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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 E.Kant
by K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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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24.04.05
    국힘 조은희 후보 아빠찬스 불공정 팩트체크
  2. 2023.08.29
    각자도생 사회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3. 2023.02.02
    한국은 충분히 경쟁하는 사회인가?
  4. 2022.12.30
    이명박 사면과 부패 정치인들의 복권의 위험성.
  5. 2022.12.04
    부패의 유능과 직무의 유능. 부패한 자가 유능할 수 있는가.
  6. 2022.11.13
    사회적 질병에서, 사회적 질서가 된 부패.
  7. 2022.11.12
    한국 언론 환경은 어떻게 이 꼴이 되었는가?
  8. 2022.04.18
    부패한 사회가 강할 수 있는가.
  9. 2021.08.25
    후진국-개도국의 부정부패와 정치.
  10. 2021.01.05
    정경유착이 빚어난 거대한 참사, 바이온트 댐 붕괴사고.
  11. 2019.03.16
    민주당의 현실인식 문제와 새 전략의 필요성.
  12. 2019.01.15
    언론간 진영 싸움의 현실. 4
  13. 2019.01.14
    고위 범죄자를 더 적극적으로 배제해야할 이유.
  14. 2018.01.12
    UAE 군사협약 조건 원전 수주 사기 사건과 이명박의 범죄.
  15. 2017.05.23
    대통령 하나의 차이, 국가 정상화 작업.
  16. 2016.07.30
    대중선동의 기본. 분열.
  17. 2015.12.20
    헬죠센론. 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18. 2015.12.03
    윤치호의 '헬조센' 썰. 4
  19. 2015.09.22
    경제에 대한 태도로 보는 진짜 보수. 1
  20. 2015.09.12
    보수와 군의 안보에 대한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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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힘 조은희 후보 아들 '아빠찬스'로 서초 방배동 아파트 지분 샀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37/0000387082?sid=100

(전략)

■ 아들 현금성 자산 140만 원이 전부였는데…2억 증여한 다음 공동 '갭투자'

2015년 당시 서초구청장이었던 조 후보의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서류를 보면 아들 남씨의 현금성 자산은 은행예금 약 140만 원이 전부였습니다. 조 후보 남편과 아들 남씨 각각 약 2억 원씩 필요했는데, 조 후보 부부는 아들에게 약 2억 원을 증여함으로써 이 돈을 마련해줬습니다.

(후략)

 

 

민주당에 대던 잣대는 조은희에 작동 안 했고 공천 받은 조은희에게 사퇴나 교체 요구가 없음. 진영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다름.

 

 

비슷한 시기, 보수 진영의 비판은 이러함.

 

민주당 덮친 부동산 의혹…'아빠 찬스'부터 '상가 쪼개기'까지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40103517

與 "말로만 공정 외치는 민주당의 위선"

 

국힘당 비판에 민주당 끌어오면서 염병 떨 거라면 마찬가지로 민주당 비판에 국힘당 끌어오는 것에 대해서도 대답해야할 사람들 많음.

 

특히 위선 프레임을 민주당에 깔아놨으면 더더욱. (민주당에 그런 프레임이 없다고 말할 것이라면 문재인 정부 시기를 돌아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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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각자도생 사회 분위기가 강화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문재인 정부 5년은 진보 정권이었지만 그렇다고 사회 분위기를 크게 변화 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부정적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의 관성은 결코 줄어들지도 않고, 경제가 크게 더 나아진 것도 아니며, 사회적으로 보수 분위기는 진보 정권 아래에서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며, 디씨-일베 문화 역시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윤석열 정부. 이전 정권에 억눌린 게 많았는지 강력한 반동적 현상이 이루어지며 너무나도 빠르게 사회의 역행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대놓고 과거로 회귀하자는 스탠스와 입장, 철학을 피력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만큼 사회 안전망 역시 해체되고 있습니다. 청년, 소상공인, 중소기업 지원과 복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다 부차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각자도생이라는 게 뭘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흔히 생각하는 건, 그냥 '알아서 잘 하는 것.',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 따위를 생각할 겁니다. 근데 생각해보면, 원래 사회는 그랬어요. 남을 도와주지도 않고 남의 도움을 기대하지도 않는 건 원래 그랬어요.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죠. 특히 넉넉하고 인심 후하던 시기엔 조금이라도 남을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각자도생이 함의하는 바는 그런 게 아닙니다.

각자도생이 함의하는 바는, 부정하고 부패한 사회에서 가진 바 재산과 신분에 따라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처우가 공공연하게 발생하고 누군가 피해를 보더라도 공정한 판단과 집행을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사회적 신뢰와 공적 신뢰 역시 바닥에 추락하고 당연히 믿어야 할 것들을 믿지 못하는 사회를 말하는 거죠.

좀 더 구체적이고 쉽게 말하자면, 내가 범죄 피해를 보더라도 상대가 돈 많은 좋은 집안 자식이라면 제대로된 수사와 기소도 이루어지지 않고 법정까지 가도 공정한 재판과 판결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그럴 것도 없이, 단순히 길가다 사고가 나거나 미친놈에 의해 피해를 입더라도 경찰은 귀찮다는 이유로 CCTV 하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현장 탐문 따위도 하지 않으며 그거 못 잡는다 증거가 없다느니 법정까지 가봐야 오히려 손해라는 둥 수사조차 시작할 생각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나 그 가족 스스로가 직접 증거를 찾고 변호사를 고용하거나 직접 관계 법령 및 판례를 찾아가며 공부하여 법정까지 끌고가든 말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각자도생 사회죠.

 

정부, 제도의 작동을 기대하지 못해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사회. 직접 범인을 잡아와야 하고 직접 증거를 채집해야 하며, 직접 필요한 서류를 찾아서 발급 받고, 제출하며, 때에 따라서 변호까지 해야 하는. 그리고 그 외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를 건 없는 사회.

 



그럼 왜 이런 각자도생 사회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쉽게 말해 사회적 신뢰, 그 중에서도 공적 신뢰가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표창장 위조했다며 자살하라는 듯 수백 곳을 압수수색하고 몇년 째 재판을 끌고가며 어떻게든 깜빵 속에 쳐넣어 집안을 풍비박산을 내는데 누구는 똑같거나 더 심한 범죄임에도 언론은 잠깐 반짝하고 열심히 입을 다물고 있으며, 경찰과 검찰은 사건 그 자체는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범죄에 관해서도 너무나도 관대한 처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 어미아비는 여전히 국회의원, 당직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고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부정부패한 이들이야말로 제대로된 처벌은커녕 수사도 잘 되지 않는데 믿을 수 있겠느냐는 공통된 인식, 그리고 실제로 발생하는 경찰과 검찰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수사의 실제 사례들. 누구는 롤스로이스로 사람을 박아놓고 멀쩡히 돌아다니다 여론 의식해서 며칠이나 더 주면서 뒤늦게 체포하네 어쩌네 하는 사례까지.

 내가 피해를 봤을 때 공권력과 수사기관을 믿을 수 있을까? 경찰에 신고한다고 죄인이 벌을 받을 수 있을까? 이걸 믿을 수 없게 되는 순간 사회적 신뢰 중 공적 신뢰는 박살나고 그때부터 각자도생 사회가 만들어지는 겁니다.
 

정부가 복지를 줄여서 내 힘든 삶을 알아서 관리해야 하고, 정부가 투자를 줄여서 내 직장과 경제적 상황을 알아서 해결해야 하며, 정부가 경찰 인력을 줄여서 우리 동네 치안은 스스로 조심해야 하고, 정부가 의료보험을 개편해 미리미리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고, 약도 받아놓아야 하며, 정부가 서민 증세를 한다고 자기 재정 상황을 미리 계획해야 하기도, 정부가 실업급여 줄이기 때문에 실업 이후 여유가 줄어들 것까지 고려 해야 하는 사람들까지.

 

다종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보호해줬던 사회적 안정망이 해체되고 지금껏 신뢰해왔던 시스템과 제도적 장치들이 사라지며, 그 시스템을 다뤄왔던 이들의 평향적이고 불공정한 차별, 공공연하게 보도되는 실제 사례들까지.

 

각자도생 사회는 그 사회가 얼마나 해체되어 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정부가, 국가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하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생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말이 나오는 거죠.

 

즉, 우리 사회가 견고하지 못하여 무너질 때나 나오는 말입니다. 그 극단은 정부가 사라지거나, 권위가 무너진 사실상의 무정부상황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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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경쟁을 골자로 한다. 이것은 핵심 원리이다. 경쟁하지 않는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고 발전하지 않는 자본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숙명적으로 경제성장을 해야만 하는 체제이며,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라 부를 수 없거나, 실패한 것이다.

 

경쟁은 많은 스트레스를 발생시킨다. 안주하거나 쉴 수 없이 계속해서 발전해야만 한다. 더 나은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기존의 비효율을 정리하거나, 새로운 산업과 사업을 고안하고, 투자하며, 그러기 앞서 타당성을 평가해야 한다. 인재를 채용하고 저성과자를 해고하거나 좌천시킨다. 사업이 성공하면 다시 분배하여 규모를 키울 수도 있고 내실을 다질 수도 있다. 실패한다면 그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경쟁에서 패배한다면 도태되어 없어지거나 흡수되는 결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하지 않더라도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경쟁은 스트레스를 발생시키고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부담을 달가워할 개인도, 조직도 없다. 또한 사람은 경쟁보다 협력이 더 쉽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러한 협력이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정치 역시 마찬가지이고, 기실 사람이 존재하고 집단이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경쟁은 투쟁이고 투쟁은 이익과 동시에 손실을 내포한다. 그러한 손실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 또한 없다.

 

 

한국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은 충분히 경쟁하고 있는가? 그런 기업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정 이상의 위치에서 경쟁은 크게 약화된다. 어차피 모두 아는 사이이고 이 좁은 국토의 좁은 공간에서 그들은 서로를 영원히 피할 수도 없고, 접하지 않을 방법 역시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된다면 그들은 어떻게든 알고 지내게 된다. 이는 인적관계망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그러한 관계망에 속하게 될 기회를 말한다.

 

재벌, 대기업은 가급적 경쟁하기보다 담합하는 것이 한국 시장에서 더 큰 이익을 발생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은 불법이고 부패이다. 그러나 이 부패가 충분히 사업성 있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재벌의 존재이고, 그 재벌의 역할은 정경유착이다. 대기업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기업이다. 핵심은 그 대기업을 지배하는 재벌이며, 재벌이 수많은 대기업과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가장 큰 조력은 정치권의 협조에서 나온다.

 

그들은 재벌 대기업을 해체하거나, 그들과 반목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들에게 후원과 지원을 받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업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른 재벌 대기업이 그것을 인수해버린다는 말이 있다. 특히 중요하고 미래 가치가 큰 기술을 가지고 있거나 개발한 회사들이 그렇다.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을 강제로 품안에 넣어버린다. 삼성이 그러하듯이.

 

한국의 수많은 제품은 경쟁보단 담합에 의해 가격이 조정된다. 닭, 소고기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아는 많은 제품과 상품들은 담합에 노출되어 있다. 간혹 적발되어 처벌받는 경우는 있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담합을 해서 얻는 이익이 처벌 받아서 발생하는 손해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경쟁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경쟁하는 업계도 있고, 경쟁하는 업체들도 많다. 그러나 먹을 게 있고 경쟁에 자신이 없다면 담합은 어떻게든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기도 너무 쉬운 환경이고 그 대가 역시 너무 작다. 그렇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습속은 경제 분야가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발생한다. 가령 정치를 보자. 민주당과 국힘당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이지만 동시에 협력적인 모습 역시 찾아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소수의 집단이 너무 오랫동안 경쟁하다보면 그들의 경쟁은 경제적인 계산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담합적인 형태가 된다.

 

A라는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으로 갈라져 있다면 둘은 서로 하나의 주제를 두고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A 주제의 찬반 영역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서 지지를 나누는 것일 뿐이다. 두 집단 모두 찬성한다면 그 주제가 받아들여지는 것과 별개로 그 주제에 관해 반대하는 지지 집단은 붕 떠버린 처지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지지를 받고자 하는 이들은 A 주제에 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 반대하던 집단의 지지를 차지할 수 있다. 즉, 지지자들은 하나의 자원이 되고 주제에 대한 찬반 입장은 어떤 자원을 차지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표명이 된다. 그러한 이유는 명확하다. 사람이 모이면 이권이 형성되듯, 그들은 지지자들에게 위임받는 권력, 그 권력이 가져다주는 특혜와 경제적 접근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더 이상 옳고 그름의 목적과 믿는 바에 따른 신념의 영역이 아니라 경제활동에 가까우며, 이러한 관계는 적대적 공생관계라 말할 수 있다. 한국 보수와 중국/북한의 관계가 그러하고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의 관계가 그러하다.

 

북한이 정말 증오스럽다면 그들의 멸망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어야 하지만 그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언론사는 기본적으로 자본을 추구하는 기업이며 진보 언론과 보수 언론은 표적으로 삼는 고객층이 다른 것 뿐이다. 그들이 사회정의와 이념적 규범을 위해 존재한다면 입장이 다를지언정 편파적이지 말아야 하며, 해석이 다를지언정 가짜뉴스와 의도적 선동이 있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다양한 집단들은 정말 건전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이 맞을까?

 

다시 말하지만, 경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LG가 스마트폰 사업을 접었던 것처럼. 그러나 온전히 경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림, 마니커, 사조원 등이 닭고기 가격을 담합하여 막대한 이익을 나눠먹었듯이.

 

그들이 진짜 경쟁이라는 걸 한다면 재벌가 오너들이 개소리를 하고 사업적 실패를 겪으며 기업가치에 손해를 입힐 때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도태되어야 한다. 기업들이 시장에서 더 큰 지분을 확보하고 경쟁력을 갖추고 싶다면 개발에 투자해야 하고 가격경쟁이 됐든 판로 개척, 효율적인 시스템을 도입하고 검증해야 한다.

 

만약 정치와 사법이 자본으로부터 영향력을 덜 받는다면 그들의 부정부패에는 이익보다 강력한 손해를 주어 함부로 부정부패를 저지르지 않도록 할 것이다. 부정부패는 우발적인 것이 아니고 계획적인 것이기에, 그러한 부패를 계획할 때 반드시 리스크를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어떤 기업은 도태되고 약화되어야 하며, 어떤 기업은 성장하고 성공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밑에서부터 올라온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는 것보단 기존 재벌 대기업이 출자하여 만들어진 기업이 시장의 한 영역을 차지해버린다. 한국 시장은 자본의 규모와 별개로 좁은 곳이다. 그러한 행위들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국토가 좁은 나라의 숙명이라면 숙명이다.

 

그렇게 한국 자본주의의 구성원들은 경쟁을 기피하는 편이다.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을 파멸시키거나 일정 이상의 손해를 발생시킬 정도로 경쟁하지 않는다. 잘 돌아가고 있는 카르텔에 파문을 발생시켜서 좋을 것이 뭐가 있을까. 스스로의 오판과 실패로 망하는 것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살려줄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부러 도태시킬 정도의 관계는 아니다. 망하지 않는 한 그들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매력적인 협력 대상이다.

 

그렇게 그들은 더 쉬운 방법을 찾았다. 경쟁하기보다 경쟁사끼리 모여 담합을 했고, 이는 시장에 대한 독과점 구조를 만들었다. 독과점 구조는 막대한 이익을 발생시키지만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일 수는 없다. 제품 개발과 가격 경쟁을 해야할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영역을 바라보자.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 공부를 잘해서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기업에 입사하거나, 장교가 되어 열심히 진급을 하는 방법과, 어려운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전문지식을 갖춘 엘리트가 되는 방법 등이 있다. 

 

이것은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단순히 자기 능력과 실력만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 부모의 재산이나 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라인이라 불리는 파벌 싸움을 말하는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신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의 힘은 한계가 있고, 혼자서 차지할 수 있는 자원 역시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협력/담합하기 마련이고, 이는 집단 내 파벌을 형성시킨다. 조직사회에서는 흔히 라인이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어떤 유력자들이 있고 그 유력자들에겐 자신의 라인이 있다. 대개 더 좋은 사업 아이템을 물어오고, 그것을 자신과 자기 아랫사람들에게 분배하며, 성과를 내면 그 라인 모두의 공이 된다. 그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승진하거나 조직 내 요직을 차지하고, 더 뛰어난 인재를 자기 라인으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끌어들인 인재을 밀어주고 성과를 내면 라인 내 윗사람의 공이 되기도 한다. 사원의 공이 대리의 공이 되고, 대리의 공이 과장의 공이 되며, 과장의 공이 부장의 공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조직 내 한정된 자원을 라인이라는 파벌을 형성하여 차지하는 것이다. 당연히 다른 파벌과의 경쟁은 그러한 자원을 두고 다투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러한 관점에서, 자신의 성공이 온전히 자신의 공일 수 있겠는가? 라인으로 대표되는 사내정치에 가담하지 않고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란 어렵다.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면 진급에서 불리한 장교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당연히 사내정치는 어느 나라에서든 있고, 파벌 싸움 역시 당연히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조직 내 경쟁이 되어 긍정적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경쟁은 발전의 동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비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진급이 다소 부당하게 막히는 사례처럼 한정된 자원에 대한 경쟁은 아주 강력하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라인을 타지 않고 파벌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혼자서 다수와 경쟁할 수 없으니 말이다.

