리 축제 잼버리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스카우트 합동 행사로150개 국가에서 4만 3천명이 참가함올해는 한국에서 열리는

konn.tistory.com

 

 

유치과정
https://www.jeonbuk.go.kr/index.jeonbuk?menuCd=DOM_000000106008002000

박근혜 정부
2015.8 .2023년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유치 선언
2015. 9. 전라북도 새만금, 국내 후보도시 확정(vs. 강원도 고성)
2016. 2.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유치 홍보활동
2016. 8. 새만금현지실사 (세계연맹)

문재인 정부
2017. 6. 대통령 지지 영상
2017. 8. 전라북도 새만금 최종 개최지 선정

윤석열 정부
2022년 5월 이후 지금까지 아무 것도 안 함.

 

 

윤석열 정부는 22년 5월 10일 집권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23년 8월이죠.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동안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민주당은 잼버리 행사에 대해 미리 경고까지 해놓았습니다.

 

 

[영상] 1년 전 "잼버리 대책 다 세워놨다"던 김현숙 여가부 장관…정확히 예측한 경고에도 '자신만만' 답변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295545

이원택 민주당 의원 : 장관님 현장 갔다 오셨습니까?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 아직 못 가봤는데 제가 바로 생각입니다.
이원택 의원 : 빨리 현장에 한번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배수 시설이라든가, 상하수도, 또는 뭐, 대집회장이라든가, 또 샤워장, 화장실, 기타 급수대, 이런 시설들이 전체적으로 늦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잘못하면 준비 상태가 상당히 문제가 될 수 있어요.
김현숙 여가부 장관 : 지금 늦어진 것은 예를 들어서, 농식품부나 해수부, 새만금청하고 여러가지 사용허가 변경 절차인데 그것은 거의 다 완료가 됐습니다.

이원택 의원 : 지금 10달 앞뒀습니다. 이 잼버리가 제대로 될까요?
김현숙 여가부 장관 : 아 물론입니다.
이원택 의원 : 두고 보세요. 이 책임은 장관님께 나중에 역사가 물을 겁니다.
김현숙 장관 : 저는 차질 없이 준비하도록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원택 의원 : 폭염이나 폭우 대책, 비산먼지 대책, 그다음에 해충 방역과 감염 대책, 관광객 편의 시설 대책 또 영내외 프로그램, 이것 점검하셔야 합니다. (후략)
김현숙 장관 : 말씀하신 것들은 지금 저희가 태풍, 폭염에 대한 대책도 다 세워 놓아서 위원님께 보고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원택 민주당 의원은 현재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모든 부분에 대해 미리 비판과 지적을 아끼지 않았고, 이는 실제로 1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문재인은 그 많았던 논란을 가지고 망할 거라 입을 모아 말하던 평창 올림픽을 6개월만에 성공적으로 이끌었는데 윤석열은 1년 동안 뭘 했느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19년도에 행사 소관은 여성가족부로 이관이 되었고요. 1년전 김현숙 장관은 이원택 민주당 의원에 의해 비판 받았던 점을 자신만만하게 다 대책이 있고 여러 절차들이 완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걸 가지고 전북도가 어쩌고 저쩌고 비판을 받을 때 여가부가 했던 말은 뭐냐는 책임소재가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무엇보다 김현숙 장관은 이전 정부 인사가 그대로 기용된 게 아니라 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윤석열 정부의 장관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정부 부처와 장관의 리스크는 곧 대통령의 리스크가 되기도 하죠. 임명을 누가 했습니까. 대통령이죠. 과거 유시민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할 때, 그리고 내려올 때도 노무현 대통령은 그 리스크와 책임을 일부 짊어 져야 했습니다.

 

"문정부 부실준비" "윤정부 안일함"…여야 잼버리 위기 책임공방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973261

이어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5년간 행사 준비의 틀을 깨지 않은 채, 집행위원장인 김관영 전북지사를 중심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정부는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했다"며 "2020년 7월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윤덕 민주당 의원은 지금도 책임을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 잼버리 운영 미숙 논란에 “문재인 정부에서 5년간 준비”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40605?sid=100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의 운영 미숙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대통령실은 4일 “준비 기간은 문재인 정부 때였다. 전 정부에서 5년 동안 준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또 남탓과 무책임으로 일관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난 1년, 사실 따지고 보면 보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모든 논란과 문제에 대해 우리 탓이 아니라며 남탓(주로 전 정권 탓, 노조탓, 민주당탓 등등)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번 역시도 다를 게 없죠.

 

정부는 김윤덕 의원을 지적하고 있지만, 정부 측 위원장으로 책임을 맡은 건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장관이 있는 주 소관 기관인 여성가족부,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장관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장관이 있는 행정안전부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교체되지 않고 쭉 조직위원장을 맡은 유일한 인사가 김윤덕 의원이라는 점과 결국 잼버리 행사가 이토록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점에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래와 같은 이유로 다 된다던 여가부 장관과 차후 대책 역시도 무능하기 짝이 없는 윤석열 정부에 비하면 어느 정도 경감할 수 있는 구석은 있습니다.

 

 

두달앞인데 기반시설 '공사중'…새만금 프레잼버리 '안갯속'
https://www.fnnews.com/news/202206091815466373

하지만 세계잼버리 본 대회 2023년 개최를 두고 연기와 개최 의견이 갈리며 갈팡질팡 하는 사이 상·하수도와 주차장 같은 기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며 프레잼버리까지 영향을 받는 상태다.

최근 김윤덕 새만금 세계잼버리조직위원장은 프레잼버리 대회 개최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공조 체계 강화 성과
https://www.jjan.kr/article/20221226580425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윤덕 의원은 전주 완산구 주민들의 생활편익과 복지증진을 위한 예산 확보에 힘썼다. 김 의원은 특히 문체위 야당 간사를 맡은 만큼 전북지역 문화·체육·관광 예산은 전부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직접 국가 예산을 확보한 사업으로는 △국립 어린이 무형유산 전당 건립 △전주 육상경기장 건립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 △음식관광창조타운 조성 △K-Film 제작기반 및 영상산업 허브구축 △객사천 위험지구 정비 △아중호수길 급경사지 정비 △전동성당 사적화 공원사업 등이다. 또 잼버리 조직위원장으로서 2023세계잼버리 지원 예산을 45억 증액시켰다.

 

 

이미 한차례 프레잼버리 개최를 반대했고 실제로 그렇게 됐죠. 그러면서도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는데 성공했고요.

 

 

새만금 잼버리 연기 밀어부치다 '헛물 켠 조직위'
https://www.nocutnews.co.kr/news/5738707

새만금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12일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2일까지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계연맹 이사회에서 새만금 잼버리를 당초 계획대로 2023년 8월에 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세계연맹은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국면에서 일상회복 단계로 전환하는 추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새만금 잼버리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되는 점도 감안했다.

(중략)

하지만 최종 결정권을 쥔 세계연맹이 잼버리 연기를 불허하면서 전북도와 한국스카우트연맹의 연기 건의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략)

기반 시설에 1년 이상 소요되는데 2021년 안에 연기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면, 이후 코로나 확산에 따른 참가자 급감에 대처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반시설은 잼버리 이후 철거해야 한다. 모든 예산이 회수할 없는 매몰 비용이다.

(중략)

이후 같은해 12월 초 전북도는 조직위의 한 축인 여성가족부에 잼버리 1년 연기를 건의했다.

이에 대해 여가부는 '연기하지 않고 당초 계획대로 진행 예정인 국제행사(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강원세계산림엑스포,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있고, 연기해도 코로나19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며 당초 계획대로 2023년에 개최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잠정 결론 지었다.

특히 전북도가 연기를 건의하기 보름(2021년 11월 23일) 전에 열린 정부지원위원회에서 정부 지원 과제를 의결한 것과 2023년 개최를 전제로 관련 국가예산을 확보한 점을 들었다.

하지만 여가부는 지난해 12월 말 이 같은 의견을 전북도에 보내기 직전에 보류했다.

당시 여가부는 관련 사항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점을 들어 회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대회 연기를 반대하며 여가부가 제시했던 이유들을 이번에 세계연맹에서 그대로 제시하면서 새만금 잼버리는 여러 논란을 뒤로 하고, 예정대로 내년 8월에 열리게 됐다.

 

전북도에게만 책임을 뭍기엔 여가부의 트롤이 너무 큽니다. 전북도는 연기를 요청했지만 결국 소관기관인 여가부는 연기를 결정하지 않았죠. 여가부가 잼버리 개최를 위해 준비를 똑바로 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딱히 관리 감독을 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그냥 여가부가 일을 제대로 안 했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전북도 역시 비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로 공사 연기, 개최 직전 왔던 비들에 의해 뻘밭이 되어버린 점 등등을 감안하더라도 시설이 부실했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은 전북도의 책임 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16년도부터 준비가 필요했으나 그게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도 있고, 특히 이 부분을 보면요.

 

 

 

 

그러나 이 역시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가장 중점이 되는 잼버리 부지 공사는 19년도에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2020년이 되자 코로나가 터져서 공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아래를 보면 더더욱 이야기할 거리는 있습니다.

 

 

한덕수 국무총리, 새만금 세계잼버리 현장 점검
https://www.mcst.go.kr/kor/s_notice/press/pressView.jsp?pSeq=20231

  <세계잼버리 행사 개요>   
․  (기간) ’23. 8. 1.~8. 12.(12일간)
․  (장소) 전북 부안군 인접 새만금 잼버리부지(8.84km2, 약 267만평)
․  (규모) 153개국 4만 3천여 명․  (사업비) 1,082억 원(국비 282, 지방비 398, 자체수입 353, 옥외 광고수입 49)
․  (주최/주관) 세계스카우트연맹, 한국스카우트연맹/세계잼버리조직위원회

□ 이어서 한 총리는 잼버리공원에서 시설물 종합현황을 보고받고, 시범분단*을 방문하여 숙영지, 텐트, 화장실, 샤워장 등을 살펴보고 폭염․침수 등 안전대책에 대해 보고받았다.
    * 잼버리 행사 시 실제 생활할 텐트와 화장실‧샤워장 등 편의시설을 시연한 현장

 

먼저,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인 한덕수 총리가 나서서 현장 점건을 했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미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책도 지시했고요. 근데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요식행위에 불과하고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일을 진행시켰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 글쎄요. 차라리 계획된 예산안 내에서 쓸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텐트나 화장실, 샤워장 등은 이미 1년 전에도 지적이 되었는데 된 게 없고, 또 다시 지적이 되었을 5월 달 이후 3개월 동안 개선된 게 없습니다. 즉, 말만 했다는 거죠.

 

이어지는 기사들을 보시면 더더욱 윤석열 정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새만금 잼버리 점검 골든타임, 윤석열 대통령 관심 변수로
https://www.jjan.kr/article/20230518580352
새만금 잼버리 안전점검···배수로 정비·인파 대비
https://www.ktv.go.kr/news/latest/view?content_id=680903&unit=277
김현숙 “3주 앞둔 세계 잼버리…폭염·폭우 대비 강화”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711/120179801/1
이상민 행안부 장관, 새만금 세계잼버리 현장 안전 점검
https://www.yna.co.kr/view/AKR20230729022900530

새누리당 “새만금 잼버리 유치 나설 것” 확약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7528

 

일단, 새만금 잼버리 유치는 당시 정운찬 의원의 당선에 따라 새만금 잼버리 유치를 지원한 바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당 어쩌고 전북 어쩌고에 대해 당시 새누리당, 현 국민의힘 역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어요.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 본인이 관심을 두었다는 점,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 지적되어왔다는 점, 김현숙 장관의 장담, 이상민 장관의 현장 점검 등 윤석열 정부와 각 주무처의 책임이 없고 민주당과 전북만의 책임일 수는 없게 되죠.

 

 

무엇보다 시간이 1년입니다. 1년이 부족하다면 부족하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관리한다면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윤석열 본인이 관심을 가졌다고 하며, 직접 얼굴을 비치는 자리라면 당연히 자기 권위와도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심하고 무능하게 진행될 수도, 대책이 개판일 수도 없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사안은, 평창은 이전 정부에게 제대로 인수인계도 못 받았는데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고작 6개월만에요.

 

그런데 1년 3개월이 되는 시점에 윤석열 정권은 그만한 시간과 지적, 우려가 있었음에도 대응도, 대책도 없이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이제와서 민주당 탓이네 문재인 정부 탓이네 남탓만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 준비하면서 전 정권 탓하면서 망해도 내 탓 아니다 같은 소리 한 적 있었나요? 부동산, LH 사태 때도 이전 정부 탓하면서 우리 책임 아니네 남탓 하던 적 있던가요?

