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맨 처음 작품 설명을 봤을 땐 뻔한 천재의 먼치킨 작품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작품 설명만으로는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보니 정확히 판단을 할 수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 작품을 볼까 말까를 망설였거든요. 하지만 댓글 평을 보면서 일단 한번 보기는 해보자고 마음 먹고 봤습니다.
생각보다 꽤 괜찮더군요. 개인적인 평입니다만, 신룡의 주인보다는 훠얼씬 나은 소년작품? 신룡의 주인은 오그라들 정도였고 개연성이나 캐릭터성도 많이 부족하며, 그걸 이끌어내고 묘사하는 것도 겉멋만 들었지 필력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무한의 마법사는 크게 뛰어나거나 수려한 편은 아니더라도 무난한 정도에 속하는 정도라 부담이나 아니다 싶은 느낌은 그닥 들진 않았습니다.
추가 : 그냥 괜찮은 편이 아니라, 후반까지 가보면 매우 훌륭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몇몇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고, 그 이상으로 연출, 스토리, 떡밥 등 이런 류의 판타지 소년작품 중에선 아마 최고 수준의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품 꽤나 좋게 보는데, 이전부터 이런 류의 능력 따위를 생각하면서 어떠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반드시 그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방법론과 이론이 존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전적 판타지에선 마법을 그저 이해하지 못하는 신비하고 알 수 없는, 경이적이거나 두려운 무언가로 묘사하곤 했죠. 어떠한 방식이나 형태, 형식 따위보다는 그저 신비한 권능으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진다는 느낌으로요.
뭐, 현대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마법에 어떤 논리나 합리성, 작동함에 대한 묘사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그리 구체적이지도 않고 그저 이렇게 해서 저렇게 했다 정도로만 묘사하는 경우가 많죠. 사실 그런 것이 특별히 이상한 것이 아닌 게, 그걸 구체적으로 묘사해봐야 쓸데없이 길어지기도 하고 굳이 알아야할 필요도 없으며, 무엇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어떻게 설정을 짜고 묘사를 하든 그거야 본인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느니 아니니를 떠나서 그게 이상한 게 아니고 기실 당연하기도 합니다.
그저 저 혼자만의 상상에 불과하지만 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일종의 프로그래밍과 비슷한 작동, 구현의 원리를 상상해본 적 있곤 하죠. 또한 어떠한 현상을 일으킨다면 그건 단순히 마법만을 생각하기 보다 과학의 영역과 접목시켜서 묘사하거나 설명하는 것도 상당히 개연성 있고 합리적인 묘사라고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마나라는 게 있다면 그것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떻게 인간이 의지나 의지 비슷한 것만으로도 다룰 수 있는 지, 또한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활용되어 마법이라 불릴 수 있는 효과, 혹은 현상을 발생시키는 지에 대해서 말이죠. 마나라는 것은 물질로 따지자면 개별적 원자나 초끈이론의 끈, 에너지로 쳤을 땐 그 자체로 어떠한 에너지로도 변용 가능한 것이라든가.. 마나를 다룬다는 것은 애초에 인간에게 없는 감각이니, 추상적이고 비물리적일 순 있지만 동양사상 등에 나오는 기와 같은 개념으로 접근을 한다던가.. 마법의 발현이라면, 불 같은 경우 마나를 이용해 특정 좌표나 물질 표면, 혹은 내부에서 열에너지를 상승시키거나, 플라즈마를 발생시키거나 불이 발생할 수 있는 물질로 변환시켜 그것들을 서로 작용케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던가 말입니다.
실제 작품에서 묘사된 비슷한 사례로는, 가령 일본 작품이긴 하지만 무직전생에선 마법적 능력과 과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스승 앞에서 오래 걸리고 (상대적으로) 난이도 높은 편인 넓은 범위에서 비가 오래 쏟아져 내리게 하는 마법을 실현했고, 카카오페이지의 다른 소설인 나는 히어로인데 형은 무한전생자? 에선 초능력과 과학적 원리를 통해 토카막 핵융합포나 장거리 비행, 전자기 능력이나 그걸 플라즈마로 되돌려 반격하는 등의 여러 활용성을 묘사한 적 있죠.
마찬가지로 무한의 마법사에서도 그런 과학적 원리와 법칙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꽤나 마음에 드는 설명을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개연성 있게 이끌어내고 묘사한다는 점이 굉장히 취향저격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초반부의 힉스 입자가 등장하는 부분에선 상당히 흥미를 이끌어내었죠. 아주 잘 설명해낸 부분이었거든요. 소년만화(여기선 소설이라고 해야겠죠?..)에서 무언가 떡밥이 던져지고, 그거에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느끼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진일보하는 성장의 모습을 짧고 무겁지 않게, 정석적이고 무난하게 서술한 점은 꽤나 교과서적이다 싶었습니다.
추가 : 물론 유사과학인 건 사실이긴 합니다. 특히 미토콘드리아 이브 개념은 아예 그 개념을 왜곡시킨 수준인데, 다른 것보다는 좀 더 왜곡의 폭이 크다고 봅니다. 이건 작가가 잘 몰라서 그런 건지, 아니념 개념만 따온 채 작품에 써먹기 위해 크게 변용시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자라고 해도 어차피 소설이니 큰 문제는 안 되고, 후자라면 괜찮은 판타지적 상상력인 셈이죠.
또한 설정에 있어서 더욱 매력적인 것은 기독교, 불교적 개념을 섞어서 쓰지만, 결코 우습진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멋있을 수준이고, 경지나 수준, 개념에 대한 다채롭고도 다양한 설명들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마법에 대한 능력도 작가의 판타지적 상상력이 뛰어났지만, 나중에 등장하는 파르카 쿠안이나 풍장, 리안의 검술 등은 마법에 대한 것 못지 않게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발상들이고요.