 

즉, 라인과 파벌은 반드시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더 부정하게 작동하기도 하며, 이러한 형식의 관계는 결국 인적관계망이라 이름붙혀 지고, 그것들이 부정적으로 작동한다면, 우린 그러한 예시 중 하나로 엘리트 카르텔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의 정말 중요한 집단에는 이러한 파벌, 라인이라는 혈관으로 조직되는 엘리트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공부를 아무리 잘하고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며, 사법시험, 행정시험, 외교관 시험, 로스쿨 졸업, 변호사 시험, 의사시험 등 전문직 엘리트가 될 수 있는 자격시험에 통과한 이들이라도 인맥이라 불려지는 엘리트 카르텔의 도움이 없다면 정말 중요한 요직에 접근하기 어렵다는 말이 된다.

 

이 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그 엘리트 카르텔에 소속될 수 있는가와 얼마나 핵심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물론 실력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지만, 재벌 2세와 3세, 유력 정치인들의 자녀들이 어떤 노력을 해서 그러한 카르텔에 소속될 수 있었을까? 그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태생부터 카르텔에 소속된 것과 다름 없는 이들과 흙수저 출신 개천의 용과는 혈통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할 것이다. 그 혈통이 꽤 큰 장벽이라는 점 역시.

 

파벌싸움, 라인, 엘리트 카르텔에 속하여 인맥을 동원하는 것 역시 자신의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험의 공정성에 맹목적인 신앙을 보이는 자들이 시험 외적인 불평등한 인간 관계로 잠재적 경쟁자를 탈락시키고 차지한 자원을 나누지 않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중적인 것이고 위선적인 행동이다.

 

물론 모든 파벌, 라인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동하고,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엘리트 카르텔은 그것과 다르다. 그들은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남과 나누지 않고 독점하기 위한 담합에 가깝다. 그들이 외부에 언터쳐블한 접근을 요구하고 자신들에 대한 어떠한 정당한 요구조차 불응하며 공격이라 간주하며 반응하는 것이 그러하며, 사법처리에 있어서도 불공정의 영역을 한참 벗어난 것을 보라. 이것이 공동의 발전을 위한 것인가?

 

 

경쟁보다 담합이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것은 기실 당연하다. 인간이 투쟁만큼이나 협력을 선호했기 때문에 무리를 짓고 집단을 이루며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이 협력의 효율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외적인 요소에 대한 투쟁을 위한 협력과 내부 집단의 경쟁자를 도태시키고 시장과 같은 영역을 장악하기 위한 담합은 서로 다르다.

 

협력을 통해 인간은 발전했지만, 담합은 내부 역량을 제한하고 그 발전 역시 족쇄를 걸기 때문이다. 이는 협력이 공동의 발전과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담합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익을 위해 전체 집단의 대부분은 불필요한 손해를 봐야만 한다.

 

그럼에도 담합은 그것에 가담할 수 있는 이들에게 여전히 매력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지가 된다. 그것을 막아야 하는 것은 견제 세력이다. 단순히 담합에 끼지 않은 업체 같은 것이 아니다. 가령 시장에서의 담합은 업계의 다른 기업이 아니라 정부라는 공권력, 정치권력이 개입해야 한다

 

정치권력이 부패하여 담합한다면 그들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은 그 체제 내에서 힘을 가진 이들이다. 민주주의에서 그것은 국민이 된다.

 

절대권력이 절대부패하는 이유는 그들을 견제할 세력이 없고, 경쟁할 세력이 없기에 소수의 관계자들만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가능하다는 까닭에 더 쉽고 매력적인 선택지를 고른다. 이는 완벽히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적인 선택이다. 그 목적이 공동의 발전, 항구적인 발전이 아닌 그 소수 기득권의 이권이라는 목적에 부합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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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9 - [취미/이야기] - 약자에 대한 멸시와 힘의 논리.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전 이게 가장 문제라고 봅니다.

 

다른 게 아니라,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의 역량을 깍아먹고 공정한 사회와 사회적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을 고갈시켜 도덕보다는 기회를 더 중요시하는 각자도생의 정글사회를 만들 거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명박 같은 거악의 부패 범죄자들이 얼마를 해먹고,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해와 손해를 보든 그들이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다시 부와 권력을 손에 쥐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교훈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남에게 큰 손해를 끼치고 그걸 통해 커다란 이익을 얻었는데도 책임지지 않고 그걸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는 걸 안다면 도덕과 윤리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죠. 도덕과 윤리가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기준을 통해 옳음을 지키기 때문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그에 대한 대가가 찾아와야만 그것을 지킵니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그게 옳기 때문에 지키려 한다면 그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반대로 그걸 지키지 않아도 된다면 굳이 지킬 이유가 없고 그러한 부덕한 행위로 이익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합니다. 단지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할 사람들은 차고도 넘쳐요.

 

그에 대한 대가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도덕이나 윤리를 지켜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는 그 자체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역행하는 자에 대한 대가를 주는 식으로 그 영역을 지켜왔어요. 보통 사회 그 자체가, 법 집행기관에 의해 그렇게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명박과 같은 무리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것을 통해 부와 명예, 사회적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그들은 책임을 지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와 동류의 인간들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고 이는 그들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음을, 부덕한 행위로 얻은 이익은 결코 훼손돼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이 곧 승리의 공식이라는 것을 증명해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사상이 곧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입니다. 그들이 범죄를 통해 부와 권력을 얻고 그것이 훼손되지도, 침해받지도 않고 오직 과정의 부정보다 부정을 통해 얻어낸 결과만이 중요한 사회라면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과 같이 되고자 할 때 그들과 같은 방식을 따라갈 겁니다. 이미 증명된 공식이니까요.

 

 

이명박의 사면과 그 무리들의 복권은 부와 권력을 얻고 싶다면 부정부패와 범죄를 저질러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든 말든 어떻게든 자기 이익을 챙겨라. 그것을 통해 충분히 많은 부와 권력을 얻었다면 그 부와 권력(그리고 그걸 통해 얻은 인적 관계망)을 통해 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건 하나의 증명이고 그들이 추구하는 사회상의 노골적인 핵심이기도 한데다 사람들이 추구해야할 성공의 공식이 됐습니다. 

 

정의가 지켜지지 않고 성공하고자 한다면 법과 도덕, 윤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고 심지어 적절한 방법이라면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설령 처벌받는다 하더라도 얻는 게 더 크다면 약간의 징역과 벌금은 단순한 부정부패로 얻은 이익에 지불하는 거래대금 정도가 될 뿐이죠. 그렇게 처벌받은 이상 나는 더 이상 죄가 없다고. 이미 죗값을 다 치루고 나왔다고.

 

 

정의와 공정은 당분간 한국에서 사망 선고를 받아야할듯 합니다. 이걸 다시 살리기 위해선 죽어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뜻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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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찍이들의 엘리티시즘은 능력만 있다면 도덕적이지 않아도 무관하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일만 잘 할 수 있다면 사소한 도덕적 결함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그릇된 가치관을 함의한다. 문제는 그들이 생각하는 유능함이 언제나 국가와 사회의 발전과 유지에 이바지할 거라는 특출날 게 없는 착각 때문인데, 그들은 부패했지만 유능한 캐릭터를 상상하며, 자기 사리사욕을 위해 부정부패할 줄 알지만, 동시에 국가와 사회를 위해 할 일은 잘 하길 바란다.

 

그들의 유능함은 대체 불가능한 것이고, 각각의 엘리트는 그 수가 얼마가 되었든 너무나도 귀중한 자산이라 단 한명의 손실조차 용납할 수 없다. 대체로 이는 진보 세력이 부패한 이들에 대한 처벌, 부패구조의 개혁을 요구할 때마다 엘리트가 유능함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드는 폭거라 받아들이며 그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한다.

 

문제는 그들의 부패이익 역시 대변한다는 것이며, 그들이 부패하지 못하는 것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착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직무에 유능함과 무능함의 구분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잘 처리하느냐로 결정된다. 더 정확하고 더 빠르며 더 유연하게 문제를 처리하되, 그러한 것이 권한이나 제도적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2찍이들은 이러한 구분을 무시하고 그저 유능함과 무능함이라는 개념을 오용하거나 구분을 두지 못한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에게 유능함이란 엄밀한 개념이 아니다. 도리어 구분 없는 막연한 인상 정도로 구분하는 경우가 더 많다. 개념의 엄밀함이 부족하고, 논리의 정밀성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들에게 유능함이란 단순한 개념이다. 공부를 잘해서 수능을 잘 보고, 좋은 대학 들어가 졸업하고, 사법시험이나 행정시험, 의사시험 등 사회지도층이 될 수 있는 세련되고 강력한 권력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그게 곧 유능함이다. 그리고 그들의 유능함은 견제 받지 않고, 제한받지 않고 발휘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들의 유무능 구분에 있어서 도덕적 결함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가치관을 잘 설명하는 말은 이것이다. XX하면 어떠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

 

여기서 경제는 다른 가치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문제는 부패란 자신의 직무와 권한 내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그것과 무관하게 발생하는 부패의 영역은 매우 좁다는 것이다. 가령, 검사가 부패를 저지를 때 피의자나 피의자가 속한 조직에게 이권을 받고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기소를 해주거나 재판을 진행해준다. 여러 건 중 약한 것들로만 기소를 하거나, 증거인멸이 가능한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속으로 수사하거나, 증거를 제대로 수집하지 않거나, 수집된 증거를 무리하게 해석하여 제출하지 않을 수 있으며, 사안이 큰 경우 대신 인멸해줄 수도 있다. 어떤 정치적 사건 때 중요한 증거물이 어느 순간 사라져 있는 것이 행정적 오류나 정리 작업의 복잡성, 혹은 우연일 수 있을까?

 

부패하지만 유능하다는 것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부패하는 것에 유능하다. 라고.

 

유능함에는 도덕적 기준이 없기에 도덕적이고 유능한 사람을 뽑고 그들이 도태되지 않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윤리, 도덕적 기준은 유능함이나 그것을 보증해주는 대학 졸업장이나 전문직 업종 종사자 같은 타이틀보다 우선되지 않는다. 그렇게 유능하기만 하면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기에 부패하고 유능한 이들은 자신의 유능함을 발휘하여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고 그보다 더 적은 양의 개인의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

 

 

부패하는데 유능한 것은 결코 자신의 직무에 유능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똑똑하고 능력 좋은 검사가 자신의 능력을 부패에 쓴다는 건 자신의 직무 권한을 남용하여 발생시키는 일이고, 앞서 말했던 것처럼 처벌받아야할 피의자를 처벌받지 않게 하거나 더 약한 처벌을 받게 하거나, 편파적이고 불공적인 수사를 통한 피의자에게 특혜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은 모종의 이익을 얻는다. 돈이나 정보가 될 수도 있고, 퇴직 후 로펌에 대단한 조건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전관예우를 통해 불공정한 재판을 연출한 뒤 고액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다. 고액 연봉을 받는 사외이사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권력과 권력을 연결시키는 브로커 역할을 하며 중간에서 받아먹을 수도 있다. 부패의 방식은 각양각색이지만, 어느 것 하나 사회적 손실이 아닌 것이 없다. 본래 누군가에게 가야할 돈, 누군가가 있어야할 자리, 누군가가 받았어야할 처분 등이 다른 사람에게 가기 때문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자면, 부패한 검사는 자신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자신의 직무네 있어서 무능하다는 말이 된다. 검사의 역할은 피의자를 수사하여 범죄 사실을 입증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부패한 검사는 그것을 자의적으로, 이익에 따라 누군 범죄 사실을 입증하고 누군 그렇지 않을 수 있으며, 입증해낼 수 있는 범죄를 골라서 적용시키거나 탈락시켜줄 수 있다. 검사가 아니라 그 어떤 위치에 있는 이라도 마찬가지다.

 

실적이 아닌 정치에 따라 연봉과 진급/승진이 이루어진다면 실적을 높히는 대신 윗사람과 더 친하게 지낼 것이고 더 많은 선물과 편의, 향응을 제공하려 할 것이다. 능력이 아닌 친분에 따라 고위직을 나누어주는 대통령이라면 인사권이 닿는 범위 내에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보다 대통령 눈에 띄기 위해 부정한 노력을 다하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납품 계약을 받는 이가 자신에게 얼마나 더 많은 향응을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품질과 성능 대신 자신 개인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해주는 쪽과 계약할 것이다.

 

이러한 부패는 반드시 더 큰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는데, 범죄자가 범죄자가 아니게 되거나, 범죄자가 아닌 사람이 범죄자가 되거나, 능력 없는 사람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여 잘못된 판단으로 손실을 입히거나, 대규모 참사를 발생시키거나, 하자가 심각한 결함 제품이 군인들에게, 고객들에게 납품될 것이며, 더 큰 규모에서는 항공기, 전차 등 안보 체계에 큰 악영향을 발생시킬 결정이 납품사의 로비로 이루어질 수 있다.

 

부패한 자가 유능할 수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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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몸을 망칩니다. 가볍게 컨디션이 안 좋은 것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병은 치료되어야할 것이고 이것이 점점 심해지면 그만큼 건강도 안 좋아져 끝끝내 죽거나 죽음을 갈망하는 고통 속에 살게 되죠.

 

사회에도 질병이 있습니다. 인간이 사회를 구성한 이유는 더 안전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함이죠. 다시 말해, 지속 가능한 발전, 혹은 생존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부정부패는 그 구성을 구조적인 맥락에서 형해화시키고 무력화시킵니다. 부정부패가 너무 심각한 사회는 반드시 붕괴할 것이고, 그 결과는 멸망이거나 혁명. 둘 중 하나가 되는 것이 역사가 말해온 예시들이죠.

 

 

후진국은 대부분 전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그 관성이 여전히 크게 남아 있는 사회입니다. 그들은 20세기 초중반부터 근대화를 시작한 경우가 많고, 그 근대는 200~400년의 역사적 경험을 거쳐 현대에 도달한 서구와 다르게 길어봤자 100년 정도에 불과하죠.

 

한 세대의 세계관은 그 시대 내에서 변혁되지 않습니다. 그 시대에 맞는 세계관을 갖추기 마련이고, 이 시대가 지나가면 그들 중 일부만이 새로운 시대에 어느 정도 적응할 뿐 대부분의 세대 구성원들은 새로운 시대에 다음 세대만큼 적응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년이라는 시간에서 물질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전근대적 세계관의 관성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그들은(조부 세대), 혹은 그들의 자식 세대는 현 세대의 부모 세대이고,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 역시 현 세대보다 더 전근대적 관성이 남아 있는 후진적 세계였습니다.

 

그리고 전근대 사회는 정치, 제도, 행정 등의 고도화가 이루어지기 전 전통적 사회에 가까웠기 때문에 중앙집권과 문명의 역사가 긴 국가, 이를테면 한국, 중국, 일본, 이란, 터키 등의 국가라 하더라도 근대와 전근대의 간극을 쉽게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역사적 경험과 기반이 있기에 근대로 접어들기 수월한 면이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그것을 넘어 현대 수준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회를 구성하기란 또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전근대 사회의 통치 수준에서 근현대 국가의 행정력과 치안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하기 때문에 부정부패가 쉽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를 경험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이들에게 부정부패는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부정부패의 적발과 처벌이 더 쉬워진 시대에도 그 시대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크고 작은 범죄, 부정부패를 너무 가볍게 일으키곤 하죠.

 

 

문제는 이겁니다. 사회의 발전속도가 너무 빨라 전근대적 관성이 힘을 충분히 잃고 전근대 사회의 부정적 요소를 근대 이후에 접어든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끔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한국의 발전 속도는 분명 경이로웠고 성공적이었지만, 문제는 전근대적 관성이 지금에까지 뿌리내려 그 악성 현상을 보편화시키는데에도 경이적이고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국은 45년 이후에도, 50년대에도, 60년대에도 부정부패가 많았습니다 70년대와 80년대도 말할 것이 없고 90년대는 물론 2000년대, 2010년대, 그리고 지금 2020년대에까지 부정부패가 많습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 분명히 부정부패는 줄어들었고, 그렇게 부정부패를 줄여오는 쪽으로 사회의 방향성을 잡고 실천해나갔기 때문에, 아직도 분명히 모자라긴 하지만, 우리는 동남아 국가나 필리핀처럼 발전이 정체되고 성장이 멈출 정도로 부정부패가 사회와 경제의 발전을 발목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한창 성장하던 경제개발기에 발생하지 않은 일이고, 오히려 한국 경제가 발목을 잡힌 것은 그 이후, 지금 시대라고 봐야합니다.

 

 

분명 밑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줄어든 것이 맞습니다. 80~90년대까지만 해도 경찰들이 도로에서 뇌물을 받기도 하였고 여러 업종에서 크고 작은 횡령과 부정부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사회적 의식의 발전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가 있었고 행정 및 치안력의 발전에 따라 법적 제재가 더 쉬워졌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발생하는 부정부패는 극적일 정도의 변화가 있진 않았습니다. 엘리트 카르텔의 부정부패는 예나 지금이나 심각하고, 단지 더 교묘하고 더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한 것 뿐입니다. 고도화된 것이죠. 더 높은 수준의 교육를 받은 이들이 더 복잡해진 자본주의 사회의 지도층으로 얻은 경험을 가지고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제도상의 헛점을 파해하면서 이전 시대의 부정부패와는 차원이 다르게 부패할 수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더 큰 규모의 부정부패를 더 교묘하게 발생시키는 거죠. 차때기나 돈 봉투 대신 고급 정보를 제공하거나 은퇴 후 고연봉으로 고문, 법무팀, 이사 등으로 데려오는 식으로. 심지어 그마저도 여러번에 나눠서 돈을 얻을 수 있게 하거나 몇년 지나서 제공하는 식으로 증명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엘리트 카르텔에게 부정부패는 말단이나 중간 관리급 공무원이나 기업에서 부정부패가 줄어든 격차만큼 크게 줄어들지 않았죠. 훨씬 교묘하고, 훨씬 비밀스러워진 그들의 내부거래와 뒷거래는 언론에 공개된 것 이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전근대적 관성이 남아 부정부패에 익숙하고 당연시 여기던 세대가 그 전근대적 관성을 잃지 않은 채 그 관성을 그들의 다음 세대에게,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넘기고 그들 중 대부분이 엘리트 카르텔. 다시 말해 기득권이라는 이름의 사회지도층이라는 점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부정부패는 사회적 질병인데, 그 질병을 치료하기도 전에 사회적 질서로 뿌리내려 버렸다고요.