 

이런 비판을 받기 싫었다면 자기들이 정권을 잡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정권을 잡았고 각부 부처 장관을 임명하고 스스로도 대통령이 되었다면 당연히 자기 정권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정권이 가지게 됩니다. 이는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최고 책임자이자 최고 권한자가 바로 대통령, 정권이기 때문이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든 국민의 대표가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데 지금 대통령이, 정권이 뭘 하고 있나요? 아니, 이번 일 뿐 아니라 지난 1년 3개월 동안 이 정부 내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자기 잘못이다. 우리 책임이다. 책임을 통감한다. 내가 책임 지겠다. 같은 소리를 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그런 적이 있었나요? 오히려 무능 덕분이 이태원 압사 사태가 벌어졌고 탄핵까지 당했지만 무능은 탄핵 사유가 아니라는 결론으로 복직하자 얼굴에 웃음을 걸었죠.

 

그리고 그 직후 첫 실무가 잼버리 안전점검이었는데 또 실패했고요.

 

이 상황에서도 남탓을 하지 않는 자가 없고 자기 책임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 탓이고 민주당 탓하며 전라도 탓이라고만 합니다.

 

 

시간이 1년이 있었습니다. 뭔가 하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부지 자체를 새로 깔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많은 대응과 대책이 있었고 대통령이 직접 챙겼다면 더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평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듯이.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수차례 반복해서 말하듯, 민주당을 비롯해 여러번 지적, 비판했고, 윤석열 정부는 다 개무시했죠. 자신만만한만큼 일을 잘 했다면 지금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불과 며칠전, 한달전, 3개월 전에도 지적되었고 비판받았으나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었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당연히 그럴 겁니다.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니 할 수 있는 게 있을 리가 있나요. 무능한 인사들로 꽉꽉 들어찬 것이 윤석열 정부입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실무를 담당하던 공무원들이 다 없어졌을 리는 없고, 당연히 그 자리에, 혹은 승진해서 더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을 겁니다.

 

근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머리가 바뀌었기 때문이죠. 일 할 줄 아는 수장과 그렇지 않은 수장의 차이가 이렇게 차이로 드러나는 겁니다.

 

보수 세력은 무능하다는 걸 이제 인정할 때가 됐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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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으로 나라망신 중이라는 한국의 잼버리 축제

잼버리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 스카우트 합동 행사로150개 국가에서 4만 3천명이 참가함올해는 한국에서 열리는데점점 나라 망신 축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함 먼저 행사 개막 전축제 준비하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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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쿠 - 오늘 뉴스에 나온 잼버리 현장 어우.....ㄷㄷ.news

8월 2일자 뉴스입니다 해 떨어진 시각 기온 30도 대낮에는 35도를 넘음 습도 때문에 푹푹 찌는 대한민국 여름, 그늘이랑 선풍기로 버틴다? 어림도 없는 소리. 저러고 버팀....;;; 특히 추운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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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쿠 - 새만금 세계 잼버리 총사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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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 부실 운영이 얼마나 개판인지는 이걸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겁니다.

 

***

 

먼저, 몇가지 팩트체크부터 하겠습니다.

 

1.부지 선정은 박근혜 정부 당시에 이루어짐.

2.잼버리 자체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 선정됨.

3.윤석열 정부는 1년 넘게 이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음.

 

일단 이게 가장 큰 줄기의 팩트입니다. 그리고 이 사이사이에 다른 팩트들과 맥락들과 비판점들이 있고요.

 

 

1.부지에 관해.

 

부지에 관해서 여러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왜 새만금에 해야 했느냐와 새만금도 괜찮은 지역이다의 관점이 있습니다. 비판이야 너무 많으니까 쉴드를 하나 가져와서 소개해드리자면, 이런 의견들입니다.

 

새만금 자체의 부지는 정말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상 문제가 큰데, 7월 동안 전북 지역은 흐린 날이 많았고 비도 많이 왔습니다. 8월 1일 개최일 이전에도 비가 왔고요. 그런 이유로 배수 시설이 필요 했겠지만 계속 쓸 것이 아닌 이상 장기적인 배수 시설을 공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배수 시설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름 합리적인 면이 있습니다.

 

새만금 지역은 지금 쨍쨍한 것처럼 개최일 이후 계속 더울 예정인데, 개최일이 1주일 정도 밀렸거나 조금 더 빠르게 날이 좋아졌다면 땅이 다 말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한국 특유의 습하고 더운 기후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늪지대 소리는 듣지 않았겠죠. 오히려 넓고 싼 땅을 썼을 겁니다.

 

 

2.문재인 정부의 책임과 평창의 사례.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당시 개판으로 돈 따먹자 판이었던 평창을 잘 수습해서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문재인은 고작 몇달만 가지고 평창을 성공으로 이끌었는데 윤석열은 1년 넘게 시간이 있었는데 이게 뭐냐는 비판은 정당한 비판이긴 합니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평창을 가지고 경력에 한 줄 넣기 위해 일 할 생각도 없고 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바보들을 위원장이니 뭐니 하는 자리에 집어넣고 돈이나 빼먹자는 짓거리는 하지 않았죠. 도리어 모두가 망할 거라고 욕하고 걱정하던 평창 올림픽을 그 짧은 기간 동안 수습해서 성공시킨 게 대단한 거죠.

 

그러나 이번 건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도 비판을 피할 수는 없지만 나름 이유는 있었습니다.

 

 

3.문재인 정부 당시 예산 상황.

 

전북도의회, 잼버리 예산 '칼질'
https://www.jjan.kr/article/20171203626992
2017-12-04 23:02

해당 행사를 시행하는 주체가 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연맹장으로 있는 한국스카우트 전북연맹인데, 예산 삭감을 요구한 도의원이 국민의당 소속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2023새만금 세계잼버리행사와 관련해 19억 6500만원을 편성했지만, 전북도의회는 이들 가운데 전북연맹과 관련한 4개 행사 예산 3억 2000만원을 전액삭감했다.

 

먼저, 문재인 정부 당시 잼버리 유치는 새만금으로 확정이 됩니다. 그리고 당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던 전북도의회에서 민주당 의원이 연맹장으로 행사를 시행하는 주체인 게 아니꼬와서 예산을 삭감해 버립니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년이나 남았고 당시 예산 중 적지 않은 부분이 홍보비였으니까요. 홍보 제대로 못한 것도 문제이긴 해도 홍보 자체가 행사 1년 전부터 해도 되니까요. 그만한 예산을 더 당겨 써야겠지만요.

 

새만금잼버리 예산 삭감에 우려 목소리
http://www.gkg.co.kr/5537
2018/07/29

  예결위는 지난 25일부터 27일까지 3차에 걸친 예산안 심사로 본 예산보다 2,671억원 증액돼 제출된 전북도 제1회 추경예산안 총 6조6,750억원 중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 정책 홍보 2,000만원’등 8건에 3억5,000만원을 삭감한 6조 6,747억원으로 조정·의결했다.

주요 심사·의결 사항으로는 상임위 삭감사업 ‘2023새만금 세계잼버리 정책 홍보’ 등의 사업은 ‘홍보성 예산 과다 편성’등 상임위 삭감 의견을 존중해 의결했다.

 

그리고 18년도에도 또 한번 예산이 삭감됩니다. 다만 그 예산은 크지 않고 대부분 홍보 쪽 예산이라는 점에서 큰 출혈은 아닙니다. 오히려 직전 전체 예산이 증액이 되었던 점에서 욕먹을 건 아닙니다.

 

이와 관련되어 새만금 공항과 연결되는 부분들은 있습니다.

 

이낙연 총리 ‘새만금 국제공항’ 예타 면제 곤란 발언 파문··· 전북도 ‘발끈’
http://www.jeolla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552085
2018.10.05 

실제 이 총리는 이날 “2023년까지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것은 날림공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후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를 위해 수 만 명이 잼버리대회를 찾는 만큼 접근성 문제를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총리는 “현재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를 하고 있는 만큼 결과가 나온 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정부의 당초 계획대로 예타를 계속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낙연 총리 “새만금 국제공항 예타 면제 적극 검토”
2019-01-20
https://www.jjan.kr/article/20190120661507

전북도 "새만금 SOC 예타 일괄 면제해야"
2023-06-14
https://www.jjan.kr/article/20230614580347

가덕도는 예타 면제, 새만금은 10번 넘게 예타...예타 면제 기준 명확해야
2023.07.04
https://www.jeon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1086

 

위 기사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만금 공항은 잼버리와 연결해서 신청되었지만 문재인 정부 당시 이낙연 총리가 23년 전까지 공항을 짓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의견으로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를 취소했고 그 이후 적극 검토 등의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지금도 새만금 SOC는 여전히 예타 관련해서 말이 많습니다. 10번 넘게 예타를 했다는 말도 나올 정도로요.

 

그런 이유로 새만금 공항의 예타 면제와 잼버리를 연결 짓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내년부터 잼버리 부지 매립공사 시작 “해창 장승 결국 쫓겨나나”
https://www.ibu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7122
2019.11.29

매립은 1공구와 2공구로 나뉘어 진행되며 총 사업비는 2,179억 원이고 2022년 3월까지 매립을 완료할 계획이다.

 

19년도의 관련 사업은 잼버리 부지 매립 공사인데, 바로 다음해. 시기상으로 고작 다음달에 코로나 19 사태 한국에도 상륙하면서 공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이건 문재인 정부 탓이 아니라 코로나 자체 때문인데, 코로나 19로 인해 취소되거나 미뤄지거나 백지가 되어버린 일이 민관군을 가리지 않고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 사태 이후의 비판은 그 타당성이 다소 흐려집니다.

 

새만금 수변도시 용수공급 차질 불가피
https://www.jeon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67874

새만금 1·2권역에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추진 중인 옥구배수지 건설사업이 토지보상 지연으로 당초 계획대로 오는 2024년 완공이 불투명해졌다. 옥수배수지 건설사업 지연으로 새만금 첫 내부용지 개발인 스마트 수변도시의 용수 공급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중략)

지난 2020년 기본계획 변경과 배수지 위치 조정 협의가 이뤄지면서 지난해 10월 실시설계가 완료됐다. 이 과정에서 사업비도 404억원으로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 12월말 본격적인 사업 추진이 시작됐지만 토지보상 지연으로 올해 1월부터 공사가 중단됐다. 

지난 2021년 12월에 공사계약 및 착공이 이뤄졌으나 옥구배수지 진입로에 위치한 사유지에 대한 보상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조사했던 지난 9월말 기준 공사가 중단된 상태로 당초 계획대로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졌다. 

(후략)


2023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 - 국회예산정책처
https://www.nabo.go.kr/system/common/JSPservlet/download.jsp?fCode=33317197&fSHC=&fName=3.+2023%EB%85%84%EB%8F%84+%EC%98%88%EC%82%B0%EC%95%88+%EC%9C%84%EC%9B%90%ED%9A%8C%EB%B3%84+%EB%B6%84%EC%84%9D%28%EA%B5%AD%ED%86%A0%EA%B5%90%ED%86%B5%EC%9C%84%EC%9B%90%ED%9A%8C%29.pdf&fMime=application/pdf&fBid=19&flag=bluenet

 

사업 관련하여 사유지 토지보상으로 공사는 지연되었고, 이 때문에 지금 시점의 현장 물 부족 상황과 열사병 대처 문제를 알 수 있는데, 이 부분이야 어떤 맥락에서 진행된 것인지 알기 어려우니 넘어갈 수밖에 없겠습니다. 토지보상과 관련하여 당사자가 욕심을 부렸다고 욕할 수도 있겠지만 정부의 깡패 같은 일처리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일 역시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후 잼버리 본행사는 19년도부터 여가부로 편입됩니다. 관련 예산 역시 여가부로부터 지원되고요.

2020년도 이후부터의 일은 좀 심각해집니다.

 

두달앞인데 기반시설 '공사중'…새만금 프레잼버리 '안갯속'
https://www.fnnews.com/news/202206091815466373
2022.06.09

프레잼버리에는 당초 국내·외에서 1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해외 참가자 국내 입국이 제한되며 참가자가 1000여 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전체 예산도 기존 48억700만 원에서 8억3000만 원으로 1/6 수준으로 줄었다.

(중략)

최근 김윤덕 새만금 세계잼버리조직위원장은 프레잼버리 대회 개최를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만금 잼버리' 참가비 지원에도 임실·장수·무주 등 신청 ‘제로’...전체 예산 100억 증액, ‘돈 먹는 하마’
https://www.jb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9742
2022.10.15

전국 17개 시·도에서 참가를 신청한 인원이 1,388명으로 이 중에는 대원 948명, 지도자 430명, 기타 10명으로 나타났다. 전체 참가 신청자가 4,000명에도 미치지 못한 가운데 가장 많은 지역(전북·서울)과 나머지 지역들 간 편차가 너무 크게 나타난 점이 눈에 띈다. 

심지어 1명과 0명인 지역들도 있어서 당초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새만금에서 열리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그동안 코로나19로 연기된 이후 타 지역에는 홍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반영한 결과로 분석됐다. 

(중략)

자칫 1,000여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이고도 '안방 축제'에 머물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만금 잼버리 예산은 2020년 846억원으로 확정되었으나 그동안 100억원 가량 더 증가해 938억 9,700만원(국비 237억 1,100만원, 지방비 300억 1,100만원, 자부담 등 401억 7,0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운영비가 559억 400만원으로 시설비(379억 9,300만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참가자는 급감하고 재유행 위기감으로 인해 기존 참가자들도 참가 보증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예산은 또 삭감이 됩니다. 상황이 상황이긴 하지만 1/6으로 삭감해버리죠. 48억에서 8억으로 깍인 예산으로 최종적인 준비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긴 어렵게 되었고요.