똑같은 소년소설 장르인 신룡의 주인과 가장 비교가 되는 장면은 절친이 되는 친구들과의 만남과 친해지는 계기들인데, 신룡의 주인에선 너무 개연성이 부족했고, 설령 개연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해도 그걸 독자들이 납득하기 어렵게 묘사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작위성이 더 크게 느껴졌고요. 이것만은 아니지만, 그런 이유들 때문에 결국 얼마 안 가서 하차한 작품이었죠.
하지만 무한의 마법사에선 친화력 쩔어주는 네이드와 반대 성향이지만 똑같은 천재형 캐릭터인 이루키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친해지게 되는 건 상당히 개연성 있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죠. 작가의 필력이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무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묘사와 서술인지라 무리함이나 작위성 따위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작품 내적으로 좀 크게 아쉽다고 생각하는 점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의 반성에만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속죄를 하거나 책임을 지는 모습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알페아스도, 아케인의 두 제자도, 마르샤도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속죄한 건 없고, 자신의 죄에 걸맞는 처벌이나 납득할 수 있는 책임을 보여준 적이 전혀 없죠. 작가가 워낙 반성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니 답답해보일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상당히 아쉽더군요. 뭐 죽이거나 고문 받거나 절망 속에서 망가지는 걸 원하는 건 아니지만, 죄에는 책임이 따라야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 주관적인 기준에선 살짝 아슬아슬 하지만 괜찮은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재밌게 보고 있는 작품이죠. 설정덕후 적인 면모가 있다거나 이런 종류의 원리와 묘사가 취향이라면 재밌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봅니다. 추천할만하죠.
추가 : 후반으로 갈수록 연출, 전개, 묘사, 해석 등 상당한 수준으로 특히 가올드의 스토리와 가올드 파티가 천국에서 분탕칠 때, 그 중에서도 천국의 모두(전에 시로네가 천국에서 만났던 신민들마저도) 한계와 역할, 혹은 삶의 끝에서 모든 걸 쏟아내거나, 모든 감정에 먹혀버리는 시기에 시로네의 신의 징벌이 떨어지며 각각의 인물의 모습과 감정, 시간이 교차되며 서술되는 연출은 가히 영화적 연출이라 봐도 될 정도로 수려했고, 독자로서도 그 처절함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게 했죠.
이는 가올드가 20년전의 과거에서도, 그리고 천국에 와서도 미로를 찾으며 울부짖는 정신나간 광인의 처절함을 느끼게 하는 것과는 다른 처절함과 처연함이었습니다.
가올드 파티와 천국행의 스토리는 무한의 마법사에서도 가장 재밌고 훌륭한 스토리라인과 감정선들을 보여주며, 복합적이고 다각적인 관계와 감정들이 얽히고 섥히는 작품적 매력을 보여줬죠. 또한 시로네에겐 마법사란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것을 가깝게는 왕국 수석 졸업생이자 공인 8급의 협회 정직원 플루, 멀게는 세인과 가올드, 줄루라는 1급 대마법사에게, 심지어 교사인 시이나와 에텔라, 아예 검사인 쿠안에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는 그 이상으로 무엇이 프로인가.를 시로네에게 알려주기도 했죠.
작품적으로 시로네라는 캐릭터에게 가르치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납득을 시킬 수 있었고요. 이러한 마법사. 프로에 대한 기준과 묘사, 서술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가장 와닿게 서술한 것은 천국행 스토리라고 봅니다.
더불어 시로네에 대한 캐릭터 그 자체에 대한 떡밥들이 뿌려졌고, 이는 훗날 스크럼블 로열 이후 겪는 시불상폭매를 통한 과거 사건의 개입에서 밝혀지는 사실이죠. 그리고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별 다른 임팩트가 없을 순 있어도, 시로네라는 인물의 근본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동시에, 훗날 이어질 스토리를 위한 떡밥으로 작용합니다.
초반 무한의 마법사라는 작품에서 발암, 고구마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시로네가 너무 나이브하게 적을 대한다는 겁니다. 바로 위에서 비판하고 있듯이, 너무 반성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책임을 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시로네를 제외한 이들에게 대한 거고 여전히 유효하는 비판입니다만, 시로네가 타인, 적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 또한 크게 다를 게 없었죠.
근데 사실 그런 이유가, 시로네는 (에이미의 평가처럼) 자신을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본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초반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와닿지도 않았죠. 하지만 이는 사실 시로네라는 인물이 그만큼 완벽함에 가까운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시로네는 화이트 라인 후보생이 되는데, 그때 화이트라인에서 온 별이 말합니다. 카르라는 개념을 말하면서, 시로네는 약 90%의 전지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고, 10%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충 이런 개념으로..) 이것으로 시로네의 과거 태도들이 모조리 설명이 됩니다. 즉, 과거의 고구마스럽고 답답하던 태도와 판단이 어째서 그랬는가를 알 수 있으며, 더불어 그러한 것들은 초반부터 지금까지 쭉 떡밥으로 이어져서, 나중엔 아예 졸업시험-화이트라인 후보 테스트로 이어지는 스토리로 연계가 되버리는 거죠. 그리고 이건 시로네의 혈통과 밀접한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고요.
아예 라 에너미와의 관계에선 앞서 말하는 스크럼블 로얄 이후에서 겪게 되는 이스타스에 숨겨진 사건에서 자신의 시작을 확인하며, 자신은 뿌리가 없다. 라는 걸 알게 되는데, 이 역시 라 에너미가 과거가 없는 시로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천적관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초반부터 설정된 캐릭터성이고 스토리이니 작가의 역량이 처음 리뷰를 쓸 때보다 상상 이상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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