 

문제는 이렇게 사회적 질서로 뿌리내리게 된 이후부터는 그 치료가 극히 어렵다는 겁니다. 그 사회적 질서(부패)를 통해 이익을 얻고 특혜를 보는 엘리트 카르텔의 반발이 엄청나기 때문이고, 그 힘은 일개 정치인이나 대통령, 정권 단위에서조차 쉽게 물리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부정부패를 사회적 질서로 만들고 거기에 기생하며 성장동력과 발전여력을 빨아먹게 된 이상 한국의 발전은 다른 질서가 경쟁력을 갖추거나 새롭게 대체하기 전까지 동남아의 후진국처럼 부정부패에 의해 성장이 저해되고 발목이 잡힐 겁니다.

 

그리고 엘리트 카르텔에 의해 유지된 사회적 질서는 지배적인 질서이기 때문에 그 질서에 편입되고자 하는 이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을 동경하는 이들, 그러한 질서를 받아들이고 익숙하게 여기게된 이들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서도 나타나게 될 것이고, 이는 대중 계층에서 상당히 줄어든 부정부패가 다시금 확산될 여지를 암시합니다.

 

그 근간은 바로 계층이동이 경직되고 기존 도덕과 윤리규범이 도전받으며 엘리트 카르텔 역시 산업기의 활발한 변화가 있었던 것과 다르게 이제는 상당히 안정화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전 시대와 다르게 시간이 갈수록 노력과 성과만으로 성공해서 계층이동이 쉬운 시대가 아니지만 여전히 성공하고 싶은 이들은 더 이상 정직한 방식을 고수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부정한 방식으로라도 성공하고자 하는 이들이 나올 것이고, 그마저도 불가능한 이들은 그저 성공한 이들을 동경하며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만을 받아들일 겁니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고려말, 조선말과 유사한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부정부패에 발전이 발목잡힌 동남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후진국은 그 형태와 구성만 다를 뿐 부정부패라는 형식은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한국의 차이는 개발기에 발생했느냐, 그 개발기를 넘은 이후에 발생했느냐의 시간상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아마 이는 강력한 중앙집권, 경제발전에 대한 강력한 열망, 구조적으로 활발했던 계층이동과 탈락, 민주화와 독재라는 체제상 이념적 충돌이 오랜 시간 동안 주요 의제를 장악했다는 점에 의했을 가능성을 추정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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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근대식 언론이 시작된 것은 구한말 대한제국-일제시기입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여러 이데올로기가 경쟁하던 시기였고, 식민지배와 주권이라는 두 가치의 충돌이 있었던 때이기도 했으며, 내외적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각축장이기도 했죠.

 

정치와 외교, 군사는 국가의 일이지만 언론은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다만 그 영향력이 너무 거대하기에 권력자들은 대중선전/통제 및 프레임 선점을 용이하게 해주는 언론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영향력 행사가 있어왔고 그 방식은 탄압과 처벌이라는 강경책과 돈을 입에 물려주고 내부자로 만들어주는 온건책으로 나뉘죠.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피지배민들이 일제에 순응하고 복종하길 바랬고 그걸 방해하는 민족지, 정론지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탄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 잘듣는 언론에겐 상을 주기도 했죠. 이후 전쟁 때에도, 이후 독재시절에도 언론은 권력자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언론들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단 한번도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본 적 없는 선동창구였을 뿐이죠.

 

독재시기에 부당함에 저항하고 진실을 찾으며 비판을 할 줄 알았던 기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도태시켰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역도태지만, 그들 입장에선 아닐 도태로 인해 저널리즘을 할 줄 알고 그러한 가치를 이해하는 기자, 언론사는 그 힘을 잃어가고 말 잘 듣고 잘 통하는 언론과 언론인들이 한국 주류 언론기조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죠.

 

 

독재 시절에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을 자주 썼고, 지금도 후진국에서는 그런 식으로 언론을 탄압하고 언론인을 죽이거나 '착하게' 만들지만 어느 정도 그러한 세태에서 벗어난 뒤에는 그보다 훨씬 잘 먹히는 방식을 씁니다. 조용히 하라고 입에 돈을 물려주는 거죠.

 

사람 보내서 납치하고 고문하거나 협박하는 방식은 그러한 방식이 통할 수 있는 질서가 유지될 때나 가능한 방법이고, 그러한 방식은 제나름의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그러한 리스크를 무효화시키거나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체제에서나 할 수 있는 겁니다.

 

당연히 민주화와 같은 체제, 질서의 변화에는 또 다른 방식이 필요한 거고, 기존에 있었던, 튀는 놈이 아니라 말 잘 듣는 언론을 길들이고 우리편으로 만들었던 안정적인 방식을 확대하는 게 효율적인 방식이 되었죠. 당장 나가는 돈은 아까울 수 있지만 옛적 방식을 썼다 발각됐을 때 발생하는 리스크는, 그걸 덮기 위해 써야할 자본은 일개 개인에게 물려주는 돈에 비하면 푼돈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판단과 평가는 선점되는 개념에 따르는 면이 큽니다. 어떠한 방향성을 잡아주고 어떠한 개념 요소를 짚어주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흐름과 방향성, 그 판단의 중점이 되는 포인트가 잡히고 그렇게 흘러버리죠. 그렇기 때문에 언론을 장악하는 게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건 민주주의 사회일 때 더더욱 그렇습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러한 프레임을 잡을 수 있고 선점할 수 있는 언론을 손에 넣는 건 권력자에게 굉장히 중요한, 어떤 면에서는 거의 1순위에 가까울 일이라는 거고요.

 

그렇다고 언론이 정치권력보다 더 강하거나, 언론이 정치인과 정당에게 갑의 위치에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언론들 말처럼 우리가 정권을 만드네 어쩌네 하는 건 선거철 때 이야기고, 선거가 끝나면 정치인들 목이 뻣뻣해지는 것처럼 언론 역시 그에 굽힐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권력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누구 손에 있느냐는 권력의 정당성과 실질적 활용 범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이유이고, 언론과 재계의 힘은 언제나 정치권력보다 한 수 아래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죠.

 

 

그렇기에 언론은 권력자(정치, 경제 영역 모두)에게 밉보여선 안 되고,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과 친구가 되는 겁니다. 혼맥으로 이어지는 것도 좋고 인맥이나 학벌로 이어지는 것도 좋죠. 민주주의에선 권력투쟁이 자본은 물론이고 법적 제도(선거 등)와 이미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법적 정당성에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검찰 등 법 권력과 친해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어떤 영역에서든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언론과 친해져서 나쁠 게 전혀 없고요. 정치인들은 자기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주고 불리한 부분을 축소해줄 수 있으며, 적대 진영에 불리한 이미지를 형성시켜줄 수 있고 경제인들은 자기 기업과 제품에 돈으로 환산되는 인식을 주입해줄 수 있으며, 검찰은 정치, 경제권력과 붙어먹으며 기소하고 처벌할 대상에 대한 대중의 반발을 줄여줄 수 있게 마사지해줄 수 있습니다.

 

 

그럼 언론은 어떻게 이익을 얻느냐, 정치인이 됐든 경제인이 됐든 검찰이 됐든 고급 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그것을 생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인맥관계를 맺고 그들과 인터뷰, 취재, 그마저도 아니라면 (폐쇄적인) 식사 자리에서 이런 저런 정보들을 주고 받는 겁니다. 이번에 어느 지역에 어떤 사업을 하게 되어서 땅값이 오를 거라든가, 이번에 기존 사업부 몇개를 접을 거니까 그쪽 관련 주식 빼놓으라던가, 누구누구 기소해서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고 이런 정보를 너한테만 흘려줄테니 기사화시켜라. 하는 식으로.

 

옛날에는 이런 이권거래가 술자리에서 직접적으로 오가는 돈이었다면 지금은 증거 없는 정보를 전달해주며 합법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식으로 바뀌기도 했고요.

 

그렇게 만들어진 엘리트 카르텔에서 언론의 역할은 결코 주인은 될 수 없겠지만 권력자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종놈이 되는 건 아닙니다. 대체로 을의 입장에는 있지만 힘 좀 쓰는 을의 입장에 가까울 겁니다. 언론사란 결국 기업이고 그들은 투자를 받아야하는데, 기업의 광고비는 매우 중요한 수익요소이고, 고급 정보를 먼저 접하거나 만들어내는 위치에 있는 이들, 엘리트와의 접점이 끊어져 인맥을 잃은 기자 개인의 중요성은 떨어져 쓸모가 없어집니다.

 

 

좀 더 큰 그림으로 이 문제를 단순화시켜 그려보면 이렇습니다.

 

언론은 탄생 순간부터 강력한 정치권력에게 통제, 탄압되었고 거기에 순종한 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권을 받았으며, 경제권력은 경제적 이유로 언론을 활용해야 했고 마찬가지로 돈, 혹은 돈이 되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언론을 길들였습니다.

 

언론은 그러한 이들과 담합하며 이익을 챙겼고 이건 언론과 기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관계였고요. 이러한 관계는 언론과 정, 재계라는 껍데기 때문에 특수해보일 뿐, 이권이 얽힌 업계간의 담합이라는 뻔하고 흔한 부패일 뿐입니다.

 

여기서 저널리즘은 소수의 언론인들이 추종하는 가치일 뿐이고, 때때로 언론 껀덕지를 하기 위해 몇몇 기자와 평론을 할 때나 등장하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자본주의적 원칙보다 우선되지 않고 그것으로 명성을 쌓지도, 권위를 형성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길들여지고 형성된 한국 언론 환경은 당연히 저널리즘이라는 게 있었고 지금도 남아 있는 몇몇 서구 선진국과 비교하면 당연히 민망할 정도로, 엄밀히 말해서 한국의 저널리즘은 민주화 이후 자본과 권력에 의해 적지 않게 해체되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는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 때 보여주는 한국 언론과 타국 언론이 어느 쪽에 더 포커스를 맞추었느냐를 보았을 때 쉽게 판가름 될 수 있습니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사건을 정치화시키기 위해 청탁, 요구했을 때 언론은 자기 이익을 챙겨주는 이들이 원하는 바를 실행에 옮겼고,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의 죽음을 보상금이라는 돈으로 계산하려는 습성은 그들의 천박한 천민자본주의적 관점에서도 해석될 수 있지만, 그들에게 사건의 본질과 진실을 추구하는 저널리즘보단 돈이라는 자본을 더 우선시하는 가치관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해외 언론은 관심의 포커스를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맞췄고, 돈보다 사람에 맞췄죠. 이것은 자국 내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없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세월호 당시 한국 언론이 보상금, 보험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를 계산하고 있을 때 일본 언론에선 수온에 따라 생존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저널리즘이 부재한 언론 환경에서 중요한 건 이익을 주고 받는 카르텔의 한 부분에 속하는 것이지 진실을 밝히고 본질을 파악하며, 그러한 정보와 의견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언론)이 가진 강점(프레임 선점, 선동)을 스스로의 이익과 카르텔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거죠.

 

 

저널리즘을 추종하고, 할 줄 알았던 언론사나 기자들은 역도태되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거나 그 영향력이 매우 약한데 반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언론사, 기성 언론사들은 그들의 입장과 이익에 따라 다른 논조를 가질 뿐 기본적으로 엘리트 카르텔과 얽혀 있거나 그 자체로 엘리트 카르텔의 일부입니다.

 

일제시대 때 천황폐하 만세를, 한국전쟁 때는 김일성 장군 만세를, 독재시기엔 박, 전 장군님께 철저히 순종하고 복종하던 언론과 그 아류, 혹은 복제, 혹은 친인척인 언론들이 한국 언론 환경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한국의 언론 현실입니다. 그들은 힘의 논리와 그 힘에서 나오는 이익을 따르는 것이고 서구에서 이해되는 저널리즘과는 거리가 멉니다.

 

 

설령 저널리즘을 위해 비판성을 잃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든 따돌려지기 마련입니다. 직장에서 따돌려지고 한직으로 밀려나고 데스크에서 안 받아주고 수정 명령 내리고 때로는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수정해서 논조가 바뀐 채로 올라가기도 하죠. 취재를 하거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만나주지 않고 정보를 얻을 수 없으니 아무리 발로 뛰고 찾아가도 제대로된 기사를 쓸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해고가 되든 기사를 실어주는 곳이 없어지든 하게 되는 법이죠. 그렇게 살기 싫은 사람들은 애초에 돈 주는 주인님들 시키는데로 하거나 결국 굽히고 굴복하는 이들 역시 주인님이 물려준 돈의 달달함에 입을 다물고 시키는데로 하게 됩니다. 뭐든 한번이 어렵지 두번이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번 먹고 사는 게 어려워 좋게 좋게 달래주고 회유하는 과장님 말 듣고 한번 돈뭉치 입에 물어보면 다음엔 더 쉬워지죠.

 

삼성을 그렇게 비판했던 기자가 결국 이재용 가방 들어주는 건 언론에게 보여주는 메시지였고요. 그 양심을 저버리고 굴복했지만 여전히 떳떳하고는 싶어하는, 굴욕과 자존심이 충돌하는 복잡한 표정은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개새끼짓을 하고 있어도 자기가 개새끼라는 걸 알고 있고 그건 표정을 통해 드러나기 마련이거든요.

 

 

반대로 돈주는 쪽에 붙어서 돈벌겠다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삽니다. 기자 개인에게 줄 수 있는 돈은 그 기자가 써주는 기사가 가져다주는 이익보다 훨씬 적은 편이거든요. 이는 옛 시절보다 기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본의 폭이 커졌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언론을 장악해놓으면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매리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투자는 결코 아까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 투자를 받는 기자와 언론사는 돈주는 물주들, 정보 제공해주는 이들에게 충성하는 거고 그들이 원하는 기자를 외주 받아 써주는 노동의 대가로 다양한 향응을 주고 받는 야합 관계가 됩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영향력과 힘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고,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자기가 그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자기들이 대단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기자들의 오만함과 허영심, 꼴 같잖은 자존심으로 표출되는데, 대표적으로 자신들이 지식인이라고 착각하고 있고 사회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지배층 내지는 그에 준하는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게 그렇습니다. 언론이 기득권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고, 언론의 영향력이 그만큼 강력한 건 사실이지만 그 개개인은 언론사의 중역에 속하는 진짜 주인을 제외하면 그저 일벌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착각입니다.

 

그러나 그 착각은 엘리트 카르텔을 유지하고 그에 속하여 충실하게 일해주는 원동력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그 기득권의 유지 발전을 위한 충실한 행동력에 강력한 동인이 되어줍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경제인들이, 정치인들이 주는 크고 작은 이익들은 일개 기자 입장에서 너무나도 달달하죠.

 

이런 구조적인 조건 속에서 언론 환경은 저널리즘이 아닌 자본주의적 원칙에 충실한 사업이자 장사가 되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일부는 여전히 전근대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법과 도덕, 윤리와 같은 보편적이고 지배적이어야 할 원칙과 규칙보다 나와 남의 구분을 우선시하여 나와 내가 속하는 집단의 식구에겐 특혜와 이익을, 남과 남이 속한 집단에겐 차별과 불평등으로 작동하기에 언론 역시 법과 정의, 평등, 공정과 같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올바른 가치 기준보다 우리 식구와 남을 구분하는 것을 우선하고 그 구분에 따라 언론 권력을 행사합니다.

 

내게 돈 물려주고 정보 제공해주는 분들의 이권과 편의에 언론 권력을 행사하고, 그들을 비판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언론 권력의 온도와 논조는 뚜렷하게, 때때로 교묘하게 차별적이죠. 결코 공정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기준으로 작동하는 언론 권력의 사회적 영향력은 그러한 저열한 언론의 태도를 직시하지 못하고 그럴 여유도 없는 대중들에게 굉장한 효과를 낳고요.

 

그렇게 정의와 불의가 뒤집히고 법조 카르텔과 정치 정당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편적 원칙보다 개별적 사안으로 접근시켜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라고 인식시키며 사회적 갈등을 봉합시키거나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발생시키기도 하며 특정 책임집단에게서 책임을 형해화시키기도 하는 등 정의와 같은 가치는 물론 법적인 영역에서조차 불평등하고 불공정하게 작동하는 것이 한국 언론 지형입니다.

 

이러한 언론 환경은 식민지 시절부터 권력을 휘두르는 위정자들에 의해 형성되고 길들여진 것도 있지만 그것에 적응하고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던 기회주의자들이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리고 그들에 반발한 언론과 기자들이 역도태되면서 만들어진 생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수십년이 지나 21세기가 되고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게 발달한 사회가 된 대한민국에서 기존 부패의 영역과 구조 역시 더 교묘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고도화되었고, 기득권과 언론의 영합, 야합으로 만들어진 엘리트 카르텔 역시 고도화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직접 돈봉투를 찔러주는 것보다 정보를 제공해줌으로써 합법적으로 이익을 얻어낼 수 있게 하고, 그것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에 증인과 증언이 있다해도 아는 검사님과 몇다리 건너서 배정된 착한 판사님을 통해 얼마든지 무혐의, 운이 나빠봐야 집행유예를(그것도 다른 죄목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훨씬 교묘하고, 더 세련된 방식으로 부패의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죠.