그리고 지금 욕을 먹고 있는 김윤덕 의원은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프레잼버리 행사 자체를 반대하면서도 예산을 45억 증액하는데 성공합니다.

전북 국회의원, 자치단체장 공조 체계 강화 성과
https://www.jjan.kr/article/20221226580425
2022-12-26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윤덕 의원은 전주 완산구 주민들의 생활편익과 복지증진을 위한 예산 확보에 힘썼다. 김 의원은 특히 문체위 야당 간사를 맡은 만큼 전북지역 문화·체육·관광 예산은 전부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직접 국가 예산을 확보한 사업으로는 △국립 어린이 무형유산 전당 건립 △전주 육상경기장 건립 △관광거점도시 육성사업 △음식관광창조타운 조성 △K-Film 제작기반 및 영상산업 허브구축 △객사천 위험지구 정비 △아중호수길 급경사지 정비 △전동성당 사적화 공원사업 등이다. 또 잼버리 조직위원장으로서 2023세계잼버리 지원 예산을 45억 증액시켰다. 

 

이런 사유로 김윤덕 의원이자 위원장은 비판에서 빠져나갈 구석이 조금은 있는 셈이죠. 왜냐하면 바로 다음 해 중앙 정부에서 예산 지원 안 해줬거든요.

 

“세계잼버리 국내 홍보사업비 낭비 우려”
http://www.jlmaeil.com/default/index_view_page.php?idx=246924&part_idx=177
2023년 05월 22일

김정기 의원(더불어민주당, 부안)은 자치행정국 소관 세계잼버리 참가자 대상 미니잼버리 개최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사업목적에 대해 묻고, 국제적이며 전국 행사인데도 중앙정부 지원없이 전북만의 예산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안군의회, 추경예산 삭감 '너무하네'
2023.06.26
https://www.jj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73978

추경안을 제출받은 부안군의회 예결특위는 심의를 통해 33개 소관 부서의 403개 사업 219억 5400만원을 전액 또는 일부 삭감했다.

사업별로는 세계스카우트 지도자 초청 팸투어 3000만원, 세계잼버리 블루카본 홍보관 운영 2000만원, 세계잼버리 야영자 골재반출 장비임차 2억여원 등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2023 세계잼버리 개최를 위한 예산들도 전액 삭감돼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문재인 정부 내에서 발생한 상황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코로나19이지만 그 이전과 이후 모두 예산 삭감으로 사업을 이끌어올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았고, 결국 지방 정부는 이거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이에 대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은 유효하지만 이러한 맥락에 대한 상황 이해는 분명히 잡고 해야할 것이고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느냐는 비판은 역시 다소 흐려집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그럼에도 어떻게든 개선할 방법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코로나19를 비롯한 여러 악재 속에서 관심을 못 받았던 점은 사실이며, 예산 삭감을 비롯하여 여러 악재들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에서 제25회 잼버리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은 맞지만,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이해와 함께 해야 합니다.

이러한 맥락과 함께하여 문재인 정부가 잼버리 행사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탓에 지금의 어려움의 큰 근거가 된 건 맞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비판은 유효합니다.


4.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뭐 했느냐?

윤석열 정부는 지금까지 실패만 해왔습니다. 내치도 실패했고 외교도 실패했죠.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들만의 세계관에 갇혀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먼저, 지난 오세훈 시장 당시 물난리가 나서 엄청난 피해와 논란이 있었죠. 오세훈의 무능한 행정 때문이었고 정부의 후속 대책 역시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이태원에서도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역시 무능한 행정으로 벌어진 두번째 사태였고 이에 대한 시와 정부의 대응은 역시 남탓과 무책임의 극치였고요.

최근에도 물로 인해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또 남탓과 무책임으로 사태에 책임지지 않았고요.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무능한 행정과 정치로 인해 상황은 아주 나빠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코로나19와 예산 삭감 등을 포함해 악재가 많았지만, 결국 그들의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박근혜 정부에서 개판난 평창을 성공적으로 수습한 문재인 정부와의 비교는 피할 수가 없죠.


무엇보다 이 사건이 현 정부에서 터졌으면 그건 그냥 현 정부 책임이 됩니다. 이건 좋든 싫든 그럴 수밖에 없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의 LH 사태, 부동산 사태 등은 문재인 정부 시절 갑자기 뿅 하고 등장한 게 아닙니다. 이전부터 있었던 것들이 그때 터지거나 드러난 거죠. 그때 문재인과 정부 욕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 윤석열 정부 탓은 아니고 무조건 전부 다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한다면 뇌가 빠진 겁니다.


관계 부처로 여성가족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름 걸고 윤석열 정부 역시 개최까지 이름을 걸었으면 결국 책임소재지가 됩니다. 근데 지난 1년 동안 제대로 관리 감독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최고 책임소재지가 된 정권이니 당연히 욕을 먹을 수밖에 없죠. 문재인 정부에서 평창이 실패했다면 당연히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요.

그게 싫었으면 조금 더 완성도 있게 노력하여 문재인이 평창 살렸던 것처럼 잼버리도 살려보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죠. 1년이라는 시간이 아주 긴 건 아니더라도 잼버리 행사의 미비점을 어느 정도 보완할 시간은 됐습니다.

심지어 관련 비판과 지적은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것 뿐 아니라 찾아보면 꽤 많아요.

 

김현숙 “3주 앞둔 세계 잼버리…폭염·폭우 대비 강화”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230711/120179801/1
이상민 행안부 장관, 새만금 세계잼버리 현장 안전 점검
https://www.yna.co.kr/view/AKR20230729022900530

 

이와 같은 움직임이 다 의미가 없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기사 내에서 거론된 준비들이 제대로 시행 되었고 작동했냐고 하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너무 사람이 많아서 그랬다면 4만명 올 거 뻔히 알면서 왜 실패했느냐는 소리밖에 나올 게 없고요.

 

심지어 여기 기사에 나온 덩굴 터널은 실제 가본 사람의 사진과 증언에 따르면 위에선 물이 나오고 뻘에 물이 고여서 악취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근데 목적이 더위를 식히는 곳이라고 하죠.

 

대통령실 "새만금 잼버리에 행정력 신속 백업 중…안정화 될 것"
https://mobile.newsis.com/view.html?ar_id=NISX20230803_0002401759

온열질환자 속출·샤워실 등 시설 미비 지적에
여가부 등 주무부처에 의료인력·시설 보강 지시
"대통령 참석했다고 대통령실 주도 행사 아냐"
한 총리, 여가부 장관에 "끝까지 현장 지키라"
이상민 행안장관도 새만금 이동해 현장 점검

잼버리 개영식 강행 대통령실 지시?…"있을 수 없는 가짜뉴스"
https://zdnet.co.kr/view/?no=20230803142813

 

그런 와중에 여전히 정부는 남탓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책임 소재에서 빠지려고 하고 있죠. 대통령실은 대통령 참석 했다고 대통령실 주도 행사 아니라며 발을 빼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번 사태가 유독 더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행정의 무능으로 계속해서 대규모 사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행정의 무능으로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대한 대처와 대응이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겁니다.

 

서울 올림픽 이후 40년 동안 국제 행사를 열어왔는데 그에 대한 노하우와 관리 능력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이런 상황만 벌어지면 책임자는 어디로 갔는지 계속 책임만 떠넘기고 남탓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죠. 

 

 

대통령까지 참석한 행사인데도 이 상황이니 문재인 정부 못지 않게 윤석열 정부 역시 잼버리 행사에 별 관심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던 거고, 대통령 직접 참석 + 윤 정부 시기에 개최된 행사라는 점은 좋든 싫든 최고 책임소재지가 정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 전부터 없애겠다고 말한) 여가부, 문체부, 행안부 3개 부처 이름 걸고 대통령까지 참석했는데 책임이 없다거나 문재인 정부 책임이다 라는 건 정신병적 진영논리에 불과합니다.

 

[단독] ‘생존 게임’ 된 잼버리… 유럽 참가국, 우리 정부에 항의 서한…학부모 항의 빗발쳐
https://v.daum.net/v/20230803131940942
"이제 마음대로 못 간다"…비판 여론에 취재 막은 잼버리 조직위
https://www.yna.co.kr/view/AKR20230803052800055

 

정말 국가 망신이죠. 이들이 한국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태원 압사 사태를 떠올렸을 겁니다. 수백명이나 온열 환자가 발생할 정도이고 이걸 관리, 통제되지 못하는 상황에 미성년자 자식들이 있다면 걱정되지 않을 것이고 한국 정부는 뭐하느냐는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놓고 한다는 대응은 입 다물게 하고 귀 막는 것 뿐.. 책임질 생각은 없다는 거죠.

 

 

그리고 진짜 국가 망신의 고점은 바로 아래에서 터집니다.

 

각국 대사관, 스카우트 지원·구출 작전… 주한미군은 평택기지서 숙식 제공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753308?sid=102

 

이건.. 진짜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국제적 행사라곤 하지만 국내에서 벌어지는 행사에 타국 대사관들이 나서서 지원, 구출이라고 할 정도면 엄청나게 위상을 깍아먹는 일입니다. 

 

대사관이 저렇게 나설만한 일은 범죄 피해 발생 시 국적인을 지키기 위해서나 내전, 폭동 등 국가적 혼란, 재난재해와 같은 상황이 일반적입니다. 즉, 이 상황은 타국에서 보기에 일종의 재난에 가깝다는 거고, 이 상황이 인재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타국이 국내의 일에 개입하게 된 겁니다. 

 

굉장히 자존심 상할 일이죠.

 

까놓고 말해서, 한국 정부가 똑바로 일을 할 거라는 기대가 없어서, 더 심하게 말하자면 정부 행정력으로 통제에 실패했으니 각국이 알아서 개입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상황이 상황이라 그렇지 거의 내정간섭에 준하는 개입이라 기분 나빠야 정상인 일이거든요. 근데 그걸 자각하지도 못할 겁니다.

 

 

진짜 너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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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학교는 교육 기관이며 사회화 기관이다. 학교란 단순히 공교육을 받는 장소일 뿐 아니라 학우, 선후배와의 관계 및 교사들과의 관계 맺음을 겪으며 다른 사람에 대한 경험을 쌓는 곳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규칙을 제시하고 그렇게 제시된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1.

명시적 규칙을 지키는 것은 사회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관계 대부분은 명시적 규칙이 아닌 눈치와 경험으로 대표되는 사회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나 그러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명시적 규칙은 사회화의 첫 걸음이다. 그리고 그 규칙의 첫번째는 바로 시간 약속이고, 두번째는 과목에 맞는 교과서를 챙기는 것이다.

 

2.

제도적 교육을 제외한 사회화는 부모에 의해 형성된다. 사람이 가장 먼저 맺는 사회적 관계가 바로 부모자식간의 관계이고 이 사이에서도 명시적, 암묵적 규칙은 발생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올바른 사회적 규칙을 가르쳐야 하며 이것이 잘 이루어진 아이가 사회성이 좋은 어른으로 클 가능성이 높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게 하고 많은 경험을 해주는 일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규칙을 잘 익힌 아이들이 학교 규칙 역시 잘 지키는 편이다. 부모가 자식 교육을 똑바로 시키지 못했거나,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 못하는 나쁜 부모인 경우 자식 역시 그처럼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말이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 때문에 부모를 불렀을 때 그 부모가 자기 자식은 잘못하지 않았다는 둥 오히려 교사에게 따지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3.

한국 사회는 과거 가혹한 사회문화적 환경이 형성되었었고, 이는 학교 교육현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어떠한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촌지를 비롯하여 교사에게 뒷돈을 챙겨줘야 아이에게 부당한 폭력과 차별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는 90년대, 비교적 최근까지 잡으면 2000년대 초반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중요 비판점이 되었고 학생에 대한 과도한 폭력이 문제되어 체벌 자체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방침이 바뀌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교사가 잘하는 것과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4.

어느 지점이든 적당한 합의점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과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나친 폭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그것을 방지하자 학생들의 과도한 방종을 막을 방법이 없어졌다. 이는 폭력만이 학생들의 방종과 교권에 대한 도전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만큼 교권에 대한 존중 역시도 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즉, 현재까지 한국의 교육 현장은 적절한 중간 지점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린 아직 그 지점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는 단순히 적절한 제도적 규칙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일부 학생들의 지나친 방종은 제한된 교권만큼이나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제약 없이 발생한 반동적 현상에 불과하다.

 

5.

사회화에서 규칙은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으며 반사회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학생들의 방종과 교권에 대한 도전은 그것을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이고, 그러한 근거는 규칙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

 

단순히 마련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가령, 현재 교사는 학생에게 벌점을 부여할 수 있다. 그 근거는 교사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거나, 수업을 방해하거나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대체로 아주 정당한 경우이긴 하지만 실제로 잘 집행되지 않는 경우도 아주 많다. 벌점이 내신 점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부모가 학교에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난장을 피운다. 결국 교사는 학생의 벌점을 취소할 수밖에 없고 이런 경험을 겪다보면 벌점을 부여하겠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무의미한 공갈이 된다.

