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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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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라고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부당한 방법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어왔기에 부정부패는 인간 사회의 핵심 원리 중 하나로 기능한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의롭고 공정하지 못하기에 부정부패는 시대에 따라, 사회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정교해지고, 고도화되면서 배척되기 마련입니다.

 

본디 부정부패라고는 하지만 그게 당연했던 시대도 있었고, 그거 말고는 다른 대안점을 찾지 못하는 집단도 있었으며, 앞서 말했듯, 그 자체로 하나의 원리,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집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에 있어서 부정부패를 말한다면 결정권자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에게 돈-이권을 찔러주면서 경쟁의 우위를 확보하거나, 또 다른 이권을 배타적으로 차지할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경우지요.

 

서구 사회는 수백 년 동안의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으며 이러한 것들이 현재의 수준으로 진보하였겠지만, 대체로 18-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손아귀에서 서구적 시스템을 이식당한 비서구권은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생략한 채 지금의 국가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선 이미 오래전 겪어왔던 것을 지금에서야 겪기도 하고, 아직 시작조차 안 한 국가들도 많지요.

 

유럽 등 서구라고 해서 더 나았던 것은 아닙니다. 더 추악하기도 했고 그들의 시행착오와 갈등을 답습하며 피하거나, 적어도 그 시절 그 수준보다는 좀 더 나은 상태에서 갈등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제도와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여도 더 나쁘게 시작하는 국가도 있지만요.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그것을 감시하고 감독하고 검증하며, 관리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 자체의 한계에서 기인합니다. 아무리 도덕성이 뛰어난 이들로 정부를 구성한다 한들, 어디에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합니다. 이는 그들의 도덕성이 남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기보단,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게 된 것이라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할 수 있으면 당연히 하게 되죠. 당장은 아니고, 모두가 다 하는 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는 반드시 하게 됩니다. 어떤 당위나 사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근대 이전의 세계는 부정부패를 막거나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고 장부나 서류에 어떤 장난질이 쳐졌는지 검증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실제 장부에 적힌 것과 실물을 확인하기만 해도 되지만 그걸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발하지 못하는 건 전근대 시절에 흔하디 흔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물건도 아닌 사람조차도요.

 

 

그리고 서구식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해도 이러한 시대적 관성은 여전히 작용합니다. 후진국과 개도국에서 부정부패 문제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며, 아예 국가를 돌리는 시스템 중 하나로 작동하는 이유죠. 가령 필리핀 같은 경우는 부정부패로 경제가 돌아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는 비단 필리핀뿐만이 아닙니다.

 

전근대인이 근대인보다 도덕성이 열등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살던 시대에 충실한 인식과 가치관을 가진 것뿐입니다. 다르게 말해서 그들의 세계관은 그들이 살아가는 시스템에 맞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들의 세계관이 그들의 국가 시스템보다 후진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당초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시기를 경험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근대적, 현대적 국가 시스템 안에서 그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한국의 사례와도 같습니다. 특히 한국이 적절한 예시이기도 합니다. 가장 성공적으로 현대화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고작 100년 전 한국에는 왕이 존재했습니다.(정확히는 111년 전쯤.) 그러나 그 뒤로부터 약 36년 뒤, 민주주의가 도입됩니다. 그리고 전쟁을 거쳐 70~80년대까지 강력한 산업화의 발전을 겪죠. 90년대는 한국이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에서 현대적 국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던 시기가 됩니다. 밀레니엄이 지나고 2000년대, 명실상부 현대국가에 도착하게 되죠. 거기서 10~20년이 지난 뒤 지금의 모습은 누구도 후진국, 개도국이라 말하지 못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빌딩과 지하철이 깔려 있고, 뛰어난 대중교통 시스템과 전자정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빠르고 효율적인 경험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에서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후진적인 부정부패를 겪고 있죠. 물론 이러한 부정부패가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들에게선 발생 빈도가 적을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이것은 100년을 살아가는 각 세대의 세계관이 발전해가는 물질문명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인데, 30년대를 살아가던 이에게 50년대는 다른 세상이고, 6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80년대는 또 다른 세상이며, 8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2000년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심지어 200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이후의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살 때 왕이 살던 시대를 겪은 이가 약관의 나이에 을사조약으로 왕을 잃고 80살까지 살았다면 70년도까지 살았을 겁니다. 그가 한창 젊었던 시기와 중, 장년을 겪었을 한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전후 세대도 마찬가지일 거고, 산업화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런 그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세상에서 부정부패란 지금과 달랐을 거고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부정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비교적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고 그것들을 막아왔습니다. 여전히 틈과 허점을 파고들며 더 참신하고 교활한 부정부패를 일삼기도 하고, 감시할 수 없는 공간과 자리라는 현실적 허점에서 결정되는 이야기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부정부패 또한 여전히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은 정말 여러 가지 요인과 원인으로, 그리고 그만큼 강력한 정신적 동기로 발전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심지어 지리적, 지형적인 원인조차 작동할 겁니다.

 

 

대다수의 후진국은 여전히 부정부패가 당연하고 평범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적발하거나 제도를 고칠 생각이 없거나 그럴 수 없고, 심지어 그렇게 해봤자 집행의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고, 감시와 검증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의지가 뒤떨어지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이 타국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그들에겐 시간이 부족할 뿐입니다. 우리야 100년 정도가 걸렸다지만 우리가 특수한 케이스일 뿐, 다른 국가들은 전근대-근대-현대를 거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든 그것을 실행하고 집행하기 위해서 부정부패가 없어야 합니다.

 

기계로 비유하자면 작동에 필요한 부품을 빼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더 많은 부정부패의 손길이 닿는다면 실제 작동해야 할 때 삐걱이며 고장 나거나 그 이상으로 사고가 발생하겠죠.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선 시스템적 정비가 필수적입니다. 지금 발생하는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가능한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실시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행정력을 갖추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애당초 부정부패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봉급이 너무 부족해서 먹고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민의 주머니를 약탈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정부패는 반드시 발생할 겁니다. 모든 시스템은 결국 사람에 의해 돌아가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반복될 겁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크고 작은 결정권자들은 자신의 권한과 권력으로 크고 작은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욕심을 실행에 옮겼을 때 거의 반드시 적발되어 처벌되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동시에 부정부패는 나쁜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선 그것을 방지하고 적발하며 처벌하는 시스템이 그것이 나쁘다고 여겨 행하지 않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강력하고 합리적인 대책이겠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위치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은 그럼에도 개인의 덕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덕성을 다수가 공유하는 세계관으로서 형성된 사회에선 동일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나 그러한 세계관이 빈약한 사회보다 부정부패의 발생이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에서 부정부패가 없진 않았겠지만, 유교적 세계관이 관리들을 정신적으로 통제하며 동시대 다른 국가보단 그나마 나은 처지라 여겨지는 것처럼요.

 

 

그렇기에 후진국-개도국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여전히 부정부패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며, 사회의 원리로써 작동하는 세계에서 그것은 옳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그들의 요구로 하여금 시스템은 부정부패를 배척하는 쪽으로 변화할 겁니다. 한국이 수십 년 동안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것처럼요. 네, 오래 걸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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