 

문제는, 이걸 어떻게 일소할 수 있느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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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나 사회에 있어서 부패함은 자원이 필요한 곳으로 가지 못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원은 돈, 현물, 물자, 상품, 재료 뿐 아니라 노동력과 관리 및 조율, 심지어 절차 진행와 판단 등 인간이 하는 역할 또한 포함합니다. 가령, 성이나 나이, 지역을 근거로 차별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혹은 자격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이, 혹은 자격은 있으되 정당한 절차와 방식을 무시하고 어떠한 직위를 차지하는 경우 또한 있겠지요. 소위, 낙하산이라고 불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보이는 행태를 보았을 때, 강하다고 여겼던 러시아의 치명적인 추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부패한 군대이기 때문에 자원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고, 그탓에 개인무장부터 기갑 장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확한 작전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이 주어지지 않았는데 해당 목적을 달성하기란 불가능하거나 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가령, 폭탄이 없이 폭파 작업을 할 수가 없고, 먹을 수 없는 전투식량을 가지고 장기간 작전 수행은 불가능하며, 기갑병력을 전개하여 보병과 함께 전선을 밀어야 하는데 전차, 장갑차가 없어졌으면 제병합동 작전은 불가능하겠죠.

 

이는 필연적인 실패. 즉, 패전으로 이어집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부정부패로 인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패배하게 됩니다. 역사에는 그러한 크고 작은 사례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장 처참한 사례로는 토목보의 변, 국민방위군 사건 등이 있습니다. 지금의 러시아군의 졸전도 그러한 크고 작은 부정부패가 쌓이고 모여서 발생했죠.

 

 

군대에서는, 정확히 말해서 전쟁 상황에선 적군과 직접적으로 부딪히며 증명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빠르게 증명되는 편입니다. 부패한 군대는 그렇지 않은 군대와 싸워 패배할 것이고, 패배한 이유를 분석하게 될 것이며, 결국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그렇게 빠르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성수대교는 79년도에 최초 개통되어 94년도에 붕괴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89년도에 개점하여 95년도에 붕괴했죠. 이건 그나마 눈에 띄게 보이는 사례들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례들, 심각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크고 작은 부정부패와 비리는 정말 많습니다.

 

그 옛날 촌지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관련 부정부패, 주식시장 관련 경제범죄, 돈과 인맥, 지위를 통해 자기 자식에게 유리한 스펙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그 인맥을 이용해 우월한 지위와 직위를 획득하는 경우도 있으며, 은퇴나 사직 후 회사의 한 자리를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유독 편파적인 판결이나 기소, 변호를 하는 경우 역시 존재합니다. 전관예우는 대표적인 법조 비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회의 크고 작은 영역에서 자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처벌받아야할 사람이 처벌받지 않고, 더 자격 있는 누군가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빼앗고, 내가 투자한 돈이 다른 사람 주머니에 가게 되며, 다른 사람이 가져야할 집을 부당한 방법으로 얻어 큰 차익을 남기기도 합니다.

 

필요한 자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했기에 누군가는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되고 그것들은 쌓이고 쌓여 거시적인 수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불공정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물론 전파되어 그러한 사례를 접한 이들에게도 점차 사회적 신뢰를 잃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한 신뢰의 상실이 확대되어가면 협력과 협동보다는 개인적 성취와 이익에 매몰될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개인들은 분절되어 파편화될 것입니다.

 

민주주의 체제임에도 대의를 위해 국민 개개인이 힘을 모으는데 동의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이는 우리 사회가 어떠한 도전을 받을 때 그것을 이겨나가기 어려워짐을 의미합니다. 당장 경찰, 검찰, 법원에서 보여주는 성차별적인 사례들은 남성들이 여성 피해자를 위해 나서기보단 스스로의 안위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세대, 혹은 특정 계층의 경제적/사회적 고난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일부 포기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자신에게 별다른 손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돕는 것에 인색하게 될 것입니다.

 

 

차별하고 분열시켰기 때문에 우리는 힘을 모으지 못할 것이고, 그 차별과 분열의 근거는 불평등 그 자체에서 나옵니다. 부패는 불평등의 한 형태일 뿐이고요. 필요한 자원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 자체가 불평등합니다. 우리에게 와야 마땅한 자원이 누군가의 주머니로 가는 것이니까요.

 

 

부패는 위기의 순간에 그 해악함을 드러냅니다. 그 자체로도 해악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그것이 특히나 두드러지죠. 바이욘트 댐 역시 부정부패로 인해 수천명이 사망했습니다. 성수대교는 32명, 삼풍백화점은 502명이 사망했습니다. 누군가가 필요한 자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빼돌렸기 때문이고 우리 사회에 거대한 상처와 충격을 발생시켰지요. 이러한 사고는 부정부패가 만들어내는 해악 중 하나일 뿐이고, 한 종류일 뿐입니다.

 

동남아 등의 후진국에서 부패는 그 자체로 경제를 이루기도 합니다. 뇌물을 통해 특정 절차가 진행되기도 하고, 공정한 결과나 유리한 결과를 위해 뇌물을 사용해야 하기도 하죠. 그러나 반대로 이것은 그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거대한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다면 공정한 결과를 기대할 수 없고, 뇌물을 통해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부정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성공과 기회가 뇌물을 비롯한 부정부패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면 당연히 더 많은 뇌물을 낼 수 있는 사람만이 유리할 것이고, 이는 사회적 손실과 빈부격차로 이어집니다.

 

즉, 사회 전체의 성장은 저해되고, 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으며, 능력 있는 개인의 성취 역시 누군가의 자본과 유착에 무력화되죠. 후진국 사회가 성장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러한 부정부패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부패한 군대가 성공할 수 없고, 자원이 필요한 곳에 가지 못한다면 반드시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부패한 사회 역시 위기에 취약하고 평시에도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게 됩니다. 경제성장을 말하면서 경제사범을 방지하고 필요한 만큼의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군대가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이 제공되어야 하고, 필요한 인력이 구성되어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공정한 사회를 바란다면 부정한 방식으로 자격과 직위, 자본과 권력을 취득하고 달성한 사람을 배제해야 하며, 그러한 방식을 막거나 더 나은 방식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그 자체로 불공정을 발생시키는 차별과 혐오 또한 최소화될 수 있도록 억제하고 축소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부정부패와 불공정한 사례에 대해 정파와 이념과 관계 없이 그것을 배제하는 것이 옳고, 애국자의 자세가 바로 그러합니다. 부패한 군대가 강할 수 없듯이, 부패한 사회가 강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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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이라고 피할 수 없는 문제이고 언제나, 어디에서나 부당한 방법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있어왔기에 부정부패는 인간 사회의 핵심 원리 중 하나로 기능한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의롭고 공정하지 못하기에 부정부패는 시대에 따라, 사회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정교해지고, 고도화되면서 배척되기 마련입니다.

 

본디 부정부패라고는 하지만 그게 당연했던 시대도 있었고, 그거 말고는 다른 대안점을 찾지 못하는 집단도 있었으며, 앞서 말했듯, 그 자체로 하나의 원리,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집단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에 있어서 부정부패를 말한다면 결정권자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에게 돈-이권을 찔러주면서 경쟁의 우위를 확보하거나, 또 다른 이권을 배타적으로 차지할 권리를 얻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경우지요.

 

서구 사회는 수백 년 동안의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으며 이러한 것들이 현재의 수준으로 진보하였겠지만, 대체로 18-20세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손아귀에서 서구적 시스템을 이식당한 비서구권은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시행착오들을 생략한 채 지금의 국가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에선 이미 오래전 겪어왔던 것을 지금에서야 겪기도 하고, 아직 시작조차 안 한 국가들도 많지요.

 

유럽 등 서구라고 해서 더 나았던 것은 아닙니다. 더 추악하기도 했고 그들의 시행착오와 갈등을 답습하며 피하거나, 적어도 그 시절 그 수준보다는 좀 더 나은 상태에서 갈등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제도와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여도 더 나쁘게 시작하는 국가도 있지만요.

 

 

부정부패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그것을 감시하고 감독하고 검증하며, 관리할 수 있는 인력과 시스템 자체의 한계에서 기인합니다. 아무리 도덕성이 뛰어난 이들로 정부를 구성한다 한들, 어디에선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정부패가 발생합니다. 이는 그들의 도덕성이 남들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라기보단, 할 수 있기 때문에 하게 된 것이라 해석하는 게 옳습니다.

 

할 수 있으면 당연히 하게 되죠. 당장은 아니고, 모두가 다 하는 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선가 누군가는 반드시 하게 됩니다. 어떤 당위나 사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근대 이전의 세계는 부정부패를 막거나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했습니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을 수도 없고 장부나 서류에 어떤 장난질이 쳐졌는지 검증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실제 장부에 적힌 것과 실물을 확인하기만 해도 되지만 그걸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적발하지 못하는 건 전근대 시절에 흔하디 흔한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물건도 아닌 사람조차도요.

 

 

그리고 서구식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해도 이러한 시대적 관성은 여전히 작용합니다. 후진국과 개도국에서 부정부패 문제가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며, 아예 국가를 돌리는 시스템 중 하나로 작동하는 이유죠. 가령 필리핀 같은 경우는 부정부패로 경제가 돌아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는 비단 필리핀뿐만이 아닙니다.

 

전근대인이 근대인보다 도덕성이 열등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이 살던 시대에 충실한 인식과 가치관을 가진 것뿐입니다. 다르게 말해서 그들의 세계관은 그들이 살아가는 시스템에 맞지 않을 뿐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그들의 세계관이 그들의 국가 시스템보다 후진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애당초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시기를 경험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니 근대적, 현대적 국가 시스템 안에서 그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한국의 사례와도 같습니다. 특히 한국이 적절한 예시이기도 합니다. 가장 성공적으로 현대화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고작 100년 전 한국에는 왕이 존재했습니다.(정확히는 111년 전쯤.) 그러나 그 뒤로부터 약 36년 뒤, 민주주의가 도입됩니다. 그리고 전쟁을 거쳐 70~80년대까지 강력한 산업화의 발전을 겪죠. 90년대는 한국이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전형적인 후진국의 모습에서 현대적 국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던 시기가 됩니다. 밀레니엄이 지나고 2000년대, 명실상부 현대국가에 도착하게 되죠. 거기서 10~20년이 지난 뒤 지금의 모습은 누구도 후진국, 개도국이라 말하지 못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높은 빌딩과 지하철이 깔려 있고, 뛰어난 대중교통 시스템과 전자정부,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빠르고 효율적인 경험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전근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후진국에서 10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성장한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후진적인 부정부패를 겪고 있죠. 물론 이러한 부정부패가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들에게선 발생 빈도가 적을 수는 있어도 말입니다.

 

이것은 100년을 살아가는 각 세대의 세계관이 발전해가는 물질문명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인데, 30년대를 살아가던 이에게 50년대는 다른 세상이고, 6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80년대는 또 다른 세상이며, 8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2000년대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심지어 2000년대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이후의 세상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살 때 왕이 살던 시대를 겪은 이가 약관의 나이에 을사조약으로 왕을 잃고 80살까지 살았다면 70년도까지 살았을 겁니다. 그가 한창 젊었던 시기와 중, 장년을 겪었을 한국의 모습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의 연속이었을 겁니다. 전후 세대도 마찬가지일 거고, 산업화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런 그들이 생각하고 받아들였던 세상에서 부정부패란 지금과 달랐을 거고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러한 부정부패를 막아야 한다는 비교적 공통적인 인식을 가지고 그것들을 막아왔습니다. 여전히 틈과 허점을 파고들며 더 참신하고 교활한 부정부패를 일삼기도 하고, 감시할 수 없는 공간과 자리라는 현실적 허점에서 결정되는 이야기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는 부정부패 또한 여전히 발생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은 정말 여러 가지 요인과 원인으로, 그리고 그만큼 강력한 정신적 동기로 발전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심지어 지리적, 지형적인 원인조차 작동할 겁니다.

 

 

대다수의 후진국은 여전히 부정부패가 당연하고 평범한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적발하거나 제도를 고칠 생각이 없거나 그럴 수 없고, 심지어 그렇게 해봤자 집행의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고, 감시와 검증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들이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의지가 뒤떨어지거나 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이 타국에 비해 열등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단지 그들에겐 시간이 부족할 뿐입니다. 우리야 100년 정도가 걸렸다지만 우리가 특수한 케이스일 뿐, 다른 국가들은 전근대-근대-현대를 거칠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든 그것을 실행하고 집행하기 위해서 부정부패가 없어야 합니다.

 

기계로 비유하자면 작동에 필요한 부품을 빼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더 많은 부정부패의 손길이 닿는다면 실제 작동해야 할 때 삐걱이며 고장 나거나 그 이상으로 사고가 발생하겠죠.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선 시스템적 정비가 필수적입니다. 지금 발생하는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가능한 최대한 막을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실시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관리하는 행정력을 갖추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애당초 부정부패가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봉급이 너무 부족해서 먹고 살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민의 주머니를 약탈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부정부패는 반드시 발생할 겁니다. 모든 시스템은 결국 사람에 의해 돌아가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되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반복될 겁니다. 지금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크고 작은 결정권자들은 자신의 권한과 권력으로 크고 작은 이익을 취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욕심을 실행에 옮겼을 때 거의 반드시 적발되어 처벌되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동시에 부정부패는 나쁜 것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선 그것을 방지하고 적발하며 처벌하는 시스템이 그것이 나쁘다고 여겨 행하지 않는 개인의 도덕성보다 강력하고 합리적인 대책이겠지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위치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것은 그럼에도 개인의 덕성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덕성을 다수가 공유하는 세계관으로서 형성된 사회에선 동일한 시스템을 갖추었으나 그러한 세계관이 빈약한 사회보다 부정부패의 발생이 적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선에서 부정부패가 없진 않았겠지만, 유교적 세계관이 관리들을 정신적으로 통제하며 동시대 다른 국가보단 그나마 나은 처지라 여겨지는 것처럼요.

 

 

그렇기에 후진국-개도국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여전히 부정부패를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며, 사회의 원리로써 작동하는 세계에서 그것은 옳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그들의 요구로 하여금 시스템은 부정부패를 배척하는 쪽으로 변화할 겁니다. 한국이 수십 년 동안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것처럼요. 네, 오래 걸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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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서 바라본 바이온트 댐. STOP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바이온트라는 지역이 나옵니다. 베니스보다 국경에 더 가까운 산간 지역이기도 하죠. 역사적으로는 오스트리아 대공국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를 받던 지역에 포함된 곳이었고, 1866년 이탈리아 통일 운동으로 우디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이 이탈리아 왕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그 동쪽 지역은 오헝 제국에 넘어갔다, 다시 1차대전 때 이곳 전체가 이탈리아로 넘어오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오스트리아의 땅이었는데 아틸라아가 가져온 곳이 되는 거죠. 뭐, 이탈리아 왕국은 망했지만.

 

 

<딱 봐도 댐으로 만들기 좋은 지형.. 하지만 댐은 물을 막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보시다시피 높은 암석산이며 그 협곡이 좁고 길어서 군사적인 관점에선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골에는 피아베 강의 지류가 흐르는 강이 있죠.

 

모든 문제는 이러한 딱 봤을 때 댐을 만들어먹기 좋은 지형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사업가 주세페 볼피는 이 지역에서 돈 냄새는 맡은 거죠. 그는 자신의 사업체인 SAFE라는 전력 회사를 통해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의 공업지대에 전력을 공급하여 큰 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미 주세페는 전기, 철도, 수도 같은 기간산업으로 큰 성과를 올린 사람이니만큼 이번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진행했습니다.

 

사실 사업 자체는 1920년부터 계획되었습니다. 그러나 2차대전도 터지고 하는 통에 일이 잘 안 풀렸고, 그에 따라 본격적인 공사는 56년에 베네치아 북쪽 100km 쯤 떨어진 바이온트 협곡을 막는 건설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리고 약 3년 후, 59년도에 완공하여, 높이 262m, 두께 27m, 담수량 1억 5000만 톤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대규모 댐이었죠.

 

 

 

<딱봐도 뭔가 쏟아진 흔적이 역력한 바이온트 댐의 풍경...>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컸습니다. 먼저, 건설 전 조사 과정에서부터 학자들에 의해 논쟁이 발생했는데, 이곳의 지형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기반암이 계곡 양쪽에서 경사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는 향사구조였다는 겁니다. 심지어 지층에는 점토층을 포함하는 곳인지라, 물에 매우 약한 지반이라는 거죠.

 

다시 말해 물이 많이 모이면 지층이 물러져 산사태가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는 겁니다. 따라서 과학자들과 언론인들은 SADE에 경고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러한 사업에서 발을 빼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부정부패한 국가와 기업이라면 더더욱이죠.

 

오히려 SADE는 그들의 경고를 무시했고, 언론과 정부와 함께 사업 방해를 막으려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물은 불보다 많은 인간을 죽였다.>

 

 

먼저 이탈리아 정부는 댐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언론인, 마을 주민, 반대 운동을 벌이는 사람들부터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체제전복을 획책하는 내란 음모 내지는 파르티잔으로 몰아버립니다. 소송까지 벌일 정도로요. 마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여기에 어디서 더 많이 본 것 같은 짓을 하나 더 합니다. 어용 학자를 동원하거나 학자적 판단보단 정치적, 경제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이들이 자신의 전문성을 객관적으로 펼치기보단, 계곡에서 그러한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거나 설령 난다 하더라도 그 규모는 위협적인 수준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하죠.