 

이는 제도가 있음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시이다.

 

6.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면 교사 역시 교사다워야 하고, 서로 지킬 것을 지키는 게 사회적 약속을 이행하는 것이다. 학생은 정당한 교권에 도전하지 않고 교사는 학생에게 부당한 지시/차별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지키지 않으려는 이들은 언제든, 어디에든 있을 것이고 이러한 선을 넘는 이들에겐 분명한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먼저, 학생이 교권에 도전하는 경우 교사는 직접 체벌이나 부당한 지시를 내리는 대신 분명한 경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시 역시 무시한다면 벌점을 부여하고, 이것이 정당하다면 되돌려서는 안 된다. 벌점을 부여하는 것은 교사의 권리이지만 그에 대한 검증은 있어야 하고, 그 조치가 정당하다면 교육청 등 상위 기관에서는 이를 보증해야 한다. 즉, 벌점을 취소 받고 싶다면 정당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여 교육청과 같은 상위 기관과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를 괴롭힐 게 아니라.

 

만약 그러한 벌점을 누차례 받았음에도 태도와 행실에 개선이 없는 경우 더 강력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가령, 미국의 Detention 조치나 Discipline card 조치 같은 것이 있다. 학교 교육 현장은 장난이 아니고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을 부여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성인이 되어서도 미성년자 시기의 감각으로 일을 벌이고 소아적 정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

 

만약 그럼에도 교권에 대한 도전, 수업 방해, 다른 학생에 대한 폭력 및 위압 행위가 반복된다면 정학, 전학, 퇴학, 경찰 고발 등의 조치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도달하는 학생은 많지 않을 것이나, 그런 만큼 그러한 조치를 받을 만한 행위를 한 학생에게는 그만큼 강경한 조치의 필요성이 인정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교사의 학생 인권 침해 역시 확실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정당한 지시가 아닌 이상 심의될 수 있고 차별이나 부당한 벌점 부과, 교사의 지위를 기반으로 학생의 행동이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 적절한 학생 지도 및 계도 없는 제재 남용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교사에게 수업 권리를 일시 정지할 수 있고 시말서(학교와 학생에게 각각 제출), 교원 자격 박탈, 경찰 고발 등의 조치가 시행될 수 있다.

 

물론 교사의 권위와 위계가 더 상위에 있는만큼 교사는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잘못된 조치에 대해 더 큰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관계가 교사에게 너무 불리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교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해결할 수 없는 현상과 무한히 책정되는 책임 때문이니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분명하게 정해준 뒤 그에 따라 학생을 지도/계도/제재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더 합리적인 교육 환경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생 역시 불필요한 말썽이나 부당한 반항 따위를 하지 않는 한 벌점을 비롯한 제재 받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문제 없이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 학생이나 문제 교사를 적절히 걸러낼 수 있기 때문에 더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 있는 교사의 존재는 학교 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문제 있는 학생은 다른 학생에게 큰 폐혜를 일으킨다.

 

7.

이 모든 것은 지킬 건 지키고 할 건 하는 책임의식에서 비롯되며, 그 근거는 정당하고 적절한 규칙에서 찾을 수 있다. 완벽한 규칙은 있을 수 없지만 적절한 규칙은 있을 수 있으며 그렇게 적절히 제시된 규칙은 학생과 교사 양자를 적절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한국 교육 환경은 이러한 규칙이 제대로 제시되지도, 집행되지도 않은 상황에 가까우며, 단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가 있었고, 그에 따른 반동이 발생한 것에 가깝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교사 관계는 건전하거나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고, 교사의 지시나 행위가 부당하지 않는 한 학생은 별 불만이나 문제 없이 따른다. 그러나 어떤 학교의 어떤 학생, 어떤 교사는 문제적이고 어떤 학부모 역시 문제적이며, 그들의 패악은 적절히 다뤄질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교권은 제약되었으나 그만큼 책임은 늘었고 반대 급부로 학생과 학부모의 패악질을 제어할 수단과 방법은 매우 부족하다.

 

이 탓에 교직을 그만두거나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며, 학생이 교권에 대한 도전을 넘어서 교사를 폭행하거나 성희롱 하는 사례 역시 발생한다. 상식적으로 그러한 상황은 반드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실제 제도는 그러한 현실을 다루는 데 실패하고 있다. 적절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학생들을 부당한 폭력과 차별, 지시에서 보호하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의 부당한 폭력과 괴롭힘에게서 교사를 보호해야 한다. 교사를 보호하는 것은 문제적이지 않은 대다수의 평범한 학생들을 보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관계로, 학생(+학부모)-교사의 이분법적 관계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다.

 

8.

학교는 교육 기관이며, 사회화 기관이기도 하다. 자신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지킬 것과 어기면 안 되는 것을 익히는 공간이라는 의미이며, 학교와 교육청이 제시한 규칙이 바로 그러한 사회적 약속이 될 것이다. 학생들이 이것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가 바로 사회화가 얼마나 잘 되었느냐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사회에 나가서도 기본적인 사회적 규칙을 준수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정당하고도 적절한 규칙이 제시되고 실제 시행되며, 그것이 학부모의 지리한 괴롭힘, 제지되지 않는 학생의 방종 등 현실적 요소들에 의해 좌절되어서도, 형해화 되어서도 안 된다. 규칙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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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고소득 일타강사 왜 악마화" vs 이철규 "초과이익은 범죄, 왜 비호"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878668?sid=100
억대 시계 차고 수업… ‘공교육 수능 반발’ 일타강사들의 호화생활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770768?sid=102
'카르텔' 직격한 尹..후순위 '사교육'이 '교육개혁' 핵심으로 부상
https://v.daum.net/v/20230618142429596
대통령실, 교육부 대입국장 교체에 "이권카르텔 증거…예의주시"(종합)
https://m.yna.co.kr/view/AKR20230616077451001?input=tw
[단독] 시대인재·종로학원 등 대형 입시학원 전방위 세무조사
https://v.daum.net/v/20230628144430963
[단독]국세청, 메가스터디 세무조사…대형 입시학원 타깃
https://v.daum.net/v/20230628122705906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입니다. 당연히 자본시장이 존재하고, 규제와 제한은 있지만 자유시장을 형성하고 있죠.

 

그리고 사교육 '시장' 역시 그런 자본이 몰리는 시장입니다. 그러한 이유는 당연히 더 놓은 성적, 더 높은 학업성취를 목표로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수요가 있고 그들에게 더 좋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공급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고요.

 

이는 다른 시장과 같은 원리를 가지는 똑같은 시장입니다. 그 사회적 역할이 어떠하고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사교육 시장은 범죄도 아니고 비도덕적 시장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하는 것과, 보수진영이라는 병신들이 하는 걸 보세요.

 

초과이익은 범죄? 사교육 카르텔? 일타강사의 호화생활?

 

살다살다 한국에서 돈 많이 번다고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건 처음 봅니다. 심지어 이건 그 진보좌파 진영에서도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말입니다. 근데 그걸 자유시장 운운하는 보수진영이 한다? 한국 보수는 보수가 아니라는 말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도 확실한 증거이자, 자본주의 시장을 무력화하고 형해화하려는 반자본주의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건 사실일 가능성이 꽤 높은데, 자본주의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은 필수적인데 보수진영은 그 스스로 금융 등 경제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러한 이들의 부정한 이권에 매우 온정적이고 처벌에 부정적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경제사범을 처벌하는데 가장 반대 목소리가 큰 것이 보수진영이고요.

 

 

근데 윤석열 정부와 보수진영은 공개적으로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마치 공산당 빨갱이처럼요.

 

사교육 시장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은 또 뭐고, 그 초과이익을 범죄화하거나 더 나아가 환수해야 한다는 게 도대체 자본주의 체제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 주장인지도 모르겠고, 명분도 없는 고소득자에 대한 공격이기도 한데다, 원리적으로 능력이 있으면 많이 버는 게 당연한 체제에서 많이 번다는 사실 자체를 공격하는 건 공산당이나 하는 짓거리라는 겁니다.

 

한국 보수진영이 자유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데 이젠 자본주의까지 부정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들의 반국가적 행위를 정당 정치와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바라보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두환 시절 사교육 금지하던 시절도 아니고 사교육 금지하는 중국 공산당 짓거리나 하고 있으니. 한국 보수 진영의 통치 롤 모델이 중국인데, 딱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이네요.

 

중국, 사교육 규제로 깊어진 교육 양극화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20729001026
중국 사교육 금지 1년…"지하시장 형성, 교육 양극화 심화"
https://www.yna.co.kr/view/AKR20220727072600097

 

 

애초에 일타강사라는 사람들이 수십억, 수백억 수익을 얻는 이유는 그 수요 고객이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기 때문이고 그 정도 인구와 십수 년의 시간이면 어떤 업종이든 그만한 수익 얻습니다. 오히려 기간과 고객의 숫자를 고려하면 더 적게 번 감도 있을 정도로요.

 

근데 무슨 극소수의 학생에게 초거액의 수업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돈 많이 번다고 공격하고 초과이익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으며, 진짜 본질은 사교육 그 자체가 아니라 현 교육 환경과 입시 시스템 그 자체인데 그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대안도, 연구도 하지 않으며 꼴랑 학원가를 공격하는 건 그들이 사교육 시장도, 교육 환경도 개선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거에 불과한 겁니다.

 

 

애당초 공교육이 충분한 효용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수십년 동안 실패해왔던 교육 정책의 결과가 지금의 사교육 시장이나 마찬가지라 볼 수 있는데, 그 수능조차 학력고사 시절의 문제 때문에 등장한 대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문제점은 나오고 그 문제들 때문에 교육 정책은 계속 변화하고, 그렇다보니 공교육 체계를 신뢰하기 어려워지자 그 권위와 신용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현 사교육, 그 중에서도 인서울 대학 보내주고 실제적인 성적으로 결과가 나오는 명문 학원가들이며, 그들이 버는 수백억 넘는 수익과 일타강사들의 연봉으로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 그런 학원과 강사들 때려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구조와 환경이 변화하지 않았다면 지금 때려잡는 이들이 사라진다고 그들과 같은 자들이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또 다른 학원과 새로운 일타강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거죠. 지금 얻어 맞는 사람들은 그저 억울하게 경쟁자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거고요. 아주 불공정하게요.

 

 

그런데 이 시점에서 세무조사를 한다? 의도가 너무 뻔합니다.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정치적인 공세죠. 세무조사라는 상투적인 수법을 쓰면서요. 이 역시 전두환 시절 자기한테 불법 정치자금 안 준 그룹 조질 때 쓰던 방식입니다. 

 

목적이야 뻔하죠. 세무조사로 성과 있으면 그걸로 언론 플레이를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세무조사라는 어떤 기업이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수단으로 기 꺽고 찍어 누르겠다는 겁니다.

 

정치적 목적이 너무 뻔해서 원래대로라면 언론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해야하는 일이지만 정치 쉽게 하는 보수진영 국힘당 윤석열 정권이라 욕을 안 먹는 거죠. 문재인 정부였으면 하루에 수만 건의 비판 기사가 온 사방을 꽉 채웠을 것이고 신문에서도 1면을 꽉 채울 것이며 종편과 지상파를 가리지 않고 주요 시간대 뉴스에서 큰 비중으로 다룰 것입니다.

 

보수 정부라 그런 공격을 거의 안 받는 것 뿐이죠. 어차피 그들 지지자들은 뭘 해도 무조건적인 북한식 지지를 던질 것이기에 더더욱 부담 없이 부당한 정치 공세를 가할 수 있는 거죠. 어차피 본질부터가 검찰이고, 당연히 검찰과 같은 국가기관 동원해서 조지는데 익숙한 정권이니 상식과 공정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민주적 방법론과 민주적 전통 역시 기대할 수 없고요.

 

 

이런 뻔히 보이는 맥락을 읽지 못하고 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머리가 멍청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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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尹, ‘비문학·융합형 수능 배제’ 이미 지난해 지시
https://www.ichannela.com/news/main/news_detailPage.do?publishId=000000353046
尹, 올초부터 “공교육 밖에서 수능 출제 말라”…이행 안한 교육부 大入국장 경질
https://www.chosun.com/national/education/2023/06/16/UXTEBWLCYZB7DKIFF3EBM6AMDE/
공정 수능 '3월 지시' 있었나…이주호 "대통령이 구두로 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437/0000348909

 

어느날 갑자기 윤석열 정부가 수능을 건드리고 사교육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평소와 같은 별 검토와 조사 없이 막무가내로 시행된 지시였죠. 사람들은 그 이유를 합리적으로 생각해봤지만 사실 합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천공의 발언을 보면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한 근거가 됩니다. 천공이 수능에 목매지 않아도 되고 대학 가는 방법 다 바꿀 거라고 발언했거든요. 하지만 이 말 자체도 이상합니다. 본인은 어떤 공직에 있지도 않고 본인이 대통령인 것도, 장관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 대통령이 하고 있는 걸 보면 의심되는 게 있긴 합니다.

