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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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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0.22
    체제의 주권자와 책임의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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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현존하는 모든 정치체제 중에 가장 성숙한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책임 요소 때문인데, 민주주의가 아닌 모든 체제는 주권을 소수만이 독점합니다. 군주정은 군주만, 과두정은 소수의 권력자들이, 금권정은 자본가들만이 독점하고, 귀족정 역시 귀족이라는 계층만이 주권을 독점하죠.

 

그러나 국가를 이루는 절대다수의 요소는 백성, 시민, 국민 등으로 지칭되는 개인들의 집합이죠.

 

따라서 국가의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을 지닌 소수의 주권자들이 국가의 중요 향방을 가로지를 결정을 내릴 때, 가령 전쟁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고 하였을 때 일반 백성들은 그 전쟁에 휘말릴 수 있지만 그 운명에 대한 어떤 결정권도 가질 수 없습니다.

 

가장 피해를 볼 계층이고 집단이지만 그들은 전쟁에 대한 어떠한 결정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거대한 사건에 대한 어떠한 주장이나 반대 역시 펼 수 없죠.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국가 자체가 멸망하여 수많은, 거대한 비극을 양산한다 하여도 그것은 부당한 일일 뿐이지 그들에게 온당한 일은 아닙니다. 자기가 결정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자기가 원하지 않은 싸움을 해야 했고, 그에 대한 근거 없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바, 전쟁 등에 대한 사안에 결정권을 지닐 수 있습니다. 만약 그 결정에 의해 커다란 이익을 얻어도 그것은 국민의 공이며, 실패를 겪어도 국민의 실패이고, 국가 자체의 멸망이나 주권의 상실로 이어진다 하여도 그것은 국민의 잘못이고 책임입니다. 국민이 원했기 때문에 결정된 것이고, 국민의 오판에 의해 발생한 결과이니까요.

 

 

어른이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위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고려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라면 민주주의 역시도 그러한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국가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선택권을 지녔다면, 다시 말해 국가의 주권을 지닌 결정권자라면 누군가를 자신의 대표로 세울 때나 어떠한 법안, 어떠한 정책에 대해서도 책임감 있는 태도로 대해야 합니다. 이걸 우리는 민주적 소양, 혹은 공화적 소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강한 이유는 그러한 주권자가 소수이지 않기 때문이고, 결정권을 소수가 독점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의 운명에 개개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있어서 윗사람들이 멋대로 일으킨 사건에 민초가 휘말리고 그들의 이익과 안전에 희생 당하는 도구적 운명이 아닌 내가 만든, 그리고 내가 뽑은 대표들이 있고, 내가 주권을 가진 내 나라가 타국에 의해 유린당하거나 손해를 보거나, (내가 가진) 주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지켜야할 필요가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이런 대단한 이유로 전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단순히 교육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형성된 가치관이 당연히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관념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단순히 내 친구, 지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손 거든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라가 위태로울 때 이 한몸 바쳐야 한다는 등.. 단순히 적들이 개새끼고 개새끼들은 죽어야 하기 때문이라든가.

 

하지만 그러한 관념의 기저에 민주주의라는 체제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 무의식의 기저에 깔린 가치관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어떠한 이유나 사고, 사유를 해본 적이 없더라도 당연히 무엇을 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체제는 그것을 의도적이든, 아니면 자연스럽게든 그러한 무언가를 만들고 국민들에게 심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민주주의가 가장 성숙한 체제인 동시에, 그러한 성숙한 의식을 필요로 하는 체제라고 생각하는데,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성숙한 의식을 국민들이 가지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에 근접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여러 갈래로 구분할 때 실질적으로 민주성을 갖추었다기보단 단순히 법적으로, 절차적으로만 민주주의인 사회로도 구분되는 것일 겁니다.

 

실제로 법적으로는 민주주의지만 실질적으로 민주주의였던 적이 없었던 독재를 겪어보았고, 그 이후로도 제도적으로라도 민주주의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아주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우리의 90년대는 2010년대보다 덜 민주적이었죠. 우리가 실질적 민주주의냐, 절차적 민주주의냐를 논하는 것보단 단지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라는 말일 뿐입니다.

 

 

그렇게 전쟁이나 주권의 상실, 멸망에 있어서 주권자의 결정이 중요하고 그 주권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하다면 독재나 과두정과 같은 민주주의가 아닌 국가의 경우 백성/시민/국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부당한 것에 가깝습니다. 반면 민주주의 사회의 경우 주권자인 그들의 실책이나 오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국민들이 지는 것이 옳습니다. 원리적으로 그게 정당하죠.

 

그렇기에 민주주의에선 그나마 책임소재가 뚜렷하고 쉬운 편입니다. 국민이 무언가를 선택했고, 그게 실패했다면 그건 국민들 탓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든, 어떤 방식이든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죠.

 

 

그렇다면, 국민에게 주권이 없는 체제에서 국민들은 정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걸까요? 만약 민주주의 국가가 침략전쟁을 시작했다 패배했고 그들의 주권과 삶에 책임을 묻게 되었을 때 그 패배한 국가의 국민들이 최소한의 인권 침해를 제외하면 어떤 취급을 받아도 무방할까요? 그들이 선택했고, 이제 책임을 질 차례이니까?

 

반면, 독재와 같은 국민에게 주권이 없는 국가에선 국민(혹은 신민)에게 책임은 없을까요? 그들의 운명을 그들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한 바가 없기 때문에? 그렇기에 주권을 독점한 자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어떤 책임을 지게 되었든 그들이 지배하던 신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하지만 다른 관점에선, 그러한 독재, 과두정, 왕정이 유지되는 것에는 그들 신민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어찌됐든 그들에게 충성하거나 협조한 이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본심이 어찌됐든 그저 그저한 환경(체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에게 협조할 수 없었다는 것조차 책임으로 물어야할까요?

 

민주주의가 정치체제의 운명적인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바가 아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선택할 권리를 추구하거나 열망하여 그러한 행동을 표출해오고 그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되, 실질적 힘이 없거나 기술적으로 통제되거나, 그저 두렵고 무서워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본심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인정해주어야할 일일까요?

 

그럼 어떠한 이유로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었던 신민들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묻는 게 정당할까요? 아니면 그들에겐 주권이 없었으니 민주주의의 실패자들에 비해 관대하고 온정적인 처분을 해야만할까요?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게 아니고 주권을 독점한 자들에 의해 도구로서 동원되었을 뿐이니까?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처분 역시도 이전과 다를 바 없는 것 역시 정당하겠지요. 어차피 주권을 가진 적 없으니,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없던 주권을 그들에게 주지 않아도 무방하니까요. 물론 역사에서 필요에 의해서든 어떠한 이유에서든 그들에게 주권을 주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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