 

 

당연히 시민단체들과 주민들은 이러한 판단에 동의하지 않았고, 상식적으로도 석회암 지형은 물에 약하다는 건 공교육을 제대로 배웠다면 알 겁니다. 석회석은 물에 녹는다는 건 어렸을 때 과학 교과서만 제대로 봤어도 머리 어딘가엔 남아 있을 지식이죠. 그러니 댐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정경유착은 그들의 저항 따위는 이도 안 들어갈 정도로 훨씬 공고합니다. 언론은 통제되었고, 앞서 말했듯 반대자들은 지역 주민들을 포함해 파르티잔, 빨갱이가 되었죠. 참으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죠. 아무래도 반도국가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긴 한 모양입니다.

 

 

 

 

<참사의 결과가 어떨지 너무나도 뻔하게 보이는 지도.>

 

 

결국 댐은 완공, 60년 2월부터 담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다음달 3월엔 수위가 130m, 이후 170m까지 올랐는데, 이 시점에서 당연하게도 경고되어왔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죠. 댐 주변 지층에 물이 차면서 석회암 지층으로 이루어진 산이 기울어버린 것입니다. 이 당시 주변 지층의 움직임은 하루 3.5cm 정도의 이동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2km의 거대한 절리가 댐 쪽으로 발생했고요.

 

그리고 60년도 11월 4일, 기어코 산사태가 발생해 토사 70만㎡가 쏟아져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바이온트 댐 측에선 더 큰 일이 벌어질 까 그저 댐 수위를 135m까지 낮추는 정도로만 대처를 해버리죠. 덕분에 지층의 이동은 하루 1mm 정도로 줄어들게 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은 동서고금에 통하다보니, 안전불감증인지 인지부조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욕심과 고집 때문에 SADE는 자신들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그대로 돌립니다. 댐 사용을 중지하거나 타당성 검사를 다시 하거나, 지속적인 경고를 인정하기 보단 수위를 낮추니 괜찮아지니 적당히 높이를 조절해가며 전기를 생산하면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현장에서 사면의 이동 속도를 봐가면서 수위를 다시 높이기 시작했는데, 약 1여년 동안 185m, 235m, 다시 185m로 조잘하며 산의 흙이 얼마나 움직이지는 확인했지만 경계한 것과는 다르게 지층의 이동은 생각보다 빨라지지 않았죠. 그래서 62년 11월엔 수위를 235m까지 올려 버립니다.

 

당연하지만 이 상대적으로 안전해보이는 관찰 동안 간헐적으로 소규모의 산사태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부들은 산사태를 무서워하거나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모여서 산사태를 구경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에겐 별로 위험한 게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참사의 전조였고, 욕심에 눈이 먼 이들은 그 신호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댐의 수위가 240m를 넘자 흙의 이동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아예 1m씩 움직일 정도에 이르러 댐 관리 기술자들은 댐의 수위를 240m까지 낮추기로 결정하죠.

 

 

<그나마 코믹한 짤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끔찍한 참사였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도 SADE와 정부가 아닌 반대하던 지역 주민들이었죠.>

 

 

1963년 10월 9일 오후 10시 39분,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바이온트 댐이 범함한 것이죠. 단 6분이었습니다. 이 댐에서 발생한 사태가 바로 아래, 롱가로네 마을을 집어삼키기까지 말입니다.

 

먼저 댐의 상부 남쪽에 있는 토크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댐에 의해 형성된 인공호수로 2억 3800㎡의 토사가 덮쳤죠. 그리고 그 충격으로 호수의 물은 협곡의 북쪽 사면으로 쏠렸고, 높이 250m나 되는 거대한 메가 쓰나미가 발생해버렸습니다. 파도는 댐을 부순 게 아니라, 넘어서 쏟아졌고 협곡을 타며 6분간 흘러 앞서 사진에 보이는 롱가로네 마을을 비롯하여 리발타, 피라고, 빌라노바, 파에 등의 인근 마을을 쓸어버렸습니다. 이 쓰나미는 1.5km를 더 가고도 70m나 되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가장 가까이 있고 정면에 있는 롱가로네 마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죠. 마을 자체가 쓸려나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요.

 

 

<당시 참사의 그래픽 이미지. 롱가로네 마을이 있는 곳이 완전 수장되어 버렸습니다.>

 

 

추정 사망자는 약 1900~2500명이며, 이 중 절반이 롱가로네 마을 주민들이었습니다. 피해자 중 350여 가구는 가족 전원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였죠. 주민 추산으로는 총 5000명까지도 추산된다고 합니다.

 

 

<사고 이후의 사진.>

 

 

그렇다면 이 참사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식적으로 책임자들에게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것이 맞겠지만, 아시다시피 이탈리아의 부정부패는 이 거대한 참사조차 묻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최소 계획자였던 주세페는 이미 늙어 죽었고, SADE와 정부의 책임자들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부는 이 사고는 인재가 아닌 천재, 신이 하신 일이라며 책임을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는 없죠. 그게 억울할 정도로 과한 책임이라곤 해도 말입니다. 사고발생 후의 재판과정에서 책임을 져야한 고위직, 임원진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SADE와 관련 회사들의 기술자, 실무자 몇 명만이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 공개된 설계자 까를로 세멘짜가 동료에서 썼던 편지를 보면 "그 힘든 공사를 우리는 용케도 아주 운 좋게 멋지게 해냈네. 그러나 내 능력을 벗어난, 나로서는 제어할 수 없는 그 뭔가가 거대한 것에 여전히 대책없이 노출된 상태임은 나는 느낀다네.."라고 적었습니다.

 

댐 설계자부터가 이러한 사업에 위기감과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사였다는 것이지요. 

 

결국 법정에 회부된 기술자들 중 마리오 판치니는 법정 진술 전날 자살, 몇 명은 재판이 끝나지 전에 사망하며, 진짜 책임을 져야할 고위관계자들은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실제 책임과 처벌이라는 독박은 실무진들이 죄다 뒤집어썼죠.

 

 

 

<오, 인간이여.>

 

 

결국 이 사건은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커다란 인명피해를 입힌 정경유착 비리와 잘못된 토건사업이 빚은 참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수많은 책과 영화 등으로 소개되고 분석되었지요.

 

이후 이 지역은 02년 동안 접근 금지구역이었다가 풀렸고, 08년에 유네스코는 인류 역사상 기억해야할 사고로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의외일진 몰라도 댐 자체는 별 피해가 없었습니다. 물들이 넘어가며 댐 상부에 손상을 입혔지만, 댐 자체는 그대로 서서 남았죠. 댐 붕괴사고라곤 하지만, 실제로 댐이 붕괴된 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제 물을 담진 않습니다만..

 

이 사건 이후 이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경적을 울리지 않고, 라디오를 끄며 대화를 중단하거나, 잠시 내려 추모를 한다고 합니다.

 

또한 근처에 사고를 추모하는 작은 성당이 건축되기도 했죠.

 

 

정경유착이라는 것은 한국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생하는 범죄이기도 합니다. 토건과 얽히는 것은 거의 한국의 전통에 가까울 정도로 흔했고요. 이익을 위해 위험을 묻어버리는 기업과 그것을 묵인하는 정부, 학자적 양심보단 정치경제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학자, 정부의 의도대로 사건을 정치화하여 반대자를 공격하는 언론, 주민과 단체, 학자들의 경고와 반대를 찍어누르고 정부의 부당한 공권력 남용 등..

 

정의와 어긋난 일은 그것이 도덕적으로 지탄받는 일이기 때문에만 비판받고 비난에 시달리는 게 아닌, 어떻게든 크고 작은 실질적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위해 그러한 정의를 묵인하고 묵살한다면 언젠간 이익으로 덮을 수 없는 대참사가 발생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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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안 민주당이 똥볼을 차고, 정치싸움과 여론전에서 밀리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현재 발생하고 있는 고위층의 성접대 문제가 정준영의 성범죄로 프레임이 가려지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참으로 답답한 새끼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진짜 개병신 같아 보여요.


자한당 쪽이야 뭔 짓을 해도 극우좀비라 해도 좋을 골수 지지자들이 있기 때문에 무슨 망언을 하고 무슨 비리를 저질러도 용서를 받는 반면, 민주당은 선동정치, 언론플레이도 제대로 못하는 바보들입니다. 물론 기울어진 운동장인 건 인정해야죠. 언론, 검찰, 경찰, 법원 등 각계각층에 뿌리 깊고 끈끈한 연대를 공유하는 극우세력이기에 똑같은 짓을 해도 받아주고 감춰주고 대응해주는 규모와 방식이 다르죠. 편이 더 적은 민주당이 무조건 불리한 싸움입니다.


그럼 최소한 까일 거리를 주질 말아야죠.


그렇기 때문에 자한당과 극우보수의 선동질 수준 자체는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만 거기에 넘어가는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극우와 연결된 언론사가 운동장을 기울게 만들었기 때문에요. 물론 진짜 큰 스캔들, 범죄들이 밝혀지거나 할 때는 이번 정준영 사건처럼 더 높은 곳에서 판을 설계하고 진행시키는 게 보이긴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고위층의 성접대 문제에서 정준영 사건으로 덮으려고 하고 있죠. 증거가 너무 빨리, 많이, 쉽게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 이미 증거는 모아놓고 터뜨린 거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전에도 말했듯이, 국민들의 스펙트럼이, 정치의식에 있어서 중세~현대까지 쭉 있습니다. 근데 극우보수 쪽으로 갈수록 개돼지 중세 백성들이 더 많다는 거죠. 그래서 이쪽은 개돼지 취급 해주면 알아서 노비짓을 하는데, 진보 쪽으로 갈수록 그나마 현대에 가까운 의식 수준이라 그런 이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에선 더 다각적인 고려와 정치공학적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 내 당원들의 스펙트럼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좋든 싫든 지지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스펙트럼은 더 넓습니다. 그래서 민주당은 자기 지지자들에게 만족할만한 걸 내놓기가 더 어렵죠. 극우보수 쪽이야 거의 통합되어 있는 공통된 사상이 있고, 그 내부에서 지런저런 파벌이 존재할 뿐이고, 공통된 적이나 위험 앞에서는 그래도 서로 뭉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각한 분열이 쉽게 발생하지도 않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다시 뭉치게 됩니다.


하지만 진보 쪽은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같은 진보의 틀 내에 있어도 굉장히 쉽고 많은 분열이 발생하기 쉽죠. 지금의 문재인 정권에서도 그런 면이 있고요. 그나마 반문이라던 이들이 문재인 정권 이전에 갈라져 나온 게 있기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의 분열보다는 기존 진보 내에서 민주당과 비민주당(정의당, 녹색당, 국민의당 이후 일부 바미당 등), 진보 언론

간의 분열이 있었죠.


뭐 하여간, 이런 분열 양상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그만큼 진보의 스펙트럼이 넓고, 그렇기 때문에 다수가 만족할만한 걸 찾기 어렵고, 그렇다보니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제안하고 실현하기에 있어서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현재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인식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지난 설훈의 발언처럼 민주당 지지율이 낮아지는 이유가 20대 세대가 보수정권 때 교육을 받아서라는 망언을 한 적 있죠. 뭐 사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의 생각을 차근차근 들어봤을 때 맞는 말일지라도 말을 그렇게 하면 누가 이해를 해주겠습니까.


이게 민주당 내의 보편적인 이해 수준이고 분위기라면, 민주당 놈들은 위기의식 좀 강하게 가져야 할 겁니다. 현실인식부터 다시 해야 하고요. 통치로서의 정치는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이지만, 관계로서의 정치, 선동정치는 진짜 더럽게 못하는 바보들입니다. 불리한 건 인정해도 말이죠.



민주당도 당 색깔을 바꿔야 합니다. 기존 이미지 버려야 되요. 민주당은 고고한 척 하지 말고 노련하고 날카로운 정치적 감각을 가진 이념이나 사상보다 정치적 이익을 세련되게 잡아챌 줄 아는 전문가 코스프레라도 해야 합니다. 


정치에 선악은 없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의지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권력과 (주체가 누군지는 달라질 수 있어도)이익을 위한 정치의 결과로 더 정의롭고 선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저 권력자의 선한 의지와 신념만을 기대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물론 더 정의롭고 선한 정치인의 존재는 좋은 일일진 몰라도, 싸구려 도덕관념이 국가적, 사회적 손실을 야기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어요.


때로는 경쟁자를 씹고 공격하면서 권력을 얻어야 하고, 그렇게 얻은 권력을 더 좋은 곳에 쓰면서 그 결과로 자신들의 성과를 만들어내서 권력과 명예를 얻어야 한다는 겁니다. 거짓선동과 악질적 왜곡이 아니라 존재하는 진실을 이용해서 비판하기만 해도 됩니다. 특히 자한당이 상대라면 이미 깔 거리가 너무도 많고요.


민주당은 정의로운 이미지를 만든 게 아주 독입니다, 독. 자기들이 착한 줄 알고, 착한 척을 하니 정치질 하는데 불리한 거죠.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 정당한 척을 해도 뒤로는 뱀 같은 정치력을 발휘해야죠. 부정해보인다고 해도 언론사 사장도 갈아치우고, 검찰에도 연을 만들고 밀어줘서 자기 진영 사람을 중추에 넣고, 재벌 대기업과 편을 먹는 건 좀 위험한 일이니 차라리 채찍과 당근으로 길들이기라도 해야 합니다.


근데 민주당은 그럴 능력이 없는 건지,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더럽다고 생각해서 그런진 몰라도 이런 걸 못합니다. 안 하는 건지. 


진보새끼들이 고고한 척은 겁나 합니다. 자기 쫀심 때문에 안 하는 것도 있을 겁니다. 자기가 예전에 비판한 거 있으면 그게 자기 족쇄가 되서 그 짓거리 똑같이, 혹은 비슷하게라도 안 하려고 하죠. 근데 상대는 그렇게 한단 말입니다. 악의 방법론은 권력을 획득하고 이익을 창출하는데 있어서 효율적입니다. 그 악의 효율성이 무너지기 전까지는요.


근데 지금 그 방법론이 무너졌습니까? 안 무너졌죠.


뭐 자한당처럼 노골적이고 부정부패한 수준으로 하라는 게 아닙니다. 가령 언론사 사장의 부정부패를 파서 공격하고, 그렇게 물러나게 만들면 자기 사람 넣으라는 거죠. 이게 정당한 명분을 가지고 하는 정치라는 겁니다. 검찰에 연을 만들어서 친민주당 파벌을 만드는 것도 더러운 정치검사를 모으거나 만들라는 게 아닙니다. 검찰 내에 다른 진영의 부정부패를 캐는데 있어서 뒷배가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검찰이 다른 진영의 개가 되는 걸 억지하고, 견제하며, 때로는 그들을 칼로서, 그들의 방패가 되어 자기 일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정치인, 정치집단으로서 해야 하는 관계로서의 정치입니다.


근데 민주당 새끼들은 시발 능력이 없는건지 대가리가 없는건지. 고고한 척은 존나게 하면서 문재인처럼 고고하면서도 능력이라도 있으면 뭐라고 안 하지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맨날 지는 거죠. 그나마 통치, 외교적 안목과 능력이 자한당에 비해 압도적이라는 겁니다. 사실 세계 평균이거나 좀 더 잘하는 편인데, 자한당이 워낙 못해서 압도적인 것 뿐이지만요. 



그러니 더 뛰어난 정치력을 가져야 하고, 그렇기 위해서는 당의 이미지를 바꿔야 합니다. 기존처럼 고고한 척 하며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졌다면 노련한 정치력이 민주당의 더러운 부정으로 덧칠해질 겁니다. 그러니 노련하고 날카로운 정치적 능력을 가진 전문가로 탈바꿈을 해야 합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그런 이미지를 장기적으로 가질 수 있다면 민주당은 운신의 폭과 정치적 가능성의 폭이 더 넓어질 겁니다.


자한당이 수 십년 동안 안보는 보수정당. 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실제 안보를 파괴하고 불안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적 위험 상황에서 지지율에서 이익을 가져간 것만 봐도 실제 능력과 현실보다는 대중이 인식하는 이미지가 어떠한 정치적 이익을 만들어내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만연하고 반복된 부정부패가 대중들에게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여지다보니 이제는 욕 한번 하고 마는 수준이 되어 지지에 큰 변동이나 패널티로 작용하지 않게 되기까지 했죠. 물론 이건 지지 안 할 사람은 안 하고 할 사람은 죽기 전까지 한다는 지형을 고려해야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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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의 핵심은 조중동이고, 진보 언론의 핵심은 한경오라고 하죠.


가장 덩치가 크고, 큰 만큼 영향력도 크니까요. 그런 만큼 각각 진보적 의제와 보수적 의제를 가지고 사회적 이슈로 간접적인 경쟁과 대립을 하곤 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서 그들 중 어느 쪽이 더 정의롭거나 공정하거나 뛰어난 지성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고, 반대로 각각 다른 이념을 기반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거나 전달하기 위함인 것도 아닙니다. 



이들은 그저 서로의 미디어라는 상품을 파는 대상이 달랐던 것 뿐입니다. 조중동은 보수, 우파라는 고객에게 자기들의, 혹은 자기들의 파트너가 원하는 이념과 메시지를 팔았을 뿐이고, 한경오는 그 반대에 불과했습니다.



독재와 부패의 핵심과 오랫동안 붙어 먹은 조중동과 다르게 그들을 오랫동안 비판해왔고, 실제로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투쟁했던 이들도 있는 만큼 한경오가 조금 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 그러한 구분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동질화 되었습니다. 어느 한쪽에 동질화 됐다는 게 아니라, 그냥 똑같은 수준과 냄새로 타락했다는 것 뿐입니다. 