 

교육부의 자기모순···작년엔 “교육과정 밖 킬러문항 없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2/0003231525

교육부가 지난 3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올해 6월 모의평가 문항 가운데 교육과정을 벗어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이 무엇이었는지 오는 26일 공개하기로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관되게 “수능에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는 없다”고 설명해 왔던 교육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 이후 태도를 정반대로 바꿨다.

 

그러면서 그 명분으로 킬러문항을 건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 역시 공적 신뢰성이 깍일 수밖에 없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거 없다고 하던 이들이 1년만에 윤석열의 발언 이후 말을 바꾼 겁니다. 자기 자리 보전을 위해서 언제든지 말을 바꿀 수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말도 믿을 수가 없죠. 심지어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니고 같은 대통령 아래에서 그냥 1년만에 갑자기 말을 바꾼 겁니다. 

 

국민의힘 "'킬러문항 출제 금지', 이재명 대선 공약...또 '내로남불'"
https://v.daum.net/v/20230622105643475

그는 "민주당 공약집에 적시된 것과 똑같은 내용을 대통령이 되짚은 것인데도 민주당은 연일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한다.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비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비난한다. 권칠승 민주당 대변인은 '검토 없이 내지르는 국정운영'이라며 '교육 참사'라 비판했다"면서 "그렇다면 지난 대선 당시 약속한 민주당 공약은 '참사 공약'이냐. 민주당 소속 의원은 관련 법안도 발의한바 있는데 이건 교육계 악법이냐"고 쏘아붙였다.

 

이것도 좀 웃긴 선동입니다. 이재명의 대선 공약이었는데 자기 공약을 시행하는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게 졸렬해 보이는 것과는 별개로, 이재명 공약을 이재명이 이행하거나 불이행하면 문제된다 쳐도, 윤석열은 이런 공약을 한 적도 없거든요.

 

근데 갑자기 이재명 공약 가져다 자기들이 써놓고 남들이 비판하니 그 중 민주당을 콥 찝어 내로남불이라고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게 얼마나 웃깁니까. 물론 민주당을 지적할 수 있죠. 근데 그럼 민주당이 하는 비판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닙니다.

 

그냥 자기 지지자들로 하여금 민주당을 공격하며 결집(정신승리, 인지부조화)하라는 거지.

 

대통령이 지적한 6월 모의고사 국어 11번 문제랍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141915
정답률 36% 문제도 킬러 문항… “객관적 지표 있었으면”
https://www.kukinews.com/newsView/kuk202306260170

 

무엇보다 저런 소리를 수능 반년 남겨놓고 별 체계적인 준비와 검토 없이 혼란만 가져오고 있으니 수험생들은 자기 수능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고.

 

정작 킬러 문제라고 지목한 문제는 정답률이 80%가 넘는 문제였고.

 

원래 비문학은 처음보는 지문을 푸는 거라 평소 공부하던 배경지식 잘 안 통하는 영역이라 그걸 사교육으로 커버한다는 거 자체가 가성비 자체는 낮은 편이기 때문에 이걸 명분으로 삼는다는 거 자체가 그닥 설득력 있는 게 아니며.

 

진짜 사교육 의존도가 심각한 지점은 과탐 영역인데 이 부분은 언급도 안 했다는 점에서 뭘 알고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별 준비와 검토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고, 다른 글에서 후술할 사교육 카르텔에 대한 공격을 보면 내세울 수 있는 실제 교육 정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별 다른 근거는 없다는 걸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냥 천공이라는 무속인의 지령을 받아 국가 정책을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오히려 말이 되죠.

 

이후 나오는 논리, 근거, 명분이라는 게 죄다 급조되었다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허술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우보수 정권의 지령이 떨어지자 별 다른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판단 없이 자신의 이성적 능력을 내려놓고 무비판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듯 그 이슈에 뇌 빼고 옹호 논리를 붙혀가는 걸 보면 극우보수 진영은 사실상 북한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이슈 자체가 흐름을 보면 너무나도 선동적이고 허술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그저 그들이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북한식 태도로 무조건적 찬동과 충성만을 던지고 있습니다.

 

생각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교육 정책에 문제가 있고 이걸 고쳐야 한다는 것과 별개로 그 방법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으며, 제대로 준비된 정책인지 고려해야 합니다.

 

민주당 정부, 문재인 정부였다면 당연히 교육 박살내고 망가뜨린다고 하루 종일 짖어댈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정권, 진영 하나 차이로 무비판적 충성으로 일관하고 있죠. 문재인 대입법이란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고3 수험생, 윤 대통령 향해 "알지도 못하면서 가만히 있으라"
http://www.impeter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1092

지난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라는 발언 이후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특히 수능을 불과 5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수능제도가 바뀔까 봐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윤 대통령의 수능 발언 관련 뉴스에 달린 고3 수험생의 댓글이 화제이다. 

자신을 "현역 고3 수험생"이라 밝힌 글쓴이는 "지금 위대하신 윤석열 대통령님의 저 발언 덕분에 저희 수험생은 대혼돈에 빠졌다"고 밝혔다. 

글쓴이는 "제대로 아는 것도 하나 없으면서 뭘 하겠다고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윤석열이 뭘 알아야 나라를 제대로 이끌든가 하는데, 그러한 자명한 사실에 대해 어떻게든 눈을 돌리고 듣지 않고 믿지 않으며 자신의 보수 신앙만을 고집하니 나라에 혼란과 갈등만 발생합니다. 혐오와 증오를 기반으로 정치 이슈를 다루고 대중을 선동하며, 그 선동에 기꺼이 넘어가는 개돼지들이 인구 50% 가까이 차지하니 보수가 나라를 망가뜨린다는 건 팩트의 영역에 올라야할 듯 합니다.

 

 

 

애당초 수능에 킬러 문항이니 비문학이니 하는 게 나온 이유도, 수능 난이도가 점점 높아져오는 거 자체가 공부 잘하는 애들과 공부 잘 가르치는 학원가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푸는 훈련을 맞춰서 발전시켜왔기 때문인데, 당연히 수능 맞춤형 공부를 잘 해온 똑똑이들이 더 높은 점수를 상대적으로 더 쉽게 받으니 변별력을 위해 문제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공무원 시험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있었고요.

 

근데 킬러 문항 없앤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나요? 사교육 시장 조진다고 이 수험생들과 수능의 문제가 해결되나요? 그건 전혀 아니죠. 수능 문제가 어려워서 시험생들이 고생한다는 것도 우습습니다. 애당초 그 킬러 문항 자체가 노리는 건 전체 학생들이 아닌 최상위 n% 미만의 시험생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맞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수진영에서, 특히 102030에서 공유되고 있는 가치관 중 하나가 바로 시험은 공정하다는 겁니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그들의 믿음이 다소 허황된다는 점은 있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킬러 문항 없애고, EBS 쳐내고, 사교육 두들긴다고 수능과 관계된 문제가 해결되거나 그들의 성공, 대입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허황되죠.

 

애초에 그걸 제대로 근거하지도 못하는 게 지금 정권이고요. 모든 학생들이 최고의 사교육을 받는 게 아니고, 재능이나 실력이 뛰어나 공부하면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킬러 문항의 유무는 전체에서 큰 의미는 없습니다. 몇 문제 틀리고 안 틀리고의 차이고, 그들에게 그런 차이는 수능 성적에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거든요.

 

그 킬러 문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층이 상위 n% 미만인데, 그들 중 문제 하나 차이로 서울대를 가느냐 못 가느냐가 갈리고, 그 문항을 기어코 맞춘 학생이 서울대는 가는 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차이가 그들에게 중요한 거고요. 그런 문제가 나온 이유가 그 공부 잘 하는 최상위 학생들 때문에 변별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나온 거고, 102030의 가치관에서 그 문제 하나로 서울대를 갈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리는 거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왜? 그걸 맞춘 사람은 당연히 더 똑똑하고 더 실력 있는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조차 그 문제가 틀렸느냐 안 틀렸느냐와 무관하게 서울대를 간다면 그걸 공정한 게 아니거든요. 즉, 맞춘 사람이 더 뛰어난 사람이고 더 노력한 사람인데, 왜 그렇지 못한 사람도 똑같은 혜택을 누리느냐는 거죠.

 

당연히 이걸 대통령이 나서서 건드리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눈에 보일만한 효용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심지어 급조된 게 눈에 띌 정도로 허술합니다. 제대로된 논리도, 근거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요.

 

 

근데 그걸 좋다고 물고 빨고 하는 걸 보면 그 지지자들 수준이라는 게 눈에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는 그런 걸 전혀 자각 못하나 본데, 자기들이 얼마나 멍청하게, 눈에 보일 정도로 적나라한 선동에 헬렐레 넘어 갔는지 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못하겠지만요. 멍청해서.

 

 

마지막으로 윤 정권의 이중적인 착란성 추태를 소개하겠습니다.

 

이태규 "尹, 수능 난이도 지시한 적 없다… 방향성 말한 것"
https://v.daum.net/v/20230619095527792

방향성을 말한 거 자체가 지시가 됩니다. 그 방향성에 따라야 하기 때문이죠.

EBS에 다 걸어라? 윤 대통령의 가벼운 입이 불러온 파장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396028?sid=102

이건 당연히 지시이기도 하고요.

[단독] 尹, ‘수능 난이도’ 논란 이주호 엄중 경고…‘이주호 책임론’ 확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616752?sid=100

자기가 해놓고 셀프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식적인 행위이고 자신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는 개짓거리이기도 하죠.

현실 전혀 모르는 尹, '수능 대혼란' 자초.. 애꿎은 교육부 담당자 때리기?!
https://youtu.be/MV0bdcKhaOw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이고, 본인의 지시 때문에 나온 혼란입니다. 스스로 좀 맞아야 하는 일이죠.

"尹, 입시 전문가" 엄호한 당정, 수능 혼선엔 "교육부·文정부 탓"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745317?sid=100

아직도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나보죠?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다른 글에서 다룰 사교육 시장에 대한 반자본-사회주의적 정치공세입니다.

 

https://konn.tistory.com/868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보수 진영의 사교육 시장 정치 공격. (2)

이준석 "고소득 일타강사 왜 악마화" vs 이철규 "초과이익은 범죄, 왜 비호" https://n.news.naver.com/article/421/0006878668?sid=100 억대 시계 차고 수업… ‘공교육 수능 반발’ 일타강사들의 호화생활 https://

kon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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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이재명, 中대사 '알현'…외교 리스크 만들어"
https://n.news.naver.com/article/003/0011907348?sid=100

 

1.반중을 기치로 삼아 정권을 잡은 건 윤석열 정권.

 

2.야당 대표가 타국 대사를 만나는 거 자체로 국정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극히 미미.

 

2-1.한국은 미국과 다르게 국회의 외교적 역할의 폭이 상당히 좁은 편.

 

3.대화의 주제는 일본 오염수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 마련 방안, 양국 간 경제협력 및 공공외교 강화.

 

4.윤석열 대한민국 정권이 일본 기시다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타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일하는 정권이 있어야 하며, 일본 오염수 배출은 일본을 비판하고 공격하여 국제적 사안에 대한 한국의 외교력 확장에 도움이 됨. 그러나 윤석열은 자기 나라도 아닌 남의 나라를 위해 대신 변명해주고 있음. 즉, 일본 오염수 비판과 대응은 한국의 국익으로 돌아옴.

 

5.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말처럼, 경쟁대상과의 협력은 명시적 국교단절, 혹은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 아닌 한 언제든이 일부 지점에서 합의와 협력을 이룰 수 있음.

 

6.이재명과 싱하이밍 대사의 만남은 외교적으로 의미는 있으나 실질적 국정 운영에 별 영향을 미치진 못함.

 

7.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윤석열 정권과 중국 정부는 서로간의 외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중국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8.또 하나, 언론도 그렇지만 마치 이재명이 대통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만들고 있음.

 

9.외교는 반드시 현실적이어야만 하며 윤석열 정권의 외교는 현실과 괴리된 인식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 수준이 매우 낮음. 공적인 자리에서 하면 안 될 발언과 하면 안 될 태도를 보여주기를 반복하고 있고 이는 한국의 외교적 평가로 이어짐.

 

10.그런 이유로 외교 리스크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선동에 불과하며, 이재명과 싱하이밍 대사의 만남은 리스크도, 이익도 형성하지 않음. 이익은 이재명 본인에게만 형성됨. 마치 대통령이라도 되는 것처럼 상황을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

 

 

대통령실, 싱하이밍 관련 "중국의 적절 조치 기다리는 상황"
https://v.daum.net/v/20230613142703156
與 신원식 "오만방자 中대사, '외교 기피인물' 지정하고 추방"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8970

이어 “싱 대사가 ‘미국 승리에 베팅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란 협박, 한중관계 악화의 책임 전가, ‘일본 오염수 관련 공동 대응’ 운운의 한일관계 이간질, 북한 도발과 한미연합훈련의 동시 중단을 뜻하는 ‘쌍중단’이라는 철 지난 잠꼬대 등을 했다”고 비판했다.