만약 진보 언론이라던 한경오가 그토록 더 도덕적이었다면,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잔혹한 이빨질이 있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누구보다 비윤리적으로 물어 뜯는 개가 되어버렸죠.



그 이유는 그들이 정말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은 정의와 공정을 기치로 대통령직에 올랐고, 그것을 실현시키리라 공언했습니다. 물론 애초에 불가능한 일도 있었고, 어떤 것들은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으며, 어떤 문제에 대해선 야당과 언론, 일부 국민의 불공정하고 부당한 발목잡기와 공격이 있었기 때문에 실현하지 못하고 있죠.


이는 어떠한 면에선 분명 비판의 요인이 되고, 되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원론과 별개로 한경오가 그러한 부정부패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이 정부를 그토록 잔혹하게 물어뜯는 이유는, 그들 또한 조중동과 다를 바 없이 부정부패하고 타락한 집단이었기 때문이죠.


자신들 또한 그러한 부정부패와 함께 재미 좀 봤던 이들이기도 합니다. 당장 부정청탁 금지법. 흔히 김영란 법이라 알려진 그 법을 추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진보 언론이라는 이들은 보수 언론이라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여러 정부의 더 도덕적이고 더 정의로운 정책과 개혁을 꾸준히 반대해 왔습니다.


부정, 혹은 특혜를 옹호하는 자들은 그것의 혜택을 받는 자들이거나 노예근성 쩌는 개돼지인 경우인 점을 생각해본다면, 언론 권력을 쥐고 있고 직접 휘두르는 기자, 언론인, 언론사의 행동이 어떠한 기저에서 나왔는 지는 명약관화한 셈이죠.


'그들'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상당히 닮았어요. 언론 또한 기업이고, 한국에서 기업에게서 도덕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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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짤라야할 때 간혹 이런 이야기가 나오곤 합니다.


저 뛰어난 사람, 더 높은 직위에 올라간 사람을 내치면 일할 사람 누가 있겠느냐. 


귀한 사람은 고쳐 쓰는 거라는 말이죠.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닙니다. 고장 났음에도 쓸 수밖에 없을 때나 쓰는 것 뿐이죠. 실제로 말은 안 할 뿐이지 부정부패한 범죄자를 다시 데려와서 다른 높은 자리에 보내거나, 다시 쓰는 경우는 꽤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에 욕 한번 하고 마는 것 뿐이지 사실 굉장히 무감각한 것도 찾아볼 수 있고요.


하지만 우리가 그런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배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겐 인재가 썩어 넘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없다. 인재가 없다는 말은 웃기지도 않은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내 입맛에 맞는 사람이 없다. 라는 말로 바꿔야 합니다. 내 편이 아니어서 입맛에 안 맞고, 내 진영이 아니라 입맛에 안 맞고, 내 이해관계와 달라서 입맛에 안 맞는 거죠.


한국은 세계에서 대학진학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고, 고스펙에 능력도 뛰어난 사람들 많습니다. 젊은 이들 중에도 많고,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기존의 기득권에 편입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능력은 있는 자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이거나, 그들의 집단과 사상, 이해관계 등이 다르기 때문이죠.


가령, 부정부패한 집단엔 청렴한 인재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가도 못 버티곤 하고요.



그런 집단 내에서 부정부패나 범죄, 다른 도덕적 문제 등으로 인해 짤릴 때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쉴드를 치곤 하는데, 그 변명과 명분 중에서도 쓸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 같은 이야기는 그냥 같은 편, 같은 진영의 소속원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고, 우리는 그런 집단을 카르텔이라 부릅니다. 


인재는 많아요. 진짜 정말 많습니다. 단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에 배제 당하는 것이고, 카르텔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봐주고 지켜주기 위해 견고하게 이루어진 것 뿐이죠.


정당하고 정의로운 집단이라면 그런 정치적 논리와 의도하에 굳이 보호하지 않을 겁니다. 최소한 그 선이 매우 높겠죠. 아무나 지켜주지 않을.



고위직이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은 사회적 손실을 발생시키는 거고, 그 직위가 높고, 그 권한이 클수록 그 병폐는 더 크고 더 넓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정당한 처벌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논리와 진영논리로 그런 고장난 부품을 지키는 것은 결국 고장난 부품을 그대로 굴리는 일이고, 고쳐지지 못한 장치는 결국 망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국가는 그렇게 쉽게 망하는 게 아니니 더 큰 피해를 발생시키는 더 큰 고장이 나게 되죠.


부패의 카르텔을 없애야 하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부정부패란 정의롭지 않은(不正) 도덕적, 정신적 타락(腐敗)을 말합니다. 정의롭지 않은 것이 전체의 이익을 발생시킬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다수의 이익을 착취하여 소수의 이익으로 걸러내죠. 이익은 내꺼, 손해는 니꺼.



인재가 없는 것도, 적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고장난 부품을 빠르게 교체해내야 합니다. 물론 그 정도를 따져야 할 것이고, 그 처벌의 선상은 공정해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 선상을 넘은 고장이라면, 그 부품은 교체되어야 맞죠.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그 비용이 더 크다면 새로 쓰는 게 맞습니다.



따라서 인재가 없다느니 정치공세라느니 큰 문제가 아니라느니 하는 둥 하는 이들은 딱 두가지 부류밖에 없습니다. 선동에 넘어간 자, 혹은 선동을 하는 자. 


후자의 경우 자기 진영의 인물, 자기가 소속된 카르텔을 지켜야 한다는 직간접적인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전자의 경우는 그냥 자기 의견과 판단력 없이 그 부패한 진영의 정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앵무새처럼 떠드는 것 뿐입니다. 다시 말해, 선동 당했다는 겁니다.



현재 한국의 고위 공직자, 고위 재계 인사 중에서 가볍지 않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생각해본다면, 정말 거대한 규모의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결론만 나옵니다. 이 또한 결코 작지 않은 파장과 여파, 비용과 손실을 발생시키겠지만, 해야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하는 게 맞습니다. 할 수 있느냐는 별개고 그 방법 또한 다양할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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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UAE 극비 양해각서에 '유사시 군사적 지원' 포함

http://v.media.daum.net/v/20180108203900171?f=m&rcmd=rn
김종대 "UAE 양해각서 상상초월..한미 관계보다 높은 수준

http://v.media.daum.net/v/20180108203859170?f=m

[단독] 김태영 "UAE와 군사협약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 하자 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25&aid=0002788178&sid1=001

칼둔 오자 발빼는 자유한국당 “UAE에 초점 맞춰선 안돼”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26859.html

UAE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 "MB, 형사책임 물어야""현직이면 탄핵"

http://v.media.daum.net/v/20180109122400807
임종석-칼둔 "한·UAE, 포괄·전면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합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421&aid=0003140383&sid1=001
靑 "칼둔 청장, 임종석과 회동에서 한국 언론보도에 유감 표명"(속보)
http://v.media.daum.net/v/20180109152605612
[단독] 김태영 "UAE와 비밀 군사협정…파병 안 되면 그때 설명하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37&aid=0000172074&viewType=pc
[사설] UAE 문제, 결국 '적폐 청산' 소동이 부른 평지풍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09/2018010903082.html
[사설]말 많던 UAE 의혹, 原電 아닌 비밀군사협정 문제였나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80109/88098040/1

[사설]UAE 상대로 국제 사기극 벌인 김태영 전 국방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092048015&code=990101

나경원 “UAE 비밀군사협정, MB 칭찬받을 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1063693


인생을 사기와 정치질로 성공해온 전과 14범 범죄자다운 정치와 통치였네요. 아예 국제단위에서 사기를 칠 정도이니. U에 원전수주는 하고 싶은데 국회비준 없이는 군사파견이 불가능하고. 결국 자동파병 조항을 넣어서 원전 수주를 받기 위해 실제론 국회 허락도 안 받았으면서 조항 넣어주면서, UAE에겐 구라치고 비공개 협약으로 대충 마무리지으며 넘어간 겁니다. 


근데 당연히 이에 대해 문제가 없을 수가 없죠. 국회비준이 없었으니 해당 협약은 무효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국가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협약 자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협약을 통해 얻어낸 계약이나 이권 등은 당연히 나가리가 되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한국은 UAE의 원전 수주를 받았는데, 정작 UAE는 그 협약을 통한 조건을 이행 받을 수 없다?


이거 사기입니다. 거짓말로 상대를 속이고 이익을 얻었다면 그게 법적으로 사기죠. 이 사건은 이명박과 그 정권이 저지른 국제적 사기 범죄입니다.


근데 MB 정권은 이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 정권이 바뀌어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그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넘기지 않았던 것이고, 그 때문에 박근혜 정권과 친박계도 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서 임정석이 UAE에 갔을 때 국정조사 어쩌고 하면서 물어 뜯은 건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새누리당 시절 이명박의 빅똥 of 씹똥이다보니 갑자기 아가리 닥치고 UAE에 집중하면 안 된다는 개소리하면서 말 바꾸고 있는 거죠.


그리고 앞서 말했듯, 제대로 말을 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인계되지 않은 거고, 박근혜 정권으로 넘어갔고, 다시 문재인 정부로 넘어와서 폭탄이 된 겁니다.


그 때문에 그에 대한 협약을 가지고 이야기한 UAE에 대해 문 정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기에 솔직하게,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국회동의 없이는 군사 파견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돌려줬고, UAE 쪽에선 협약과 이야기가 달라지니 화를 낸 거죠. 이권은 얻어냈으면서 말이 달라지고 이제까지 속아왔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쉽게 말해서 자기들 속이고 원전 계약 따낸 겁니다. 사기죠. 이거 국제사기입니다. 이명박이 저지른 참 대범하고 답도 없는 행위죠.


그런데 군인이라는 놈들이, 국민의 안전과 국가적 안보를 지켜야할 놈들이, 국익을 침해할 수 있는 국제적 사기 행위에 일조했다는 게 참으로 얼척 없습니다. 사실상 국가 반역행위이고 그러한 행위에 일조했다는 건데, 반역 행위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 동안 문제있는 건 다 알고 있으면서 입 닥치고 있다 이제 문제가 알려지니 그 동안 문제가 있을까봐, 그때가서 허락 받으면 되니까, 그게 국익을 위해서라고 판단해서 같은 개헛소리나 하고 있으니 원.. 



정말이지, 이명박의 사기꾼 기질이 이렇게 광범위하고 치명적 손실과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수준일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국가를 자신들의 수익창출 용도로 사용하고 국가의 발전과 사회적 안정, 국민의 평안을 위해 이바지 하는 데엔 어떠한 관심도 없었다는 거죠.


지금껏 살아오면서 치적을 쌓아왔던 방식처럼, 사기를 치며 5년 동안 최대한 꿀빨자라는 생각으로 국민이 임명한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며 거대한 범죄 행위를 해왔다는 거니까요.


진짜로, 극우보수 세력의 안목이라는 게 이토록 볼품없고 처참하며 그러한 민주적 소양의 부족으로 인해 국가적 손해를 발생시키면서 자신들은 그에 대한 어떠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그 이전에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니, 이 나라가 적폐 똥통 속에 빠져 후퇴만 반복하고 서민 대다수는 점점 삶이 어려워지며, 국가와 사회는 점차 정의에서 벌어지는 망국적 길을 걸어왔던 게 이해가 됩니다.


극우보수가 뽑아준 모든 대통령들이, 세대와 시대를 고려해서도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최근 2명의 대선 당선자 모두가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극우보수 국민들의 처참하고 한심한 안목을 통감하고 슬플 뿐입니다.



결국 이 때문에 임종석이 UAE에 가면서 포괄, 전면 전략적동반자 관계로 합의를 봤던 것처럼, 결국 이명박이 싸놓은 똥, 사기 행위 때문에 국익에 손해가 되는 합의를 강제로 맺을 수 밖에 없게 된 겁니다. 그나마 이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능한 이들이 머리를 쥐어 짜내 그나마 수습한 거죠. 정식 협약을 맺는 쪽으로 가면서. 에휴..


이명박이라는 부정부패의 거두를 반드시 잡고 그 공범들을 구속해서 반드시, 반드시 처벌해야 하는 이유죠. 죄를 지었다면 책임을 져야하고, 그러한 책임을 지게 하면서 이와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못하게 사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법을 우롱하는 이유는 그래도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다면 법을 우습게 알아도 된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대로 처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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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특검1호 ‘사드(THAAD)’ “리베이트 의혹 밝힌다”

http://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7084

[단독] 軍 전관 동원 '엉터리 감리'..檢 '방산 적폐' 첫 적발

문 대통령, 4대강 '정책감사' 지시…"위법 발견시 상응 조치"
민주당 "4대강, 22조 혈세로 만든 수생태계 파괴 주범"
'4대강' 수중촬영서 부실설계 등 증거 발견…"전면 조사 필요"
윤석열 지검장 "검찰 비판에는 국민 기대 반영돼..거듭나야"
文정부, '이적행위' 방위사업 비리에 칼 댄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 폭발..90% 육박


이외에도 많은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데, 이런 행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권에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글자 그대로 국가정상화 작업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다고 봅니다.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지난 9년은 비정상이었다는 말이죠. 이를 비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처럼 지난 보수 정권 하에선 온갖 비리, 부정부패, 비상식, 유전무죄, 정경유착 등의 온갖 적폐가 기를 피고 활개치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9년 동안 민생은 어려워만지고, 국민들과 청년들은 절망과 분노, 냉소와 증오만 해왔었죠.


하지만 문재인 정권이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 된 이때, 국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과 호의 뿐이죠. 일부 잡것들의 불만도 있지만, 지난 시절 문재인을 비판했던 이들마저도 마음 돌리게 만드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문재인이라는 인물의 영향력을 대통령이라는 말에 맞게 거대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라고 있고요.


그 놈이 그 놈이다,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변하는 거 없다. 그동안 새누리당에 표를 줬던 이들이 했던 변명들이죠. 그 놈이 그 놈이고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변하는 건 없다면서 새누리 여당 시절 무조건 1번만 찍어댔던 이들이 자신들의 논리적 결함과 신념 없는 충성이라는 내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내뱉었던 인지부조화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어떻습니까? 극우보수 세력에서 배출하는 대통령과 대선 후보들은 모두 똑같은 적폐, 쓰레기, 부정부패와 비상식, 구시대의 첨병에 불과했지만 진보좌파 세력에서 배출한 대통령은 분명히 달랐고, 다릅니다.


지난 세월의 구태와 적폐를 하나하나 차례차례 격파하고 바로잡으려고 하고 있고, 이는 분명히 국가적 역량을 길러주는 작업들입니다. 비효율을 일소하고 민주적 가치를 따르며 내실을 강조할 수 있죠. 확실히 다릅니다. 보수정권과 진보정권은 확실히 달라요.


보수정권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만을 위해 일했던 위선자들이자 이기주의자들이었다면, 진보정권은 정치의 본질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이었죠. 국가와 사회, 국민들을 위해 일하고 더 강하고 더 뛰어난 국가와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이상을 따르며, 실제로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이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정권은 사람 살 곳이 못 되고, 진보정권은 살기 좋은 곳이라는 거고요. 진보정권의 인사들은 확실히 유능하고, 자기가 뭘 해야할 지 알고 있습니다. 정의롭고, 더 도덕적입니다. 무엇이 중요한 지 확실히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중요한 것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해야할 지도 알고 있죠.


단지 자신들에게 돌아올 책임과 비난이 두려워 숨기고 발뺌하고, 남탓하며 선동만 해왔던 위선적 쓰레기들과 분명 구분되는 모습입니다. 이런 분명한 차이를 두고 그 놈이 그 놈이라느니 어쩐다느니 한다면 그건 지능의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고, 이는 자기합리화이자 인지부조화거나, 아니면 말했듯 지능의 문제죠.


현재의 박사모 같은 세뇌된 좀비들이 그렇습니다. 지능에 문제가 있는 작자들이죠. 쓰레기 똥통 속에서 살고자 하는 건 파리 유충들이면 충분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순 없죠.


그리고 전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권이 절 더 나은,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 수 있게 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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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되어 서로 다투는 집안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 에이브러햄 링컨, 1858년 연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익으로 분열되고 범죄로 뭉친다. 

- 볼테르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는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 보상을 통해 살아남은 학생의 부모와 죽은 학생의 부모를 분열시켜 싸움을 붙혔죠.


또한 어버이연합를 비롯한 보수단체를 동원하여 돈 때문에 정부에 반대한다는 선동을 했고, 지적수준이 낮은 보수국민들은 그에 홀라당 넘어가서 국민을 분열시켜 싸움을 붙혔습니다.


이러한 국민분열을 통해 새누리당과 정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죠. 1) 자신들에 대한 이슈, 책임론의 집중 흐리기 2) 대중의 이슈에 대한 정신력 고갈 3) 논란에 따른 이슈 늘어뜨리기 4) 그러한 시간 벌이와 분열적 다툼을 통해 유가족들의 포기 유도.


이러한 분열을 통한 논란과 이슈 생성은 대중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신력(인지력)을 고갈시키게 만듭니다. 그러한 정신력의 고갈을 통해 나오는 아주 질 나쁜 말이 바로 '이제 그만하자. 지겹다.'입니다. 지겹진 하겠죠. 몇 주 몇 달 동안 같은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누가 잘못했냐, 뭐가 문제냐, 어떻게 할 것이냐 등등이 새롭게, 그리고 똑같이 반복되니까요.


물론 세월호 때는 고작 며칠만에 지겹다 그만하자 같은 선동이 나타났지만..


하여간, 이러한 분열은 대중들로 하여금 수평폭력을 발생시키게 합니다. 볼테르의 말처럼, 이익으로 분열시키는 거죠. 어린이집, 임금피크제 등, 이러한 정책은 대중을 분열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그들의 목적이든 아니든, 분명하게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은 사실이죠.


물론 이익만으로 분열시키는 건 아닙니다. 정치적 신념이나 사상 따위로도 분열시키죠. 사람의 목숨과 제도, 부정부패의 문제를 정치적 갈등으로 선동하여 프레임을 짜고 그에 맞게 싸움을 붙혔던 것도 세월호 때 나타난 사례고요. 



이러한 정신력과 인지력에 대해 설명한 좋은 글이 있습니다.



...몇몇 심리학적 연구결과를 보면 까다로운 인지작업과 유혹의 도전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은 유혹에 굴복할 가능성이 더 높다. 매우 중요한 일이니 1~2분 동안 7자리 숫자를 기억하라느 요구를 받았다고 가정하자. 숫자에 집중하는 동안, 건강에 해로운 초콜릿 케이크와 건강에 이로운 과일 샐러드라는 두 가지 디저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험 결과를 보면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유혹적인 초콜릿 케이크를 선택할 확률이 더 높다. 시스템 2(이성)가 바쁘면 시스템 1(본능, 직관)이 행동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 그 시스템 1은 단 것을 좋아한다.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인지 부하가' 자제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면과 마찬가지로 음주도 똑같은 효과를 낸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동료들이 수행한 일련의 놀라운 실험들을 보면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바우마이스터는 의자나 자제력 유지 노력이 피곤한 일임을 거듭 확인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런 현상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 다니엘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


훌륭한 설명이기에 더 덧분힐 것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문장이 몇개 있죠. 



'인지적으로 바쁜' 사람들은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성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피상적인 판단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인지적이건 감정적이건 신체적이건 상관없이 모든 다양한 자발적 노력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정신 에너지의 공유풀에 의존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해야 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않거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



이 세 부분이 핵심입니다. 여러 이슈를 만들어내어 그 이슈에 대해 판단력을 발휘하게끔 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것들을 한참 나중에 등장시키는 것은, 단지 그것에서 비롯된 갈등과 논란이 많고 논의에 따른 결과가 그만큼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역할을 통해 대중들의 정신력(인지력)을 고갈시키고 자아 고갈 상태인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의도했던 결과만을 내놓고 납득, 인정시키거나, 혹은 그에 대해 더 싸움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넘어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분열은 그러한 논란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적절한 것인데, 책임소재가 명확하고 단일된 입장의 대중과 싸우는 것은 필패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책임소재를 불명확하게 만들고, 단일된 입장을 분열시켜 그 자체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어 정신력을 고갈시키는 것은 해당 책임자, 정치세력에겐 매우 현명하고 바람직한 방법이 되죠.


물론 그것이 정의롭거나 올바르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각자에게는 그것이 필요할 뿐이죠. 비정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새누리당을 위시한 보수정당은 오랫동안 기민하게 살아남았죠. 그런 의미에서 아래의 기사는 그들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죠. 자신들이 하는 나쁜 짓을 남들이 한다고 모함하며 선동하는 것. 사례는 많습니다. 당장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이용하며 했던 어용 대중선동들부터가 뿌리가 깊죠.



박 대통령 "분열 꾀하며 북한 옹호하는 세력 막아야"



하지만 정작 생각해보면 국민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새누리당의 전문입니다. 성주 사드, 세월호,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를 이용한 어용 선동, 테러방지법, 메르스, 교학사 교과서, 국정교과서, 노동개혁, 임금피크제, 철도 민영화, 귀족노조, 국정원-새누리당-청와대-군의 여론조작 선동.

위 링크의 말을 그대로 적용하자면,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를 비롯한 보수 세력 전반이 곧 빨갱이, 북한 옹호세력이 되는 겁니다. 우스운 일이죠. 링컨의 말마따라 대한민국을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안보, 경제 이슈를 주장해온 보수 그 자체라는 점이요.


이러한 분열이 잘 먹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국민들의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보수 국민 대부분은 확실하게요. 

2016/07/12 - [취미/이야기] - 극우보수가 보는 미개한 개돼지들.

2015/12/31 - [취미/이야기] - 정치병의 발병원인.

2013/12/19 - [취미/이야기] - 판단을 하지 못하는.


스스로 판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카너먼이 말하듯) 피상적인 판단을 하며, 진영에 따라 입장을 정하고 언론이나 정부 등 자기편이 하는 말만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그 외의 것은 무조건 배격하는 등의 태도 때문에요. 전혀 민주적 소양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그들의 태도와 지적수준과 사상적 빈약함이 선동에 있어선 최고의 조건이니까요.



참고로 이러한 '자아 고갈' 현상은 단순히 사회적, 정치적인 혼란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아 고갈 현상은 저소득층이 자신들의 이권을 대변하지 않는 보수정당에 표를 주고 지지하는 계급 배반 현상 또한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설명하게 될 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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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고 변하려고 하지 않는,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문제라 여기지 않거나, 해결의지가 없는 현재의 세태를 우리는 헬죠센이라고 부르지만, 기실 이러한 헬조센 문제는 극우, 수구세력이 득세한 비정상적인 정치환경을 가지게된 국가라면 어디가 됐든 같은 특성을 공유할 뿐입니다.


그것이 현재에 와서 똥재팬이나 헬죠센이라는 표현으로 비판, 조롱을 받을 뿐이죠.



한국을 헬죠센으로 만든 원인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먼저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은 정상적인 국가와는 다른 프로세스로 진행됩니다.


일단 문제나 위기가 생기고 그것을 인지하게 되면 좋든 싫은 그 위기에 대해 대응하게 되는데, 한국 같은 사회에선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이죠.


1.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고 빠져들게 하여 문제나 위기 따위에 관심이 없도록 한다는 3S 정책.

2.문제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탈이념, 탈정치 등의 개소리와 그러한 문제에 대한 저항, 사회운동에 대해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같은 헛소리 운운.

3.문제를 인식해도 그에 대해 행동하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만드는 시위억제, 언론 및 집회, 결사의 자유 무력화.

4.끊임없이 현재의 기득권을 쥔 세력은 문제, 위기에 대해 잘 대응하고 있다는 거짓선동.



기득권 세력, 집권세력과 그 세력과 뜻을 같이하고 이권을 나눠먹는 이들이 이러한 헬죠센을 만드는 것에 일조하는 이들인데, 잘 생각해봅시다. 어째서 그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해결을 방해하려는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러한 문제가 자신들의 이권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기 때문이죠. 자신들의 이권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은 그러한 문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자신들에게 손해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해결과 관련된 모든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 거죠. 관심이 없도록, 문제해결에 대한 말도, 행동도 부정적인 것으로 틀어막는 것.


가령 경제인,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생각해봅시다. 그들이 수 천억의 분식회계를 저질러도 고작 몇 년의 형을 선고 받고 그 중 몇 개월만 지나면 집행유예나 보석으로 풀려나서 그 자리 그대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에 대한 지적에 대해 극우 정치권은 국가 경제를 들먹이며 이들이 있어야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내뱉죠.


2015/09/22 - [취미/이야기] - 경제에 대한 태도로 보는 진짜 보수.


그러한 말을 하는 본인이나 본인들 세력이 그 경제인과 이권을 같이 하는 '인맥, 파벌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에 대한 지적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반박하고, 계속 지적하고 문제삼으면 빨갱이니 종북이니 하는 프레임을 씌우죠. 마치 범죄인과 그 형편없는 처벌에 대한 비판이 나라를 무너뜨릴 것처럼 여기면서 말입니다.


이에 대해 그 정치권에 선동과 세뇌를 당한 국민들은 그 의견을 같이하면서 나라를 분열시킵니다. 이는 분열이 맞아요. 문제가 있는 것에 대한 지적과 비판을 그 자체로 잘못된 것으로 여기게끔 하는 것이니 논의도 뭣도 아닌 분열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변하지도 않고 변하려 하지도 않는 헬죠센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막으려 든다면, 그들이 그것을 통해 이득을 본다는 것이고, 그러한 이득을 보는 자들과 그러한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문제를 막으려 들지 않는다는 것은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죠. 하지만 국민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으니 절대 변하지 않는 헬죠센이 탄생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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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인(淸人)의 집은 음침하기 측량 없어 일본 사람의 정결하고 명랑한 집에 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의 똥뒷간 같은 집이야 어찌 청인의 2층집에 비하겠는가."


"내나라 자랑할 일은 하나도 없고, 다만 흉 잡힐 일만 많으매 일변 한심하며, 일변 일본이 부러워 못견디겠도다."

1888년 12월 29일


"조선이 지금의 야만적 상태에 머무느니 차라리 문명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낫겠다."

1890년 5월 18일


"이 수치스러운 조선역사에 대하여 더 알면 알수록 현 왕조하에서는 개혁의 희망이 없음을 확신하게 된다. 

정부는 500여년간 국가의 향상을 위하여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조선인의 특징은 한 사람이 멍석말이를 당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고 다 함께 달려들어 무조건 몰매를 때리고 보는 것입니다."


- 좌옹 윤치호



2013/11/09 - [취미/이야기] - 망국의 징조.


그만큼 나라 꼬라지가 막되먹었다는 거죠. 대개 나라가 무너질 때는 온전히 외침보다는 부정부패와 사회기강의 붕괴로 인한 내부에서의 병폐 때문에 망합니다.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거나, 해결하지 못하면 백성들이 못살겠다 하고 들고 일어나서 반란을 일으키는 거죠. 그렇게 한바탕 내전이 터지거나 혁명 따위가 터져서 뒤집어 엎어질 수도 있고, 그런 가장 약할 때를 틈 타 외적이 침입해서 무너질 수도 있죠. 적이 강할 때 공격하는 머저리는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조선 말기도, 그리고 현재의 대한민국도 나라 꼬라지가 정상은 아니라는 겁니다. 대다수의 백성,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나라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전근대의 조선도 500년은 갔는데,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고작 100년도 못가서 헬조센 소리가 나온다는 걸 보면 건국 이후로 꾸준히 주류로 군림해온 세력과 그 후신들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밖에 설명 못한다고 봅니다.

네, 결국엔 그 말이죠. 고작 100년만에 나라가 망할 때 보이는 징조가 다 보이고 있다는 겁니다. 조선도 500년은 갔는데 정작 새롭게 건국된 현대국가인 대한민국이 고작 100년만에 망국의 징조가 다 보인다는 거죠. 한비자, 간디가 했던 망국의 징조들이 죄다 해당됩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말이죠. 어떤 정의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간간히 보이는 국민들의 선의만이 우리를 위로해줄 뿐이죠.

현대에 와선 예전처럼 외침으로 인해 급격하게 망할 일은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줄어들었으니 이제 남은 건 망할 때까지 질기고 오래 고통 받는 거 밖에 없죠. 

진짜 암울한 미래로 우리가 나라를 이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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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경제인들이 아주 살판났죠. 대놓고 경제인은 비리를 저질러도 사면시켜줘야 한다는 개소리가 나도는 걸 보면 말입니다. 실제로 이명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범죄를 저지른 기업인, 경제인들에 대한 처벌은 정말 약해졌죠. 수 억원어치 막노동도 나름 대표적인 사건이고.


심지어 그걸 지지하거나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물론 백이면 백 새누리당 지지자죠. 그들은 나라 경제를 위해서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그 자체로 틀린 말입니다. 오히려 나라 경제를 파탄시키는 짓이거든요.



이유는 이런 겁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 새끼들이 세금 안 내고 분식회계에 순환출자 꼼수, 정경유착 같은 비리, 부정부패 저지르는 건 다 지들 배때지에 쳐넣기 위해서지 너님들이나 나라꼴 잘 되라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겁니다. 즉, 그 돈 벌어서 부정부패한 자기 뱃 속으로 들어가지 세금을 더 내는 것도 아니고, 그 돈이 일반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런 기업인들 처벌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보수님들 한테도 마찬가지고요.


오히려 그러한 부정부패와 비리는 나라 경제를 파탄내고 국민들의 재산에 손해를 입히는 악질 범죄입니다. 예컨데 어떤 기업이 자신들의 실적을 조작을 한다고 칩니다. 그 기업에 대한 주식을 누가사죠? 다른 기업,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인들이죠. 그런 사람들이 어디 한 두푼 투자하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에겐 꽤 큰 돈을 투자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의 사업설명을 듣고 자기들이 공개한 실적을 보니까 이게 또 돈이 될 거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은 돈을 투자했죠. 그런데 이게 웬 걸? 몇 달 지나니까 이 기업에서 실적에 대한 조작이 이루어졌고 각종 부정부패가 이루어 졌으며 그러한 이유로 그 동안 밝혀왔던 성장세는 거품에 사기, 앞으로의 성장세는 커녕 타격을 받고 주식은 쭉 하락하고 있네요. 자, 그런 내 주식은 뭐가 되는 걸까요? 똥이나 닦는 종이 쪼가리 되는 거죠. 한강 수온 재러 가야 하는 겁니다.


고작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이 이런 겁니다. 개인의 재산을 날려먹는 거. 그런데 그 개인이 엄청나게 많다는 거. 그리고 그런 기업이 한 둘도 아니라는 거. 또 그런 기업인이 다시 경영하면서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는 것도.


이러한 부정부패와 비리는 국가의 경제와 경제구조에도 영향을 주는 데, 그러한 사기와 부정부패가 반복되고 고쳐지지 않을 수록 국가의 경제구조는 당연히 비틀리고 왜곡되겠죠. 그러한 구조 속에서 힘 없는 다수는 더 많은 피해와 손해를 보게 될 것이고, 그러한 구조 속에서 힘 있는 소수는 더 많은 돈을 벌 게 됩니다. 똑같은 비리 반복해도 별 처벌 없으며 다시 높은 자리 꿰어차 돈은 계속 벌 수 있고 그러다보면 공권력 눈치 보다가 다시 똑같은 짓 반복하면 되거든요.


이 나라에서 수 천억 부정부패 해서 내는 벌금 얼마입니까. 기껏해야 수 억원이고 적으면 수 천만원, 수 백만원 단위잖아요. 그러니 그런 범죄를 안 저지르는 게 병신이지.


국가 경제구조가 왜곡된다는 건 그만큼 국가 경제에 장단기적인 해를 지속적으로 끼친다는 겁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성장은 지속적일 수 없으며 완만할 수 없습니다. 불만은 더욱 커지겠고요.


당장 내 돈을 저 개새끼들 때문에 날려먹었는 데 누굴 믿고 어디에 투자하겠습니까? 투자 안 하죠. A 기업에 투자했던 옆집 김씨 아저씨도 이번 달 터진 조세포탈 분식회계 사건 때문에 주식 폭락하고 한강 물 올려준 물고기 밥이 되버렸는 데 그걸 꼴 보면 뭐 주식이니 뭐니 하고 싶겠습니까?


이런 문제는 비단 주식만이 아니고 말이죠.



다시 말하건데, 그 놈들이 부정부패, 비리 저지르는 이유는 국민들 잘 되라고, 나라 잘 되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나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내 새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짓입니다. 이게 국가에 도움이 되는 건 전혀 없어요. 전체 GDP가 높으면 뭐합니까. 내 손에 쥐어지는 돈도 아닌데.



안보라는 건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하는 겁니다. 부정부패와 비리를 저지르며 남의 돈 등쳐먹는 건 단순한 경제사범입니다. 범죄죠. 그에 대한 처벌이 있고 더 나아가 그러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오히려 이 나라는 그런 범죄자들을 사면시켜주고 처벌도 제대로 안 합니다.


즉, 안보를 파괴하고 있다는 소립니다. 그 기업인들이 사면 받고 나면 정신차려서 제대로 경영할까요? 뭐 별 큰 벌도 안 받았는 데 정신을 차리긴 뭘 차립니까. 똑같은 짓 안 걸리게 또 하는 거지. 그런 악질 범죄자들을 다시 사회에 풀어주는 거야말로 진짜 안보에 대한 위협이고 파괴입니다. 네, 이 나라 보수라는 작자들이 그러고 있어요.


국가 경제구조를 왜곡하고 파괴하고 있으며, 국민들 재산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고 있지도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위험성을 조장하고 있죠.


이거 이야기만 들으면 딱 '사보타주'죠. 뭐가 간첩입니까. 이런 게 간첩이지. 나라경제 나서서 사보타주 해주는 새끼들. 단순히 경제인들의 범죄라면 그건 그냥 부정부패가 쩔어주는 범죄지만, 거기에 정치권이 나서서 사면해주자 하는 거면 이건 단순한 경제범죄를 떠난 사보타주입니다. 국가 경제에 대한 사보타주.



보수라는 양반들이 좋아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시장자유주의. 물론 이 나라 경제인, 경영자라는 놈들은 규제에 대해서만 시장자유주의 이 소리하고 외국계 기업과 같은 경쟁자들에겐 규제를 해야 하고 국내 산업 보호해야 한다고 빽빽 거리지만, 원래 보수는 이러한 시장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이들입니다.


정부의 시장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경쟁'을 통한 시장의 자정작용을 기대해야 한다고. 문제가 바로 그겁니다. 경쟁이라는 것은 '올바른 경쟁'일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며, 그러한 경쟁에 따라 대기업이라도 망하게 된다면 망하게 내버려둬야 하고, 그러한 경쟁에서 '반칙'을 쓰는 놈들에 대해서는 심판의 입장에서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이 나라는 어떻죠? 올바른 경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자기 좋을 때만 시장자유주의를 주장하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각종 특혜가 주어지고 있고 외국계 기업과의 경쟁에 있어서는 철저한 자국 기업에 대한 혜택을 몰아주고 있죠.