중국, 싱하이밍 대사 초치에···정재호 주중대사 불러 항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29082?sid=104

 

1.다시 말하지만, 외교는 매우 현실적이어야 하며 국제적 관례와 관계의 유연성과 폭은 매우 중요.

 

2.싱 대사가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소리로 요구했다면 한국은 적절한 외교적 수사로 거부하거나 비판할 수 있음. 중요한 건 외교적 수사의 사용.

 

3.외교적 수사는 그 유연하고 은근한 표현만큼이나 발언자의 행동 유연성과 폭을 확보할 수 있음. 그러나 한국 정부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로 볼 수 없고, 그런만큼 행동과 해석의 폭을 크게 줄이게 됨.

 

4.중국을 비롯한 일본 등 타국의 요구나 주장을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다소 기분 나쁠 수밖에 없는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외교의 기본을 수행할 줄 아는 정부, 외교부는 당연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을 구분하여 행함.

 

5.신원식 의원의 북괴 수준의 워딩이야 국힘당의 낮은 수준과 초등학생 수준의 외교적 인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 중 하나라 할 수 있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은 글자 그대로 북한 수준.

 

6.문재인 정권 당시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의 발언은 한국인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것이었고 이에 대해 다양한 비판과 시위, 그 중 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초치하라는 요구도 있었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지자들 수준에서나 있었던 일이며, 정부 차원에서 그러한 발언이나 조치는 당연히 없었음. 공인의 발언은 반드시 공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 하면 안 되니까.

 

7.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실제 대사를 초치해버림. 발언이 불쾌한 것과 그것이 무례한 것은 다르게 평가 받을 것이고 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대응은 반드시 합리적이고 현실적이어야함.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국내 정치를 위해 외교를 완전히 궤멸시키는 수준의 행동을 반복 중임.

 

8.싱하이밍의 발언이 초치 수준의 내정간섭인지에 대한 평가 및 판단은 정권이 할 일이지만, 그에 대한 평가와 판단 역시 국민들의 몫.

 

9.한국의 초치 대응 사례 중 몇가지만 뽑아보자면 다음과 같음.

 

ㄱ.문 정부 당시 러시아 군용기 카디즈 무단 진입 및 영공 침범으로 러시아 대사 초치.

ㄴ.윤 정부 당시 일본 교과서 검정에 대한 항의로 주한 일본 대사 대리 초치.

ㄷ.이명박 정부 당시 일본의 독도 발언에 대한 항의로 일본 대사 초치. 

ㄹ.문 정부 코로나 초기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대한 항의, 철회를 요구하며 일본 대사 초치.

ㅁ.박근혜 정부 당시 일본 정부와 정계의 과거사 발언에 대한 항의로 일본 대사 초치.

ㅂ.문 정부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성적 표현을 동원하여 비하 발언에 대해 일본 대사 초치.

ㅅ.문 정부 당시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에 대해 일본 대사 초치.

 

10.보면 알 수 있지만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하, 직접적인 내정간섭 등 상당히 높은 수위임을 알 수 있음.

 

11.그렇다면 "미국 승리에 베팅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혹은, "중국 패배에 베팅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 이라고 알려진 이 발언이 대사 초치가 필요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각기 판단할 것.

 

12.개인적으로 이 정도 발언은 야악간 아슬아슬하기 때문에 초치가 가능하냐 불가능하냐 하면, 가능하긴 하다고 생각한다만 역시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외교관의 발언에 대해 대사를 초치하는 것보단 이전 비밀경찰서가 발견되었을 때 초치를 하는 게 명분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함.

 

1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건이 문제가 되고 비판이 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음.

 

 

A.이재명과 중 대사의 만남은 그 자체로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 없음. 그냥 명분 자체가 없음.

 

B.여당과 정부의 발언과 태도는 사실상 북괴 수준. 특히 일개 여당의 바보 하나의 발언과 대통령의 발언은 그 무게감과 공식성의 수준부터가 차이가 남. 근데 대통령 워딩 꼬라지가...

 

C.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은 한국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음. 다만 정말 대사 초치까지 할 정도인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 할 수는 있지만 명분은 다소 약함. 초치 자체가 외교적, 정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카드이기 때문에 그 명분의 수준이 약간 범위 내에서 들쭉날쑥 할 수는 있지만 이번 발언이 초치의 명분으로 쓰기엔.. 할 수는 있지만 굳이 그런 '외교 리스크'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비판을 피할 수 없음.

 

D.하려면 지난 중국 비밀 경찰서가 발견되었을 때 대사 초치를 하며 항의와 비판을 하는 것이 더 적절하고 합리적임.

 

E.그럼에도 이재명과의 만남 이후 강경발언 및 강경대응에 나섰다는 건 아주 간단하게 해석될 수 있음.

 

F.그냥 이재명과 엮어서 친중 프레임에 담고 공격하겠다는 의도. 이재명이 아니었다면 대사 초치까지도 안 갔을 거라는 게 개인적인 추측.

 

G.2찍이들을 비롯한 보수 진영은 뇌 빼고 하여간 이재명 친중, 반중 정권 만만세를 외치겠지만, 제정신 잡고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한 사람들 눈에는 국내 정치를 위해 외교를 지속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극단주의자와 강경파만 남은 진영의 숙명이라면 숙명.

 

H.양당 대표는 타국 대사와 당연히 만날 수 있고, 이건 당연히 문제될 게 아님. 그걸 문제 삼아 그런 자리를 만들어선 안 됐다는 말이 나오면 그건 월권. 그 자리에서 대사가 개소리를 하거나 무례한 소리를 하면 당연히 당의 대표가 아니라 대사가 비판받을 일. 이에 대한 조치가 초치와 같은 것이라도 그 이유와 명분을 대사가 제공했다면 리스크를 발생시킨 건 한국 정부나 양당 대표가 아님.

 

I.그럼에도 외교 리스크라는 말은 했다면 그건 한국 정부가 리스크를 발생시켰다는 말과 다를 게 없고, 그걸로 이재명을 비판하는 건 자기들이 일부러 강경 대응해놓고 그걸 이재명에게 떠넘기며 남탓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하나 더.

 

[특파원 리포트] 180도 다른 처지의 韓·中대사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23/0003769309?ntype=RANKING&sid=001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싱하이밍 중국 대사를 만나기 위해 중국 대사관저를 찾은 날, 정재호 주중 한국 대사는 베이징에서 1200km 떨어진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장위푸 주석(도지사 격)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중국 대사는 야당 대표가 집까지 찾아왔는데, 중국에서 한국 대사는 지방 관료를 만나려고 출장을 간 것이다.

양국에서 정 대사와 싱 대사가 받는 대우는 180도 다르다. 작년 8월 정 대사가 중국에 부임한 이후 만난 장관급(지방정부 당서기 포함) 이상 인사는 고작 3명이다. 작년 8월 한중 수교 30주년 기념 행사 만찬장에서 왕이 당시 외교부장을 만난 것을 제외하면 중앙정부 고위급이 없다. 현직 관료가 아닌 고위급(린쑹톈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장, 왕차오 중국인민외교학회장)으로 범위를 넓혀도 5명 정도다.

(중략)

싱 대사는 최고위급들을 쉽게 접촉하며 고급 정보를 축적하지만, 정 대사는 차관급 외교부 카운터파트나 국제 단체, 다른 나라 외교관들을 만나며 귀동냥을 해야 한다.

 

중국 대사가 고위직 여러명 만나는 동안 한국 대사가 몇명 만나지도 못했다면 한국 대사가 일을 안 했거나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이고, 다시 말해 한국의 대중 외교력은 완전히 박살난 수준이라는 것. 외교관을 통해 고급 정보들을 습득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대중 외교는 물론 경제,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외교안보적 리스크를 관리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며, 한국이 중국이 확보한 주도권에거 놀아날 수밖에 없다는 뜻.

 

이래서 외교는 현실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말임. 윤석열 정권은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음.

 

 

싱 대사가 이재명과 만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듯, 이재명 역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 들었을 건데, 이재명이 대통령인 것도 아니고 국가 외교 사안에 큰 영향력을 끼칠 수도 없음에도 그러한 만남이 있었다는 건 아주 의미심장함. 가령, 윤석열 정권 하는 꼴 보니 오래 못갈 거라는 "베팅"을 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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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자기인식이다. 자신의 뿌리는 무엇이며, 자신은 누구인가. 나의 뿌리는 무엇이며 나를 이루는 수많은 문화적, 민족적, 사회적, 관습적, 종교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구성된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답을 해주는 것이 역사이다.

역사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경험이며,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알려주는 동시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나의 조상이 무엇을 했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역사상의 정답을 보고 답습하거나, 오답을 보고 반면교사로 삼기보단, 정답과 오답의 기준을 다르게 책정하거나 오답을 반복하려고 하기도 한다. 가령,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그들의 피부색을 다른 색보다 더 우월하다 믿는다. 왜 백인들은 그들의 피부색과 신체적 특징을 다른 인종보다 더 우월한 것이라 여기는가?

답은 간단하다. 역사를 보았을 때, 근세-근현대 세계의 지배자는 백인이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군함과 군대를 이끌고 타 지역을 정복했고, 그 지역의 열등한 인종들을 노예로 다루었다. 100년 전, 아니. 50년 전만 해도 법적으로 흑백분리가 이루어졌고, 흑인과 황인이 더 열등한 지위에서 차별 받았다. 거꾸로 말하자면 백인은 아주 오래도 아닌 과거에 특별한 지위와 특혜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백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 중, 역사를 보며 인종차별에 부끄러워하는 이들만 있기를 바라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떤 백인은 도리어 그 당시의 우월함에, 그 시대에 이입하며 백인의 우월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은 세계를 지배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오세아니아와 남북미. 모든 곳에서 백인은 세계의 지배자였다. 그들에게 적은 있었을지언정 그것이 흑인과 아시아인은 아니었다.


일본인은 어떠한가? 그들은 아시아 국가들 중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했고,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일본이란 어쩔 수 없이 배워야만 하는 선도 국가였으며 그들의 체제, 그들의 기술, 그들의 사상, 그들의 법률을 배워야 했다. 이는 특히 한국에게 더욱 그러했다.

일본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데 성공했고, 중국과의 전쟁에서 두 차례 승리했고, 만주국을 만드는 등 모든 영토는 아니지만 중국을 굴복시키고 일부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동남아시아를 서구열강에게서 빼앗아와 자신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고, 명실상부 서구 백인 국가인 러시아를 패배시켰으며,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협하고 미국과 전쟁을 벌였다.

그들 일본인은 미국이라는 너무나도 강력한 국가에게 패배했을지언정, 그것은 미국에게 패배한 것이지 식민지배를 하던 열등한 민족들에게 패배한 게 아니다. 그들이 무시하고, 2등 신민으로 다루었으며, 자신들의 위상과 서열에 결코 맞먹을 수 없는 이들이 전후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국력이라는 실질적인 차이와 무관하게, 그들에게 주변국들은 그들 자신의 식민지배를 받던 민족들이었다. 조선총독부에 도착한 일본인 관광객이 갑자기 넘치는 자부심을 숨길 수 없이 기고만장해지고 그 시절이 그립다는 노인이 아쉬움을 토로하며 철거 직전 그 시절의 가치를 상징하는 건물을 성지순례하듯 관광왔다.

그것은 제국의 기억이다.



지정학이란 제국의 학문이다. 지정학은 본래 작은 지역의 역학적 관계를 분석하는 학문이 아니라 전 지구를 대상으로 그 가치와 역학관계를 분석하고 가치를 매기며 그 필요성에 따라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지를 정하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는 학문이었다.

즉, 우리가 한반도 지정학이라 부르는 것은 그저 한국인 입장에서 세계의 구석탱이 작은 한 공간에 대한 이해와 필요를 위해 지정학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그것이 결코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본래 지정학이란 그보다 더 큰, 말 그대로 세계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연구하고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그것이 가능한 능력의 국가뿐이었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던 대영제국, 프랑스 제국 등의 제국이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세계를 보는 눈 자체를 바꿔 끼워야 하는 일이었고, 그들 제국에게 세계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회의, 그들의 말 몇마디로 수백, 수천km 약소국의 운명은 송두리째 바뀔 수 있었고 어떤 지역의 가치가 높다하여 정복 당하고, 어떤 지역의 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의 침략과 지배를 용인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가능한 국가만이 실제로 다룰 수 있었던 이유로 발생하고 연구되었던 것이 지정학이다. 구한말 조선이 지구 반대편 국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국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 영국과 프랑스와 같은 나라는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필연적으로 좁다. 자신이 살아온 환경 외의 것은 쉽게 상상하고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이 정보화 사회에서 뉴스, 외국 사이트,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로 외국에 대해 알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자신의 세계를 조금 더 확장시킬 뿐이다.

실제 경험하는 것. 가령, 해외여행이나 유학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 주효한 역할을 한다. 시골 촌구석에서 평생을 산 사람이 세계를 보는 눈이 넓을까, 더 크고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경험을 한 사람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을까?

재벌 2, 3세나 정치인 자식 등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자식을 해외에 유학시키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많은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작은 사회뿐 아니라 더 큰 EU라는 국제 조직과 유럽 문화권으로 묶인 유럽과 그 자체로 거대한 나라이며, 세계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라는 '큰 물'에서 세계적인 시야를 갖추게 하기 위함이다.

그들 모두 세계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고, 행사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그러한 국가의 세계적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곧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영어를 배운다던가, 인맥을 형성한다거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개인의 능력이란 면에선 가장 중요한 것이 그것이다. 세계를 대상으로 국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세계의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나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세계를 보는 시야와 일본인, 미국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제국을 형성했거나 그만큼 강력한 국력을 행사했던 국가의 시야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제국의 경험이 없는 국가들 역시 비슷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 제국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주 크다.

한국은 제국의 경험이 없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은 아주 좁다. 세계를 상대로 힘을 행사해본 경험이 없기에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고 다뤄본 적이 없기에 다루는 방법을 모른다. 그들의 역사에서 그만한 거리에 국력을 발산하고 영향력을 행사해본 적이 없기에 그들의 시야는 한반도에 국한하며 기껏해야 일본 열도와 중국 북부와 동부, 조금 더 나아가봐야 동남아 근방 정도가 전부이다. 사실, 그것만해도 대단한 편일 것이다.

이는 한국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이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거리가 기껏해야 그 정도이며, 그 이상은 실질적 국력이 작동하는 지역이 아닌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에 따른 세계 시장, 간접적으로 받는 안보적 영향력. 즉,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멀고 먼 외교의 영역이다.

그러나 힘을 쓸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좁은 시야에 머물러선 안 된다. 최소한 외교와 첩보를 다루는 자들에겐 더더욱 그러하고, 세계적 시장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 역시도 그러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러한 능력을 의도하고 기르고 훈련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한국인의 시야는 너무 좁다. 극우가 지배했던 국가였기에 그 극단주의적 가치관 덕에 시야가 더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세계적 관점에서 무엇이 상식이고 비상식인지 대체로 인정받은 것들이 있다. 작은 사회는 더 큰 사회의 룰과 유리되어 작동한다. 한국이 세계적 기준에서 작은 사회이고, 그 구성원들이 세계적 시야를 갖추지 못했다면 한국만의 룰이라는 비상식이 작동할 개연성이 발생한다.

즉, 국제적 관점에서 비상식을 한국에서만 상식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문화 차이나 제반 환경의 차이에 따른 갈라파고스화와는 다르다. 이는 오히려 정치병과 같은 사상적, 이념적 이유로 비상식의 상식화가 이루어진 것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우려하는 바이다.

좀 더 쉽게 말해서, 후진국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 서구의 발전된 국가들은 그들이 원조이고 원류이기 때문에 겪어봤던 다양한 경험들이 있고, 그것은 대체로 더 나은 결론으로 이어졌다. 노동법은 발전했고, 부정부패는 방지되었으며, 그것에 대한 처벌은 더 강해졌다. 독점은 막아져야 했으며 기업과 정치의 카르텔은 발생해선 안 된다. 산업재해는 글자 그대로 재해이며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은 그 위상과 국력에 비해 여전히 글로벌 스탠다드가 잘 작동하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선진국에서는 용납될 수 없고 방지되고, 강력히 처벌되는 것들에 관해 결코 적지 않은 어떤 한국인들은 지금보다 더 후진적이었던 8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코 상식적인 것이 아니며,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통용되는 국제적 기준에 맞지도 않는다.

모든 국가가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국제적 기준으로 인정 받는 이유는 그것이 성공하기 위한 검증된 방식이자 가장 훌륭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사람이 죽어도 상관 없는 노동환경을 만드는 것보다 그러한 일을 철저히 방지하는 환경이 더 높은 생산성을 발생시키고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사회보다 그렇지 않은 사회가 더 강력하고 성장하기 좋은 사회임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의 시야는 좁다. 기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럼에도 제국을 경험했던 이들의 시야가 좀 더 글로벌화되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사리분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시야가 자신들의 사회 환경에서 작동하는 여타 사상과 이념에 매몰되어 좁은 시야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 더 넓은 시야를 통해 더 많은 비교군을 두고 그러한 기준을 판단 근거 삼아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원리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국 일반인보다 월등히 낫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극단주의가 횡행할수록 고립주의적, 차별주의적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미국의 절대 다수 대중들이 세계적 시야를 가지고 있다 말할 수는 없다. 영국의 보수파들이 사리분별을 똑바로 해서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는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한국 뿐만이 아니고, 어떠한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에서만 가능한 원리가 작동해서는 안 된다.

저기서 그러면 안 된다면, 여기서도 그러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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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청년들은 정치를 밈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정치는 그것을 즐기는 이들에게 무겁거나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도리어 그것은 하나의 즐길 거리가 되었고, 나름의 지적 유희에 가까워지기까지 했다. 그들의 소통이나 정치를 다루는 방식이 지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들 스스로는 특정한 정치적 이슈나 관점을 공유하고 그것에 공감 하는 것을 즐긴다.

모든 보수 청년들이 그러라리라는 것은 편협할 것이기에, 여기서 말하는 보수 청년들이랑 디씨-일베-펨코와 같은 커뮤니티의 정서를 공유하고 인터넷 문화에 익숙하며 민주당과 진보좌파에 대한 불신과 혐오마저 가지고 있는 이들을 말한다. 다시 말해, 다른 대부분의 이유보다 민주당이라서 싫고 진보좌파라서 싫어서 윤석열을 찍어 대통령을 만들어준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범위는 완벽한 것도 아니고 완전한 것도 아니며 엄밀할 수도 없기에 어떠한 정확한 모델을 상정하는 것보다, 우리가 디씨, 일베, 펨코 등 보수 성향 커뮤니티를 하며 그러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청년 보수라 했을 떄 대충 어떠한 공감대로 그려지는 상을 상상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소아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무슨 의미냐면, 피상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무책임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주 똑똑한 지성을 가지고 교묘한 지적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하다. 정치를 가볍고 간단한 것으로 바라보는 것만큼 피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니 세상의 다양성보다 자신들의 관점 내에서 해석되는 것만을 상상할 수 있다. 정확히는, 극단적인 정도만큼이나 그들의 편협함 이상을 상상할 능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단순함을 추구하고 그것보다 복잡한 것을 쉽게 받아들일 지적 작업 능력이 부족하거나 거부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작성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세하고 정확하되, 길고 지루한 글보다 오류와 왜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와 한두 줄 정도의 대화형 서술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즉, 밈적인 문법을 더 선호한다.

물론 그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문적 지식이나 다방면에 팩트체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보니 왜곡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더불어 밈적인 문법 역시 아주 쉽고 간단하게 작성되어 이해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호할 방식이다.

따라서 밈적 서술이 문제라기보단, 그저 하나의 태도를 설명하는 근거로서 볼 수 있다.


사이다패스로 통칭되는 태도가 그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그리고 좌우와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사이다적인 전개와 결말을 선호한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감각을 마비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외교를 이야기할 때 당연히 현실적인 관점을 수용해야한다. 그것을 선호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감각 없는 외교는 당연히 국가간 갈등과 분쟁을 발생시키거나 국익의 상실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외교는 초강경한 대중외교와 비이성적인 정도로 패배주의적인 대일외교, 그보다 더 신앙적인 대미외교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미세먼지 문제는 크게 점화되었는데, 당시 보수진영의 비판은 타국 영토의 타국 재산인 공장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대한민국 정부가 막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에서 발생하는 공장발 미세먼지를 막기 위해선 해안 공장지대에 대한 광범위한 폭격 외엔 뭐가 있을까. 설마 대한민국이 중국 정부에 미세먼지 발생을 문제 삼고 항의한다고 중국 정부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곧장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라고 가지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단지 문제가 있는데, 그 책임소재를 민주당 정부에 뒤집어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명분과 이유가 필요한 것이지 그게 합리적이냐, 혹은 진짜 그들의 책임이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그냥 문재인이고 민주당이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다.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타당해 보이는 것조차 그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지 그들의 본질적 입장은 아주 간단하다. 민주당과 진보좌파면 공격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른 척 한다.

그냥 뭐하나 잘 걸렸다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이유로 삼는 것이고, 당연히 공정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시기와 대상에 따라 입장이 다른 이중성이 나타나는 까닭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들의 소아병적인 태도는 한가지 심각한 태도를 내포하고 있다.

바로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심리이다. 지난 대선 당시 스트리머 스틸로(Steelo, 조강현)은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가지고 있고, 대선 방송 당시 윤석열을 응원한 바 있다. 개표 방송 당시 새벽 4시까지 방송을 했고, 윤석열 당시 후보가 이재명 당시 후보를 역전하자 좋아하며 춤을 췄다.

그가 단순히 이재명 후보를 싫어하고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를 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합리적이거나 최소한 타당한 이유였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석열을 찍은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만의 타당한 이유보다는 그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민주당과 이재명이 좆되는 꼴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 컸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들은 민주당의 패배와 이재명의 정치적 몰락을 조롱하고 싶은 것이고, 그러한 자극적인 추락은 그들에게 승리감과 쾌감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놈들이 완전히 나락까지 추락하고 패배하고, 몰락하는 것을 보고 짓밟는 가해, 혹은 보복, 혹은 정의구현의 쾌감을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지 정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게임에서도 분명하게 책임이 크고 나름 잘 했거나, 게임을 이끌어온 공이 큰 유저가 패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같은 편 유저를 비난할 때 상대팀은 단지 그게 더 재밌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잘 했던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고 조롱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이것은 그들만의 사유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가 가장 많이 죽었고 누구에게 가장 많이 죽었으며, 적절한 아이템을 선택한 사람과 아닌 사람, 위치와 교전 타이밍 등 다양한 요소에 있어서 누가 가장 잘했고 못 했고는 싸운 당사자들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의 책임자가 아닌 열심히 잘한 사람을 조롱하는 건 단순히 그게 더 재밌고 가해의 쾌감을 가져다준다는 이유에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 이익이 크지 않거나 심지어 내가 다소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더 큰 손해와 피해, 고통을 받길 원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이 좆되길 바라는 악의를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할 뿐 어떠한 생산적 방향과 가치를 따지지 않는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약자를 짓밟을 때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선과 악 따위의 가치판단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억지로라도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정신적 공상을 만들어서라도 해결한다.

안전한 곳에서 반격할 수 없는 약자를 상대로 무절제한 공격을 가하는 것.

애초에 일베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자신들이 겪지도 않은 것과 사실인지 알지도 못하는 썰을 기반으로 증오와 혐오를 만들고 구성해낸다. 그리고 그것을 공격하는 것을 정의롭다 여긴다. 심지어 그 공격 방식과 방법이 올바른가와 대상이 정확한가에 대해서도 중요치 않다. 그들은 그러한 사실, 아니. 진실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거리에 나와 조직을 구성하지 않았을 뿐 검은 셔츠를 입은 청년단이나, 누군가의 이름을 딴 소년단, 혹은 서북에서 내려온 청년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더 나약하고 졸렬할 뿐이다.


앞서 언급한 사이다패스가 일개 개인, 그리고 그 개인의 집합이 특정할 수 있는 성향의 집단이 되었을 때도 그러하다. 그들이 약자를 짓밟고 무절제한 폭력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은 그것이 정의롭다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진보좌파 종북친중빨갱이는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것은 그들이 말로 하지 않을 뿐 그들이 진보좌파를 공격하며 혐오하고 증오하는 정서의 중핵을 이룬다. 혹은 그 역일 수도 있다. 혐오의 정서가 그들의 말살을 추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는, 진보좌파라는 적을 없애야 하며, 그것은 정의롭다는 것이다. 정의롭기에 악에 대한 타협은 오직 불리할 때 뿐이며 그들에 대한 자비 없고 타협 없는 폭력은 정당할 뿐더러 정의롭다.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 좌파와 우파라는 두 날개의 균형을 말하지만 불리할 게 하나 없을 때 당당하게 진보, 좌파와의 투쟁을 말한다. 그들에게 진보좌파는 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몰락과 그들에 가하는 폭력이란 그 정당성과 사회적 손실 발생과 별개로 사이다패스를 자극하는 주제인 고로, 모든 것은 쾌감 아래 감수될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을 공격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법적, 제도적 선을 아슬아슬하게 타거나 심지어 그것을 위반하기까지 한다.

진보좌파를 공격할 수만 있다면 불법적으로 사찰을 진행하거나, 법적 장난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기도 하고, 없는 죄를 만들어서 처벌하도록 공작을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 국가 기밀을 유출시키거나 국가적 회담 자료를 왜곡하며 공개하거나, 귀중한 정보원과 정보 습득 경로를 잃어버려도 무방하다. 자신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적 기관을 해체하며 그들의 역량과 정보원을 모조리 날려버려도 무방하다.