시장 자유주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그러한 경제사범들에 대한 처벌이 아주 엄격해야 합니다. 시장이 제대로 굴러가려면 그 환경에 제대로 되어야 하니까요. 정부가 시장을 간섭하고 건드리면 시장이 망가진다고 하는 놈들이, 직접 시장 전체를 무너뜨리고 '오염'시키는 짓을 하는 건 놔둬야 할까요? 경쟁이라는 말이 애매해서 그렇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깡패짓이에요.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그러한 범죄가 없을 때 더욱 공정하고 안전한 투자가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그런게 바로 진짜 시장자유주의죠. 정부가 시장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은 그 시장에서 발생하는 범죄 또한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러한 범죄를 막고 범죄자를 잡아서 처벌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그게 시장자유주의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올바른 시장에서만 올바른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장에선 그따위 부정부패, 비리와 같은 사기질로 내 돈을 날려먹을 걱정은 없죠. 내가 능력이 없어서 돈을 잃을지언정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보수라고 한다면, 또한 시장자유주의를 지지한다면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벌어지는 경제인 사면에 대해 눈깔 뒤집고 반대해야 맞는 겁니다. 특히 주식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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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병 전차 ‘56도 찜통’… 지휘관 장갑차는 ‘냉방장치’

[단독] 방사청, '뚫리는 방탄복' 업체와 또 계약…왜?


다른 게 아니고, 그딴 거 별로 중요한 거 아니다. 가 핵심입니다. 전부터 꾸준히 주장했지만, 진짜 안보라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하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보수정권이, 그것도 보수라서 안보는 잘 한다고 하고 실제로 그딴 걸 이유로 찍어주는 그 보수정권, 보수당과 군이 하는 걸 보세요.

위 사례는 그 단편적인 예시에 불과합니다. 일반 병사들이야 고생하든 어찌돼든 상관없다는 거죠. 2차대전때나 쓰던 수통을 아직도 쓰고 총알 조차 못 막는 방탄복을 돈 주고 사며 얼마 안 되는 비품을 수 십 만원씩 주고 사는 짓이나 하는 걸 보면 북한과 전쟁나면 진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다른 데에 있는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자기들이 이렇게 썩어 문드러져서 그 실속이 휑하니 그 문제점도 자기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거죠. 겉만 번드르르 하면 뭐 합니까. 당장 흑표만 봐도 파워팩 문제 때문에 그렇게 홍보하고 세계 몇 위 전차라고 자위했지만 결국 그 성능 못 뽑아냈죠. 방산비리 때문에요.

그런 주제에 장성 출신 의원이 하는 말 좀 봅시다. 수통이 100년 됐든 무슨 상관이냐고. 그렇죠. 북한도 1세대 전차 굴리고 있고 데그챠레프 아직도 쓰고 있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잘 굴러가는 싼 중고품 들여와서 쓰면 되겠네요. 아직 창고에 M1 소총 많은 데 말입니다. 물론 수통이 아직도 잘 기능하고 있고 관리와 정비가 잘 되고 있으면 괜찮은 것도 일부분 맞는 말은 사실이에요. 실제로 구멍나서 물 줄줄 새거나 부서지면 새로 바꿔주긴 하죠. 하지만 문제는 그런 관리, 정비가 잘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독한답시고 뜨거운 물 부어주는 게 다라죠?

그리고 또 하나, 그런 군수품의 예시로서 수통을 들긴 했지만, 수통이 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겁니다. 보수당 보수정권, 그리고 군과 그 군 출신마저도 저따위 인식이니 어디 안보 믿고 맡길 수 있겠습니까? 전투력이라는 건 더 좋은 장비를 쓰는 쪽이 유리합니다. 전투력이 적의 레이더를 고장내지도 않고 적의 전자 무한궤도를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포탄이나 총알을 빗나가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랬으면 반세기도 전의 일본제국은 전세계를 지배해야 했고 지금의 북한은 진짜로 미국과 다이다이 뜰 수 있어야 하거든요.

전차의 예시를 보세요. 사병들이야 고생을 하든 말든 높으신 지휘관은 쾌적한 환경에 있어야 한다는 거죠. 중동에서도 저 문제 때문에 포 쏘다 더워서 탈진한 전차병도 있죠. 전차가 퍼지기 전에 전차병이 퍼진다는 소립니다. 이 나라는 여름만 되면 중동 못지 않은 더위와 심지어 습기 때문에 더 열지옥이 되는 데 저런 장비조차 없다는 건..

게다가 이게 어디 전차와 같은 것 뿐이겠습니까? 미군 같은 경우 삽질 할 때 삽 안 쓰고 포크레인 같은 중장비 부르는 거 이상한 일이나 드문 일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돈 아끼자고 사람들 굴리죠.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들이 붓자는 발상입니다. 즉, 사람을 글자 그대로 자원으로 쓰는 거죠.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허리 나가고 하는 일이 발생하는 거고요. 

돈 조금 덜 쓰자는 병신같은 발상이 진짜 미개한 구시대적인 발상이고 비효율적인 겁니다. 물론 줄일 수 있는 곳에서 줄이면 좋죠. 하지만 그랬으면 병신같은 발상이고 미개하다는 말도 안 했습니다. 근데 왜 그런 말을 했느냐. 그 부분들이 굳이 줄일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주제에 정작 골프나 치는 놈들의 돈낭비만 줄여도 안보에 아주 큰 도움이 되며 줄일 부분 안 끼는 비용 커버해주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중략)

백군기 의원은 "미국은 예비군 훈련시 계급별로 8만2천∼22만원의 보상비를, 이스라엘은 하루에 8만∼10만원을 지급한다"며 "우리도 예비군 훈련 보상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방부는 내년도 국방예산 요구안에서 예비군 훈련 보상비를 1만5천원으로 증액할 것을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이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재부의 태도는 결국 청년들의 주머니를 털어 국가 재정을 메우겠다는 것"이라며 "청년실업으로 신음하는 청년들에게 더이상 '애국페이'를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현재 한국군의 대우가 어떻습니까? 강제로 징병되어 군대에 감금된 상태로 인권이 유린되어 정당한 보수도 뭣도 못 받고 노동이 착취당하고 있는 상태죠.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노예와 같은 상태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에요. 이스라엘을 보세요. 한국보다 위험한 실제로 전쟁을 하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환경에 있는 국가입니다. 그러면서 허리띠 졸라매야 한다느니, 조금 희생해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 하던가요? 한국군처럼? 아니죠. 오히려 수 백 만원의 월급을 주고 예비군마저도 10만원 상당의 보상비를 지급합니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GDP 같은 경제규모도 한국보다 작아요. 

그런데 한국은 어떻죠? 세계에서 13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이자 이스라엘처럼 실질적인 전쟁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이 휴전이지 진짜로 포탄이 떨어지고 국군이 북한 영토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북한군이 남한 영토를 침공하는 것도 아니며, 그런 식으로 매일 전사자가 발생하는 것도 아닙니다. 간간히 발생하는 국지도발만 있을 뿐이고 전쟁 위기가 진짜로 고조되는 상황에선 오히려 북한이 대화를 하자고 접촉해오죠. 

그런 주제에 현역 장병들 월급 최저시급도 못 주겠다고 합니다. 그딴 게 합헌나오고 말이죠. 왜나하면 인권의 보장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노예나 집지키는 개 취급이니까. 사실, 우리나라 군인들 월급 제대로 챙겨줄 수 있어요. 최저임금으로 120만원이라고 해도 한 해 7500억이죠. 100만원이면 6300억입니다. 4대강이 얼마였죠? 22억이었죠. 120만원씩 주면 29년, 약 30년이고, 100만원씩이면 34년, 약 35년간 지급할 수 있습니다. 

너무 많은 돈이라고요? 글쎄요. 누군가에겐 절대 못 줄 돈이지만 누군가에겐 지급할 수 있는 돈입니다. 당장 아래와 같은 것을 줄이고 방산비리와 같은 문제를 예방한다면 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겠죠. 아래의 예산 중 골프장, 콘도회원권으로 사용된 1500억의 절반을 줄이고 골프장 몇개 줄이면서 관리비를 절반.. 아니, 그냥 100억원만 줄인다고 해도 850억인데, 이걸 저 위에서 제시한 금액에서 빼면 좀 더 지급하기 쉬워지겠죠? 100만원씩 지금이면 약 5500억이면 되니까. 그러면 사대강 22조원으로 40년간 지급할 수 있는 돈입니다. 청년 인구의 감소를 통한 현역병이 줄어들 것을 생각하면 예산은 더 줄어들겠군요.

2014/06/27 - [취미/이야기] - 병사의 주적은 간부.


(중략)


08년부터 5년간 군이 책정한 복지 예산이 1600억원인데, 그 중 1529억이 간부 몫으로 돌아갔죠. 총 예산의 95.7%. 용도별로 간부용 골프장, 휴양시설, 콘도회원권에 1500억을 썻는데, 그 중에서 사병 몫은 복지회관 18억, 복지매장 4억, 미니 축구장 조성에 45억이죠. 


(중략)


골프장 관리비가 연간 350억인데, 5년이면 1650억이죠. 그리고 그 골프장 짓는 돈까지 합치면 거의 3000억인데, GOP등 긴급하게 방탄복이 필요한 부대에 지급할 방탄복을 사기 위해 필요한 예산이 2000~3000억 정도라고 합니다. 골프장 짓고 관리하는 돈만 빼도 당장 살 수 있는 돈이죠. 물론 국방예산과 군인복지에 쓰이는 예산은 다르지만, 이건 너무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문제는 현역병이 아니라 예비군에 대한 겁니다. 하지만 왜 현역병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냐면, 일단 그것 또한 알아두면 좋을 것이고 글 주제와도 부합하면서, 예비군에 대한 설명에 대한 전제가 되면 더더욱 좋기 때문이죠. 예비군은 민간인입니다. 그런데 정부 제도로서 군과 연관이 되면 그들을 어떻게 다루는 지 보세요. 국가의 필요에 따라 강제로 불렀지만 일부 부담하는 걸 빼면 나머지는 니 돈으로 부담하라는 겁니다. 앞서 이야기한 한국의 상황과 경제규모를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대우죠.


단언컨데, 정부는 이 돈 다 대줄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 그거 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병신같은 삽질 사업벌이면서 돈낭비해서 그런 겁니다. 자기들이 세금낭비를 해놓고 돈이 없다고 하는 건 뻔뻔한 거죠. 기만하는 거고요. 4대강에 자원외교 같은 뻘짓만 안 했어도 서민들 주머니 터는 창조약탈경제는 없었겠죠. 그런 주제에 대기업 재벌은 놔두고 서민들만 턴다는 게 더 빡칠 뿐이고요.


이스라엘은 당장 사람이 죽어가는 전쟁 중인 국가입니다. 한국보다 더 위험한 곳이에요. 그렇지만 월급도 잘 주고 예비군도 보상금은 잘 줍니다. 위험하기 때문에 더 잘 줘야죠. 위험하면 그만큼 돈을 더 많이 줘야할 이유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될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실제로 전쟁의 위험은 낮다고 해도 국방부, 보수정권 스스로 전쟁과 안보를 팔면서 위기감을 조장하는 주제에 병사들, 예비군은 사람 취급을 안 하죠. 그러니 돈도 제대로 안 주는 거고요. 장교, 장성들은 스스로 기밀 팔아가면서 돈 벌고 방산비리 유착을 통해 부정한 돈 쌓아대면서 병사들 줄 돈은 아깝다는 겁니다. 안보에 대해 믿음직스럽죠?




정권, 국방부, 기업인 비판하며 욕하는 사람들을 종북,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들 중에 이런 일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거 본 적 없습니다. 진짜 빨갱이 종북인데 말입니다. 국가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는 진짜 위험분자들이고요. 안보라는 게 뭡니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 데 정작 법치를 무너뜨리면서 증거조작 하면서 세월호 참가자를 구속하려 들고 국가 정보부서가 나서서 간첩조작을 하면서 자국민을 공격하질 않나, 총 맞으면 뚫리는 방탄복을 거액을 주고 구입하질 않나.

심지어 장성부터 하급 장교들까지도 군 기밀을 팔아치우고 유착을 하며 성능 떨어지는 위험한 물건을 구입하는 데 이런 걸 말이 비리니 유착이니 부정부패니 하지만 사실상 사보타주라고 봐야죠. 전쟁이 터졌는 데 적 함선, 적 잠수함을 포착할 수 있다는 소나, 레이더가 정작 포착을 못하고 아군 함선이 침몰하고 격파되면 그게 적이 강해서 그런 겁니까? 아니죠. 돈 빼먹으려는 제작사나 장성 같은 놈들 때문에 성능 떨어지고 신뢰할 수 없는 물건을 납품하고 산 아군의 문제죠.

저 당시 기밀 정보 유출 때문에 한미연합사령관이 빡쳤다고 하죠. 그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자국군의 기밀을 간첩도 아니고 간부들 스스로 유출시키는 게 어디 정상적인 겁니까? 스스로 안보를 위협하고 북한에 도움이 되는 종북, 빨갱이, 간첩질을 하는 놈들이 군에 암약하고 있다는 소리죠. 그 일베충이 그 중 하나라는 소리고요. 애국보수? 한국이 아닌 북한을 기준으로 하는 애국보수인가 보죠?

그런 주제에 앵간한 일 아니면 제식구 챙긴다고 봐주는 일 많죠. 최근 가장 임팩트 있었던 건 역시 군 기밀을 팔아치운 놈을 보고 생계형 범죄라면서 봐준 사건. 그 외에도 많죠. 솜방망이 처벌이나 처벌 후 복귀하거나 비리에 부정부패 쩌는 놈이 처벌을 받거나 퇴역을 해도 군 인맥을 통해 강사니 뭐니 하는 쪽으로 먹고 사는 거에 문제 없으니까요.



니예 니예 그렇지요. 여자는 사람도 아니고 군대 안 간 남자들도 사람이 아니죠. 물론 박근혜와 대부분의 의원님들도 사람이 아닙니다. 아, 이건 맞는 말인 거 같네요. 이 양반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여간 사람 새끼처럼은 안 보이던데 다 그런 이유였나 봅니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특정 정당, 정부에 대한 충정이라는 게 함정이지만요. 그러고보면 그 시절 광주 재진입 작전도 충정 작전이었다죠? 공수부대가 시위자 패는 훈련하는 것도 충정 훈련이었고. 일개 정당과 정부를 위해 나머지 국민들을 공격하고 갈라놓는 게 참으로 안보에 부합하는가 봅니다.


'안보 버팀목' 군의 사기를 높여라


사실, 군의 사기를 높혀주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월급 잘 챙겨주고, 밥 맛있는 걸로 잘 먹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거 두개 다 안 해주면서 정신력이니 뭐니 개헛소리만 하고 있으니 문제인 거고요. 국가에 의해 강제로 징병당한 채 감금 상태로 인권유린에 노동착취 당하는 데 그런 환경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나마 돈이나 잘 주고 밥이나 잘 맥여주면 모를까. 근데 그거 둘 다 안 해주잖아요? 미군의 군기가 높은 이유가 뭐겠습니까. 군기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훈련을 하고 지휘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돈도 잘 챙겨주고 밥도 잘 먹여줘요.

사람이라는 게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일할 맛도 생기는 거고 기운도 사는 겁니다. 열심히 고생했는 데 쥐꼬리 만한 월급에 여전히 개같은 대우 받으면 기분이 좋겠어요? 계속 일하고 싶겠습니까? 일 열심히 하고 싶겠어요? 아니죠. 받을 만큼만 받아도 억울하진 않죠. 그런데 이 나라를 그런 거 안 해주잖아요. 그런 주제에 나랑 별 관계도 없는 지휘관이 혼이 나든 말든 평소에 얼굴 안 봤으면 좋겠다 싶은 양반들이 뭔 소리를 듣든 무슨 상관이니까. 그런 인간들이 부대 자주 방문 하는 것만큼 좆같은 일이 없는데.

그런 주제에 안보를 논한다? 기만이죠.



하여간, 이렇게 보면 보수와 군대는 진짜 안보를 등한시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보가 뭡니까.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장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 데 정작 군은 간부들인 병사들 등쳐먹으면서 돈이란 돈은 지들이 쳐먹고 아예 장성부터 하급 장교까지 기밀을 팔아대질 않나 그런 주제에 처벌은 솜방망이에 생계형 범죄라고 봐주고 앉았고 방산비리에 유착관계로 말이 부정부패지 사실상 사보타주를 일삼으며 재산을 불리고 있고 애국보수랍시는 놈들은 관심 좀 받자고 군 기밀을 스스로 유출시키는 짓을 하고 있죠.

그렇다고 보수정권이 이런 문제에 대해 열의를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저런 장성들이 국회에 입성하면 대부분 새누리당으로 기어들어가죠. 똑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쓰레기들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현역 장병을 처우를 개선해주는 것도 탁상공론에 현실적인 해결책인 절대 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최저임금에 맞게 돈을 주는 것도 아니죠.


진짜 종북에 빨갱이라면 이런 새끼들이에요. 보수와 군에 암약한 수많은 쓰레기만큼 종북 빨갱이들이 많은 곳도 없습니다. 나라 망치는 세력들이거든요. 진짜 안보가 뭔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의식도, 시각도 제대로 되먹질 못했으니 자기들이 하는 애국행위가 정작 진짜 위험한 해국행위라는 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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