결국 이들의 사이다패스적 혐오는 필연적으로 '남탓'으로 흐른다. 이것은 여초 커뮤니티 내지는 일부 여성의 소아병적 무책임성과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데, 1)자신은 모든 정당성을 확보한 피해자/정의의 포지션이고, 2)내가 공격하는 자는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있기에 3)내 공격은 정당하고 정의롭다는 것이다.

거기에 하나 더, 그들은 완벽한 정의와 정당성 위에 공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함, 분노, 증오심, 혐오심과 같은 '비이성적 감정'에 근거하여 그 폭력의 수위는 가변적으로, 주로 매우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설령 자신들이 정당한 피해자가 맞고 가해자에 대한 비판과 공격이 정당하더라도 그러한 비판/공격에 이성적 합리가 작동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의 공격, 비난,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죽을 때까지, 완전히 매장될 때까지 밟지 않고서는 속이 풀리지 않는다는 정서가 형성되어 있다.

잘못은 네가 했는데, 왜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가. 네가 한 잘못은 너무나도 커다랗기 때문에, 죽어 마땅하다. 너 같은 놈들이 다시 재기하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 와 같은.


이것은 현실 정치에서도 유사하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우린 아무런 잘못도 없고, 이 모든 것은 전 정권, 경쟁 정당, 진영 탓이다. 라고 말이다. 이러한 이론은 무적이기에 결국 모든 현상과 사건의 책임은 남의 것이 된다. 이것은 그들이 정권을 차지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가리지 않는다. 남탓으로 대표되는 무책임성은 그들 멘탈리티의 핵심 요수 중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 로 대표되며 이후로도 꾸준히 반복되는 전 정권탓, 민주당탓의 반복 역시 진보좌파와 민주당, 문재인 정권이 두들겨 맞아 마땅하고 죽어 사라져야 할 정당성을 요구한다.


그들이 왜 좆됐으면 좋겠는가? 아니 꼽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망했으면 좋겠는가? 그들이 띠껍기 때문이다. 왜 그들이 죽어 사라졌으면 좋겠는가? 그들이 개새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단지 진보좌파를 국가의 적으로 삼아 공격해왔던 극우보수의 전통이나 다름이 없기에, 이 수십년된 적대성이 특이할 것은 없지만, 102030 세대에서 형성된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정서는 특기할 만 하다.

언젠 아니었겠냐만 진보보수, 좌파우파를 가리지 않고 평범한 대부분의 대중들이 가지는 사회와 사건을 바라보는 피상적 이해와 빈약한 통찰, 근시안적 시야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혐오의 시대이다. 좀 더 자주 쓰이는 말로 바꾸자면 난세이다.

극단주의가 이전보다 더 강력해졌고, 이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 중에서 한국의 극단주의는 한국다운 속도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니, 그 속성에 따라 근시안적이고 폭렬적이며, 더 강경한 주장이 힘을 얻는 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102030의 가치관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쳤고, 청년 보수의 극단주의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일베/일베적 인터넷 문화이다.

그들에게서 합리성이 배제된 현실인식, 기준이 결여된 공정성, 노골적인 편파성, 비인간적 윤리의식을 비롯하여, 책임의식 없는 소아병적 찌질함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극단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고, 그 색깔이 일베에서 보여준 그것들과 유사한 이유 역시 일베와 디씨에 잠식된 일부 커뮤니티 내지는 큰 영향을 미친 인터넷 문화를 경험한 보수 청년 세대의 인터넷 환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에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합쳐진 결과 특히 청년 세대 보수들에게서 "네가 좆됐으면 좋겠어." 정서가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한 정서는 진보적인 가치가 없다. 무언가 더 나아지길 바라거나,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무엇가 없어지면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거나, 더 나은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는 게 아니다.

물론 그들은 말로는 그렇게 말할 것이고, 아마 물어보면 그러한 믿음을 떠올리며 스스로 그렇게 믿는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게 아니라고 본다. 그건 어디까지나 남에게 해야 할 말이기 때문에 떠올리는, 보여주고 들려주기 위한 변명과 궤변일 뿐 그들의(아마 그들 본인조차 자각해본 적 없는) 본심은 훨씬 단순하다.

"저 새끼 존나 맘에 안 드는데 좀 좆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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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https://www.unikorea.go.kr/unikorea/news/live/?boardId=bbs_0000000000000003&mode=view&cntId=54511&category=&pageIdx=

   ④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남과 북은 북측이 취하고 있는 주동적인 조치들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대단히 의의 있고 중대한 조치라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앞으로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해나가기로 하였다.


한・미 정상 공동성명(2021.5.21, 워싱턴D.C.)
https://www.mofa.go.kr/www/brd/m_3973/view.do?seq=367942&srchFr=&amp;srchTo=&amp;srchWord=&amp;srchTp=&amp;multi_itm_seq=0&amp;itm_seq_1=0&amp;itm_seq_2=0&amp;company_cd=&amp;company_nm=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과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다루어나가고자 하는 양측의 의지를 강조하였다.
우리는 북한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향상시키는 실질적 진전을 위해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고, 이를 모색한다는, 정교하고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된 것을 환영하였다.
우리는 또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남북 간, 북미 간 약속에 기초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동의 믿음을 재확인하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한 남북 대화와 관여, 협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대한민국은 이미 한반도 비핵화에 대하 미국과 북한과 선언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상 미국과 핵공유…핵잠수함 배치" 워싱턴 선언 효과
https://n.news.naver.com/article/008/0004880279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26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D.C.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미국 핵무기 운용에 대한 정보공유와 공동계획 메커니즘을 마련했다. 국민께서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시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적 수사와 정치적 포장들을 제외하고 보면 한국이 얻는 건 단지 미국의 말 뿐인 응원일 뿐 실질적으로 얻은 건 없습니다. 핵을 공유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는 건 글자 그대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실질적으로 한국이 핵무기와 관계되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운용 권한이나 그 권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견 제시할 근거 역시 없고 핵우산은 이미 받고 있기 때문에 핵방패와 같은 단어는 그저 선동적인 문구일 뿐 한국이 핵을 주제로 미국에게서 얻어낸 게 없습니다.

 

이미 핵우산으로 방위를 약속 받고 있는데 한국이 핵 관련하여 얻어낸 것이 정보 공유와 공동계획 매커니즘, 즉 핵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기획, 공동실행 계획이라는 건 실질저으로 말 뿐일 수밖에 없는 것이, 핵이라는 전략자산은 타국과 함부로 공유되지 않고 그건 한국이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라도 비슷한 사정이기 때문입니다.

 

실질적으로 정보 공유란 미국이 원하는 정보만 골라서 한국에게 전달할 뿐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은 없을 것이고 공동계획이라는 건 핵 운용에 대해 한국이 정보를 더 제공해줄 근거가 될 겁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정보 접근 권한은 따로 없지만 미국이 필요하면 정보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사설] 한국 대통령의 사상 첫 ‘자체 핵 보유’ 언급이 갖는 의미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3/01/13/6CORQ7T4NJDYHP72MQQGNMMJD4/
조선일보
입력 2023.01.13. 03:16

 

이미 한국 정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했고, 미국은 이것을 동의 및 지지했던 것이기 때문에 주도권은 한국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힘과 보수 언론 및 보수진영은 그저 내수용 이슈로 핵무장을 언급했고, 이는 위 기사처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핵무장 언급이 공식적으로 나온 것이고요.

 

문제는 미국은 이미 예전부터 한반도 비핵화를 수차례 입장을 확인해왔다는 겁니다.

 

한·미·일 국방 “한반도 비핵화 위해 국제공조 강화"
https://www.kocis.go.kr/koreanet/view.do?seq=10708&RN=5
2018.06.04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정착 목표를 재확인했습니다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887781
5.21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2021.05.24

미국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재확인‥"미국과 협의없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16739_35744.html
입력 2022-10-13 19:53 | 수정 2022-10-13 19:55

미 국무부 “한반도 비핵화 의지 변함없어…북한 무기 프로그램에 책임 물릴 것”
https://www.voakorea.com/a/6924610.html
2023.1.19

미 국방부, ‘핵무기 한국 재배치’ 주장에 “한반도 비핵화 정책 계속 유지할 것”
https://www.voakorea.com/a/7029550.html
2023.3.31

“미국과 동맹국들의 공통된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https://editorials.voa.gov/a/7040846.html
April 07, 2023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한국 보수진영이 지지율과 핵무장이라는 뽕에 빠져서 현실적인 국제적 시야를 완전히 상실하고 국제안보, 한반도 안보, 심지어 미국과의 외교관계와 미국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핵 위기감 조절에 전면적인 반대 입장을 수 차례 피력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한국 보수계의 극단화되는 현상에 대한 피드백 현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미국은 워싱턴 선언을 위한 회담 이전에도 수 차례 한국을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몇번씩 재확인해줬고요.

 

 

[전문] 워싱턴 선언
https://www.korea.kr/news/policyNewsView.do?newsId=148914328&pWise=sub&pWiseSub=C2

 

 

 

워싱턴 선언이 나타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반도 비핵화를 확인한 겁니다. 문제는 이게 이전과 다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이는 한국이 스스로 자발적 족쇄를 차는 것으로 엄청난 국가적 손해를 끼쳤다는 겁니다.

 

미국은 이전과 전혀 다를 거 없는 입장과 전혀 다를 거 없는 말만으로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우크라이나 지원, 양안관계 개입, 한국의 자발적 종속화를 이루었는데, 이는 한국 정부의 외교적 실패와 반복되는 악수, 오판으로만 이루어진 성과이기도 하고요.

 

이전까지 한국 정부는 미국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자신의 입장, 누구 편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외교안보적 실책을 저지르며 굳이 낄 필요 없는 우크라, 양안관계에 직접 개입할 근거를 마련해줬습니다. 이제 한국은 이 분쟁에서 발을 빼거나 소극적으로 접근할 근거를 상당수 잃어버렸고 한반도 비핵화와 관계되어 미국에 종속적 위치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워싱턴 선언에서 나온 한반도 비핵화는 이전 정부들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해왔던 것이며, 합의문 발표는 현 한국 보수진영이 수년 동안 명분도 없고 미국와 세계 모든 국가들이 불편해할 한국의 핵무장 주장을 꺼뜨리기 위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한국이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을 미국에게 읍소해가며 했다는 점인데, 이전과 다른 점이 바로 거기에 있고 한반도 비핵화 주장을 한국 정부가 주장하고 미국이 그것을 동의, 지지하여 한국에 주도권이 있던 관계에서 한국이 미국의 입장에 종속되었다는 점입니다.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실하게 된 것은, 한국형 핵공유 같은 건 없다는 거고, 미국의 핵자산 운용권한은 여전히 미국 대통령에게 있으며, 그저 한국의 이야기를 한마디 정도 더 들어주겠다는 시그널에 불과합니다. 핵심적인 사안에서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거죠.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워싱턴 선언에서 나오는 한반도 비핵화는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의 비핵화 선언을 말하는 겁니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를 부정하고 북한의 비핵화만 주장해왔던 보수 진영은 미국의 입장을 재고하게 만들지 못했으며 보수 진영은 자기들이 나서서 했던 합의와 선언에 반대 입장을 내기 불리한 상황이 됐습니다. 더욱이 몇년 동안 외쳐왔던 한국의 핵무장을 한국만의 비핵화로 전환시켜버렸고요.

 

미국의 한반도 핵 문제에 대한 입장은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장난질 때문에 북한의 핵 게임에 휘말리지 않게 하라는 것이며, 지금처럼 해왔듯 압도적 경제력과 재래식 전력에서의 우위를 기반으로 북한 문제를 풀어가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미 수 차례 미국이 언급했고 실천까지 했듯이, 이는 반드시 군사적인 방법론 뿐 아니라 외교와 같은 방법론 역시 사용하라는 선택지를 충분히 열어놓은 것이고요.

 

간단히 생각해봐도, 핵을 가진 한국이 북한과 핵경쟁을 하지 말라는 법이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미국이 한반도 핵 경쟁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경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핵 자산을 중심으로 대화와 협상 대신 안보 위기를 고조시킬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한국 보수 진영이 수년간 했던 헛소리와 윤석열 정부의 처참한 외교력이 한국의 국익에 손해로 계산되어 돌아온 겁니다.

 

 

------

 

04.28 추가.

 

대통령실 반박한 백악관 “핵공유 아니다”…워싱턴선언 동상이몽
https://v.daum.net/v/20230428143004706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동아시아·오세아니아 선임국장은 27일(현지시각) 한국 특파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설명했는데 이에 동의하냐’는 질문에 “직설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사실상의 핵공유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케이건 국장은 ‘그러면 한-미의 시각이 다른가’라는 질문에는 “우리는 핵공유를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또 “한국 대통령실이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관해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정의하기로는 그건 분명히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핵공유를 어떻게 정의하냐’는 추가 질문엔 “그것에 대한 정의가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에 핵무기를 재배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해, 유럽처럼 미국의 전술핵 배치가 핵공유의 기초 조건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아예 대놓고 아니라고 못을 박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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